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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법판사 님의 서재입니다.

SSS급 살인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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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법판사
작품등록일 :
2021.03.21 17:29
최근연재일 :
2021.03.28 22:00
연재수 :
27 회
조회수 :
2,099
추천수 :
39
글자수 :
173,230

작성
21.03.23 22:00
조회
61
추천
2
글자
21쪽

22화. 월담

DUMMY

SSS급 살인귀 22화


나한테 고마움을 느끼고 있는 레나.


지금이라면 엉덩이춤을 춰달라고 해도 기꺼이 해주지 않을까? 하지만 당장 엉덩이춤을 춰달라고 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그러니 대신 다른 종목을 이용해서 확인해보기로 했다.


그녀가 어머니랑 대화하는 도중에 슬쩍 옆으로 가서 몰래 레나의 엉덩이를 손아귀로 꽉 쥐었다.


“히이이이이이익....!!”


레나가 깜짝 놀란 얼굴로 교성을 내지른다. 반응이 참 귀엽다. 그 뒤로 달아올라서 거칠어진 숨소리. 레나의 신뢰도가 떨어졌다는 메시지는 아직까진 안 뜨고 있다. 일단 한 번까진 오케이라는 건가?


“레나야, 왜 그러니? 혹시, 오늘 몸이 안 좋아서 그래?”


갑자기 딸이 소리를 지르니까, 모친이 걱정스런 얼굴을 한다.


“아니에욧...!”


레나가 급하게 표정을 수습하면서 대답했다.


“아, 아뇨! 전혀요! 갑자기 다리에 살짝 쥐가 났을 뿐이에요. 제 걱정은 안하셔도 되요.”


그렇게 말하면서 이쪽으로 살짝 눈을 흘긴다.


입모양을 읽어보니,


‘하지 마!’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그런데 하지 말라고 하니까, 더 하고 싶어졌다.


레나의 엉덩이로 재차 마수를 뻗었다. 그런데 갑자기 레나 어머니가 갑자기 나한테 말을 걸었다.


“백작님, 우리 레나 좀 잘 부탁드립니다. 억세어 보이지만 생각보다 여린 아이입니다. 그러니 부디..”


깜짝이야! 들킨 줄 알았네!


다행히 별 말 아니었다. 단순한 자식걱정이다.


그건 그렇고. 원래 이런 설정이었지?


단순히 요약하자면.


백작인 내가 길을 지나가다가 우연히 레나가 가지고 있는 검에 대한 재능을 알아봤다. 그리고 그녀의 재능이 아까워진 나는 레나를 거두어서 내 휘하의 기사로 키우기로 제안을 했다. 사실대로 내 노예가 됐다고 말할 수도 없는 노릇이라 이렇게 하자고 미리 서로 말을 맞춰뒀다.


즉, 이게 역할극인 것을 모르는 레나의 어머니는 레나가 내 휘하 가신으로 들어간 것으로 알고 있다.


때문에 나는 귀족을 연기해야한다.


나는 귀족 특유의 오만한 표정을 지으면서 거만하게 대꾸했다.


“불필요한 걱정을 하는구나. 망가지지 않도록 적당히 굴릴 테니, 그렇게 굳어있지 마라. 나는 재능 있는 이를 홀대하지 않는 사람이다.”


말투는 거만하지만 자기 딸을 험하게 다룰 생각이 없다는 그 한 마디에 레나의 모친은 걱정을 한시름 내려놓은 얼굴이 되었다.


안심하는 어머니의 모습을 본 레나의 얼굴도 조금 밝아졌다.


그 사이에 나는 재빨리 레나의 왼쪽 엉덩이를 오른손으로 꽉 움켜쥐었다.


“힉......!”


호오?


이번엔 대비를 하고 있었는지 중간에 소리를 억누르는데 성공했다. 괘씸하군. 어디까지 버티는지 한 번 보자.


레나의 엉덩이를 계속 자극했다. 그녀는 몸을 움찔거리면서도 잘 참고 있었다.


그러는 동안 그녀의 어머니는 어느새 눈물을 찍으면서 감사의 인사를 하고 있는 중이었다.


