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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천재 집사의 회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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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중
작품등록일 :
2021.05.19 00:16
최근연재일 :
2021.05.26 2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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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166

작성
21.05.20 2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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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만나다(2)

DUMMY

낡은 방. 책상과 의자, 벽면의 작은 책장 하나를 제외하면 가구라고 할 만한 것은 딱히 보이지 않는다.

그나마 책장 위에 놓인 화분 하나가 방의 칙칙함을 조금 덜어낸다. 머리를 맑게 해준다는 시르비아 화분이었다.

너무나 단출하지만, 고작 이만큼의 소품들만으로도 가득 찬 느낌을 줄 만큼 좁은 방이다.

게다가 이 비좁은 방구석 한 자리는 웬 주인 없는 의자가 당당히 차지하고 있어, 방의 밀도가 한층 더 높아져 있다.


그 초라한 방의 책상 앞에, 무척이나 잘생긴 남자가 앉아있다.

이제 막 성인식을 치렀을까 싶은 얼굴. 소년이라기엔 조금 성숙하고, 청년이라기엔 다소 앳된 모습이다.

황금빛 눈동자와 칠흑 같은 머리카락이 밤하늘을 연상시키는 남자. 립튼 가문의 집사 레온이었다.


레온의 집무실이라 이름 붙은 작은 방에서, 그는 마치 딴청을 피우듯 손가락을 이리저리 움직이고 있었다.

하지만 결코 딴청을 피우는 게 아니다. 지금 그는 인간의 삶에서 매우 중요하고도 경건한 일을 하고 있었으니.

그건 바로 청소였다.

고작 손가락 움직이는 걸로 무슨 청소냐 하겠지만, 그는 가능하다.

마법사, 그것도 모든 마법의 정점에 오른 대마법사였기에.


‘마법서클이 없으니 오히려 더 편하군.’


방 안의 모든 먼지가 한데 뭉쳐, 그의 손짓에 따라 춤을 추듯 이리저리 움직이며 다양한 모양을 그려내고 있다.

처음에는 별 모양, 리본 모양, 하트 모양 등 단순한 모양이었으나 어느덧 꽃, 동물, 심지어 사람의 얼굴까지 그려낸다.

문제는 마지막에 그린 사람 얼굴이 에일라를 닮아있었다는 것.

그걸 알아챈 순간 레온은 화들짝 놀라 먼지더미를 조종하던 마나를 놓아버렸다.


감히 먼지 따위로 아가씨의 얼굴을 그리다니!

집사 실격이다. 레온은 제 무례를 자책하며 먼지를 재차 그러모아 모조리 창문 밖으로 날려 보냈다.


“······아직도 수행이 부족해.”


그는 창문을 닫으며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

마법사라면 마나를 다스리기에 앞서 마음부터 잘 다스려야 한다.

마법이란 일정 수준까지는 기술에 불과하지만, 그를 초월하면 의지와 마음으로 그려내는 기적이 되었으니.

레온이 마나 한 줌 쌓지 않은 지금의 몸으로 회귀 전과 같은, 어쩌면 그 이상의 마법을 다룰 수 있는 것도 그 때문이다.

덕분에 방 청소에 들어가는 시간을 줄일 수 있게 됐으니 아주 잘 된 일이다.


레온은 어느덧 먼지 한 톨 없이 깨끗해진 집무실을 둘러보았다.

마치 계속 이곳에서 지냈던 것처럼 친숙한 느낌을 주는 장소.

이 저택과 함께 그의 몸을 불태운 게 고작해야 한 시간쯤 전인데, 어쩐지 그게 아주 먼 옛날 일처럼 느껴졌다.


똑똑-


그 때였다. 나직이 들려온 노크소리가 그를 상념에서 끄집어냈다.


“들어가도 돼?”


그리고 곧장 이어 들려온 목소리.

봄꽃처럼 화사하면서도 맑은, 누구라도 그 웃음소리를 듣고 싶어지게 만드는 목소리였다.

