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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주21호 님의 서재입니다.

죽은 병사는 망령이 되어 돌아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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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주21호
작품등록일 :
2023.07.26 18:27
최근연재일 :
2023.07.28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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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7.28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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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쪽

망령이 돌아오는 장소 (3)

DUMMY

2278년 12월 8일.

지구 국제 협정 세계 시각 (UTC) 2330.


현황 보고:


몬트리히스 베이스로부터 제 72 기갑 여단 예하의 인원을 급조하여 편성한 제 7, 제 8 기갑 대대가 출격.


달 위성 궤도 근방, 제 1 궤도 방어라인의 데브리 밀집 구역 부근.


포인트 1170에서 적 부대, '크나시티아' 60기 2개 대대와 조우.

교전 개시.




***





철갑을 두른 인형들이 우주를 가로지른다.


다리와 등에 장비한 스러스터에서 창백한 푸른빛의 불길을 흩뿌리고, 11미터라는 기체 전고를 넘어서는 거대한 155mm 구경의 전자 추진식 펄스 라이플의 포구에서 격발의 섬광을 뿜어내면서.


[적 중장갑기 편대가 몰려온다! 돌파당할 때까지 15초야! 빨리 쏴버려!]


[우측 방어선 소모율이 50퍼센트를 넘었습니다! 더는 못 버팁니다!!]


지구 국제 연합 유지 방위군의 최전선.

달 공전 궤도 근방 데브리 밀집 구역의 제1 방어선. 포인트 11-70.


란드가르드 56기로 이루어진 몬트리히트 베이스 소속, 제72 기갑 여단 예하의 제7, 제8 기갑 대대의 대원들은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었다.


적들의 야간 기습이다.


대규모 전투를 치룬지 얼마 되지 않은 어수선한 상태에서의 긴급 출격에 대한 대응은 크게 지체될 수 밖에 없었다.


하필이면 기지에 보급까지 받지 못한 상황.

적 부대를 맞받아칠 머릿수가 부족하다.


결국 출격과 동시에 선택한 전술은 각개 전투였다.

우군과 적군이 수십 마리의 뱀처럼 얽혀 서로의 꼬리를 무는 난전으로 몰고 가, 적들의 침공을 늦추는 것이 최선이었다.


그것이 짧은 시간 끌기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말이다.


[...온다! 2시 방향! 중장갑기를 선두로 ‘크나시티아’ 10기가 급속 접근 중! 빌어먹을 악마 새끼들이 온다아아⸺!]


새하얀 잔상이 우주를 가로지른다.

시야를 가득 메운 우주의 암초들 사이로 청백색의 파도처럼 밀려오는 적기, ‘크나시티아’들이.


크나시티아.

그 명칭은 네레키아 제국의 고대 신화에 등장하는, 인류로 따지자면 천사 같은 존재의 이름에서 따왔다고 한다.


놈들은 티타늄 합금의 수십 배에 달하는 밀도와 강성을 자랑하는 ‘카파르늄’ 으로 제조된 장갑을 전신에 두른 괴물이다.


마치 사마귀처럼 얇고 긴 팔다리의 장갑은 하얗게 빛나고, 눈코입이 없는 강철의 얼굴에 박혀있는 새파란 외눈의 광학 카메라가 일말의 감정도 없이 적을 색적한다.


놈들이 장비한 것은 120mm 플라즈마 반응 라이플과, 그 서브 무장인 고열 기관포, 그리고 악마의 날개처럼 생긴 검날을 가진 플라즈마 블레이드다.

등 부분에 돋아나있는 꼬리에선 칼날 같은 발톱 두쌍이 철컥이며 적을 잡아뜯는다.


도저히 천사라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저건 새하얀 갑옷을 두른 악마들이다.


놈들은 대개 파일럿이 탑승하지 않는 무인 드론이다.


예외로는 사령기뿐.

제국 측이 가진 전자전 무기인 전자기장 서프레서가 작동 중인 전장에서, 크나시티아들은 수월한 전투 수행을 위해 소수의 유인식 사령기로부터 명령을 받아 움직인다.


사령기는 대개 전선의 최후방에서 안전하게 지시를 내린다.

현재 이 전투 구역을 침공해 오고 있는 크나시티아들은 명령을 하달받아 움직이는 드론일 뿐이다.


