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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자의 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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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담선생
작품등록일 :
2023.01.24 20:43
최근연재일 :
2023.08.16 2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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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6.30 2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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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언이 빗나가지 않는 이유 12

'나는 이것이 준비 없이 시작되었음을, 그러나 끝은 예정되어 있음을 비로소 알게 되었노라.' -3급 집행관 하희지의 비망록 中




DUMMY

직격포 부대를 후위에 두고 장총 사수들이 용일산 타워 전면을 사수하는 동안 경비단의 좌익과 우익은 신중하게 타워 뒤편 부대시설이 있는 곳으로 접근했다. 직격포 공격으로 불바다가 된 창고와 부대시설엔 활활 타오르는 불길 외엔 아무런 움직임이 없었다. 2차로 투입된 경비단 후발대 인원과 함께 웨이치는 창고 근처에 도착했다.

“불길이 거세서 창고 쪽 출입구로는 타워에 들어가실 수 없습니다!”

후발대 인원을 맞이한 경비단 좌익의 부대장이 웨이치를 향해 소리쳤지만 웨이치는 묵묵부답이었다. 그는 잠시 화마에 휩싸인 창고를 응시하더니 이내 몸을 틀었다. 그의 프록코트가 우산을 펼친 것처럼 풍성하게 휘날렸고 곧 웨이치의 몸 전체가 검은 연기로 변했다. 마력의 안개가 된 웨이치는 여전히 불꽃이 혀를 날름대는 창고 쪽으로 화살처럼 날아갔다. 그의 모습은 화마가 피워올리는 검은 연기와 구분할 수 없었다.

후방의 언덕에서 이 모든 것을 지켜보던 빅토르는 입술을 깨물었다. 모든 일의 성패가 이제 그에게 달려 있었다.

빅토르에겐 본인을 시장의 자리에 올려놓은 성황의 개가 되어 연합군을 뒷배로 삼아 암담 시정의 책임자가 된다는 편한 길이 있었다. 그는 그 길을 스스로 걷어차고 성황-연합군의 반대편에 섰다. 그가 선택한 반대편의 길은, 길이라 부르기도 어려운 희박한 가능성의 길이었다. 그는 어째서 바보 같은 선택을 한 것인가.

‘자존심을 위해서? 미켈슨의 복수 때문에? 그게 무엇이든 멍청한 선택이라는 걸 부정할 순 없겠지.’

빅토르는 고개를 저었다. 인간의 선택에 무슨 어설픈 논리를 들이미는 것이냐. 그냥 나는 저 할망구가 꼴 보기 싫은 것이다. 거기에 무슨 거창한 이유 따윈 없다. 본인의 선택에 이유를 찾으려는 놈들은 제가 한 선택에 대해서도 믿음이 없어 변명거리나 준비해두려는 한심한 것들이다. 빅토르는 과격한 자기부정을 위안 삼아 힘을 얻고 있었다.

“시장님, 관리사무소장으로부터 연락이 왔습니다. 연합군 치안대가 출동 소식을 알려 왔답니다.”

빅토르는 놀라지 않았다. 이미 예견된 일이었다. 명백한 연합군의 자산인 용일산 공원에 무장병력을 천여 명이나 대동한 일에 연합군 치안대가 출동하지 않을 리가 없었다.

빅토르는 이미 사전에 암담시 연합군 치안대 본부에 타워 공격에 대한 언질을 주었다. 물론 연합군 자산에 대해 공격을 감행한다는 미친 소리를 한 건 아니었다. 빅토르는 질의의 형식으로 연합군의 묵인을 이끌어냈다. 그의 질의는 두 가지였다.

‘첫째, 천자교의 우두머리 교체에 있어 연합군법에 위배될 사항이 있는가?’

연합군은 기본적으로 개입을 싫어한다. 적포 지하클럽 소탕 때도 연합군 치안대는 미동도 하지 않았었다. 빅토르는 그 사실에 기초해 연합군이 천자교 내부 문제에 개입하지 않으리라 판단했다. 암담 시장 선출에 연합군이 개입한 사례에 비추어 천자교 성황 교체에도 연합군이 개입할 것이라는 우려는 기우에 불과했다. 시정 관리라는 공적 기능을 수행하는 암담 시청과 달리 천자교는 원칙적으로 불법 사조직이었다. 빅토르는 연합군이 사조직 내부 문제에 개입하지 않는다는 답신을 받을 수 있었다.

