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웅루까의 서재

죽기 싫은 활쟁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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웅루까
작품등록일 :
2021.05.24 22:15
최근연재일 :
2021.05.31 23:53
연재수 :
6 회
조회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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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글자수 :
28,049

작성
21.05.25 19: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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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2. 숲

DUMMY

"조금 모자라네."


규모가 나름 괜찮은 상행이었지만, 보수가 그리 큰 편이 아니어서 원하는 물품을 사기에는 조금 모자랐다.

생명력 증대의 영약이나 치료 회복용 고약, 포션은 여전히 비쌌다.

은행에 넣어둔 돈을 빼기에는 조금 아쉬웠다. 이건 추후 대도시에 있을 경매에 참여할 자금이었으니까. 목숨줄을 늘리기 위해서.


다만 회사에 들어갔더라면 최소 20% 이상 더 좋은 보수를 받을 수 있었기에 고민이 된다.

개인의 신원과 위업이 인증된다고 한들 보이지 않는 벽을 뚫지 않는 이상 보수가 크게 뛸 일은 없다.

진짜 취업을 고려해봐야 하는 걸까.

21세기 지구에서도 취준생 이었던 과거를 떠올리며 머리카락을 휘저었다.


부족한 돈을 보충하기 위해선 어차피 밖으로 나가야 했지만, 아늑하고 살기 좋은 도시를 버려두고 다시 밖으로 나가 야영을 하는 건 영 내키지 않는다.

밖이 수련하기 좋고, 재능이 만들어주는 편안함은 있어도 벌레와 부대끼며 며칠을 거지처럼 생활하는 건 영 꺼림칙했다.

더욱이 나는 21세기 깔끔한 문명의 신봉자였으니까.


물론 이 세계는 21세기 지구와는 다른 면이 꽤 존재한다.

고작 1년이었지만, 이 세계가 어떤 방식으로 굴러가는지 대충 파악하기엔 충분한 시간이었다.

과학이 발달하지 않고, 마력으로 구동되는 모든 공학이 그것을 대체한 세상.

21세기 지구에 비하면 조금 모자라지만, 근대에 가까운 문명을 구축한 세상.

그리고 달이 세 개나 떠 있는 판타지 월드.

그걸로 충분하다.


"주문하신 음식 나왔습니다."

"감사합니다. 여기 팁이요."


지잔이나 호수 연합국가였다면 팁 문화 같은 건 없을 테지만, 케플라비크의 보르가르네스는 그런 문화가 꽤 대중적으로 퍼져있었다.

좋게 말하면 능력지상주의. 나쁘게 말하면 평등이 없는 사회.

지금 공손히 두 손을 내밀어 팁을 받아가는 사내 또한 친절함을 무기로 최대한의 금전적 이득을 취하려는 모양새였으니.


삶은 소시지의 냄새는 배고픈 위장에 자극적으로 다가왔다. 칼로 베는 순간 폭 터져 나오는 육즙이 그 자극을 더한다.


느긋하게 음식을 즐기며 추후 계획을 다듬는다.

다행히 모자란 금액은 국가공인 중개사무소에서 짤짤이 몇 개정도 해결하면 충당될 금액이다. 비록 바깥으로 나돌지언정, 불가능한 액수는 아니란 뜻이다.

마침 1월의 마지막까지 지원할 수 있는 기업. 라스 아노드는 열려있다.

케플라비크의 국가 용병직. 굳이 표현하자면 공무원. 목숨수당이 꽤 쎈.


약 2주의 시간이 남았다.

딱 괜찮다. 조금 모자란 금액을 1주짜리 업무로 때우고 라스 아노드에 지원한다.

순간 대기업에 지원한다는 묘한 이질감이 씁쓸하게 가슴을 스쳤다.

지구에서는 취준생에 불과했지만, 지금 자신감 있게 국가 공인 무력 단체에 이력서를 넣고 붙을 생각을 하다니.

재능은 나를 좀먹는 질병이었지만, 한편으로는 자신감을 채워주는 불편한 친구였다.


식사를 마친 후 국가공인 중개사무소로 향한다. 항상 그 근처에 있는 식당을 애용하다 보니 걷는 거리 자체는 채 십 분도 되지 않았다.

도로가 잘 정비되어있는 도시인 것도 컸다. 시골이나 소도시를 가면 이런 환경을 쉽게 볼 수 없었으니까.


업무는 연구직이나 기업에서 발주하는 것이 대부분.

대규모보단 소규모, 그것도 개인이 신청하는 것이기에 보수가 크지 않다. 위험도도 낮은 편이기에 용병들이 쉽게 쉽게 나서서 일을 처리한다.

물론 때로는 꽤 규모 있는 일도 나온다. 이곳에 온 상행처럼.


[지우미레하 - 린비카니 숲 채집]

[스타니스라바 - 린비카니 숲 사냥]


슥 훑어보니 꽤 많은 업무가 보인다. 아쉽게도 '긴급'이 붙은 것은 보이지 않는다.

도시 규모쯤 되면 긴급 지령만 처리하는 긴급 사냥꾼들이 있기 마련이지만, 아쉬운 건 아쉬운 거였다.