기체가 찢기고, 터져나가더라도 드론인 이상 죽는 이는 없다.

그렇기에 강력한 전자기장을 광대하게 흩뿌려 지구 측을 강제적인 유시계 전투로 끌어들인다.


결국 일방적으로 죽음을 감내해야 하는 것은, 이 전자기장의 재밍 아래에서 무인 드론 병기를 배치할 정도의 기술력을 가지지 못한 지구 측뿐이다.


[3시 방향! 적 편대가 소행성 무리 사이로 우회 접근한다! 브라보 소대, 접촉까지 20초!]

[빨리 따라붙어! 쏴, 쏴, 쏴! 비집고 들어올 생각도 못하게 계속 쏴갈겨⎯!]


온갖 장애물들이 굴러다니는 데브리 밀집 구역.

수십기의 철갑 병기들이 뒤섞여 전투 기동을 벌이는 우주의 난전이다.


서로가 쏘아내는 유도 비상체와 포탄의 붉고 푸른 궤적이 수없이 교차하고, 폭발이 자아내는 검붉은 업화가 연이어 흩어진다.


치지지직.

온갖 잡음과 소음들이 콜사인 ‘알파 2’의 통신기와 연결된 귀의 이어폰을 훑었다.


우주에서도 느껴지는 강렬한 폭발과 진동, 귓가를 지지는 무전기의 잡음까지.


고막을 긁어대는 그 소음들에도 어느새 익숙해진 걸까.

전장의 굉음에 적응된 귀는 쓸데없는 소음을 솎아내고 당장 전투에 필요한 정보만을 뇌로 전달했다.


“헉, 허억, 허억....”


‘란드가르드’의 비좁고 어두운 콕핏 속.


가쁜 숨을 내뱉으며, 알파 2의 파일럿은 사나운 눈동자로 전장을 비추는 주위의 스크린을 노려보았다.


전술 지도에 표시되는 주변 일대는 붉고 푸른 광점들이 가득 섞여있다.


레이더 경보가 끝도 없이 울리고, HUD의 타겟 마커가 적기라고 표시하는 기영을 본능적으로 사격 관제계의 조준 사이트에 붙잡은 채 방아쇠를 당긴다.


조준, 포격. 조준, 포격.

어떤 기체는 운 좋게 공격을 피해내고, 어떤 기체는 직격당해 폭발하여 우주의 재가 되어 침몰한다.


이제 아군이 떨어진 건지, 적기가 떨어진 건지조차 헷갈린다.


이런 난전 속에서는 이동을 멈추는 순간이 곧 사망선고다.


서로의 사각을 커버해줄 동료기가 있다면 조금이나마 편하겠지만, 자신과 합을 맞춰줄 동료기는 이제 없다.


자신과 함께 편대를 짰던 알파 3는 개전과 동시에 쏟아진 제압 포격에 날아간 지 오래니까.


...그렇게 멀리서 날아온 눈먼탄을 보통 직격으로 쳐맞냐...?


오늘 죽을 거라곤 꿈에도 몰랐을 어젯밤의 블랙잭 게임에서도 그렇고, 마지막까지 운이 더럽게 없는 새끼였다.


이제는 벌집이 된 채 떠다니는 고철 덩이만이 알파 3가 이 전장에 존재했었다는 유일한 증거다.


두방망이질 치는 심장은 진정될 줄을 몰랐다.

기밀 슈트를 입은 등은 차가운 식은땀으로 축축했다.


공포.

지금 마음속에 떠오르는 감정이 뭐냐고 묻는다면, 공포라고 자신있게 대답할 수 있다.


그래, 무서웠다.


우군기들을 가차 없이 격추시키며 진격해오는 ‘크나시티아’들.


그놈들이 이토록 무섭게 보였던 적은 처음으로 전투에 나가 본 이후로 처음이었다.


꽤나 오랫동안 전장에 발을 내딛어 보았다.

그때마다 죽음이 다가오는 감각을 체험하면서도, 어찌저찌 살아남았다.


하지만 오늘의 전투는 여태까지와는 너무나 다르다.


[염병할...!]


전자기장이 만들어내는 통신기의 잡음 사이로 누군가가 욕을 내뱉었다.


