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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갈 님의 서재입니다.

마왕의 성좌가 용사다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퓨전

정갈
작품등록일 :
2021.06.13 20:54
최근연재일 :
2021.06.28 23:44
연재수 :
15 회
조회수 :
715
추천수 :
27
글자수 :
82,264

작성
21.06.14 16:36
조회
51
추천
2
글자
11쪽

<검은태양 결투식(4)>

DUMMY

카라쿰이 단검을 들고 바네샤를 위협했지만, 그녀는 딸아이의 웃음을 떠올리며 공포를 이겨냈다.


목젖에 닿은 칼날이 차가웠지만 바네샤는 죽을 힘을 다해 포효한다. 나탈리의 사기를 복 돋을 수 있다면 당장 죽어도 여한이 없었다.


바네샤가 딸아이를 보며 외쳤다.


“테리를 죽여버려!!”


바네샤는 딸 아이에 대해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꽃 한 송이를 신경 쓸 만큼 나탈리는 잔정이 많았다. 무엇보다 나탈리는 살인을 저질러 본 적이 없었다. 첫 살인으로 소꿉친구 테리를 찔러 죽이는 건 상당한 고역이다.


‘나탈리는 강하지만 유약해’


바네샤는 불안한 기분을 떨치지 못하고 있었다.


“엄마는 괜찮으니까! 망설이지 말고 죽여! 어서!”

“싸움을 말리랬더니 오히려 부추기는 거냐!”

“테리와 카라쿰을 여기서 죽여야 해! 안 그럼 우린 다 죽을 거야!”


듣다 못한 카라쿰이 바네샤를 향해 발길질을 날렸다.


“이... 이 년이! 죽고 싶다고 아애 빌지 그러냐!”

”꺄아아악!“


실성한 어미의 비명을 듣자 나탈리가 노호성을 터트렸다.


“엄마아악!”


달려가는 나탈리의 앞길을 내가 가로 막았다.


"멈춰라 나탈리."

“비켜! 비키라고!”

“미리 말해두는데 뒷사정을 알면 너 후회할 거다?”


독살을 시도해 쿠쿠라의 율법을 어긴 건 바네샤다. 명분은 이쪽에 있었지만 어미의 범죄를 모르기에, 나탈리는 나를 증오했다.


“.... 테리 진짜로 널 죽일거야.”


자세를 낮추고 대검을 뒤로 뺀다. 크게 휘두르기의 준비 자세였다. 나탈리가 이른 단판 승부수를 걸어왔다.


내 실력을 알고 있으니 그럴만했다. 테리와 나탈리는 언제나 함께 했다. 아버지인 카라쿰보다 나탈리와 함께한 시간이 훨씬 많았다. 그러나 나는 테리의 탈을 쓴 성좌, 거래의 성좌 아슬란이다.


기합을 지르며 오러를 모으는 나탈리.


하반신을 뒤로 빼는 동작이 발도술에 가까웠다. 붉은 오러의 소용돌이가 응축되어 간다. 검술이라기 보다는 오러의 덩어리를 날리는 짓거리였다.


나는 인상을 찡그렸다.


“실망이다.”


백일창 천일도 만일검


창은 깊이가 낮은 무기이나 역사가 창을 백병지왕이라 일컫는다. 가장 효율적이라서다.

내가 창을 택한 건 개인적인 기호품이라는 이유가 가장 크나 뒷받침되는 성능 때문이기도 했다.

창은 최대최다의 인간을 죽였다는 실질적인 역사를 지닌 무기


나는 창술의 기본기인 찰창술(扎槍術)을 준비했다.


통계적으로 대량 살상을 일으키는 폭발마법보다 찰창술이 더 많은 병사의 목숨을 앗아갔다고 한다. 추가로 내가 쓰려는 찰창술은 조금 특별했다.


나는 마왕의 찌르기를 모방하고 재현하고 있었다.


“고작 찌르기냐! 테리!”

“어리석은 것!”


단순한 찌르기가 나탈리의 일격을 향해 나아간다.


간격이 점점 좁혀진다. 나는 여유를 보였으며 나탈리는 격하게 슬퍼하고 있다. 간절한 표정으로 우리를 지켜보는 부모들.


달밤 아래에서 강렬한 격돌이 맞부딪친다.


붉은 대검이 그어지자 내 창촉이 붉은 소용돌이를 뚫으려 한다. 충돌음과 함께 충격파가 터지고 오러가 비산한다.


붉은 오러가 내 뺨을 스쳤다.


“닿았다.”


무언가를 뚫는 느낌이 손가락 감각을 타고 올라온다. 이윽고 피 냄새가 내 코끝을 스쳤다. 신음을 흘리며 나탈리가 무릎을 꿇었다.


“죽으려고 환장했냐.”