‘둘째, 폐위된 성황은 더 이상 타워 안에 유폐될 필요가 없다. 폐성황을 체포하는 데 있어 연합군법에 위배될 사항이 있는가? 폐성황 체포를 위해 부득이 타워 안에 들어가는 것에도 연합군법에 위배될 사항이 있는가?’

빅토르가 가장 우려했던 질의였다. 하지만 그는 자신이 있었다. 용일산 타워 유폐의 대상은 ‘천자교 성황’이지 인간 하희지가 아니다. 차기 성황이 없다면 문제가 골치 아팠겠지만 남태욱과 사토시는 차기 성황을 반드시 즉위시킨다는 확답을 주었다. 예상대로 연합군은 문제가 없다는 답신을 주었다.

더 이상 성황이 아닌 하희지를 체포하기 위해 타워 안에 들어가는 것 역시 문제는 없었다. 이미 사례가 있었다. 불과 몇 달 전, 경찰국은 살인 용의자 체포를 위해 용일산 타워를 점거한 적이 있지 않았는가. 이번에도 예상대로 연합군은 문제가 없다는 답신을 주었다.

다만, 연합군은 질의에 대한 답신을 마치며 단서를 달았다.

‘긴급 체포라는 공권력 행사는 현행범 내지 그에 준하는 범인에게 적용된다. 범인을 두 시간 이내에 신속히 체포하여 범인의 신원과 죄목을 밝혀 즉시 치안본부에 보일 것.’

연합군의 중요 자산인 용일산 공원에서 행해질 폭력의 사용을 정당화하는 건 오로지 빅토르의 주장뿐이었다. 연합군은 빅토르의 주장을 입증할 증거물로서 범인의 인도를 요구했다. 게다가 치안대 본부가 허락한 시간은 겨우 두 시간이었다. 상당수 병력을 수반하는 폭력 사태이니만큼 연합군은 신속한 처리 역시 요구했다. 두 시간 안에 폐성황 하희지를 체포해서 연합군 앞에 보여야 하는 것이었다.

과연 시간 내에 웨이치는 폐성황을 잡아 올 수 있을 것인가?

그리고, 연합군의 에너지원을 끊어낼 수 있을 것인가?

웨이치가 용일산 타워에서 연합군의 에너지원을 무력화시키는 것에 대해 빅토르는 자세한 사항을 들을 수 없었다. 그들은 청홍과 암담을 오가는 비밀 교신에 의지해 지금의 일을 일으킨 것이었다. 한가하게 사정 설명을 들을 시간이 없었다.

그리고 사실, 연합군의 에너지원 따윈 빅토르의 안중에 없는 이야기이기도 했다. 어차피 폐성황을 잡아 연합군에 인도하기만 한다면, 연합군은 질의에 답신한 바와 같이 빅토르가 한 일을 묵인해 줄 것이다. 그렇다면 모든 것이 해결된다. 본인의 약점을 쥐고 흔들던 할망구를 제거하고, 빅토르는 어떠한 약점도 없이 완벽히 준비된 암담 시장이 되는 것이다.

‘연합군을 모두 물리친다고? 흥, 뭐, 그거야 되면 좋고, 아니어도 상관없다. 너희들은 그저 폐성황만 잡아 오면 되는 거다.’

늦어도 삼십 분 후면 암담시 치안대 본부에서 휴머노이드들이 올 것이다. 빅토르가 그들에게 납득할 만한 성과물을 보이지 않는다면, 그의 도박은 오늘로 끝인 셈이었다. 용일산 타워에 하희지가 없다는 사실을 알 리 없는 빅토르는 턱수염을 쓰다듬으며 초조하게 웨이치에게 기대를 걸고 있었다.

빅토르의 기대와는 상관없이 웨이치는 본인의 일에 집중하고 있었다.