[저 새끼들이 여기까지 어떻게 쳐들어온 거야?! 초계 돌던 놈들은 다 어디 갔어?! 같이 싸우고 있었잖아!]


[증원은 대체 왜 안 오냐고! 증원 요청 보낸 지가 언젠데!]


[포격 지원 언제 와?! 화력이 부족하다고!]


절망적인 게릴라 전술로 시간을 벌고 있을 뿐인 제 7, 8 대대는 번번이 방어 구역을 포기하고 있다.


그저 주위의 데브리라는 엄폐물들을 이용해 격추의 순간을 미루며 후퇴를 반복하는 수밖에 없었다.


제 1 방어선 근방에서 전투가 시작되고 30분이 넘게 지난 지금, 아직도 오지 않는 증원이 한탄스러울 뿐이다.


한층 끔찍한 비명 소리가 통신을 내달린 건 그 다음 순간이었다.


[...제압 포격기다아아⎯⎯!! 전기 숨어어어!]


“⎯⎯?!”


반짝, 하고 무언가가 빛났다.

계기판에 경고 표시가 떠오름과 동시에, 알파 2는 반사적으로 기체를 좌측으로 선회시켰다.


그저 감각에 따른 조작에 따라 기체가 급격한 각도로 선회 기동.

동시에 밀려오는 가속도가 온몸을 짓누르고, 폐가 억눌리는 듯한 느낌에 이를 악물었다.


바짝 찡그린 눈 사이로, 측면 스크린 화면을 가르며 작렬하는 수백갈래의 푸른 궤적이 보였다.


마치 하늘에 구멍이 뚫린 듯 퍼붓는 장댓비처럼, 총탄의 비가 우주를 가르며 쇄도한다.


제국의 제압 포격형 기체, ‘벨크라티아’다.


인간형에서 벗어난, 바닷가재 같은 둥그스름한 갑각류 같은 기영을 가진 전장 28미터의 거체.


40mm 선회식 3연장 개틀링 기관포탑과, 280mm 전자추진포를 각각 기체 상단과 하단에 2정씩 장비한 기동 포탑에 가까운 기체다.


기관포탑 2문이 분당 6000발이라는 연사속도로 흩뿌리는 것은 초속 4000미터에 달하는 탄속의 고열 철갑탄.

전자추진포에는 근접 신관으로 주변 일대를 날려버리는 플라즈마 유탄을 각각 장전하고 있다.


그 모든 포탑이 타겟을 찾아 일제히 선회했다.


유감스럽게도, 제압 사격의 희생자는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 발생했다.


좌측에 밀집한 소행성 군을 따라 비행하던 델타 소대의 3기.

이제 막 적 부대와의 근접 전투에 들어가 있던 차에 인식이 늦었다.


운 나쁘게도, 기관포탑들의 농밀한 화망이 그쪽을 향해 쏟아졌다.


[델타 전기, 브레이크! 브레이크 해! 빨리 피하라고!]


누군가의 외침이 무색하게 무전을 가로지른다.


직후 조준파를 감지한 델타 소대가 황급히 산개하려 하지만, 전자추진식으로 투척되는 총탄보다 빠를 순 없다.


쏟아지는 철갑탄의 빗줄기가 적 아군 상관없이 주위를 통째로 집어삼킨다.


휩쓸린 기체들이 믹서에라도 들어간 듯 갈려나가고, 차례로 폭사한 것은 다음 일이었다.


델타 2, 3, 4 다운. 로스트.

삐빅. 스크린의 전술 지도에서 아군기를 나타내는 초록빛 광점 3개가 조용히 소멸했다.


차가운 회색으로 변한 그 광점이이야말로 지극히 간결하고도 정확한, 격추를 알리는 사인이다.


이걸로 남은 우군기의 숫자는 31. 과반수에 근접했다.


“어...?”


155mm 광자 유탄에 관통당한 적기가 침몰하는 것을, 알파2는 초점이 반쯤 풀린 눈으로 확인한다.


...델타 소대가 전멸했어?


바싹 말라붙은 입으로 거친 호흡 소리가 새어나와 기밀 헬멧 속을 돌아다녔다.


다급히 폐로 밀어넣는 산소에선 기분 나쁜 쓴 내가 난다.

피에 절은 전장의 광기가 이젠 탱크의 산소마저 물들인 걸지도 모르겠다.


