좀비 헌터 - 1화. 시작(9)
처음에는 호감을 느끼며 시작한 대화였으나 헌터와 주민의 사고방식이 얼마나 다른지 확인하는 것으로 끝을 맺고 말았다. 어색한 분위기가 이어졌다. 정적을 깬 것은 교회로 들어오는 일단의 무리였다. 승희와 함께 식량을 찾으러 떠났던 D섹터 12번 구역의 주민들이었다.
‘그래도 밑바닥까지 떨어지지는 않았나보군.’
좀비가 총성에 민감한 것을 알면서도 합류지점을 확인한다는 것은 대단한 용기였다. 남자가 넷이고 여자가 둘이었다. 승희와 죽은 아버지까지 포함하면 성비는 5대 3. 사냥부대에 여성의 비율이 높다는 건 그들의 사회가 붕괴되었다는 의미였다.
“승희야! 괜찮아? 어떻게 된 거야?”
“준서 오빠.”
준서는 정직한 인상의 청년이었다. 승희를 특별히 아끼는지 가장 먼저 달려왔는데 눈빛에는 친한 여동생 이상의 감정이 담겨있었다.
“얼마나 놀랬는지 알아?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아저씨는 어디 계셔?”
승희의 얼굴이 어두워지자 준서는 황급히 말을 삼켰다. 총소리가 들렸고 혼자 왔다면 어떤 상황인지는 듣지 않고도 알았다.
“아, 미안…….”
승희는 제이를 돌아보았다. 따듯하지는 않지만 차갑지도 않은 눈빛을 대하자 조금 전의 언쟁이 무의미할 정도로 마음이 차분해졌다. 자신이 어떤 일을 당했는지 알고 있는 유일한 사람이다. 오직 저 사람만이 지옥 같던 시간을 함께 걸어주었다.
그 모습에 준서의 경계심이 발동했다. 승희가 저토록 신뢰하는 눈빛을 보내는 사람은 아버지 외에는 처음이었다. 어렵게 차지한 1등석 자리를 빼앗긴 것 같아 불안했지만 초면에 함부로 대할 만큼 예의가 없지는 않았다.
“저기…… 실례지만 누구신지? 승희와 어떻게 아시죠?”
그 순간 한 명의 군인이 교회로 들어왔다.
“어라? 살아 있었네? 총소리 나서 끝났다고 생각했는데.”
이지스 한국지부 소속, 좀비 헌터 김춘식이었다. 30대 초반이지만 고된 훈련으로 얼굴은 훨씬 나이가 들어보였다. 군용가방을 질질 끌고 있었는데 편의점에서 챙긴 깡통들이 부딪히며 시끄러운 소리를 냈다. 규정 위반이었다.
“히히! 내가 뭘 찾은 줄 알아? 담배야 담배. 오늘은 운이 좋은데?”
군용조끼에서 담뱃갑을 꺼낸 춘식은 어린애처럼 즐거워했다. 한 개비를 물고 라이터가 들어 있는 주머니를 뒤적거리는데 승희가 다가와 담배를 낚아챘다.
“지금까지 어디 있었죠? 당신 때문에…… 당신 때문에……!”
“잠깐 잠깐. 부탁인데 우는 소리하려거든 하지 마. 실드에서 사람 죽어나가는 게 하루 이틀이야? 너희들만 죽어? 내 동료도 죽었어. 그래도 니들은 아직까지 살아 있잖아?”
중년 여성이 참지 못하고 소리쳤다.
“총소리를 들었으면서 갈 생각조차 없었잖아요! 조금 더 일찍 왔으면 구할 수 있었을지도 몰라요!”
춘식이 새 담배에 불을 붙이려다말고 폭소를 터뜨렸다.
“어떻게 그런 개 같은 소리를 할 수 있지? 그렇게 구하고 싶으면 너희끼리 가면 되잖아?”
주민들은 최선을 다했다. 하지만 헌터의 도움 없이는 좀비가 우글거리는 지역을 통과할 수 없었기에 먼 길을 돌아야했다.
“당신이 도와줬으면 더 빨리 도착할 수 있었을 거예요. 당신은 헌터잖아요! 우리는 무기도 없는데 어떻게 좀비와 싸우죠?”
“바로 그거야. 너희들은 싸울 수가 없잖아. 그래서 내가 개처럼 따라다니며 식량까지 구해다주는 거잖아. 내 동료들이 죽어나갈 동안에 너희들은 편하게 받아먹기만 했잖아. 하지만 이제는 곤란하지. 이런 식으로 나오면 내가 좆같잖아! 앙!”
춘식의 폭력성이 유감없이 드러났다. 수틀리면 주민이고 뭐고 주먹부터 나가는 성미에 주민들은 반항할 생각조차 하지 못하고 고개를 숙였다.
“크크크. 쓰레기들.”
- 작가의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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