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섭풍 님의 서재입니다.

천역기환

웹소설 > 작가연재 > 무협, 퓨전

섭풍(囁風)
작품등록일 :
2022.08.27 02:00
최근연재일 :
2022.11.14 09:51
연재수 :
12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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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수 :
106
글자수 :
62,546

작성
22.11.09 22: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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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제11화 도준

DUMMY

다음날 수련중에 한 아이를 지나치던 삼제가 갑자기 눈을 부라리며 그를 발로 걷어찼다.


퍼억!


"아악!"


콰앙!


"자...잘못했습니다."


아이는 뒤로 자빠지자마자 두려운 표정으로 용서를 빌며 다시 꿇어 앉았다.

무엇을 잘못한 것인지 그는 당연히 알리가 없었다.

하지만 삼제가 화를 낸다면 어찌되었든 잘못부터 빌어야했다.

이것은 삼제의 철칙이었다.


"대천각의 제자들이 꾸짖을때는 무조건 무릎을 꿇고 용서를 빌어야한다. 이를 어긴다면 즉시 목숨을 앗아갈 것이야!"


삼제가 냉소를 지으며 물었다.


"네놈은 어째서 약을 먹지 않은 것이지?"


그제야 앞에 무릎을 꿇고 엎드린 아이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멀찍이서 이를 지켜보던 태사형 또한 심장이 덜컥 내려앉는 것 같았다.

하지만 그는 겉으로는 내색을 하지 않았다.


'그저 스쳐지나가는 것만으로도 약을 먹었는지 먹지않았는지 알아내다니...'


아이는 덜덜 떨며 간신히 대답하였다.


"부주의하여 약을 일부 쏟았습니다. 살려주십시오."


"약을 단 한방울이라도 부족하게 취한다면 효과가 없다고 분명히 주의를 주었을텐데?"


"사...살려주십시오. 다음부터는 결코 그런 일이 없도록 하겠습니다."


그러나 삼제는 냉혹했다.

그는 즉시 우수를 내밀어 아이의 머리카락을 잡아들었다.

공포에 질린 채 버둥거리지조차 못하고 온몸을 떨던 아이는 급기야 오줌을 지리고 말았다.


"흥! 감히 이곳에서 오줌을 싸?"


그는 좌수를 전광석화같이 움직여 아이의 명치에 꽂았다.

아이는 눈이 비정상적으로 돌아가더니 급기야는 입에서 거품과 피를 뿜어냈다.

다시 뽑아든 삼제의 손에는 김이 모락모락 나는, 그리고 아직도 뛰고 있는 심장이 들려있었다.


그곳에 모여있던 모든 아이들의 눈에 두려움이 어렸다.

예영은 창백하게 질린 채 눈물까지 고였으니 그 공포감이 어느정도였는지는 짐작하기 어려울 정도였다.


삼제가 심장이 뽑힌 아이의 시신을 집어던지고는 모두를 돌아보며 말했다.


"시험을 무사히 치르는 그날까지 작은 실수라도 용납하지 않는다. 특히 약을 조금이라도 흘리거나 먹지 않는 녀석이 있다면 이와같은 꼴을 면치 못할것이야. 그러니 똑똑히 보아두어라!"


그의 좌수에 들려있던 심장에서 푸른 불꽃이 일어나더니 삽시간에 잿더미로 바뀌었다.

삼제가 휘파람을 불자 수련장의 문이 덜컥 열리며 시강이 걸어들어왔다.


그러나 오늘 이곳에 나타난 시강은 평소의 것과는 어딘지 많이 달랐다.

머리 한개 정도는 더 커보이는 신장하며 외모까지 매우 익숙해 보이는 것 아닌가!


태사형은 시강을 보며 크게 놀랄 수 밖에 없었다.

그의 머릿속에 누군가가 떠올랐기 때문이다.


'도....도준? 설마...저 시강이?'


한참 아무말도 못하고 멍하니 있는 동안 시강은 아이의 시신을 들쳐업고 문을 나가 어딘가로 사라졌다.


'도준이 시강이 되었단 말인가?'


그야말로 허무하기 그지없었다.

시강은 신체가 금강석과 같이 단단하여 보통의 물리력으로는 파괴조차 할 수 없었다.

하지만 머릿속에는 이성과 본능이 존재하지 않았으니 그저 주인의 말에 따르는 기관과 다를 바가 없었다.


때문에 태사형을 비롯한 아이들은 시강이 그저 신양의 제자들이 술법으로 만들어낸 기관에 불과할 뿐이라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이 사람을 변화시켜 만들어낸 것이라니...

놀란 것은 태사형 뿐만이 아닌 것 같았다.

맞은 편에 앉은 진경 또한 놀란 표정으로 태사형에게 의미심장한 눈빛을 보내고 있었다.


'그렇다면 여태까지 진화련에 끌려간 아이들이 모두 시강이 되었단 말인가?'