[양쪽에서 온다아⎯!! 11시, 2시 방향!]


[전기 이탈! 포위당하지 마! 여기서 더 당해줬다간 방어선이 무너진다!]


[씨이바알...!]


그에 비해 적들은 지금이야말로 이쪽을 확실히 밀어붙힐 수 있는 타이밍이라고 확신한 모양이다.


둑이 터진 댐처럼 밀려오는 적기들.

이에 지구군 측은 또 한 차례의 후퇴를 감행했다.


검회색 빛의 철갑 인형들이 모두 요격 전투 태세에서 이탈한다.

스러스터의 불길을 어지럽게 흩날리며, 굶주린 포식자들을 피해 필사적으로 헤엄치는 물고기 떼처럼 사방에 분포한 데브리들 사이를 향해 뛰어들었다.


그 사이에도 후퇴가 늦은 우군기 4기가 유탄에 맞고 우주의 재가 되었다.


날아온 포격이 철갑 인형들을 차례차례 박살내고, 사격이 느슨해진 틈을 타 접근해 온 제압 포격기가 농밀한 제압 포격을 퍼붓는다.


녹색 광점들이 무정하게 사라진다.

동료기의 격추를 알리는 고함에 가까운 보고와 날카로운 욕설들이 통신기의 전파를 타고 울려퍼진다.


전투의 방향은 일방적으로 기울고 있었다.

레이더가 실시간으로 집개하는 아군과 적군의 전력 소모 차이는 약 3배 가량.


방어선은 이미 무너지고 있고, 그 벌어진 틈새를 통해 적기들이 밀어닥치며 방어선을 통과, 정면과 양쪽에서 요격 부대를 옥죄어 온다.


증원 요청을 발신한지가 언젠지도 모르겠다.

그런데도 여전히, 증원군이 올 기미는 보이지 않는다.


[우리 쪽수가 너무 적습니다! 이대로 더 버텼다간 전멸입니다!]


[통신은?! 기지와 통신은 연결됐어?]


[아직 안 됩니다! 주변 일대의 통신 중계용 캐스터 버그가 싸그리 격추당했어요! 전자기장의 재밍이 너무 강해서 버그 없인 연결이 안 됩니다!]


그 사이에도, 라이플을 잃고 펄스 나이프를 뽑아들어 돌격을 감행하던 란드가르드 하나가 포격 한 번에 맥 없이 폭발했다.


[...이제 우린 어떡합니까? 마지막 명령은 어떻게 해서든 전선을 사수하는 것이었잖습니까.]


방어선을 지키기는 커녕, 전멸은 시간문제다.

남은 전력은 절반이 채 안 되고, 보유 중인 탄약도 바닥을 드러내고 있다.

의미없는 게릴라 전술로 시간을 끌 수 있는 것도 얼마 남지 않았다.


[⎯⎯전선을 유지하기에는 숫자가 너무 부족합니다! 기지에서 증원은 없습니까?!]


그런 마음을 대변하듯, 젊은 신병인 듯한 병사의 비명에 가까운 외침이 무전을 갈랐다.


[...지난번 방어전 이후로 기지에 남은 전력은 이걸로 전부다. 전함은 물론이고 원군 따위 제시간에 못 와. 괜한 기대하지 마라.]


[무슨 그딴...! 이 상태로 적 2개 대대와 끝까지 싸운다는 겁니까?! 우린 자살 희망자가 아닙니다!]


세상이 끝나가는 듯한 곡소리에 돌아오는 답변은 없었다.


정말, 그 말대로다.


”...이건 가망이 없는 것 같은데.“


오히려 피식 웃음이 터져나왔다.


이미 전투의 결말이 뻔히 보인다지만, 꽁무니를 빼며 도망칠 수도 없다.


이 3중으로 구성된 방어선의 최후방, 달 공전 궤도에 있는 몬트리히트 베이스는 지구의 최전선이자 방패다.


그 방패막이로써 이 가망 없는 전투에 나섰다.

오늘, 여기서 시간을 벌기 위해 죽는다는 소리다.


궤도 방어군의 사령부는 선행 출격한 제 7, 8 대대가 시간을 벌 동안, 달 궤도에 위치한 다른 기지들이 요격 태세를 갖추는 데에는 충분하다는 계산을 하고 있을 것이다.


