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빙의자 관리 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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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해상어
작품등록일 :
2023.06.11 05:40
최근연재일 :
2023.10.22 08: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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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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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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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10.22 08: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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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첫번째 망자

DUMMY

“사인은요?”

“예?”


목소리에 뒤를 돌아보니, 정장을 입은 멋드러진 남자가 이쪽을 애틋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사인은요?”

“무슨 소립니까?”

“당신 죽었잖아요.”


난데없이 누군가 ‘너 죽었잖아’라고 물었다.

신종 몰카일까? 아니면 도를 믿습니까의 새로운 포교 방법일까?


남자는 나의 몸을 이리저리 살피더니 심지어 머리나 복부까지 쓰다듬었다. 소름끼치는 느낌에 손을 뿌리쳤다.


“뭡니까 당신! 조용히 좀 가자구요!”

“어딜 갑니까?”

“어디긴 어디······ 어?”


그제서야 나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양쪽은 벽도 바닥도 없는 낭떠러지 그 자체인 암흑이었고, 나 자신은 에스컬레이터에 타 있었다. 앞에도 사람, 그 앞에도 사람, 그 앞에도 다양한 사람들이 동태눈을 한채 멍하니 나아가고 있었다.


“이······이게 도대체······.”


파지직!


머릿속을 관통하는듯한 번개소리가 울리면서, 마치 주마등이 지나가듯 자신의 모습이 어렴풋이 스쳐갔다.


태어나는 자신.

성장하는 자신.

졸업하는 자신.


죽어가는 자신.


“······저는, 죽은 겁니까?”


남자가 다시 물었다.


“사인은요?”

“타살입니다······ 머리에 둔기를 맞고 죽었어요.”

“흠. 가해자의 살인 동기는 기억나나요?”

“잘 모르겠어요. 술에 취한 사람을 어딘가로 데려가려고 했는데 눈앞에 무언가 날아오더니······.”


남자가 안타까운듯 침음했다.


“가해자는 심신미약이군요. 감옥에 오래 있긴 힘들겠네요.”

“아무래도 그렇겠죠······.”

“분하진 않으십니까?”


그 물음에, 고민에 빠졌다.

나를 죽인 그 사람을 증오하는가, 그 사람에게 복수를 하고 싶은가 하고 생각했더니, 아니었다. 그저 그 사람이 술에 깬 뒤 놀라지 않기를 바랬다.


나는 고개를 흔들었다.


“아니요. 이미 죽었는데 어쩌겠습니까.”

“성인이시네요.”

“과찬입니다. 살면서 기부도 한적 없는걸요.”


그리고 잠깐의 침묵이 흘렀다.

에스컬레이터는 천천히 위로 향했고,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아 답답함을 느낄 무렵 남자가 다시 물었다.


“생각보다도 더 놀라지 않으시네요. 이 공간이, 그리고 죽었다는게 두렵거나 하지는 않으십니까?”

“음, 네. 이상하게 편안하네요. 그리고 인터넷에서 이런 천국의 계단 그림을 몇번 봤거든요. 그런갑다 하고 있었죠.”

“에스컬레이터의 끝이 지옥일수도 있잖아요?”

“그런가요?”


그 말에 나는 작게 웃음이 나왔다.

그의 말이 사실이라면 그 또한 지옥을 가고있는게 아닌가.


“그럼 저희는 지옥 동지네요.”

“지옥 동지······”


남자는 정말 의외의 답변을 들은 듯 눈을 크게 떳다.


“재미있는 분이시네요. 박우찬 씨.”

“제 이름을······ 역시. 평범한 분이 아니셨군요?”


그때, 뒤에서 눈부신 광채가 빗발쳤다. 눈앞을 가늠하지 못할 정도의 빛이 쏟아지자, 박우찬은 미간을 찡그리며 뒤를 돌았다.


그곳엔 날개가 달린 커다란 문.

광채는 그 문에서 쏟아지고 있었다.