레온은 조금 전에 지은 죄가 떠올라 괜스레 민망한 기분으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들어오십시오.”


그리곤 조심스레 문을 열며 대답했다.

기름칠이 잘 되지 않은 문의 거칠게 삐걱거리는 소리가 그의 목소리 속 떨림을 숨겨주었다.


“앗, 레온! 잠깐 시간 괜찮아? 화분에 물 주러 왔어.”


그를 보자마자 싱긋 웃으며 손에 쥔 작은 잔을 자랑스레 내미는 소녀. 에일라였다.


“제게 주십시오.”


레온은 가볍게 목례하며 에일라에게서 물잔을 받아들었다.

화분에 적당히 물을 주고는 뒤를 돌아보자, 에일라가 그새 의자 하나를 당당히 차지하고 앉아있다.


얼핏 바라본 그녀는 그가 익히 아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살며시 접힌 눈꼬리, 새하얀 뺨을 살짝 물들인 홍조, 미세하게 씰룩이는 고운 입술.

게다가 양 다리를 계속해서 앞뒤로 차대는 통에, 발을 감싼 슬리퍼가 벗겨질 듯 위태롭게 걸쳐있다.

이는 단적으로 말해 지금 그녀의 입이 매우 근질거린다는 뜻.

그를 증명하듯, 레온이 자리에 앉기 무섭게 그녀는 히히 웃으며 이야기보따리를 풀어내기 시작했다.


“레온! 레온! 있잖아, 나 아까 낮에 리처드 할아버지랑 아랫마을 다녀온 거 알지? 근데 말야, 거기서 진짜 깜짝 놀랄 소식을 들었거든! 그게 뭔 줄 알아?”

“글쎄요, 잘 모르겠습니다.”

“흐흥, 궁금하지? 사실 아까 말해주려고 했는데, 레온이 갑자기 잔소리 하는 바람에 잊어버렸잖아.”


그러니까 더 듣고 싶으면 잔소리를 줄이겠다고 약속해, 라며 곱게 눈을 흘기는 에일라.

여기서 ‘아가씨께서 뛰어다니신 게 잘못입니다.’ 또는 ‘별로 안 궁금합니다.’ 같은 소리를 했다간 이 어린 주인님이 정말로 토라져버릴 수도 있으니, 레온은 대답 대신 짐짓 곤란하다는 듯 미소만 지어보였다.

정작 입이 근질거리는 건 그녀였기에 적당히 버티면 선심 쓰듯 그냥 넘어간다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에일라는 레온의 입이 열릴 기미가 없자 입술만 살짝 삐죽이고는 이야기를 이어갔다.


“뭐어, 됐어. 레온은 내가 아끼는 집사니까 특별히 그냥 얘기해줄게. 그 소식이 뭐냐면 말야, 글쎄 우리 영지에 마법사가 왔다는 거 있지! 신기하지 않아? 나 아직까지 마법사는 한 번도 본 적 없는데. 아랫마을 여관에 묵고 있대서 살짝 보러 갈까 했는데, 할아버지가 위험하다고 해서 참았어. 마법사가 무슨 일로 여기까지 온 걸까?”

“마법사라면······. 아가씨, 혹시 마법이 보고 싶으신 겁니까?”

“응! 레온은 안 보고 싶어? 마법사들은 등불보다 밝은 빛을 만들어낼 수도 있대. 대단한 마법사는 하늘도 훨훨 날아다니고! 또 손에서 불도 막 뿜는다던데, 손이 뜨겁지도 않은 걸까? 그리고 또······.”


마법을 이야기하는 에일라의 눈은 마치 햇빛을 받은 호수처럼 반짝반짝 빛나고 있었다.

호기심과 기대감으로 가득한 눈빛. 그 반짝임을 마주한 레온은 심각한 고민에 빠져들었다.

그에게는 당장에라도 저 한껏 부푼 기대를 충족시켜줄 능력이 있었으니까.