그야말로 상상조차 하기싫은 일이었다.

태사형은 몸 속에서 피가 끓어오르는 것 같았다.


'도대체 이 자들은 어떻게된 자들이기에 이처럼 잔인하고 악랄하단 말인가!'


그러나 지금 그는 스스로의 목숨조차 부지할 수 있을지 알수없는 신세였다.

그는 타오르는 분노를 삭이며 속으로 한탄을 했다.


'힘이 없다는 것이 이처럼 분통터지고 억울한 일이구나. 친구를 구할 수 없음은 물론 나 자신의 운명조차 남에게 맡겨야한다니...'


이때부터 태사형은 마음 가득히 힘에 대한 갈망이 생겨났다.


'내가 힘을 얻게된다면 그때엔 분명 남들에게 휘둘리지 않고 내 자신의 운명을 스스로 개척해나갈 수 있으리라...그리고...저 악랄한 놈들은 반드시 단죄하고 말겠다.'


***


다시 석달이 지나갔다.

이 시기가 되면서 약을 먹던 아이들은 태사형이 보기에 희노애락의 감정이 급격하게 사라져가는 것 같았다.

그것은 예영이나 진경도 예외는 아니었으니 근래들어 태사형은 그들이 전혀 다른 사람같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다.


매일밤 바위 앞으로 나오는 것에는 변함이 없었으나 별다른 말도 없었고 표정도 없었다. 그저 일년가까이 이어오던 습관적 관성으로 그곳에 나오는 것이 아닐까 싶을 정도였다.


태사형이 멍하니 달을 보고 있는 진경에게 물었다.


"뭘 생각하고 있는거야?"


"달을 보고 있어."


"......"


시간이 조금 더 지나자 진경이 말했다.


"이제 돌아갈 시간이야."


그것은 예영도 마찬가지였다.

태사형이 물었다.


"너희들은 지난 번 시강이 도준과 매우 닮았던 일에 대해 어떻게 생각해?"


"글쎄...그 이야기는 나중에 하는 것이 좋겠다. 졸음이 쏟아지니 어서 들어가 자야겠어."


진경과 예영은 자신들의 숙소로 돌아가버렸다.

태사형은 가슴이 막히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그것을 먹어서는 안된다는 것을 알면서도 자신은 그들이 약을 먹지 못하게 할 수 없었다.


'어떻게해서든 방법을 찾아야해.'


그러나 한편으로는 이런 생각을 하다보니 의문이 생기게 되었다.


'약이 사람을 멍하게 만든다는 것을 알려준 것은 은신형이다. 만일 예전 꿈에서 나타났던 영명검이란 여인의 말대로 진양진인이 내가 화한 성신단을 노린 것이었다면 어찌하여 그런 것을 가르쳐주었단 말인가! 그 또한 약효가 떨어지는 것을 꺼려했을 것인데 말이야.'


하지만 이내 다른 생각이 꼬리를 이었다.


'아냐, 내가 멍청해져버렸다면 비급을 가져다주는 일이고 뭐고 모든 것이 수포로 돌아갔겠지. 그로서는 나름 최선의 선택이었던 것이 아닐까?'


태사형은 그저 꼭두각시처럼 변해버린 동료들 틈에서 수련을 받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괴로웠다. 하지만 그들을 되돌릴 방법이 분명히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은 그저 들키지 않고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낮에는 별수없이 그들과 같이 행동할 수 밖 에 없었다.


일년 가까이를 수행했으면서도 그들이 배운 것은 작은 화염탄을 만드는 것과 몇가지 공법이 결부된 무기를 다루는 법, 그리고 주위에 가득한 영기를 체내에 저장하는 호흡법 정도였다.


드디어 모든 수련이 끝나는 날이 다가왔다.

삼제는 그날따라 후련한 듯한 표정으로 모두에게 말했다.


"이제 내일이면 기다리던 시험일이다. 하여 오늘은 오전수련만 마치고 오후수련은 하지 않는다! 다만 생화당에서의 일은 멈출 수 없으니 그것은 모두 참석해야 할 것이다."


그러고는 손가락을 튕기자 앞에 놓여있던 죽편이 허공을 날아올라 아이들의 앞에 하나씩 펼쳐졌다.


그곳에는 다섯종류의 요수들과 세가지의 영초가 그려져 있었다.


"그것이 내일 너희들이 목표로 해야할 것들이다. 그림 옆에는 취득해야하는 부위의 명칭과 점수가 기록되어 있다. 각 요수별 특징과 약점들이 적혀있으니 오늘 부단히 공부하도록 하여라!"


아이들이 죽편을 말아 품에 넣고 나자 삼제가 다시 말을 이었다.


"그럼! 내일 아침 이곳에서 보도록 하지."


아이들은 별다른 표정 없이 모두들 흩어져 숙소로 돌아갔다.

태사형은 마음이 진정되지 않아 진경과 예영을 만나던 바위 앞으로 갔다.