어느샌가 앞에 선 남자가 말했다.


“우찬씨는 믿는 종교가 있으신가요?”


에스컬레이터는 멈췄다. 마치 구름처럼 보이는 땅을 살포시 밟으며 문을 향해 나아가자 눈부신 광채는 따스한 햇빛으로 바뀌었다.


“아뇨, 믿는 종교는 없습니다. 그럴 시간도 없었죠.”

“신화는 잘 아십니까?”

“조금은요.”


광채가 햇빛으로 바뀌어도 빛은 빛, 눈이 적응하기엔 꽤나 시간이 걸렸다. 어른어른하게 보이는 남자의 등을 따라가던 박우찬은, 서서히 보이는 광경에 토끼눈을 떴다.


끝없이 맑은 하늘, 끝없어 보이는 구름대지. 그리고 저멀리 지나가는 거인들과 하늘을 날아다니는 천사들까지. 수많은 사람들이 그 길을 좀비처럼 걸어갔지만, 박우찬의 눈에는 그들이 들어오지 않았다.


“이것도 인연인데, 제가 이곳 소개를 좀 해드리겠습니다.”


입이 너무 벌어져 대답을 할 수가 없었지만 남자는 그것또한 대답이라는 듯 천천히 발걸음을 옮겼다. 박우찬은 힘겹게 발걸음을 옮기며 물었다.


“당신은, 신의 사도이십니까?”

“사도요? 음, 그건 아니고.”

“그럼 저는 당신을 뭐라고 불러야 합니까? 천사?”

“본부장이라고 부르세요. 다들 그렇게 부르니까.”





본부장은 뒤따라오는 박우찬의 기척을 느끼며 천천히 나아갔다. 분명 이 광경이 얼떨떨하게 느껴질텐데도 빠른걸음으로 걷는 자신을 용케 따라오고 있다.


거대한 구름다리를 반 이상 건넜을 무렵 나즈막히 말했다.


“우찬씨는 뭘 좋아하세요?”

“저요?”


묵묵히 걷자, 박우찬이 말을 이었다.


“음. 갑자기 물어보시니 애매하네요. 웹툰? 소설? 그런 창작물들 자주 보긴 했어요.”

“영화도 좋아하시겠네요.”

“그건 돈이 많이 들어서···.”

“아.”


순간 말문이 막혔지만 다시 정해둔 질문을 이었다.


“여자는요?”

“남중남고였습니다. 졸업하자마자 군대로 갔고, 전역한 이후엔······ 예, 뭐. 여기 있네요. 하하.”

“싫어하시진 않는거죠?”

“예 뭐······ 근데 그건 왜 물으십니까?”


박우찬이 뻘쭘한 표정으로 본부장의 옆에 다가서자 본부장이 손가락으로 한 광장을 가리켰다. 기다란 구름다리 끝, 신들이 거주할 것 같은 장엄한 광장이 시야에 펼쳐졌다.


“제가 가리킨 곳 저 여자가 보이십니까?”

“보입니다. 근데 저 여성분은 왜 단상위에서 앉아계신거죠?”


본부장이 어깨를 으쓱하며 장난스런 표정을 지었다.


“저거 아프로디테에요.”

“예?!”


놀란 박우찬이 눈을 비비며 여자를, 아니 아프로디테를 다시 보았다. 손가락만 흔들어도 세상 모든 남자를 유혹할듯한 여자가, 고혹적인 자세로 단상 위에 앉아 있었다.


지루하다는 표정을 일관하고 있었지만 그 모습조차도 아름다웠다.


“저, 정말 아프로디테입니까?”

“네. 그 옆에서 입이 삐쭉 튀어나온 여자가 달의 여신 아르테미스, 그 뒤에 꼰대처럼 서있는게 지혜의 여신 아테나.”

“어, 어어······ 그럼 저분들은 저기서 무엇을······.”


쯧!