웅성대는 용병들 사이로 대충 몇 개의 임무를 집어서 카운터로 움직였다. 이왕이면 몰아서 할 수 있는 린비카니 숲에서의 임무.

넉넉잡아 모두 10일 이상으로 되는 임무로 가져왔다.


"요청이요."

"신분증 주시겠어요?"


주머니에서 신분증을 꺼내 보여준다.

지금도 느끼지만, 매우 잘 만든 신분증이다. 개인의 업적과 경력. 용병일 경우 필요한 모든 것이 즉각 기록되는 편이니까.

이런 걸 보면 이 세계의 기술력도 굉장히 우수하다. 나 같은 일반인은 따라갈 수 없는 마공학의 세계가 분명 존재하니까.


"산드비켄의 프리시오씨. 맞죠?"

"네."

"와. 1년 차인데 업적이 대단하시네요. 4장이나 들고오셔서 반려도 잠시 생각했었는데 그럴 필요가 없겠네요. 임무 성공률이 90%에 육박하시니까요."

"감사합니다."

"보수는 계좌로 드리면 될까요?"

"그렇게 해주세요."


도장을 들고와서 쾅쾅 찍어내는 사무원은 나를 흘긋 보더니 임무서를 네 장 건네주었다.


"알고 계실 테지만 다시 설명해 드릴게요. 전부 린비카니 숲에서의 임무에요. 붉은 비늘 부족 코볼트의 비늘, 그림자 늑대의 그림자와 피, 참꽃마리 물망초, 진주 절벽의 진주. 이렇게 네 개에요. 기간이 그렇게 길지 않기 때문에 혹여나 3일 이내로 남으면 긴급으로 전환된다는 점 명시해 드릴게요. 그 이후 선점하는 용병이 보수를 갖게 되는 점 아시죠?"

"네. 진행해주세요."

"네. 임무 접수되셨어요. 보수는 선 입금되고 혹여나 실패 시 계좌에서 빠져나갈 수 있다는 점 안내 드릴게요. 무운을 빌어요. 산드비켄의 프리시오씨."


가볍게 고개를 숙이고 사무소를 나왔다.

다행히 린비카니 숲에 서식하는 여러 종류의 몬스터와 식생류에 관한 지도가 사무소에 있었다. 대충 훑는 것으로 충분했다.

처음 오는 도시. 처음 맞이하는 낯선 숲. 아는 것은 지도에 적힌 대략적인 위치뿐이었지만 믿는 것은 오직 재능 하나였다.

임무 성공률 90% 중에서도 단체를 제외한 개인임무는 실패한 적이 없다. 1년밖에 되지 않은 짧은 경력이지만, 재능은 결코 나를 배신하지 않았다.


"후. 준비해야지."


스스로에게 다짐하듯 내뱉은 짧은 혼잣말은 이내 허공으로 부스러진다.

우습지만, 준비한다는 말은 그저 활을 잡기 위한 마음의 준비에 가깝다.

대형상점이 있다고 한들, 그곳에서 구매할 물품이 이 재능이 만들어주는 제작품보다 뛰어나다는 보증이 없으니.

활에 관련된 모든 압도적 재능이 선사하는 지식은 조금 귀찮을지언정 야생에서 훌륭한 물품을 보장한다.


약간의 건조식량과 숫돌. 날카롭게 벼린 단검과 구급약. 생명력이 급격하게 소진되었을 경우를 대비한 치료용 고약과 포션.

거진 준비되어 있었기에 따로 무언가를 추가할 필요는 없었다.

그저 사무소의 지도가 가리킨 방향으로 부지런히 발을 이끌면 될 뿐.


그렇게 나는 케플라비크의 보르가스네스에서 채 하루를 넘기지 못하고 야생이 살아숨쉬는 숲으로 들어갔다.








숲은 고요했다.

1월의 서늘한 날씨는 약간의 안개와 쿰쿰한 냄새를 동반했고, 감각이 매끄럽게 다듬어져야 할 사냥꾼에게 방해되었다.

나는 천천히 활을 잡았다.

언제나 그렇듯 어김없이 밀려들어 오는 충족감.

감각이 곤두서며 흐릿한 시야와 뒤섞인 후각을 맹렬하게 증진시킨다.

도달할 수 없는 경지를 강제로 눈앞에 가져다주는 듯한 충격.

두 눈을 질끈 감았다 뜨며 마력을 뜨겁게 진동시킨다. 빠져나가는 생명력을 전부 감당할 수 없었기에 일부나마 마력으로 대신하는 편법이었다.


"여섯 시간."


재능은 몸이 감당할 수 있는 시간을 알려준다.

물론 특별한 변수가 없을 때 가능한 시간. 혹여나 큰 전투로 인한 충격은 시간의 손실을 배가시킨다.

시간제한이 걸려있지만, 조급하지 않게 이동한다. 그리 어려운 임무도 아닌 만큼 시간에 쫓길 이유가 없다.