정말 운이 다한 걸지도 모르겠다.


이 지랄맞은 상황에 공허한 웃음을 터뜨리려던 그 순간, 레이더 경고가 울렸다.


[⎯⎯알파 2! 아래 봐, 아래!]


“...?!”


삐빅. 무정하게 울리는 접근 센서의 경보.

동시에 레이더에 떠오르는 적성 유닛의 접근 경고 표시.


하부 7시 방향. 적기 접근.


“...미친!”


주변에 농밀하게 분포한 암초들 때문인지, 접근 경보가 늦었다.


그 암초의 구름들 사이에서 튀어나온 적기가 후방을 잡는다.


적기와의 거리는 우주 전투의 관점에선 코앞에 있는 것과 다를 바 없는 700미터.


사냥감을 찾았다는 듯, 놈이 새파란 외눈의 광학 렌즈를 반짝이며 사격 관제계에 알파 2를 담았다.


록온 센서가 경고의 비명을 지른다.

사선에서 피하기엔 이미 늦어도 너무 늦었다.


그러면 차라리.


“흐읍⎯⎯!”


스로틀을 닫으며 역분사, 기체에 급브레이킹을 걸었다.


몸을 잡아뜯는 듯한 관성을 파일럿 시트에 몸을 단단히 고정시킨 채 견뎠다.


적기의 라이플이 격동했다

붉은 섬광이 일어났다.


그때 알파 2는 백팩에서 채프 플레어를 흩뿌리며 상부 스러스터를 분사.

그대로 추진에 떠밀려 급상승하고, 유탄이 빗나가기를 기도한다.


섬광.

접촉 신관을 교란시키는 채프 플레어와 유탄이 허공에서 충돌한다.


활성화된 유탄의 신관이 작동했다.

폭발, 그리고 화염.

폭발의 힘에 떠밀려 온 파편들이 알파 2의 장갑을 스치고 지나갔다.


그 폭발이 연막이 되어 서로의 시야를 가렸을 때, 알파 2는 조종간을 당겨 기체를 뒤집어 기수를 반전시켰다.

빙글, 돌아가는 시야와 함께 사격 관제계의 조준 사이트가 접근해오던 적기에게로 향한다.


타겟 확인. 록온.


“뒈져!”


조종간의 방아쇠를 당기는 것에 맞춰 155mm 전자추진식 라이플이 포효했다.


착탄까지는 찰나.

유탄이 한껏 머금은 고열과 작약이 터져나오고, 그 가공할 압력의 폭풍이 적기의 측면 옆구리 장갑을 깊숙하게 관통한다.


기계 장치의 내장을 헤집어놓고, 이어서 터져나온 유폭의 연기가 적기의 시야를 먹어치웠다.


그 사이에도 라이플의 연사는 멈추지 않는다.


한발, 두발, 세발.

흉갑을 뚫고 들어간 철갑탄의 탄두가 내부를 관통하고, 등을 찢고 튀어나온다.


유폭은 없다.

아까 전의 사격으로 고폭유탄의 잔탄 수가 바닥을 드러내고, 탄창에 남은 탄종인 철갑탄으로 자동 장전된 것이 다행이었다.


여섯 번째로 방아쇠를 당겼을 때야 사격이 멎었다.

중추계가 위치한 흉부에 거대한 천공이 뚫린 적기가 오작동을 일으켜 짧게 경련하고, 침묵했다.


“허억, 허억....”


두방망이질 치는 심장을 진정시키며, 팔다리를 축 늘어뜨린 채 침묵한 놈에게서 시선을 든다.


몸을 지배한 아드레날린이 입가에 사악한 미소를 만들어냈다.


거 봐라. 겁대가리 없이 들이댔다간 저 꼴 나는 거다.

어디 또 덤벼보라지.


그 생각이 씨가 되었다.


직후 울리는 조준파 경고.

후방에서 플라즈마 포 특유의 붉은 섬광이 연이어 터진다.


“...?!”


...뒤?


전혀 예상치도 못한 방향.

재빠르게 스로틀을 최대로 올리며 고개를 돌렸을 때에는, 이미 적 기체 둘에게 사정권에 붙잡힌 뒤였다.


포격이 온다.

찢어질 듯한 포성 대신 강렬한 섬광이 그것을 알려왔다.


