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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직구

회귀없이 야구만렙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스포츠

강직구
그림/삽화
k-young
작품등록일 :
2020.09.29 14:25
최근연재일 :
2020.11.13 09:59
연재수 :
40 회
조회수 :
50,205
추천수 :
895
글자수 :
206,768

작성
20.10.12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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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2쪽

먹튀 프로젝트(4)

DUMMY

- 형, 사고치는 거 아니지?

동윤이의 목소리가 들렸다.

“걱정 마. 한 대 후려치고 싶지만 안 칠 거야. 내가 사고치는 거 봤냐?”

- 아니. 사고 당하는 것만 봤지.


동윤이니까 아무리 까불어도 봐준다.

나를 금강불괴로 만들어준 녀석이니까.

나는 그저 내 길을 갔다.


걸음이 빠르니 두 남녀를 앞질렀다.

“헐. 금강이네.”

“어머! 우리가 한 말 들었을까?”

들었다. 그러나 상관없다.

남들이 뭐라 떠들든 말든 내는 내 길을 가면 된다.

얼마 전까지는 앞이 보이지 않았지만, 지금은 길이 보이지 않나.

그걸로 됐다.


***


ING스포츠는 약속대로 날 위한 퍼스널 트레이너를 지원해줬다. 대구 히츠에서 일한 경력이 있는 김용 트레이너가 내 개인훈련을 도왔다.

나는 피트니스 센터에서 매일 그와 6시간씩 훈련했다.

어깨와 팔꿈치 체크는 매일 했다. 2주마다 한 번씩 병원에 같이 가서 검진도 받았다.


“너 정말 지독하다. 멀쩡한데 검진을 왜 이렇게 받아?”

용이 형은 혀를 내둘렀다.

“귀찮더라도 형이 좀 이해해주세요. 한 번 더 아프면 나 정말 끝장이거든요.”

“아니, 귀찮은 건 없지. 나야 너 몇 시간 봐주고 돈 많이 받아서 좋아. 네 의지가 대단해서 하는 말이야.”

나는 말없이 그냥 웃었다.


박강덕에게 59호, 60호 홈런을 맞은 다음 시즌. 난 부진한 피칭을 거듭한 끝에 2군으로 내려갔다.

그곳에 있으니 왠지 버려진 느낌이었다.

내 스트렝스닝과 컨디셔닝을 전문적으로 도와줄 사람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사실 크게 다친 건 멘탈리티였다.

그런데 난 자꾸 피지컬에서 원인을 찾으려고만 했다.

그해 여름부터 시즌이 끝날 때까지 난 월급의 대부분을 트레이너 비용으로 지출했다.

어떻게든 더 좋은 몸을 만들고 싶었다. 다른 이들이 차를 사고, 여자를 만날 때 나는 개인 트레이너를 붙였다.

그때 내 연봉은 5000만 원 정도. 내가 개인 트레이너를 고용했다는 말이 퍼지자 몇몇 선배들이 비웃었다. 특히 김대후가 그랬다.

한 달 만에 1군에 올라왔더니 소문이 쫙 퍼져있었다.


“어이, 메이저리거.”

라커룸에서 옷을 갈아입을 때 김대후 목소리가 들렸다. 그는 3년째 나를 메이저리거라고 불렀다.

상견례에서 메이저리그를 꿈꾼다고 한 말을 두고 여태 이죽거리는 것이다.

“네. 선배님.”

라이거즈에서는 호칭에 관한 내규가 있다. 나이 차이가 일곱 살 이하면 형이라고 부른다.

그보다 위라면 선배님이라고 해야 한다.

김대후는 나보다 세 살 많다. 나는 그를 한 번도 형이라고 부른 적이 없었다.


그는 형답지 않았다. 처음부터 깐죽댔다.

나도 곁을 주지 않으려 선배님이라고 깍듯이 불렀다. 그는 그것도 못마땅한 것 같았다.

“트레이너 쓴다며? 벌써 메이저리거 행세하는 거야?”

“······.”


뭐라 대답해야 할지 몰랐다.

내 트레이너는 개인 훈련만 돕는다. 팀 훈련에서는 난 당연히 라이거즈 코치와 트레이너의 지시를 따른다.

수억 원의 연봉을 받으면서도 자신에게 투자하지 않는 선수가 왜 저렇게 비아냥거리는지 알 수 없었다.


내가 바로 답하지 않자, 김대후의 언성이 높아졌다.

“왜 대답이 없어? 네가 걱정돼서 하는 말이잖아? 쥐꼬리만한 월급을 트레이너한테 쏟아 부으면 어쩌려고 그래? 네가 앞으로 야구 얼마나 한다고.”

횡설수설하는 그의 얼굴에 강속구를 날리고 싶었다.

이 자식 면상에 던지라고 하면 시속 150㎞도 나올 것 같았다.


“선배님, 동정은 필요 없습니다. 저 스스로 충분히 동정하고 있으니까요.”

나는 강속구 대신 온 힘을 다해 이 말을 토해냈다.

“뭐라고? 너 이 새끼, 그게 무슨 말이야?”

