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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녘의 서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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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남녘
작품등록일 :
2020.09.20 16:37
최근연재일 :
2021.01.19 20:00
연재수 :
32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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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수 :
0
글자수 :
204,498

작성
20.09.29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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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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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2.

DUMMY

넓은 강당.

머리 좀 컸다는 고등학교 4학년, 대학생이라 불리는 아이들을 모아 놓은 곳에서 한 교수가 새하얀 머리를 열정으로 촉촉이 적시고 있다.


“여러분은 소설을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질문이 던져졌음에도 주변이 조용하다. 머리가 큰 기준이 눈치는 아닌데도 말이다.

어쩔 수 없지.

나는 손을 들었다. 교수는 마치 내 손을 전장에서 발견한 아군기라도 되는 듯 기쁜 얼굴로 발표를 시켰다.


“누구나 쉽게 읽을 수 있는 거요.”


땀으로 적셔진 앞머리를 쓸어 올리며 교수가 방긋 웃어 보인다.


“좋아요. 누구나 쉽게 읽을 수 있는 소설. 학생은 그런 소설을 쓰고 싶은 건가요?”

“네. 쉽게 읽혀야 소설을 두 번, 세 번 보니까요.” “왜 두 번, 세 번 읽어야 하죠?”


교수가 흥미로운 눈으로 나를 바라본다.


“그래야 제가 쓴 의도가 보일 테니까요.”

“학생, 이름이?”

“성운이요. 김성운.”


교수가 고개를 숙이고 내 이름을 조용히 되뇐다.


“김, 성운···.”


그가 고개를 든다. 그리고 손을 들어 주변을 살핀다.


“다른 학생들 중에, 나는 다르게 생각한다, 하는 사람 있나요?”


모두가 꿈속에 빠진 것처럼 아무 말이 없다.

입이라도 떼라 이 놈들아.

교수는 결국 다른 아이들을 포기하고 만다. 이젠 노골적으로 나만을 바라보고 수업이 진행됐다.


“성운 학생의 말대로 소설은 쉬우면서도 어려워요. 쉬워야 여러 번 읽히고, 어려워야 그 의미가 두각을 나타내니까요. 그런 의미에서 저는 소설을 별과 같다고 생각해요.”


별.

그 단어가 가볍게 가슴 속에 올라선다.


“별. 마치 별처럼 소설은 읽을 때 한 없이 쉽고 가깝지만, 사실 수억 광년보다 더 먼 심오함이 담겨 있잖아요?”


보기엔 가깝고. 마주하면 먼.


“소설은 보기엔 쉽고 친숙합니다. 하지만 쓰기 위해선 우린 거리감을 둬야하죠. 여러분들이 정말 좋은 소설을 쓰고 싶다면.”


한 번 쉬고.


“별이 되세요. 자신의 소설을 별로 만드세요.”


가볍게 올라선 별은 내 안에서 반짝거리며 빛나기 시작했다.

어떤 소설을 써야할지, 또 어떻게 써야할지. 빛은 그걸 말해주고 있다.


“독자가 당신의 책을 발견했을 때 자신과 소설이 가까워 보이도록, 그리고 독자가 읽기 시작했을 때는 책이 한 없이 멀게 느껴지도록 말이죠.”


이 과 정말 잘 들어왔네.

내 눈은 만족감으로 가득 차올랐다. 교수가 그런 내 눈을 마주하고는 방긋 웃어준다.


“오늘 수업은 여기까지 하죠. 그리고 김성운 학생은 잠깐. 저 좀 볼까요?”

“아, 네.”


교수. 아니지, 교수님의 방은 소박했다. 들어찬 건 책 뿐이었고, 흔한 포트기 하나도 없었다. 그나마 간신히 들어와 있는 냉장고에서 교수님은 시원한 이온 음료 하나를 꺼내왔다.

나에게 의자 하나를 건네 앉게 하고 자신은 넓은 책상에 걸터앉았다.


“미안하네요. 대접할 게 없어서.”

“아뇨, 아뇨.”


나는 사람 좋아 보이는 얼굴로 손사래를 쳤다.


“신입생이죠?”

“아니요, 요번에 복학 했습니다.”

“복학?”


그러다 교수님은 아아, 하며 이해한 듯 고개를 끄덕인다.


“군대?” “네. 바로 갔다 왔거든요. 그래도 1학년 안 하고 갔으니까, 신입생······이라 부르셔도 될 걸요?”


교수님은 웃음을 터트렸다.


“유망하네요.”


터진 웃음이 잔잔하게 그의 입가에 남았다.

좋아하는 사람을 보면, 따라 웃는 게 당연하다.

이렇게, 방긋.


“글 쓰는 거 좋아해요?”


교수님이 물었다.


“엄청요.”

“평소에도 많이 쓰나요?”

“고등학교 때부터 쭉 썼어요.”


교수님은 잠시 턱을 쓸었다.


“어떤 소설 써요.”

“여태까지는 판타지요.”

“판타지라······.”