하지만 알파 2는 총구 앞에서 벌벌 떨기만 하는 멍청이가 아니었다.

록온 경고와 동시에 채프 플레어를 전개, 좌측으로 기체를 내던지듯이 비틀어 회피 기동에 들어간다.


하지만 이미 완전 회피는 불가능한 거리다.

하다 못해 직격은 피하자.


차르르르륵, 백팩에서 분사되어 흩뿌려진 채프플레어들이 흩날리며 첫번째 유탄의 신관을 교란, 알파 2에게 도달하기 전에 함께 자폭했다.


두번째 유탄은 알파 2의 우측을 종이 한 장 차이로 비껴 날아가 허공에서 폭발했다.


하지만 플라즈마 유탄의 후폭풍은 크다.

터져나온 파편과 화염의 구름이 알파 2의 후미를 한차례 쓸고 지나갔다.


“큭...!”


왼쪽 1번 서브 스러스터가 파편에 피격. 내부에 화재 발생 경고가 떠올랐다.

이를 감지한 기체 컴퓨터가 곧장 1번 스러스터를 셧다운, 동력 공급을 중단했다.


동시에 기체의 기동력이 눈에 띄게 저하했다.


...망할...!


적기는 둘.

두기 모두 등 뒤에 딱 달라붙었다.

지금 상태의 기체로 추격을 뿌리친다는 건 불가능하다.


삐이이이. 레이더 경고가 비명을 지른다.

다음 공격이 온다.


“!”


곧장 우측으로 기체를 회전, 급격한 각도로 선회 기동에 들어간다.

불과 0.5 초 전까지 알파 2가 있던 자리를 포탄의 화선이 휩쓸었다.


태세를 갖출 틈도, 몸을 돌려 응사할 시간도 없다.

선택의 여지 없이 스로틀을 올리며 도망을 택한다.


...얼마나 더 피할 수 있으려나.


한순간의 가속도에 밀려 피가 부족해진 머릿속으로 알파 2는 생각했다.


직격을 맞을 때까지 얼마나 남았을까.


터더더덩. 메인 스러스터에 불길한 충격이 가해졌다.


좌측으로의 선회 기동을 예측한 적기의 사격.

근접 신관으로 공중 폭발한 플라즈마 유탄의 자탄이 메인 스러스터를 휩쓸었다.


엔진 정지. 출력 유지 불가.

이어서 화재 경고등과 자동 소화 장치에 연이어 불이 들어온다.


그리고 접근 경고.

경고의 비명 소리가 울리고, 등골이 얼어붙는다.


백팩의 스러스터는 모두 침묵, 이제 회피 기동조차 불가능한 상태다.


선두의 크나시티아가 미끄러지듯 다가온다.

살벌한 연청빛이 감도는 양날 플라즈마 블레이드를 양손으로 치켜든 채로.


“...!”


출력이 저하된 기체는 반응이 느리다.


코앞에서 다가오는 검격에 이미 회피는 포기.

반사적으로 쥐고 있던 라이플의 포신을 블레이드와 맞부딪혔다.


병기의 장갑을 베기 위해 만들어진 블레이드의 참격을 포신의 무른 합금이 버틸 수 있을 리 없다.

접촉과 동시에 포신이 반으로 썰려나나고, 오른쪽 팔뚝이 함께 날아갔다.


“...하여간 좆같네에!”


반대 손으로 허리 뒤편에 장비된 컴뱃 나이프를 뽑았다.

하지만 놈이 곧장 올려친 블레이드에 왼쪽 어깨마저 버터처럼 썰려 사라졌다.


잘린 어깨에서 피 대신 오일을 콸콸 쏟아내는 기체를 후방의 데브리에 박아둔 와이어를 당겨 곧장 후퇴시켰다.

하지만 측면에서 날아온 두번째 적기의 발길질에 흉부 장갑을 걷어차였다.


"...욱⎯⎯?!"


거인의 손바닥에 얻어맞은 듯한 충격.

방향이란 개념이 없는 우주일 텐데도, 한순간 세상이 뒤집혔다.


알파 2는 그대로 뒤편에 있던 데브리를 향해 투포환처럼 날아가서, 박혔다.


“크학⸺?!”