내 분노를 담은 말이 그의 옆구리를 강타한 것 같았다. 머리를 때리지는 않았지만, 난 적당히 통쾌했다.


김대후의 목소리가 확 높아졌다.

라커룸에는 라이거즈 선수 예닐곱 명이 옷을 갈아입고 있었다. 그 중에는 서른여섯 살 박재용 선배도 있었다.

“거기, 지금 뭐하는 거야?”

박재용 선배가 야단치듯 말했다.


모두의 시선이 나와 김대후에게 쏠렸다.

자유로웠던 라커룸 분위기가 순식간에 얼어붙었다.

아무리 건방진 김대후라고 해도 아직 프로 6년 차, 스물다섯 살이었다.

“별일 아닙니다. 선배님.”

김대후는 박재용 선배를 향해 싱글싱글 웃으며 외쳤다. 뱀 같은 자식.


***


나는 내 선택이 틀리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이후에도 오프 시즌 동안 트레이너의 도움을 받았다.

덕분에 난 내 몸에 대해서 꽤 잘 알게 됐다. 그럴수록 더 공부하고, 훈련하게 됐다.


“강아, 넌 거의 트레이너가 필요 없는 수준 같은데?”

용이 형이 훈련 중에 계속 말을 시켰다.

“아니에요. 형 같은 전문가가 옆에서 봐주는 거랑은 엄청 차이가 나요.”


스쿼트를 하는 난 가쁜 숨을 몰아쉬며 말했다.

웨이트 트레이닝을 하면서 말을 하면 훈련 효과가 떨어진다. 그걸 아는 사람이 오늘따라 왜 저러는지.

“넌 트레이너보다 투수 코치가 필요한 거 아냐?”

“그러면 좋겠지만 우리나라에 좋은 투수 코치가 별로 없거든요. 그래서 피칭에 대해 공부 많이 했어요.”


난 피칭 이론에는 자신 있었다. 고교 시절부터 미국과 일본에서 출판된 피칭 교본을 많이 읽은 덕분이다.

프로에 와서도 나만큼 이론 공부를 하는 코치를 본 적이 없었다.

해외야구 중계도 엄청 많이 봤다. 팀이나 선수 이름은 잘 몰라도 투구 폼과 구종을 집중적으로 연구했다.


난 정말 노력했다. 할 만큼 했다.

다만 ‘유리 몸’을 타고난 게 아쉬울 뿐이었다.


‘유리 멘탈’이 깨진 걸 몰라서 문제였을 뿐이었다.

“하여튼 대단하다. 지금 몸 상태를 보면 너 진짜 메이저리그에 갈 수 있을 것 같아.”

용이 형은 오늘 기분이 좋은 모양이다. 훈련에는 약간 방해가 됐지만, 나도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몸만 좋다고 메이저리그를 가나?

미국 선수와 비교하면 내 하드웨어는 초라한 수준이다.

그래도 용이 형의 말에 나는 씨익 웃었다.

내게 뭔가 기대하는 사람들을 요새 자주 만나고 있다.


한국시리즈에서 우승한 뒤 3개월은 생각보다 짜릿했다.

내 공을 테마로 방송과 신문에서 심층 분석 기사가 나왔다. 연말 시상식에서는 ‘기량발전상’을 타기도 했다.

기분이 붕 뜨는 것 같았다.

아니지. 이래서는 안 된다.

이제 시작인데 흥분하면 안 된다.


지난겨울은 평생 처음으로 돈 걱정을 하지 않은 시간이었다. 우승 보너스로 무려 8000만 원을 받은 것이다.

올해 연봉 계약을 생각하면 스멀스멀 웃음이 나왔다.


지난해 내 연봉은 4000만원이었다. 육성 선수였다가 겨우 정식 선수로 계약을 했으니 당연했다.

6월까지 난 패전 처리 투수였다. 아무도 날 주목하지 않았지만, 난 2점대 평균자책점을 기록했다.

7월부터는 불펜 승리조에 합류했다.


그리고 시즌 막판에는 김승헌 선배와 더블 스토퍼로 활약했다. 결국 한국시리즈 우승을 내가 마무리했다.

구단이 올해 연봉으로 얼마를 제시할지 감이 오지 않았다. 잘하기는 한 것 같은데, 파이터스에 기여한 기간이 짧았기 때문이다.


“금강 선수, 지난해 정말 수고 많았습니다.”

계약 실무자인 이세영 운영 팀장이 웃으며 말했다.

계약을 하러 난 혼자서 구단 사무실에 들어갔다. ING스포츠와 에이전시 계약을 했지만, 파이터스와의 계약에서 대리인을 내세우지 않았다.

에이전시가 협상한다고 해도 얼마나 더 받겠는가?

또 ING스포츠가 떼어 갈 수수료는 얼마나 되겠는가?


이번에도 난 구단이 주는 대로 받기로 했다.

올해 연봉을 조금 더 받는 것보다, 1년 후 파이터스로부터 메이저리그 진출을 허락받는 게 훨씬 중요했다.