검은 연기로 화해 타워 뒤편 가장 작은 창고로 들어간 웨이치는 즉각 지하로 이어지는 통로를 찾으려 했다. 창고의 사면을 가득 채운 선반은 이미 불길에 휩싸여 활활 타올랐고 직격포의 충격에 쓰러진 선반도 태반이었다. 쓰러지고 불타올라 이미 숯불이 되어가고 있는 잿더미 너머로 찢어진 여닫이문의 틈이 웨이치의 시선에 잡혔다. 빅토르가 얘기했던 지하 비밀 통로였다.

비밀 통로로 들어선 검은 연기는 지하로 이어진 원형 계단참에서 다시 프록코트로 변모했다. 선반 더미와 부서진 문의 잔해들이 방어막 역할을 해준 덕분에 비밀 통로엔 아직 폭격의 여파가 미치지 않았다. 사뿐하게 착지에 성공한 웨이치는 숨을 몰아쉬며 잠시 휴식을 취했다. 마물의 힘을 빌려 사용하는 마법이라 하더라도 체력의 고갈은 어찌할 수 없었다. 더욱이 전신을 마력으로 변화시키는 술법은 지속 시간이 길지 않았다. 마력을 아낄 필요가 있었다. 빅토르가 옆에 있었다면, 폐성황의 체포를 위해 마력을 아끼려는 웨이치를 칭찬할지도 모르겠지만, 그는 애초에 하희지와 대적할 생각이 없었다.

‘대적할 필요가 없지. 그녀는 여기 없을 테니.’

초인적인 성법을 사용하는 고위 법관이 타워 안에 있다. 그런 상황에서 단신으로 들어가려는 웨이치에게 빅토르는 걱정의 말을 건넸었다. 웨이치는 그런 그에게 걱정하지 말라고 대답했다. 심지어 경비단 병력도 들어오지 말 것을 다시 한번 강조했다.

‘경비단에게 괜히 하희지가 이곳에 없다는 것을 드러낼 필요는 없지.’

우연과 행운이 겹쳤던, 혹은 그렇게 보였던 남태욱-사토시-빅토르의 극적인 제휴와 연합, 그리고 그들이 꾸몄던 성황 폐위의 음모.

적어도 빅토르는 그렇게 생각했다. 이 삼각 연합이 폐성황과의 기울어진 관계를 역전시키고 본인을 구원할 것이라고 말이다. 하지만 일견 삼각 연합으로 보였던 이들 제휴의 실상은 통령과 폐성황이 맞잡은 손바닥 안에 있었다. 삼각 연합의 한 축이었던 빅토르는 사실 타워 안에 폐성황 하희지는 없으며, 따라서 그녀의 체포 작전은 어차피 성립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꿈에도 몰랐다. 그는 그저 성황 폐위를 이용하고자 하는 통령-폐성황 연합의 도구에 불과했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오롯이 통령 각하의 계획대로 된 것이지.’

웨이치의 생각처럼 어쩌면 빅토르의 억울함은 혼자만의 몫이 아닐지도 모른다. 삼각 연합을 유도하여 빅토르를 속였던 배후인 통령-폐성황의 제휴 역시 마찬가지였다. 제휴의 한 축이었던 폐성황은 주흥진의 서를 얻지도 못했고, 심지어 본인이 자유를 맞이하는 곳이 암담이 아닌 청홍일 거라곤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어쩌면 폐성황 역시 통령의 계획을 위한 도구에 불과했을지도 모르는 것이다. 빅토르와 마찬가지로 말이다.

모든 것을 뜻대로 이룬 사람은 오직 한 사람, 통령이었다.

통령의 계획은 이제 마지막 한 걸음만이 남아 있었다.

“천생원 프로젝트는 오늘부로 종료될 것이다.”

통령의 마지막 남은 한 걸음을 완성시키기 위해 웨이치는 비밀 통로에서 타워 지하로 이어지는 길을 향해 발걸음을 서둘렀다.




감사합니다. 즐거운 시간 되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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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4 영원의 바다에 던져진 닻 04 23.07.12 18 1 9쪽
93 영원의 바다에 던져진 닻 03 23.07.10 20 1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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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8 예언이 빗나가지 않는 이유 13 23.07.02 21 2 11쪽
» 예언이 빗나가지 않는 이유 12 23.06.30 20 2 10쪽
86 예언이 빗나가지 않는 이유 11 23.06.28 24 2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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