와드드득. 충돌한 암석이 갈라지고, 기체의 합금 외장이 우그러지는 소리가 귀를 긁는다.


“...씨, 바알....”


폐에 있던 공기가 모조리 빠져나가고 시야가 번쩍인다.

그래, 별이 보인단 건 바로 이런 거지.


삐삐삐삐. 상실했던 방향감각을 되찾기도 전에 레이더가 경보를 울렸다.


두겹 세겹으로 보이는 시야를 들어 바라본 스크린.

올려다 보는 시야에 포구를 겨누는 크나시티아의 푸른 광학 렌즈가 보였다.


확실하게 유탄으로 날려버릴 생각이다.


“...!”


서둘러 스로틀 페달을 밟았지만, 스러스터는 반응하지 않는다.


순간 궁지에 몰린 생쥐처럼 숨을 죽였다.


끝이다.


전장에서의 끝은 참 허무하게 찾아온다.

모두가 어렴풋이 기대하는 극적인 최후 따위 개나 줘버린지 오래다.


아니, 그럴 리가.

나는 살아남았다고.

쉽게 쉽게 죽어 나가주는 약골이 아니란 말이야.


막연한 부정과 합리화가 머릿속을 감돈다.


의미 없이 돌아본 시야에는 우주를 부유하던 한 고철덩이가 비쳤다.


왼쪽 반신을 참혹하게 잡아뜯기고, 흉갑에는 시커멓게 타들어간 거대한 구멍이 뚫린 란드가르드.

격추 당한 철갑인형의 최후다.


푸핫.


...나도 저렇게 된다는 건가.


죽어서도 어두운 콕핏 속에 갇힌 채, 침묵만이 감도는 황량한 우주를 유영하게 되는 걸까.


우주에는 대기가 없다.

덕분에 기체가 부식되거나 썩을 걱정 없이, 그저 이 황량한 우주가 허락하는 종착지까지 끝없이 유영해 나갈 수 있겠지.


태양 빛만이 무덤덤하게 비추는 우주를 영원히 떠도는 자신과 철갑 인형.

그 소름끼치는 장면을 떠올리자, 심장이 얼어붙었다.


그런, 그런 건.


“...!”


이번에도 본능이 몸을 움직였다.


냉기가 스며든 손으로 미친듯이 조종간을 흔들었다.

당연하지만 대파 상태의 기체가 그 명령을 들을 리 없다.


하지만 당기고, 또 당긴다.

마음을 옥죄는 두려움을, 죽음의 가능성을 떨쳐내기 위해서.


숨이 끊기는 그 순간까지 아득바득 기어서라도 살아남으려는 생존본능.

단지 그뿐일 행동.


“...씨이발, 좀, 움직이라고...!”


부러져라 당기는 조종간과 외침이 무색하게도 록온 경고가 울렸다.


아, 죽겠다.


그런 짧은 생각이 머릿속을 스쳤다.

죽음을 앞둔 2초가 채 안되는 가속된 시간 속에서, 느긋하게 처형의 방아쇠가 당겨진다.


결국 조종간을 쥐고 있던 손에서 힘을 풀었다.


플라즈마 포의 포구가 새파랗게 빛난다.

이 거리라면 빛과도 다름 없는 속도로, 초속 수천미터에 달하는 유탄이 날아든다.


이제 곧 무방비한 알파 2의 흉갑에 착탄하고, 그 얇은 장갑과 내부의 콕핏까지도 날려버릴⸺.

그 순간.


삐빅.

유탄이 발사된 것과, 미확인 기체 접근 경고가 울린 것은 거의 동시였다.


언노운 기체 접근.

IFF 확인 중.......


파일럿이 처한 상황도 모른 채, 멀쩡하게 돌아가는 기체의 컴퓨터는 접근 중인 기체를 식별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밤하늘을 가르는 유성처럼, 한줄기의 주홍빛 궤적이 날아들었다.

적기가 방아쇠를 당긴 것보다 아주 조금 더 빠르게.


뒤에서 뻗어져 온 궤적.

소리 없이 알파 2의 곁을 스쳐 지나가고, 알파 2와 크나시티아 사이에서 폭발했다.


섬광. 그리고 폭발.

눈을 깜빡이는 것보다도 빠르게 일어난 일이었다.

영문도 모른 채 찾아온 갑작스런 광채에 시야를 빼앗겼다.