“감사합니다, 백작님. 항상 저 때문에 자기 갈 길을 못가고 계속 묶여 있던 아이였는데 백작님 덕분에 딸이 드디어 자기 길을 찾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흑..! 너무 감사해서 뭐라고 말씀을 드려야 할지...”


나는 손아귀에 힘을 줘서 엉덩이를 더욱 압박했다.


꽈아아아아아악!


움찔, 움찔!


버티기 힘들 텐데? 아직도 잘 버티네?


아무것도 모르는 레나의 어머니는 대충 상대해주기로 했다.


“그대가 왜 고마워하는 건지 모르겠군. 싼 값에 나온 명검을 누가 채가기 전에 먼저 샀을 뿐이다. 나중에 투자한 것 이상으로 돌려받을 테니, 고마워하지 않아도 된다. 뭐, 굳이 고마워하고 싶다면 네 딸의 재능을 알아본 내 뛰어난 안목을 칭송하도록.”

“예, 알겠습니다. 백작님의 사람을 보는 눈에 대해 꼭 다른 알 수 있게끔 만나는 사람마다 이야기를 퍼트리겠습니다.”

“그거면 됐다.”

“레나야.”


움찔!


“네, 엄마.. 으.. 흐윽....!”

“운 좋게 백작님께서 네 재능을 알아봐주셨으니, 꼭 그 은혜 보답하거라.”

“넷...! 꼭 그럴게효...!”


꽈아아아아악!


이래도 버틸 수 있을까? 이제 조금씩 티가 나는 것 같은데? 포기하시지?


“으흣......!”


아무리 봐도 레나는 이미 한계직전이다. 지금 버티는 것도 이를 악물고서 정신력으로 버티고 있는 중일 것이다. 궁금해졌다. 여기서 조금만 더 힘을 준다면 엉덩이가 약점인 레나가 과연 버틸 수 있을지.


한계직전인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내가 잘못 알아서 한계가 아닐 수도 있는 것 아닌가? 아니, 한계를 맞이하더라도 원래 한계라는 것은 뛰어넘으라고 있는 것이다.


뭐, 레나가 초월할 수 있는지는 실험해보면 알 수 있겠지.


일단 갈 때까지 가보기로 했다.


꽈아아아아아아아악!!


“으우우우우우웃!!”

“레나야? 역시, 어디 아픈 것 같은데? 참지 마렴. 엄마한텐 말해도 된단다.”


띠링!


[레나가 강한 수치심을 느낍니다.]

[레나가 당신의 무자비함에 분노를 품습니다.]

[레나가 당신을 불신하기 시작합니다.]

[레나의 신뢰도가 1%만큼 감소합니다.]

[레나의 신뢰도가 1%만큼 감소합니다.]

[레나의 신뢰도가 1%만큼 감소합니다.]

.......


어이쿠?!


부모 앞이라서 그런가? 예전에 엉덩이춤을 시켰을 때보다 지금이 더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 같다. 까비~


아쉽지만 이쯤에서 그만하고 풀어주도록 하자. 이런 어처구니없는 일로 레나를 잃을 수는 없으니까 말이다.


여기서 조금 더 갔으면 좋겠지만 그 전부터 이미 충분히 재미를 봐온 터라, 나름 만족한 것 같다.


꽉 쥐고 있던 아귀힘을 단숨에 풀었다.


“히흑........!”


조이던 것을 갑자기 풀었기 때문일까?


털썩.


내가 힘을 풀자마자, 레나가 실 끊긴 인형처럼 쓰러진 채로 주저앉아버렸다.


그 모습을 본 레나의 모친은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괜찮니?! 얘..! 레나야?!”


레나는 모친의 말에 바로 대답하지 못했다.


그저 고개를 푹 숙이고 바닥에 주저앉은 상태로 말없이 몸을 부르르 떨고 있다. 분명 지나간 쾌락이 남기고 간 여운을 느끼는 중일 것이다.


왜냐하면 사흘 전, 그날 밤에도 지금과 똑같이 그랬기 때문이다.


시간이 얼어붙은 것 같은 분위기 속에서 약, 10초정도가 지나자, 정신을 약간 회복한 레나가 꼬인 혀로나마 대답을 한다.


“네헤... 괘, 괜찮아요. ...조금 어지러울 뿐이에요.”