하지만······.


“레온? 듣고 있어?”

“아. 죄송합니다, 아가씨. 잠시 마법에 대해 생각하느라.”

“흐흫, 뭐야아. 안 그런 척 하더니 레온도 마법이 궁금했구나?”

“······그건 아닙니다.”


레온은 고개를 저었다. ‘이미 다 알고 있어서’ 같은 이유는 아니다.

애초에 그에겐 마법이라는 분야에 대한 호기심 같은 건 없었으니까. 그저 괴물 같은 재능만 있었을 뿐.

그러나 질문을 던진 에일라는 그 답변을 제 입맛대로 해석하고는 장난꾸러기 같은 미소를 지었다.


“에이, 부끄러워하기는. 이제 어른이다 이거지? 나랑 네 살밖에 차이 안 나면서!”

“제가 감히 말씀드리자면 4년은 상당히 긴 시간입니다, 아가씨.”


에일라의 나이는 올해로 열둘. 성인식을 치를 때까지 4년이 남았다.

그리고 지난 삶에서 그 4년이라는 시간은, 이 밝고 순수한 소녀마저도 끝내 지쳐버리게 만들 만큼 가혹하고도 길었다.

누구보다 사랑받아 마땅한 소녀가, 욕심 가득한 악의에 맞서야만 했던 시간.

그 때를 생각하니 레온의 고민 또한 자연스레 사라졌다.


‘사치스러운 고민이었군.’


아가씨에게 마법을 숨기려 하다니. 할 수 있는 모든 걸 다 해드려도 모자랄 판에.

레온은 결심을 굳히고는 에일라를 마주보았다.

하지만 곧바로 말을 꺼내지는 못했다.

그녀가 자기도 금방 클 거라며, 살짝 뾰로통한 얼굴로 제 눈부신 성장속도를 열심히 주장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마 4년이 길다는 레온의 발언이, 나이에 민감한 그녀에게는 꽤나 크게 받아들여졌던 모양이다.


‘이런······.’


제 말실수를 자책하며 얌전히 에일라의 변명 아닌 변명을 들어주던 레온.

그는 폭풍처럼 다다다 이어지던 그녀의 말이 잠시 멈춘 순간에야 조심스레 말을 꺼낼 수 있었다.


“그, 말씀 중에 죄송합니다만······ 아가씨. 혹시 제가 마법을 쓸 수 있게 됐다고 하면 믿으시겠습니까?”

“······응? 마법? 레온이?”

“네. 그렇게 대단한 수준은 아닙니다만, 얼추 아가씨께 보여드릴 정도는······.”


레온의 말은 끝까지 이어지지 못했다.

에일라가 격하게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달려들었기 때문이다.


“볼래! 보여줘! 지금 보여줄 수 있어!?”


언제 뾰로통해졌나 싶을 정도로 격한 반응.

조금 전까지 열심히 쏟아내던 말들은 순식간에 전부 잊어버린 듯했다.


이 정도 반응이라면 그녀가 그의 말을 믿는지 여부는 대답을 들을 필요도 없어 보였다.

열 마디 말보다 확실한 행동으로 답해주고 있었으니까.

한껏 동그래진 그녀의 눈에는 한 치의 의심도 보이지 않았다.

단지 무서울 정도의 열의만이 그를 태워버릴 듯 쏟아지고 있을 뿐.

천하의 대마법사마저 순간 기세에 눌려 말을 더듬게 만들 정도의 열의였다.


“바, 바로 보여드리겠습니다. 그러니 우선 아가씨, 조금만 진정을······.”

“궁금해! 어떤 마법이야!? 예쁜 불빛 같은 거면 좋겠다!”

“······.”


결국 레온은 에일라를 진정시키는 걸 포기하고는 손가락을 살며시 튕겼다.

아마 직접 눈앞에 마법을 대령하기 전에는 이 아가씨의 폭주가 끝나지 않으리라.


