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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주21호 님의 서재입니다.

죽은 병사는 망령이 되어 돌아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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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주21호
작품등록일 :
2023.07.26 18:27
최근연재일 :
2023.07.28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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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7.28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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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령의 기억

DUMMY

사망 후 귀환한 망령들의 자아는 예외 없이 붕괴되기 시작한다.


이에 따라 ‘특귀병’들의 사망 후 귀환 횟수는 각 개체의 귀환 한계에 따라 철저하게 제한되어야 한다.


귀환 한계에 도달하거나, ‘망령화’의 증세를 보이는 특귀병의 경우, 해당 병사를 영구히 삭제 처리한다.


지구 국제 연합 유지방위군, ⌜특귀병 관리 지침⌟ 제1 항.




***



그가 잠들어 있는 곳은 어두운 연구 시설 안이었다.


곳곳에 설치된 CCTV에 사각 따윈 없고, 155mm 전자 가속 유도탄의 직격에도 견딜 수 있는 견고한 복합 티타늄 소재의 격벽들이 끝없이 이어진다.


여기가 어디인지도, 지금이 몇 시인지도 알 수 없다.


그저 끝없는 미궁처럼 이어지는 복도의 끝.

수많은 캡슐들로 가득 찬 거대한 방 안의 어둠 속에서 작은 불빛이 깜빡이고 있었다.

천천히, 일정한 간격으로 점멸하는 푸른 불빛이.


빛의 근원은 사람 한 명이 몸을 웅크리면 들어갈 만한 달팽이의 패각 같은 캡슐 하나였다.

그 위에서 빛나는 작은 디지털 패널이 무언가의 다운로드 완료를 알리고 있었다.


캡슐의 내부 확인용 강화 유리 속에 그 남자는 잠들어 있었다.

벌거벗은 온몸에는 전극이 붙어 있고, 머리에는 산소 마스크가 씌워져 있어 마치 중환자 같은 모양새다.


아니, 남자보다는 소년이라 부르는 편이 어울렸다.

특유의 칠흑빛 머리카락이 부유액 속에서 가늘게 흔들리고, 어딘가 어린 인상이 남은 얼굴의 눈꺼풀이 차츰 움직였다.


소년은 깨어나고 있었다.

되살아나고 있었다.


이 살아 있는 자들의 세상에 남겨두었던 영혼과 기억을 통해서.


⸺이건 저주예요.


⸺망령이 되어 원치 않는 삶을 이어받아야 하는 저주.


까마득한 소년의 의식 속에서 누군가의 목소리가 속삭인다.


이따금 소년의 손발이 짧게 경련했다.

몸에 붙은 전극이 신경과 근육에 규칙적인 자극을 보내 각성을 촉진시키고 있었다.


그때마다 부유액 속에 작은 거품들이 일었다.


그렇게 암흑 밑바닥에서부터 서서히 돌아오며, 소년의 의식은 그날의 꿈을 꾸고 있었다.





***





5년 전.


2273년 1월 15일.




그날, 소년은 아버지가 죽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화성의 궤도 기지가 네레키아 제국군의 폭격을 받았다고 한다.

기지가 우주의 먼지가 되어 버릴 정도의 비극에 휘말린 아버지는 시신조차 찾지 못했다고 들었다.


연합군의 차세대 기술 연구원으로서, 수많은 연구에 뛰어들었던 선구자이자 과학자였던 아버지.


일이 바빠 집을 자주 비웠지만, 집에 돌아올 때면 일터에서 보았던 우주에 대해 이야기해주며 소년에게도 우주에 대한 꿈을 심어 준 사람이었다.


소년도 아버지처럼 되고 싶다고 생각했다.

인류가 이제 막 발을 내디딘 광활한 우주를 개척하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그랬었다.


아버지가 죽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소년은 눈물을 흘릴 수 없었다.

그때 소년과 가족들은 화성의 하늘을 가르며 떨어지는 제국 기갑 공수부대의 공습을 피해 정신없이 피난을 가던 도중이었으니까.


전쟁이 시작되었다고 한다.


지구로부터 62광년 떨어진 성간 이웃이었던 네레키아 은하 연합 제국이 인류 전체를 향해 선전포고.

이와 동시에 전면적인 군사 행동에 나섰다.


TV 채널에 나오는 모든 앵커들이 하루 종일 그 얘기를 반복했다.


멍하니 그 뉴스를 보고 있자, 누군가와 전화를 끝낸 어머니가 다급히 안방에서 나왔다.

그러곤 소파에 앉아 있었던 소년과 동생의 손을 잡아끌었다.


여기서 도망쳐야 한다고.

지구로 가야 한다고.


궤도 기지가 함락되고, 화성 본토가 공격 받았던 날.

소년은 어머니와 남동생과 함께 가까스로 지구로 향하는 피난선에 올라탔다.


화성 거주 도시에서 빠져나가고자 하는 엄청난 인파가 몰렸었다.

나중에 알아보니, 소년의 아버지와 친했던 동료 과학자의 정보 덕에 탈 수 있었던 거라고 했다.


발 디딜 틈도 없이 사람으로 꽉 들어찬 피난 셔틀은 터질 듯한 굉음과 함께 이륙했다.