사냥에 있어 근접전사와 달리 궁사는 인지되지 않는 것을 최우선으로 한다.

아는 곳에서 날아오는 화살 한 발과 모르는 곳에서 날아오는 화살 한 발의 위력차이는 이루 설명할 수 없을 정도로 극명하다.

즉 대처 가능하냐 불가능하냐의 차이. 더욱이 이런 재능 아래서 쏘아진 것이라면 더더욱.


포지셔닝. 위치 인지. 저격수와는 조금 다르게 능동적으로 움직이지만 발각되지 않도록.

사냥에 있어 재능이 찾은 답이었다.

그렇기에 나는 나무 위를 소리 없이 뛰어다니며 사방을 시야에 담는다.

나뭇가지를 통해 스며드는 미약한 생명의 기운은 조금이나마 생존시간을 늘려준다. 작지만 도움되는 힘이었다.


"스으으."


길게 참은 호흡을 아주 느릿하게 내뿜는다.

몇 초. 때로는 몇십 초에 걸친 호흡은 숲의 느릿함에 동화되는 좋은 수단이었다.

그것은 발밑에 있는 붉은 비늘 코볼트가 제 바로 위를 인지할 수 없는 기술이었고, 사냥감을 포착한 재능의 전투개시 신호였다.


화살통에서 조용히 화살을 꺼내어 시위를 매긴다.

팽팽하게 당겨진 시위는 조금의 흔들림 없이 코볼트의 머리를 겨냥하고 있다.

아무것도 모른 채 걷고 있는 코볼트는 녹색 빛이 만연한 숲을 두리번거릴 뿐이었다.

온 신경이 활에 집중된다.

재능이 이끌어주는 실력도 일부 있지만, 온전히 내 노력으로 쌓아올린 부분도 없잖아 존재한다. 그것이 자못 뿌듯하게 다가온다.


퉁-


매끄럽게 공기를 때리는 소리와 함께 쏘아진 화살은 오차 없이 코볼트의 머리를 관통했다.

아무것도 모른 채 죽은 녀석은 바닥에 피를 흥건히 흩뿌렸다.

보이지 않는 사각에서의 사냥은 암살자와 같은 기분을 선사해준다.


발소리 없이 뛰어내려 코볼트의 비늘을 떼어낸다. 조심스레 수집하여 다섯의 품목을 채운다. 다행히 시체를 챙기는 수고스러운 일은 아니었기에 그대로 놔두고 떠나면 될 일이었다.

그러면 숲이 알아서 시체를 처리할 테니까.

체감상 코볼트는 숲 초입부의 가까운 곳에 있었던 만큼 쉬운 임무였다.


머리에 꽂힌 화살을 꺼내어 혹여나 활촉에 문제가 생기지 않았는지 확인한다.

퍽 날카롭고 단단하게 벼려진 촉이었기에 피가 묻은 것을 제외하면 이상이 없다.

마른 천을 하나 꺼내 화살에 묻은 피를 닦고 시체 옆으로 버린다.

이렇게 쓰니 아쉽지만, 피가 묻은 천 따위를 몸에 지니고 다닐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더욱이 그다음 상대가 그림자 늑대라면야.


쉽게 첫 임무를 달성하니 살짝 마음이 놓인다. 시작이 좋다.

일종의 징크스에 가깝지만, 첫 단추를 잘 꿰면 나머지도 술술 풀리는 경향이 있다.

이는 재능이 주는 완벽함에 가깝지만, 지금껏 잘 되어 왔으니 믿지 않을 이유가 없다. 더욱이 그런 만족감은 편안함을 선사해주니까.

약간의 행복감을 뒤로하고 천천히 다음 일정을 짜낸다.

루트를 구상하자면 이후로 그림자늑대 쪽으로 향하며 참꽃마리 물망초와 진주를 캐내면 될 일이다. 그리 어렵지 않다.

거리가 조금 있기에 야영은 불가피하지만, 이미 각오한 일이다.


활을 잡은 손을 놓고 등 뒤에 멘다.

걸어가야 하는 거리가 있는 만큼 생명력을 빨리며 오랜 시간 걸으면 변수에 대처하기 힘들다.

이럴 때를 대비해 제 실력을 길러온 만큼 맨몸으로 전진할 시간이었다.

활을 놓자 밀려오는 탈력감. 의지하던 무언가를 잃은 듯한 상실감.

불안감이 재능이 사라진 빈자리를 채웠지만, 주먹을 꽉 쥐며 그 상실감을 털어내려 노력한다.


지금부터가 진짜배기 숲에서의 일정이다.

24시간 활을 잡고 생활한다면 나는 일 년이 채 되지 않아 급사하고 말 것이다.

이런 재능이 있음에도 그것에 몸을 맡기면 모든 생명을 빼앗기기에.

그저 단순히 내가 재능을 믿지 않고 노력하는 이유였고, 몬스터와 괴상한 동식물이 판치는 숲에서 그 실력을 꾸준히 갈고닦는 것이었다.

물론 약간의 불안함은 언제나 동반되었지만.


작가의말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열심히 쓰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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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숲 21.05.25 25 1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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