이윽고 서서히 빛이 사그라든다.

화이트 아웃 되었던 세상의 풍경이 되돌아온다.


".......에?"


유탄은 알파 2에게 박히지 않았다.


그보다 한참 떨어진 저 앞에서, 붉고 푸른 두 색의 유탄이 허공에서 폭발하여 화염의 꽃을 피웠다.


적기도 당황했는지 행동이 멎었다.

갑작스런 섬광에게서 시야를 회복한 외눈의 시각 카메라가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그제야 상황을 이해했다.


유탄은 요격당했다.

자신은 살아있다.


...요격?


허탈한 웃음이 먼저 나왔다.

죽음을 각오했던 몸이 덜덜 떨려온다.


날아오는 포탄을 공중 요격하다니, 말도 안 되는 일이다.

국제 연합군의 베테랑들이 모인 궤도 방위군의 어떤 파일럿이 와도 그런 재주는 못 부린다.


그럼 우연의 일치일까?


...아니.


날아온 포탄은 시한 신관으로 공중 작렬했다.

우연이라기엔 너무나 완벽한 설정과 타이밍이다.


이건 어처구니가 없을 정도로 정밀하게 계산된 사격이었다.

누군가가 노리고 쏜 것이다.


...대체 누가?


삐빅, 하고 레이더의 짧은 알림음이 귓가를 훑었다.


【전술 데이터베이스 갱신.】


IFF 확인 완료.

우군기로 판정.


“...?”


알파 2가 박혀있던 암초의 뒤편을, 칠흑빛의 무언가가 스치듯 지나쳤다.

그것의 스러스터가 내뿜은 충격파에 암초와 기체가 희미하게 진동했다.


...뭐야?


바로 옆을 지나쳤는데, 제대로 보지도 못했다.

마치 그림자를 본 것만 같았다.


소름이 쫙 돋았다.

육안으로도, 이젠 레이더로도 포착되지 않는 그것이, 스러스터에서 푸른 불길을 뿜으며 우주의 어둠을 헤집고 있다.


...어디? 어디지?


본능적으로 그 그림자를 쫓아 눈을 굴린다.

하지만 보이지 않는다.

제길, 대체 뭐냐고.


잠시 후, 뭍의 사냥감을 덮치는 악어처럼 그 기체는 모습을 드러냈다.


크나시티아의 후방에 모여있던 데브리 무리의 뒤편.

칠흑의 어둠 사이에서 그 기체는 미끄러지듯 튀어나왔다.


그리고 이번에는 보였다.


칠흑의 형체.

크나시티아를 향해 급접근해 오는 철갑 인형의 검은 그림자가.


“...!”


란드가르드다.

온몸을 칠흑빛으로 물들인, 우주의 어둠과 동화된 듯한 기체였다.


기체의 사격 관제계로 적기를 조준하면 적기의 레이더는 조준파를 감지한다.

그러면 기습은 파훼당하고, 의미를 잃는다.


그런 상황을 피하기 위해, 검은 기체가 양손으로 늘어뜨리듯 쥔 것은 길고 예리한 외날직검 형태의 근접 병장.


주위의 데브리들이 레이더의 전파를 반사하여 접근 경고는 늦었고, 조준파를 탐지하는 레이더의 사전 경고도 없다.


완벽한 사각에서의 소리 없는 기습이다.

제 아무리 크나시티아라고 해도 반응이 늦었다.


파란 외눈이 뒤를 돌아보았을 때는, 이미 늦었다.


차가운 푸른빛의 검광이 공간을 찢었다.

극초음파 커터의 플라즈마가 허공에 남기는 푸른빛의 잔상.


직후, 단칼에 절단된 크나시티아의 팔이 허공을 춤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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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병사는 망령이 되어 돌아온다. 연재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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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죽음으로부터 돌아오는 법 (1) 23.07.28 3 0 16쪽
5 망령이 돌아오는 장소 (4) 23.07.28 3 0 27쪽
» 망령이 돌아오는 장소 (3) 23.07.28 5 0 26쪽
3 망령이 돌아오는 장소 (2) 23.07.28 4 0 10쪽
2 망령의 기억 (2) 23.07.28 6 0 10쪽
1 망령의 기억 23.07.28 12 0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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