별론가?

아무래도 판타지는 조금 수준 낮은 소설이라는 느낌이 강하니까, 안 좋아하려나.


“한 번 읽어볼 수 있을까요?”


그 물음에 가슴이 떨렸다. 하지만 절대 물러서진 않았다.


“그럼요.”


그런 내 대답에 교수님은 조금 놀란 눈이다.


“자신 있나 봐요?”

“제 소설. 못 써도 자신은 있어야죠. 제가 쓴 건데.”


교수님은 말없이 웃어보였다.

여기요, 하고 한글 파일을 열어 소설 하나를 보여드렸다. 나름의 자신 작이었고, 적어도 친구들에게 욕은 안 먹었던 소설이었다.

차분히 시간이 지나간다.

누구에게 소설을 보여주는 건 부끄럽다. 무척 두렵기도 하다. 하지만 보여주지 않으면, 쓸 이유도 없다는 게 내 생각이었다.

읽히기 위해서 소설은 쓰인다. 그래, 봐달라고 반짝거리는 별처럼.


“재미있네요.”


교수님이 약 3시간에 걸쳐 읽어 내린 내 소설에 대한 평가는 그랬다. 분에 넘치는 평가에 나는 순간 말을 읽고 한참 동안 교수님의 얼굴을 뚫어져라 보고만 있었다.


“구성도 괜찮고. 특히, 판타지에 의미들을 부여하려는 시도가 참 좋네요.”


어떻게 알았어!

순간 그렇게 뱉으려던 걸 간신히 꾹 눌러 참았다.


“아직 투박한 게 많긴 해요. 내용이 아니라 구성이나 전체적인 문체가 읽어 내려가기 좀 힘든 부분이 있거든요?”

“그, 그래요?”


은근슬쩍 자리에 일어나 교수님의 옆으로 갔다. 교수님은 그런 나에게 내 노트북 화면을 보여주며 말을 이어갔다.


“이거랑 이거. 이런 표현도. 너무 길어요. 그래도 이런 건 아직 안 봐서 그래요.”

“안 봐요?” “탈고. 아까 수업 시간 때 말했죠?”

“별처럼 가깝고, 멀게······맞죠?”

“네, 맞아요. 탈고가 바로 그렇게 되는 과정이거든요. 몇 번 탈고를 거치면 분명 더 좋을 거예요. 바로 봐도 안 되고 한 일주일은 텀을 둬야죠. 완전히 자기 글이 아니라 남의 글을 읽는 기분으로요.”

“감사합니다.”


절로 고개가 숙여진다.


“근데 그걸 다 어떻게 아셨어요? 제 소설 부족한 부분······.”

“그거 모르면 교수 하면 안 되죠. 그리고 이런 건, 성운 학생도 다 할 수 있는 거예요.”


교수님이 웃으며 책상 위에서 일어난다.


“오늘 부른 건, 사실 다른 게 아니고. 성운 학생 글을 계속 피드백 해줄까 해서요.”

“피드백이요?”


교수님은 고개를 끄덕였다.


“어때요?”


고백을 받은 것처럼 가슴이 설렌다. 누군가의 지원을 받는단 기분이 마음속에 꽃을 피워낸다. 정말로 이 길로 무엇인가 될 수 있다는 확신마저 들었다.

하지만 그 감정들은 결코 길지 않았다.

꽃을 피우는 봄처럼. 꽃을 떨구는 가을처럼.


* * * *


왁자지껄 시끄러운 가게의 분위기는 밖의 날씨처럼 무척이나 날카로웠다. 먹고 마시는 음식점에서 뭐가 그렇게 화가 나는지 서로가 고함을 치고 멱살을 잡고 있다.


“개 시끄럽다, 진짜.”


조금 이르다 생각되는 패딩을 걸친 대오가 내 앞에서 고기를 주워 먹으며 말했다.


“누가 보면 우리 과인 줄 알겠네.”

“오히려 우리 과가 아니니까 저러겠지.”


내가 대오의 잔에 술을 따르며 말했다.


“하긴. 그렇지? 우리 과에서 이렇게 소리칠 수 있는 놈은 이제 너밖에 없지?”

“학회장이 아득히 먼 옛날 졸업하면서부터 나밖에 없었지. 근데 이젠 그런 나도 없다.”


생전 먹지도 않던 술을 목 안으로 밀어 넣었다. 이럴 때 마시는 술은 달다고 하는데, 구역질이 올라올 정도로 쓰기만 하다.


“과 통합이고 나발이고, 애초에 교수들이 과에 애정 자체가 없다니까?”

“애정이고 나발이고, 과 통합이 말이 되냐?”


술잔이 맞부딪힌다.

소리는 참 좋네.

적어도 술맛이 아닌, 이 잔 부딪히는 맛에 마신다.


“그 흰머리도 웃겨.”


대오가 술을 확 입 안에 털어넣으며 말했다.