“감사합니다. 파이터스가 제게 기회를 준 덕분입니다.”

상대가 나이스하게 나오면, 난 이렇게 예의가 바른 사람이다.

나도 모르게 싱긋 웃고 있었다. 라이거즈에서는 운영팀 막내 직원도 내게 반말하던 게 떠올랐다.


“파이터스 우승에 큰 기여를 하셔서 많이 드려야 하는데······. 구단에는 고과 산정 기준이 있다 보니.”

이세영 운영 팀장이 연봉 계약서를 내밀었다.

9000만 원.

애매하다.

내가 지금까지 받은 연봉에 비하면 적은 돈이 아니다. 그래도 뭔가, 개운하지는 않았다.


- 형, 9000이 뭐야? 최소한 1억은 돼야지.

동윤이가 떠들기 시작했다.

- 아니지. 1억2000도 받을 만 할 거 같은데. 우승 프리미엄이라는 게 있잖아.

누구는 많이 받고 싶지 않나?

1000만 원 더 받는 것보다 중요한 게 있다.

“네. 알겠습니다. 그런데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우승한 다음 해 연봉 계약은 구단 입장에서 특히 더 힘들다고 들었다. 선수들의 높아진 기대치 때문에 협상이 아닌 전쟁이 벌어진다.

그런데 내가 단번에 사인을 하겠다고 하자, 이세영 운영 팀장 얼굴이 활짝 펴졌다.

대신 난 올해 말 메이저리그에 도전할 거라고 말했다. 그의 얼굴은 마치 석고상처럼 굳었다.


“메이저리그요······?”

역시 믿지 못하는 것 같다.

하긴, 나도 믿지 못하고 있으니.

“황당하게 들리시겠지만 한 번 도전하고 싶습니다.”

그에게는 대응 매뉴얼이 없는 것 같았다. 연봉 2억 원을 달라고 해도 저렇게 당황하지는 않을 것 같았다.


이세영 팀장은 양해를 구하고 자리를 떠났다가 돌아왔다. 단장을 만나고 온 것 같았다.

“포스팅은 아직 먼 일이잖아요. 그건 차차 얘기하기로 하고 계약부터 하시죠.”

그는 새 계약서를 내 앞에 내밀었다. 1억 원.

이게 아닌데? 연봉을 올려달라고 메이저리그 포스팅을 들먹인 걸로 오해한 건가?


이번에는 내가 역제안을 했다.

연봉 9999만원에 계약하자고 한 것이다.

이세영 팀장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수락했다.

계약서에 사인을 하고 구단 사무실을 나왔다.

- 형? 또라이야? 9999만 원이 뭐야? 일부러 만 원을 왜 깎아?

“억대 연봉은 받기 싫어서.”

- 헐.

“1억도 못 받은 선수가 메이저리그에 간다고 하면 더 재밌지 않겠어?”

내 연봉이 마음에 들었다.


9999.

어떻게 보면 꽉 차있는 액수다.

어떻게 보면 조금 모자란 숫자다.

지금까지 연봉 협상에서 나는 한 번도 큰 소리를 내 본 적이 없었다. 저항해봐야 미운털만 박힐 것 같았다.

이번에도 구단 제시안을 받아들였을 뿐이다.

그런데 1000만 원이 올라가다니.

내가 오히려 만 원을 깎을 수 있다니.


***


이듬해 2월, 미국 애리조나 서프라이즈에서 서울 파이터스의 스프링 트레이닝이 시작됐다.

지난해에는 5월이 돼서야 파이터스 정식 선수가 됐다. 파이터스에서는 이번이 첫 캠프였다.

올해는 내 프로 입단 8번째 시즌이다. 만 스물일곱 살이 된 나는 파이터스 투수 중 중간 정도 나이가 됐다.

실력으로는? 상위권이다. 어쩌면 최상위일 수도 있고.


동료와 코치들은 상상하지 못할 테지만, 난 메이저리그를 노리는 투수다.

안 되면 할 수 없다. 크게 한 번 쪽팔리면 된다.

그리고 1~2년 있다가 FA에 도전하면 된다.

생각하면 난 별로 잃을 게 없었다. 더 쪽팔릴 것도 없었다.


구단에 전한 메이저리그 도전 계획이 아직 코치진에게는 전달되지 않은 것 같았다.

하긴 황당하겠지. 나도 굳이 감독이나 코치에게 말하고 싶지는 않았다. 그건 나와 구단이 풀어야 할 문제다.

현장에 해야 할 말은 따로 있었다.


서프라이즈 캠프에 도착한 날 저녁, 나는 윤승환 파이터스 투수 코치의 숙소 문을 두드렸다.

똑똑.

“어? 금강, 웬일이야? 피곤할 텐데 오늘은 좀 쉬지.”

윤승환 투수 코치는 내게 친절한 편이었다. 파이터스 마무리로 도약한 지난 시즌 말부터는 특히 그랬다.


“코치님,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이제 난 윤승환 투수 코치의 뜻을 거역해야 한다.

미안하지만, 난 이제 그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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