본부장의 표정이 일순 찡그러져지더니, 눈을 깜짝하니 다시 돌아왔다. 잘못 본건가 눈을 비볐지만 혀를 차는 소리가 너무나도 명확해 현실로 다가왔다.


“저거 다 홍보입니다. 미인계에요 미인계.”

“그런가요?”

“다단계 알죠? 꼬드겨서 물건 팔아먹는 놈들. 그게 딱 저거라니까. 저거 다 망자 꼬드겨서 지들 이익 챙기는거에요.”

“그런걸 신이 왜······?”

“지들도 살아야 하니까. 요즘엔 인기없는 신들은 죽거든요. 인간이 의식주가 필수라면, 신은 얼마나 유명하냐가 필수에요.”

“잘 이해가 안됩니다.”


본부장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더니 아프로디테 앞에 선 남자들을 가리켰다. 개중에는 여자도 심심치않게 섞여있었다.


“지금 이해할거란 생각은 안합니다. 다만 저 사람들처럼 얼굴만 보고 따라갔다가 고생하지 말란 소리죠. 신은 자신의 설화에 절대적이니까.”

“그, 그렇군요······.”

“에휴, 머리가 아래에 달린 놈들이란······.”


그때, 한 해골이 그들의 앞을 가로막았다.


[멈춰라.]

“느, 으아아악!”


뼛속을 꿰뚫는 듯한 서늘한 목소리에 박우찬의 몸이 반사적으로 고꾸라졌다. 이미 죽은 영혼에 뼈가 어디있겠냐만은 박우찬은 분명히 그런 감각을 느꼈다.


그런 우찬을 약간 한심하게 바라본 본부장이 그를 일별했다.


“그림 리퍼씨! 오랜만입니다. 반가워요.”

“서, 서양의 사신 아닙니까?!”


그러나 그의 호쾌한 인사는 가볍게 무시되었다.


[본부장. 네놈은 구름다리를 지나는게 허락되지 않았을 텐데.]


따각따각 거리는 뼈소리가 소름끼쳤지만, 본부장은 여전히 호쾌하게 웃으며 리퍼의 손을 잡았다. 동시에 짤랑거리는 소리가 귓가를 스쳤다.


[무슨 의미지?]

“아이고, 저희가 남입니까? 저도 막 휴가 끝나서 돌아오는건데 유람선 한번 타봐야죠! 안그렇습니까?”


그와 동시에 무서운 속도로 본부장이 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뺐다. 짤랑거리는 소리가 더욱 다채로워짐이 느껴지니 그제서야 잡은 해골손을 놓아주었다.


[흠.]


짤랑 짤랑.


[하긴. 네놈이 날고긴들 태생은 인간이니.]

“암요 암요.”

[그래도 다음부턴 네놈에게 할당된 통로로 이동하도록. 아, 사고치지도 마라. 또 사고치면 강제귀환조치할 테니.]

“걱정 붙들어 매십시오! 제가 누굽니까!”

[네놈이니까 그런거다!]


그 말을 끝으로 리퍼는 달그락거리는 웃음을 지으며 떠나갔다. 본부장이 우찬을 일으켜세워주며 중얼거렸다.


“빌어먹을 해골놈. 스무개나 털어갔어.”

“동전 같던데, 중요한 겁니까?”

“아, 음.”


본부장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별거 아닙니다. 아직은 신경쓸거 없어요.”

“아직은?”

“뭐 알게 될수도 있고 아닐수도 있고······ 아무튼! 중요한건 구름 광장을 돌아다닐 권리를 얻었다는 거죠. 계속 소개해 드릴까요?”


어째 뭔가 찝찝했지만, 우찬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본부장이 실룩 웃으며 광장을 빙 두르듯 가리켰다.


“맨 우측에 소랑 같이 가부좌를 틀고 앉아 있는 신들이 인도 신화, 그 다음 자리싸움 하고 있는 신들이 이집트와 수메르 신화, 조금 성격 드세보이는 남정네들이 북유럽 신화 그리고 저놈들은 일본 신화······ 에잇, 재수없는 놈들.”