“그럼 잠시 저쪽을 봐주시겠습니까.”

“응? 저쪽에 뭐가······.”


그는 대마법사답게 이 당황스러운 와중에도 적절한 마법을 구성해냈고, 다행히 그 효과는 매우 뛰어났다.

레온의 시선을 따라 고개를 돌린 에일라.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날뛰던 그녀가 순식간에 배부른 고양이처럼 얌전해진 것이다.


“와아······ 예쁘다······.”


그가 만들어낸 것은 에일라가 원하던 빛 마법. 그녀의 눈을 닮은 푸른빛의 빛무리들이었다.

이어서 더욱 극적인 효과를 위해 등불을 끈 레온은, 그 불빛들을 이리저리 움직이기 시작했다.

조금 전 먼지로 했던 것과 같은, 그러나 그보다 훨씬 더 신경 쓴 움직임.

마치 까만 종이 위에 물감을 채우듯, 불 꺼진 방 여기저기에 은은한 푸른빛의 그림이 그려졌다.


“아가씨, 이쪽에 앉아주시겠습니까.”


혹시나 불빛에 홀린 에일라가 책상에 다가가 부딪히지 않도록 제 자리에 앉힌 레온.

그리곤 그녀 앞에 손바닥보다 조금 큰 불빛 하나를 새로 만들어냈다.


“아가씨, 잠시만 손을.”


그의 말을 따라 양 손바닥을 조심스레 내미는 에일라.

불빛은 그녀의 손바닥 위에서 조금씩 변하는가 싶더니, 이윽고 익숙한 사람의 형태를 만들어냈다.

무척이나 아름다운 여인의 얼굴이었다.

그 불빛을 마주보는 소녀와 닮아있으면서도, 그보다 한층 더 성숙한 모습.

레온의 기억 속에서 불러온, 어른이 된 에일라였다.

하나 다른 점이 있다면 그의 기억 속 서글프고 힘겨운 웃음이 아닌, 그가 항상 바라던 환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는 것.


“레온! 이거······ 이거 혹시 나야?”


마침 에일라 또한 그를 알아챘는지, 놀란 얼굴로 레온을 마주보았다.


“이렇게 아름다우신 분이 아가씨 말고 또 어디 있겠습니까.”

“흐흫, 뭐야, 레온. 할아버지같이! 그런 말도 할 줄 알았어?”


레온답지 않은 대답에, 짐짓 그를 타박하며 그에게서 시선을 돌리는 에일라.

쑥스러운 듯 작은 입을 꾹 다물었으나, 그 상태는 그리 오래 가지 않았다.

저를 닮은 예쁜 불빛이 손바닥 위에서 살랑이는 걸 보자, 이내 참지 못하고 마음껏 웃어버리고 말았던 것이다.

그의 그림으로는 감히 담아낼 수 없는, 한없이 맑고 아름다운 웃음이었다.


“헤헤······.”


그렇게 한 송이 화사한 웃음꽃을 피워낸 에일라.

이윽고 불빛과 레온을 번갈아 바라보며 헤실헤실 웃는다.

방 안을 환하게 밝히고 있는 불빛들보다 더욱 밝은 모습이었다.

그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던 레온은 무언가 묘한 감정이 제게 다가오는 것을 느꼈다.

마치 누군가 제 마음속 깊은 곳까지 살살 간질거리는 듯한 기분.

이전 삶에서 그 어떤 대단한 업적을 달성했을 때도, 가장 귀하다는 보물을 얻었을 때도 느껴보지 못한 감정이다.

그에게는 너무나 과분한, 때문에 아주 오랫동안 잊어버리고만 있었던.


“앗, 레온?”


그렇기에 레온은, 그를 바라보는 에일라의 휘둥그레 놀란 눈을 마주하기 전까지는 깨닫지 못했다.

자신이 햇살처럼 환하게 웃고 있다는 것을.


작가의말

감사합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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