“다행이구나. 어디 큰 병에 걸린 줄 알았다.”


모친이 놀란 가슴을 쓸어내린다. 마음을 진정시키느라 그녀가 잠시 천장을 보면서 쉼 호흡을 하고 있는 사이, 레나의 눈이 내 쪽을 향해 빠르게 돌아갔다. 그리고 화가 난 눈으로 나를 매섭게 째려본다.


근데 전혀 안 무섭다. 오히려, 반대로 화가 났다. 정확히는 내 파이프가.


껄떠억~! 껄떠억~!


저 반항적인 눈빛 때문에 내 파이프가 자극을 받았는지 껄떡거리면서 분노하고 있다.


어서 싸우고 싶어서 안달이 난 내 파이프!


크으~ 진정이 안 되는구만.


레나는 저런 지지 않겠다는 눈빛을 하고선 밤만 되면 내 밑에 깔리는 것이다. 덕분에 그녀를 정복하는 재미가 상당하다.


힘들게 잡은 레이드 보스를 바라보는 기분이랄까? 끝내고나면 일종의 성취감마저 느껴진다.


꺾이지 않는 기특한 레나를 배려해서 특별히, 떠나기 전에, 그녀가 모친과 함께 다정다감한 시간을 보낼 수 있게 며칠 정도 이곳에 머물 수 있도록 배려해주기로 했다.


나중에도 종종 휴가는 보내줄 생각이지만 당분간은 일이 많아져서 그럴 수 없을 것 같아 미리 당겨서 주는 것이다.


“나는 근처에 잠시 볼일이 있어서 며칠 뒤에 이곳으로 사람을 보내겠다. 그때까진 자유롭게 쉬어도 된다.”

“..........!”


레나의 표정에 극적인 변화가 생겼다.


방실~ 방실~


방끗! 방긋!


레나의 삐져있던 감정들은 그 한마디에 사르르 녹아버린 듯하다. 아니나 다를까? 어느새 표정이 들뜬 레나의 입에서 지금까지 들어본 적 없는 업 된 목소리가 튀어나왔다.


“쓰.. 백작님! 감사합니다! 느긋하게 볼일 보다가 천천히 와주세요!”

“얘가...! 백작님께 무슨 무례한 말버릇이니! 좀 더 공손하게 대답해야지. 얼른 사과드리렴.”


곧바로 나한테 사과하라는 모친의 핀잔이 이어졌지만 그것도 그녀의 들뜬 마음을 꺾진 못했다.


“아하하하하하!! 자유다! 드디어 자유다!”


이년, 보니까. 역할극 도중이라는 것도 까먹은 모양이네.


모친만 땀을 뻘뻘 흘리면서 죄송하다고 연신 사과하는 중이다. 그러는 와중에도 레나는 미친 사람처럼 계속 웃어댔다.


그렇게 좋은 건가?


나는 일단 일부러 불편한 표정을 지어보였다. 그렇게 화가 난 건 아니지만 귀족을 연기해야 하니까.


“완전히 천둥벌거숭이로군. 네녀석은 이후 예절교육에 특별히 더 신경을 써야겠군.”


나중에 레나에게 예절교육을 빡세게 시킬 예정이라고 모친 앞에서 큰소리치면서 대충 둘러댄 다음, 서둘러서 그 자리를 떠났다.


이제 에반스트뢴으로 다시 돌아가서 미리 점찍어놨던 밀리오네 남작을 털어먹으러 갈 예정이다.


인적이 드문 한적한 뒷골목으로 들어갔다.


주변에 아무도 없다는 사실을 확인한 나는 저번에 숨겨진 위협을 밝혀내고 그 업적보상으로 획득한 귀속 아이템 ‘라우넬이 우는 창문’을 소환했다.


그러자, 등 뒤에서부터 스산한 기운이 흘러나오는 것을 느꼈다. 뒤를 돌자, 그곳에는 언제 생겨났는지 모를 커다란 창문이 소리 없이 공간을 떡하니 차지하고 있었다.


뒤돌자마자 귀신을 발견한 기분이랄까? 창문의 외관도 살짝 낡아 있는 것이 무척 기분 나쁘게 생겼다.