“예?”

“에잇! 저런 고리타분한 꼰대들을 굳이 봐야겠습니까? 천계 최고의 유람선이나 구경하러 가시죠!”

“아니, 방금 소개해주신다고······.”


파앙!


“어억!”


본부장은 우찬의 등을 세게 치며 걸음을 옮겼다. 마치 등이 아니라 공간을 치는듯한 감각이 우찬의 뒤를 울리자, 주변의 신들의 시선이 느껴졌다.


“흠. 본부장인가.”

“또 이쪽으로 왔군. 하여간 이상한 녀석이야.”

“여전히 시건방져. 어떻게 인간이 신과 동등한 취급을 받는건지.”


한차례 질투와 경멸 섞인 소리가 지나가고


“동등한 취급을 받을만 하지. 자네도 본부장한테 몇번 도움을 받지 않았나? 그땐 대가도 받지 않았을텐데.”

“이제는 받지 않나. 그것이······”

“좀 닥치게. 사고가 터지면 수습할 수 있는 이는 저 인간밖에 없거늘, 그리 경거망동하면 쓰나?”

“에흠······ 그냥 하는 소리야. 그냥.”


옹호하는 대화도 들려왔지만, 본부장은 아무 반응도 하지 않았다. 우찬은 새삼 앞에 선 본부장이라는 남자가 대단하게 보였다.


“저자가 머무는 곳이 한국 신화인가?”

“그렇다고 들었네. 그 기독교에서 불렀을 때도 가지 않았다더군.”

“······기독교를 무시했다고? 천사들은 가만히 있던가?”

“뭘 어쩔수 있겠나.”


게다가 기독교도 제치고 한국 신화쪽에 머무른다니. 뭔 소린지는 모르겠지만 그를 뒤따르는 자신이 자랑스럽게까지 느껴졌다.

그리고 적대적인 목소리가 들렸다.


“저놈이 감히 일본 신화의 주신, 아마테라스 사장님의 부름에 응하지 않았다지. 건방짐이 하늘을 찌르는구나!”

“잠깐, 목소리가 너무 큽니다. 아버지. 몸도 성치 않으신데.”

“젠장. 신의 위상이 바닥에 떨어졌군.”


대놓고 적대적인 목소리에 고개를 돌리려던 찰나, 본부장이 박우찬을 저지했다.


“신경쓰지 마세요. 우린 갈길만 가면 됩니다.”

“분하시지 않으십니까? 대놓고 저러는데─”


그 말에 본부장이 피식 웃었다.

저 드높은 신들이 너무나도 가소롭다는 웃음같았다.


“걱정하지 마세요. 저랑 붙으면 저쪽이 손해니까. 지금은 그림 리퍼 말대로 사고치지 말고 지나가죠.”


이쯤되니 궁금해졌다.


본부장이라는 이 존재가 무슨 일을 하는지.

어째서 본부장이라고 불리며, 신들은 왜 사장같은 직책이 주어졌는지. 당신은 왜 나의 저승길을 인도해주는지.


박우찬은


아니, ‘나’는 본부장에게 물었다.


“본부장님은······ 도대체 무슨 일을 하시는 겁니까?”


그의 뒤에는 거대하고 호화로운 유람선이 출항준비를 마치고 있었다. 그는 어느새 나의 앞에 선채 답했다.


“세계에 빙의한 망자를 관리하는 일을 합니다.”

“소설에 나오는 빙의자들 말입니까?”


유람선의 기적 소리가 귓가를 크게 울렸다.

그는 그 소리에 잠시 말을 멈추었다가, 말을 이었다.



“그리고 그런 일을 하는 천계의 기관이”



“빙의자 관리 위원회입니다.”


작가의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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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첫번째 망자 23.10.22 22 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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