승리를 체감하지 못하고 나는 버젓이 서서 나탈리를 노려 보았다. 나탈리를 날려버릴 목적으로 찔렀는데, 그 순간 붉은 오러가 사라졌다. 내가 죽을까 봐, 힘을 빼버린 것이다.


결과적으로 내 창끝이 대검을 날려버리고 나탈리의 왼쪽 어깻죽지를 꿰뚫었다.


“뭔 짓거리냐?”

“네가 죽을지도 모르잖아!”

“.... 멍청이였네”


모친의 목숨이 걸린 결투에서 자비를 베풀다니, 제정신이란 말인가.


나탈리의 저돌적인 기세는 한 풀 꺾인 지 오래, 반증으로 붉은 오러가 촛불처럼 사그라들고 있다.


나탈리가 숨을 헐떡이며 힘 없이 말했다.


“테리... 네가 설득하면 촌장님이 넘어가주실지 몰라... 우리 그만하자.”


나는 대답 대신 창을 내 찔렀다.


푸욱


울거나 말거나 인정사정 봐주지 않고 창을 나탈리의 허벅지를 찔렀다. 이로써 나탈리는 재기불능, 움직이지 못하게 되었다.


“....테리.”


최후를 직감하며 나탈리가 처량하게 웃어 보였다. 나는 괜찮다는 듯이.

가만히 지켜보던 미류엘이 계시를 보냈다.


[금성좌 미류엘이 안쓰러워합니다.]

[나탈리는 단순한 마을소녀 였네요.]


“오러 사용자가 사람 하나 못 죽이다니....”


[30년 전의 임시화평로 그렇다 할 전쟁이 일어나지 않아서 그래요. 게다가 쿠쿠라 마을은 수렵보다 농경을 주식으로 삼으니 나탈리에게 살인은 쉽지 않았겠죠.]


“평화에 찌들었군.”


[나탈리를 어쩌시려고요?]


“생각해 놓은 바가 있어”


[아슬란님 자비를 베풀어주세요. 그녀에게는 죄가 없어요.]


“미류엘, 내게 조언할 수 있는 건 변해버린 세상사 뿐이다. 이상의 참견은 그만두도록.”


[... 죄송해요. 앞으로 이런 일은 없을 거예요.]


미류엘은 모녀의 죽음을 바라지 않았으나, 내 신경을 건드리고 않으려 했다. 기분 탓일지도 모르는 시선이 느껴진다. 내가 어떤 선택을 내릴지 유심히 지켜보고 있었다.


“나탈리가 졌어...?”

“그래 테리가 이겼어! 테리가 나탈리를 이겼다고!”


정면 승부로 나탈리를 끝장내고 내가 승리를 거두자 바네샤와 촌장 카라쿰이 경악에 빠졌다.


풀썩


나는 바네샤 옆에 죽어가는 나탈리를 던져 놓았다.


“사랑하는 우리 딸... 흑흑”


바네샤가 슬피 울며 나탈리의 볼을 살살 어루만진다. 실로 카라쿰과는 대조적이었다.


“하하하 우리 테리가 오러를 이겨냈다고!”

“나탈리.. 어미와 같이 죽자 꾸나.”


나는 고개를 올려 위를 올려다보았다.

야심한 밤하늘


구름들 틈새로 내려오는 달빛이 내 무표정한 얼굴을 비춘다. 나는 달을 등불 삼아 인간들의 면면들을 번갈아 보았다.


만감이 교차하는 광경이 펼쳐지고 있다.


성좌로서 질리도록 보아온 인간 세상 속에 내가 서있었다. 화면으로 구경했던 피와 눈물이 생생하게 느껴진다. 창을 쥐지 않은 왼손으로 쥐락펴락 거리며 나는 현재를 실감했다.


평소라면 인간들끼리 대화로 마무리를 짓겠지만.... 나서고 싶어졌다.


카라쿰이 덩실덩실 신나하며 말했다.


“테리가 나탈리를 이기다니! 마왕님의 축복이야!”

“예예 그건 그렇고 슬슬 죽일까요?”

“죽여? 누구를?”

“두 모녀의 처분을 말하는 거에요. 아시다시피 나탈리를 밧줄로 묶어봤자 오러로 찢어버릴걸요? 그니까 아애 나탈리를 바네샤 눈앞에서 끔찍하게 죽여 버리죠?”

“그.. 그럴 것까진 없지 않을까?”


피도 눈물도 없는 아들의 결정에 카라쿰이 식겁했다.


그 아들에 그 아버지


여자아이에게 맞고 다닌 테리처럼 카라쿰은 소심한 성정을 지녔었다. 그런 카라쿰이기에 아직도 바네샤를 살려 놓은 것이다.