불투명한 창문 유리 너머에는 확실하진 않지만 유령처럼 생긴 희끄무레한 존재들이 물결을 치면서 이리저리 움직이는 것 같기도 하다.


딱 봐도 ‘여기 귀신의 집이에요.’라고 주장하는 비주얼이다.


일단 어찌됐든 간에, 손에 넣었으니 한 번 써봐야 한다.


분명히.. 가고 싶은 장소를 떠올리면서 창문을 두드리면 문을 열어준다고 했었지.


에반스트뢴에서 봤던 한 뒷골목을 상상하면서 똑똑, 창문을 두드렸다. 조금 시간이 지나자, 덜컥. 창문이 바깥 방향으로 활짝 열렸다.


무언가가 내 시야 밖에서 빠르게 지나갔다.


‘저게 라우넬의 팔인가?’


핏기하나 없는 창백한 여자의 팔이 창문을 열어젖혔다가 창문 안쪽으로 다시 되돌아가고 있었다.


팔에 핏기가 아예 없어서 조금 소름이 돋았다.


들어가도 괜찮은 걸까?


망설이면서도 나는 귀신과 마주한 공포영화 속 주인공들처럼 묘한 두근거림을 느끼면서 창문 안으로 들어가는 것을 끝내 거부하지 못했다.


안쪽으로 발을 내디뎠다.


화아아아아아아아악!


들어가자마자, 뭔가가 잘못됐다는 것을 깨달았다.


공기부터가 남다르다. 무겁고 끈적끈적하고 마치 짓눌리는 것 같다. 숨을 쉬는 것조차도 지금은 힘에 겨운 벅찬 작업이 되었다.


주변에는 연녹색의 물결들이 쉴 새 없이 일렁거린다. 물결, 물결, 물결 사방이 물결 투성이다. 땅? 그런 건 없다. 공간전체가 물결이다. 나는 지금 아무것도 없이 물결에 섞여서 그냥 떠 있는 상태다.


나가는 문은 진즉에 사라졌다.


느닷없이 위기감이 몰려온다.


진짜 개좆된 것 같다.


어디가 위인지 아래인지 구별하는 것도 서서히 힘들어지고 있다. 아니, 애초에 구별하는 것 자체가 무의미할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사방이 물결이니까.


이상한 공간. 이곳이 바로 정신과 영혼으로 이어진 아스트랄 세계다.


이곳에 들어온 직후부터 지금까지 쭈욱, 이 장소가 물질계와는 아예 다른 법칙이 적용되고 있다는 것을 몸소 체험하는 중이다.


몸의 감각이 점점 무뎌진다. 아니, 다시 보니까, 감각이 무뎌져가는 게 아니었다.


뭐야? 이거?!


어느 샌가, 그냥 몸이 사라져가고 있었다.


내 몸이 마치 물에 녹은 설탕처럼 점점 형태를 잃고 있다. 그런데도 전혀 고통스럽지가 않다. 미친.. 이거, 괜찮은 건가?


가만히 지켜만 보고 있으니 그새, 내 몸이 완전히 사라졌다. 그럼에도 여전히 앞이 보이고 내 의식도 여전히 남아있다. 섬뜩하면서도 신기하다.


그래도 몸이 사라지는 이유를 대강은 이해했다. 정신과 영혼으로 이루어진 아스트랄 세계라서 물질이라는 것의 체류자체를 아예 거부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내 몸이 사라졌다. 아니, 몸이 정신과 영혼으로 대체되었다고 하는 게 올바르다.


스멀~ 스멀~


저 멀리서 무언가가 다가오고 있다. 보이진 않아도 그냥 느낄 수 있다. 저건 나한테 관심이 있다.


나는 어째선지 슬픈 감정이 몰려왔다.


음산하면서도 구슬픈 울음이 울려 퍼진다.


우어어어어어어어어어엉~~~


깜빡.


눈을 감았다 떴다. 그뿐인데 공기자체가 달라졌다. 맑다. 공기가 더 이상 무겁지 않다. 끈적거리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나는 에반스트뢴의 뒷골목에 서있었다. 다시 물질세계로 돌아왔다. 내 뒤에 있던 창문도 이미 사라져 있었다.