그러고는 힘없이 바위에 기대어 앉았다.


하늘...

고향인 진양과는 다른 색의 하늘이 위로 보였다.

그것만을 제외한다면 진향과 크게 다른 것은 없었다.


태사형이 은신형을 꺼내들었다.

그것은 여전히 귀여운 얼굴을 한 채 잠들어 있었다.

이곳에 온 첫날 사뢰고에서 나온 이후 은신형은 마치 봉인이라도 된 듯 잠들어 있었다.


'지금이야말로 은신형이 필요한 때인데 이놈은 잠이 든 채 일어날 줄 모르는구나.'


하지만 이곳에서 은신형과 이야기를 나누게 된다면 신양의 제자들에게 감지될 위험이 높은 것도 사실이었다.

아마도 그러한 이유로 은신형은 스스로를 드러내지 않는 것인지도 몰랐다.


태사형이 시선을 은신형에서 저 멀리 보이는 산봉우리로 옮겼다.

길게 한숨을 내쉬는 그의 얼굴 사이로 하얀 바람이 불어왔다.

흩날리는 머리카락.

나뭇잎이 흔들리는 소리.


출렁이던 마음도 어느새 거짓말처럼 잔잔한 바다와 같이 고요해졌다.

태사형은 눈을 감았다.


'어머니...아버지.'


지금이라도 눈을 뜨면 앞에서 당장이라도 자신을 부를 것만 같았다.

내일 과연 무슨 일이 벌어질 것인지 태사형 그 자신도 알 수가 없었다.

그러나 지금은 그저 이렇게 간만에 찾아온 마음의 고요를 즐기고 싶을 뿐이었다.


그리고...얼마지나지 않아...

그는 잠에 빠져들었다.

손에 들고 있던 은신형은 툭하는 소리와 함께 그의 앞으로 떨어져내렸다.


[...정신을 차리세요.]


비몽사몽 들려오는 목소리에 태사형이 눈을 떴다.

그곳은 계곡 아래의 호수 앞이었다.


"아니...이곳은?"


[다시 만나게 되었군요.]


영명검이었다.

태사형은 그렇지않아도 그녀에게 묻고 싶은 것들이 많았었다.

하지만 한낱 꿈이라 여길 수 밖에 없었는데 오늘 다시 만나게 된 것이다.


"이것도 꿈인가요?"


[꿈과 비슷하지만 꿈은 아니예요.]


"꿈이 아니라니요? 그렇다면 현실이란 말이예요?"


[그래요. 제가 가진 특별한 능력중의 하나를 사용하였죠. 그렇지 않고서는 신양과 진양, 그 두 요괴들을 속일 순 없을테니까요. 다행히 당신이 그 요사스러운 인형을 떨어뜨렸기에 이곳으로 불러올 수 있었어요.]


태사형은 그제야 잠들기 직전 스쳐간 하얀바람이 영명검과 관련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당신은 사람인가요? 아니면 요괴인가요? 그것도 아니라면 신양과 진양같은 수도사인건가요?"


태사형의 물음에 영명검이 미소를 지었다.

그 모습이 너무나 아름다워 태사형은 자신도 모르게 감탄사를 내뱉을 뻔 하였다.


[전 이름과 같이 검이예요.]


태사형이 크게 놀랐다.

이름은 물론 지난번 그녀의 모습이 검으로 화하는 것을 보았으나 실제로 영명검의 본신이 검일 것이라고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여인의 모습을 지닌 말하는 검이라니...


[아주 오래전 이곳을 발견한 태상천(太上天)이라는 수사께서는 바로 이 계곡에 은거지를 만드셨답니다. 그러고는 수만년에 걸쳐 그분을 모셔왔던 저를 여기에 봉인하셨죠.]


"도대체 왜 당신을 봉인했단 말입니까?"


[그것은 그분이 영원한 삶에 대해 환멸을 느끼셨기 때문이예요. 이곳에 은거지를 만든 것도 몸속의 모든 영력을 흩어버리고 인간으로서의 죽음을 원하셨기 때문이지요.]


태사형은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 분은 힘이 약하셨습니까? 그것도 아니라면 말못할 괴로움을 가지고 계셨던 것입니까?"


영명검이 고개를 저었다.


[아뇨. 세상이 생긴이래 태상천을 능가했던 수사는 단 한명도 없었어요. 천존만이 그에 비견될 수 있을테지만 그분은 우리가 알고 있는 사람의 형상을 지닌 인격체가 아니예요. 그러나 괴로움은 있으셨죠.]


"그런 강력한 힘을 가진 분이 어째서...다시 인간으로 돌아가길 원하셨던것이죠?"


[태상천이 마음 속에 품고 있던 괴로움이 바로 그것이었지요. 무료함. 더이상 진보할 수 없는 극의에 달한 존재가 느끼게 되는 허무함.]


태사형이 고개를 저었다.


"글쎄요...저는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는군요."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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