“전사의 결투에서 제가 이겼잖아요. 그럼 나탈리의 목숨은 제 마음대로, 이거 맞죠?”

“그래 맞다. 맞지만.... 나탈리를 죽이면 너는 언젠가 크게 후회할 것이야, 흥분하지 말고 천천히 결정해야 해.”

“생각 끝났어요. 이제 나탈리를 죽일게요.”


바네샤가 말리려 했으나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무력하게 딸이 살해 당하는 꼴을 지켜볼 순 없었다.


처량한 모습을 보이며 바네샤가 나에게 빌었다.


“테리야 제발! 나탈리만은 살려줘.”

“꿈 깨라.”


내가 쥔 창이 나탈리의 머리통을 내려찍기 직전이었다. 촌장 카라쿰은의 머릿속에 오만가지 고민이 스쳐갔다.


아들이 앞으로 겪을 후회가 걱정되나 말릴 명분은 없었고 마을의 책임자로서 말려선 안되었다. 잠시간의 고민이 끝났다.


촌장 카라쿰은 전사, 행동이 빨랐다.


“말리시는 거예요?”


카라쿰이 내 어깨를 잡아서 나를 멈춰 세웠다. 나는 다 알면서 순진한 척을 질문을 던졌다.


“내가 책임지겠다. 바네샤를 살려두면 나탈리가 날뛰는 일은 없을 게야.”

“어라 그럼 제가 받아야 할 깽값... 명예에 대한 배상은요?”

“그건 내가 책임지마.”

“평생 바네샤 아줌마를 감시하며 살려고요? 후회하지 않으시겠어요?”

“조금도.”


망설임 하나 없는 카라쿰 앞에서 나는 뜸을 들였다.


“이걸 어쩌나?”

“촌장으로서 부탁한다. 테리 이 둘을 살려주자꾸나.”


잠깐 턱을 쥐어 잡으며 흠을 남발했다, 그러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생색내기는 이 정도면 충분했다.


애당초 내 목적은 쿠쿠라 마을의 코인을 쓸어 담는 것, 모녀가 죽든 말든 상관없는 일이다.


많은 자산을 가진 카라쿰이라도 아들에게 선뜻 거금을 내어줄 리 없었다. 그래서 나는 거래판을 깔고 카라쿰이 저자세로 나오길 기다렸다. 생각대로 아들을 위해 카라쿰이 나서자 나는 흡족해진다.


결투식 상금과 손해배상금 거기다가 아버지의 묵직한 용돈까지


막대한 거금을 들고 쿠쿠라 마을을 떠난다. 이런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자 자연스레 함박웃음이 지어졌다.


“아버지 말씀에 따를게요.”

“테리!! 정말 고맙다!”


카라쿰은 크게 감격했고 바네샤 아줌마는 엉엉거리며 울음보 터트렸다. 원수인 자신을 살려주다니 어느 누가 감격하지 않을까.


카라쿰이 근엄하게 바네샤를 굽어 본다.


“오늘부터 테리는 마을의 대표전사가 되었지 만약 나탈리가 날뛴다면 테리가 창으로 그녀를 크게 응징할 것이야!”

“테리를 해치려 해서 죄송해요. 흑”

“바네샤 부인 잘 듣게, 딸을 위한 마음이 애틋하나 독살은 분명 큰 죄다. 사람을 죽이려는 짓을 그냥 넘어가지 않겠다. 안쓰럽다고! 불쌍하다고! 죄를 그냥 넘겨서는 안 돼!”


바네샤가 울음을 터트리면서 맹세했다.


“라우레아 마왕님께 맹세할게요. 죄를 뉘우치고 벌을 달게 받겠습니다.”

“살아서 죗값을 치르게! 허튼 생각도 말고!”


갑자기 카라쿰이 목덜미를 긁적이며 쑥스러워 했다.


“나는 자네가 괴롭힘 당하는 걸 알고도 모른 척 했었지... 이제 책임의 대가를 치를 때가 온거야, 아무튼 그거야 나중이고 나탈리의 부상부터 치료하자고.”

“촌장님....”

“뭣하나? 빨리 가세.”


자기 딸인 것처럼 안쓰러워하는 카라쿰에게 바네샤는 온몸으로 감사를 표했다. 나는 그녀의 석고대죄를 한 귀로 흘려듣고 있었다.


나탈리를 들쳐 업으면서 내가 말했다.


“저 먼저 내려갑니다.”


그러자 카라쿰도 바네샤를 어영부영 힘들게 부축한다. 나탈리를 위해 우리는 위험을 무릅쓰고 산길을 내달렸다.




시끌벅적한 사람들이 사라지자 한적한 들판이 고요해진다.


엥엥.


무슨 일이 있었느냐는 듯

풀벌레 우는소리가 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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