라우넬의 울음소리에 녹아들어서 울음소리를 타고 이동한다더니. 이런 뜻이었나? 나는 잠깐 동안이지만 정신체가 되었다. 신기한 경험이었다.


그러고 보니, 라우넬이 우는 창문을 받을 때, 주의사항이 있었다.


-주의사항! 절대로 그녀를 화나게 하면 안 됩니다. 그녀가 화를 내면 무시무시한 일이 벌어집니다.


내가 봤을 때, 라우넬은 내가 아는 일반적인 생물들과는 근본적인 면에서 크게 다른 것 같았다.


화를 내게끔 해도 욕을 하는 것 자체가 성립이 안 될 것이다. 아마.


개미가 욕을 한다고 ‘시발.’이라고 페로몬을 내뿜어봤자, 사람은 못 알아듣는다. 그거랑 똑같다.


내가 백날 욕을 해서 라우넬이 알아들을까?


도대체 뭘 해야 라우넬이 화를 낼까?


그것부터가 이미 난관이다.


라우넬은 내가 아는 생물이랑 달라도 너무 다르다.


심지어, 화를 내도 방식이 특이할 것 같다.


궁금하니까, 나중에 한 번 실험해봐야지.


일단 간단하게 정보 수집을 마친 다음에 여관으로 들어가서 쉬었다. 그리고 어둑어둑한 밤이 찾아오자 여관 밖으로 나섰다.


광장을 지나서 좀 더 한적해 보이는 교외 쪽으로 넘어갔다. 밀리오네 남작 저택은 정원까지 포함해서 대대급 군부대가 머물 수 있을 만한 크기의 땅을 소유하고 있다.


실제로 그 면적이 무척 넓어서 감시를 위해 망루를 세울 정도다. 그 안에 하인, 농토, 경비병의 집 등등 웬만한 것들이 다 있다. 그리고 그 모든 것들은 커다란 담장으로 하여금 보호받는다.


그야말로 성 안에 작은 성이 하나 더 있는 셈이다.


경비에 대한 조사는 이미 낮에 다 마쳤다.


일단 정문에 경비병 두 명이 있고. 그들을 피해서 담장을 넘는다면 중간 중간에 초소를 마주하게 된다. 그리고 초소랑 별개로 경비병들이 수시로 순찰을 돈다. 여하튼 공들여서 숨어도 결국, 들킬 수밖에 없는 구조다.


한 가지 그나마 다행인 점은 이 저택에는 기사가 없다는 것.


병사는 200명 정도 있는 것 같지만 밀리오네 남작은 약소귀족이라서 기사를 고용할 형편은 못 됐다.


즉, 저택 안에 나보다 강한 사람은 없다. 그 사실 하나면 들어갈 이유는 충분하다.


파앗!


고양이 가면을 쓰고 담장을 훌쩍 뛰어넘었다.


착.


소리 없이 착지했다.


주변에서 풀 냄새와 꽃향기가 코를 간질였다.


그것만으로도 이곳이 정원이라는 사실을 알아냈다.


아직은 꽃밭 외에는 딱히 보이는 게 없다. 좀 더 들어가기로 했다.


아름다운 정원을 가로질러서 더 안쪽으로 들어가니까, 저 멀리 불빛이 보인다.


드문드문, 말소리도 들려온다.


모두가 자고 있을 시간에 깨어있는 것으로 보아, 저들은 아마도 경비병이다.


여기선 안 보이지만 분명 근처에 초소도 있겠지.


아직 내가 온 것을 눈치를 못했으니, 좀 더 접근했다.


사방이 확 트인 벌판이 나왔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대략, 5m 높이의 나무로 만들어진 초소 하나가 떡하니 자리를 잡은 상태다.


정보 길드에 돈 주고 구매한 정보에 따르면.


저택으로 가기 위해선 반드시 저 초소 밑에 나 있는 길로만 지나가야만 한다.


다른 루트를 사용하면 지면을 밟는 순간, 그 즉시 숨겨져 있던 마법이 발동되어 침입자는 순식간에 화염에 휩싸이게끔 되어있다고 한다.


마법의 발동 범위는 내 앞에 있는 벌판 전체다.


과도한 안전 염려증 덕에 침입은 쉽지 않다.