“네가 하는 말에 눈 하나 끔뻑 안 하고 그렇게 뱉은 게 말이 되냐? 널 그렇게 아꼈으면서. 안 그래? 일 년 전만 해도 지원해준다, 뭐한다. 글 쓰라고 그렇게 지랄 염병을 다 떨더니. 미친놈.”


점점 입이 험악해져간다.

이런 애가 아닌데. 아니지, 오히려 이런 날이니까 가능하겠지.


“난 그 사람보다 오히려 애들이 더 싫었어.”

“아아.”


대오가 다시 욕을 한 바가지 입에 담고 술과 함께 넘겨버렸다.


“걔들은 뭘 하고 싶은 지도 모르는 새끼들이야. 꿈도 없고, 현실도 없고. 그냥 동태들. 냉장고에 있으면, 어~ 시원하다. 밖에 나오면, 어~ 따뜻하다. 그게 끝인 놈들이지. 잡아먹히는 줄도 모르고.”

“웃기네.”


대오와 함께 낄낄거린다.


“개네 부모님들은 좋겠다.”


떠먹여 주는 대로 먹으니까.


“편식은 안 해서?”

“이걸 알아 듣네.”


대오와 동시에 자지러지게 웃었다.

얼마 만에 웃는 건지.

말없이 녀석의 빈 술잔에 술을 따랐다.


“그래서 이제 어떻게 하려고?”


내가 물었다.

대오는 덤덤하게 답한다.


“휴학해야지.”


조금 무거운 단어다.

군대 가느라 이미 휴학을 하기도 했으니.


“차라리 자퇴가 좋지 않아?”

“자퇴는 좀 그래. 대학생이란 틀이 주는 이득은 봐야지.”

“돌아가려는 건 아니고?”


술잔이 기분 좋게 다시 부딪힌다.


“야이!”


대오가 홀짝 술을 넘기고 조금 풀린 눈으로 노려본다.


“너 돌아가기만 해봐! 휴학은 엄연히 대학생 혜택 뽑아먹을 대로 뽑아먹으려고 하는 것뿐이야. 알겠어?”

“너나 잘해. 먼저 복학한다 하지나 말고.”


으, 쓰다.

속이 불처럼 뜨겁다.


“그럼 언제 자퇴할 건데?”

“적당히 봐서. 사회에 나가도 될 만하면 바로.”

“계획은?”

“게임 쪽 찔러 보려고. 인턴도 좋고 뭐도 좋으니까.”

“하긴···. 넌 게임 좋아하지.”

“환장하지.”


대오가 낄낄거린다. 바뀐 화제에 녀석이 눈을 반짝이기 시작했다.


“잘 들어봐. 인디 게임이 요즘 많아지고 있단 말이야?”

“난 보드게임 밖에 몰라.”

“판타지 쓴다는 놈이!”


보드게임도 엄연히 판타지가 섞여있다. 그걸 철저하게 녀석의 머릿속에 관철시켜줄까하다가 관뒀다.


“그래서?”

“걔들을 돕는 거야.”

“뭔 소리야?”


대오 녀석의 혀가 약간 풀렸다.

슬슬 집에 가야겠네.


“게임을 출시하려면 버그나 각종 문제가 없는 지 테스트가 필요 하거든.”

“그걸 네가 해준다고?”


대오의 고개가 웨이브 치며 위아래를 끄덕인다.


“내가 이미 블로그를 그런 식으로 운영하고 있으니까, 분명 좋을 거야. 초반에는 무료로 입소문 좀 타고. 응, 응. 그렇게 하고.”


주저리주저리. 나는 알아 들을 수 없는 말들이 쏟아진다. 내 게임 지식을 전혀 배려하지 않고 신나서 얘기하는 걸 보면 제대로 꽂힌 듯 했다.

대오는 대학을 다니면서 그나마 말이 통하는 녀석이었다. 꿈이 가득해 계속해서 터트리고 있는 녀석의 모습을 보고 있자면, 당장이라도 글을 쓰고 싶은 충동이 인다. 뭐가 어찌됐든, 녀석은 나에게 플러스적인 존재임에 틀림이 없다.


“난 웹소설이나 도전해 볼까?”

“좋지!”

“나중에 내 소설, 게임 만드는 데 써주냐?”

“너, 내 말 안 들었지?”


응. 솔직히 뭔 소리인지 모르겠어.


“아니야, 다 들었지. 그래도 혹시 모르잖아.” “추천은 해볼게.”


술이 넘어간다.

쭉. 쭉쭉, 쭉쭉.

쓴 맛이 몸속에 불덩이를 만들어냈다. 날카로운 분위기와 날씨에도 몸은 뜨거워졌다. 대오와 나는 그 불덩이에 서로의 꿈을 담아 끝도 없이 떠들어댄다.

말이 많아질수록 입은 텁텁해졌고, 그러면 또 술을 마셨다. 그러다보니 입에서 슬금슬금 단맛이 일기 시작한다. 그때가 되니, 술이 달달하게 느껴졌다. 그렇게 하루를 날린다. 알코올이 기화하듯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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