이 마법함정은 밀리오네 남작가가 한창 잘나가던 시기인 약, 80년 전에 설치한 것이다. 지금은 많이 쇠약해졌지만 3대 전만 해도 잘나갔던 가문이라서 그런지 그에 걸 맞는 돈을 투자한 결과, 수십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여전히 발동하는 함정이 탄생해버렸다.


그래서 지금도 이따금씩 새들이 모르고 땅에 앉았다가 타죽는 일이 주기적으로 발생하는 모양이었다.


일단 함정이 작동하는 것만은 확실했다.


아무리 나라도 저런 걸 밟았다간 무사하지 못할 테니, 어쨌든 저 초소 밑을 통과하는 정상적인 루트로 진로를 잡을 수밖에 없었다.


주변 일대는 시야에 방해가 안 되게끔 엄폐물들을 미리 말끔히 치워둔 상태라서 숨어들어가는 방법은 일단 불가능하다.


그러나 이미 낮에 한 조사를 통해서 이미 대책을 마련해놨다.


아니, 마련했다는 것보다 대책이 될 만한 물건을 이미 가지고 있었다. 이렇게 간단히 해결될 줄은 나도 몰랐다.


이번에 신전에서 받은 새카만 칼을 꺼냈다.


[암검 루슈아(3급)]


-그림자 마물 루슈아의 시체로 만든 검이다.

-그림자를 조작해서 몸을 숨길 수 있다.

-생명력 혹은 마력을 소비해서 암파(暗波)를 사용할 수 있다.


절삭력이 기존의 칼보다 월등할뿐더러, 이렇게 특수능력이 달려있다. 그리고 이게 끝이 아니라, 반지도 있다.


[초속의 반지(3급)]


-순간적으로 신체와 사고를 가속시킨다.

-3번 연속으로 사용이 가능하며 전부 소진 시, 10분의 쿨타임을 가진다.


반지는 오기 전에 한 번 써봤는데 효과가 거의 단거리 순간이동이나 마찬가지였다.


일단 쓰자마자 시간이 멈추는 느낌이 들면서 몸이 굉장히 빨라진다. 몸만 빨라지는 게 아니라, 사고속도도 빨라져서 그 사이에 내가 어떻게 행동해야할지 생각을 정리하는 것도 가능하다.


지속되는 시간은 매우 짧지만 긴박을 다투는 전투에서 꽤 유용하게 사용될 수 있는 기능이다.


말이 3급이지 사실은 2급에 버금가는 효과다.


암검 루슈아를 들었다. 검에 마력을 불어넣자 갑자기 내 그림자가 쫘악 늘어나더니 나를 그대로 집어삼켜버렸다.


그림자만이 홀로 지면 위에 남았다.


X, Y, Z축 중에서 높낮이에 해당하는 Z축이 소멸해버린 탓에 시야가 상당히 낮아졌다.


비록 시야는 낮아졌지만 바깥풍경은 다 보인다. 색감이 사라져서 그냥 선글라스를 끼고 보는 느낌이다.


이 상태로 이동하는 것도 가능하다. 밖에서 보면 그림자가 혼자 기어 다니는 것으로 보인다.


그 상태로 초소에 접근했다.


두런두런.


지금이 낮이었다면 모를까, 밤이라서 그런지 단, 한 명도 눈치 챈 사람이 없었다.


그래도 혹시 몰라서 그 상태로 초속을 연속으로 써서 빠르게 경비구간을 지나쳤다.


그 뒤에는 쉬웠다.


간간히 함정이 있었지만 잘 알아서 피해갔고 중간중간 마주치는 초소들도 그냥 내 능력으로 쉽게 뚫을 수 있었다.


그리고 어느덧, 드디어 저택에 닿았다.


3층짜리 커다란 저택을 보고 있자니, 가슴이 웅장해졌다. 내일이면 이 저택자체가 내 것이 되는 거다.


이런 큰 건수를 좀도둑마냥 적당히 털어먹고 끝낼 생각은 애초부터 없었다. 처음부터 다 집어삼킬 생각으로 계획을 짜놓은 상태다.


남작?


이미 수집한 증거가 충분해서 살고 싶다면 그는 내 말을 따라야한다.


나는 마지막 장애물인 윗부분이 가시처럼 뾰족하게 튀어나온 철문을 고양이 가면의 효과로 가볍게 뛰어넘었다.


이제 주변엔 딱히 함정이랄 것도 딱히 없다.


확실히, 바깥쪽의 경비가 빡센 대신 안쪽은 오히려 역으로 경비가 허술하다는 느낌이다. 나는 적당히 경비병들의 틈을 보다가 단숨에 3층 베란다까지 뛰어올랐다.


착.


소리 없이 착지하고 주변을 살펴보니.


날이 더워서인지 창문이 허술하게 열려 있었다.


끼이이익.


당연하다는 듯이 안쪽으로 조심스럽게 밀고 들어가자, 가장 먼저 여성 특유의 향긋한 내음이 물씬 풍긴다.


이곳이 남작 영애의 침실이라고 나는 바로 직감했다.


침대를 바라보니, 달빛에 비친 풍성한 황금색 머리칼이 곱게 흐트러져서 흐르고 있었다.


자고 있는 영애의 얼굴은 오밀조밀하고 피부는 눈처럼 새하얬다.


새까만 밤중에 황금빛 물결이 흐르는데 그 위에 천사가 누워서 곤히 자고 있는 느낌이다.


그 정도로 아름다웠다.


나는 그 모습을 보면서 비열한 미소를 흘렸다.


창문을 안 닫고 자면 이런 아름다운 아가씨라도 운이 안 좋으면 감기에 걸리거나 배탈이 나는 법.


나는 이 멋모르고 자는 아가씨가 추워할까봐, 걱정되는 마음에 비열한 미소를 지으며 다가갔다.


추울 때는 모름지기 핫팩이 필요한 법이다.


껄떠억~ 껄떠억~


공격할 준비는 이미 끝났다.


작가의말

이번에는 분량이 2편 가까이 됩니다.

의도했던 것은 아니고, 그냥 원래 써놨던 내용에 묘사를 좀 더 덧붙이다보니까, 분량이 잔뜩 늘어났습니다.
때문에 조금 마음에 안 드시는 분들도 계실 것 같습니다.
간단간단한 문체를 더 좋아하시는 분들도 계실테니까요.
일단 필력자체를 올려야 하기에 최대한 노력을 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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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 26화. 팡팡! +1 21.03.27 45 2 13쪽
25 25화. 빈틈 +1 21.03.26 80 2 13쪽
24 24화. 추노 +1 21.03.25 56 2 12쪽
23 23화. 목줄 +1 21.03.24 61 2 15쪽
» 22화. 월담 +1 21.03.23 62 2 21쪽
21 21화. 은혜의 대가 +2 21.03.22 65 2 12쪽
20 20화. 신전 +1 21.03.21 70 2 16쪽
19 19화. 농락 +1 21.03.21 68 1 14쪽
18 18화. 하마터면 놓칠 뻔! +1 21.03.21 57 1 13쪽
17 17화. 달빛 아래의 살인귀 +1 21.03.21 68 1 16쪽
16 16화. 선제공격(2) +1 21.03.21 53 1 16쪽
15 15화. 선제공격(1) +1 21.03.21 53 1 18쪽
14 14화. 준비 +1 21.03.21 51 1 17쪽
13 13화. 컬렉션 +1 21.03.21 67 1 14쪽
12 12화. ...너 반드시... 보, 복수.. 할 거야... +1 21.03.21 57 1 13쪽
11 11화. 본게임의 서막 +1 21.03.21 63 1 14쪽
10 10화. 노예상인(2) +1 21.03.21 65 1 13쪽
9 9화. 노예상인(1) +1 21.03.21 60 1 13쪽
8 8화. 단련(2) +1 21.03.21 67 1 13쪽
7 7화. 단련(1) +1 21.03.21 65 1 13쪽
6 6화. 먼저 배신하기 +1 21.03.21 86 1 12쪽
5 5화. 도덕측정기 +1 21.03.21 93 1 13쪽
4 4화. 수상한 밤 +1 21.03.21 101 2 14쪽
3 3화. 랜덤뽑기 +1 21.03.21 117 1 12쪽
2 2화. 빈민 +1 21.03.21 149 1 13쪽
1 1화. 전생 +1 21.03.21 254 4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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