지상의 발착장에는 개미떼처럼 몰린 채 태워달라고 아우성치는 인파들을 남겨둔 채로.


하지만 그걸로 안심해선 안 됐다.

제국 공수부대가 발사한 광자 유탄의 파편이 이륙하던 셔틀의 외장을 뚫고 쏟아졌으니까.


숨 쉬기조차 힘들 정도로 사람들이 부대껴있던 실내는 폭음 한 번과 함께 지옥으로 변했다.


하얬던 실내 격벽이 검붉은 핏물과 살점으로 뒤덮였던 것이 기억난다.

폭발의 순간에 소년과 남동생을 감싸 안았던 어머니의 필사적인 얼굴과, 그녀를 휩쓸었던 파편의 빗줄기와 붉은 화염도.


유탄이 찢고 들어온 셔틀의 격벽에는 거대한 구멍이 뚫렸다.

미처 대비하지 못한 수십명의 사람이 그 구멍 밖으로 빨려 나갔다.


몇 초 후 자동으로 내려온 에어록과 고속 응고제가 벽에 뚫린 구멍을 막았지만, 그때는 늦은 후였다.


기내는 조금 전까지의 소란이 거짓말이었다는 것처럼 조용해졌다.

운 좋게 어딘가에 걸리거나, 붙잡을 것이 있었던 사람들만이 남았다.

작게 흐느끼는 소리와 신음하는 소리만이 가끔 들렸다.


정신을 차렸을 땐, 무언가가 소년을 짓누르고 있었다.

폐를 눌려 숨을 쉴 수가 없었다.


서둘러 치우려고 보니 시체였다.

소년에게 앞을 잘 보면서 따라오라던 어머니.

그녀가 언제나 가지고 다니던 십자가 목걸이를 걸고 있는, 자상한 주름이 져있던 얼굴은 온데간데 없어진 시체.


기겁을 했지만, 당장 급한 건 숨을 쉬는 거였다.


소년은 주변에 있던 사람들의 몸을 마구 밀고 차버린 다음에야 겨우 몸을 일으킬 수 있었다.

그나마 주위에 사람이 많지 않았던 게 다행이었다.


15살이 된 소년에게는 이 지옥에서 헤어 나올 수 있을 정도의 판단력과 힘이 있었다.


아니, 사실 어머니가 소년과 동생을 실내의 구석으로 밀듯이 감싸주지 않았다면 소년도 압사당했을지 모른다.


겨우 숨통이 트이자 피비린내와 살이 타는 냄새가 소년의 코와 입으로 들어왔다.

그 끔찍한 냄새들에 헛구역질이 나오려는 걸 겨우겨우 참았다.


소년은 그렇게 살아남았다.


하지만 옆에 있던 소년의 동생은 그러지 못했다.

이 지옥에서 빠져나오기엔 동생은 너무 어리고 약했던 모양이다.


서둘러 찾아낸 동생은 짓이겨져서 절반만 남은 얼굴로 공허하게 소년을 쳐다볼 뿐이었다.


동생의 빛이 사라진 칠흑빛 눈동자를 보고, 소년은 깨달았다.


집에 자주 돌아오지 못 하는 걸 미안 하게 생각한 아버지가 한가득 사다주었던 장난감들.

그것들을 한아름 가져와서 놀아달라며 떼를 쓰던 동생.


그 손이 많이 가던 동생은, 이젠 그런 귀찮은 요구를 해 오지도, 해맑은 얼굴로 소년에게 웃어 주지도 못할 거라는 걸.


화성의 대기권을 벗어난 다음에야 지구에서 온 구호선이 소년이 탄 피난선 구조를 시도했다.


구조요원들이 밀폐되어 있던 기내 돌입에 성공했을 때, 소년은 멍하니 품속에 동생을 끌어안고 있었다.


그동안 얼마나 그러고 있었을까.

소년의 옆에 방호 우주복을 입은 구조요원이 다가왔다.


그리고 소년의 어깨를 지그시 붙잡더니 말했다.

그 애는 놓고, 이제 그만 가자고.


소년은 화가 났다.

왜 이렇게 늦게서야 구하러 온 건가.

더 빨리 올 수 있지 않았나.


아니, 사실 소년은 알고 있었다.

그 누구보다도 자신이 분노를 향하는 건, 무력하게 도망치며 동생조차 지키지 못했던 자기 자신이라는 걸.


조용히 동생의 몸을 끌어안고 있자, 구조요원은 잠시 망설이더니 하다못해 자신이 업고 가겠다고 했다.


잘된 일이었다.

하루 종일 전쟁으로부터 도망쳐 온 소년은 너무 지쳐 있었다.

자꾸만 시야가 아른거리고, 눈꺼풀이 감겨왔다.


동생을 구조요원의 널찍한 등에 맡긴 직후, 소년은 그대로 미끄러지듯 정신을 잃었다


그리고 다음에 깨어났을 때, 소년은 지구에 있었다.


갑자기 바뀐 주위 상황에 대답을 원하던 소년을 찾아온 건 하얀 가운을 입은 의사였다.


그는 이틀은 못 잔 듯한 퀭한 얼굴에 최대한 자상한 미소를 지어 보이며 말했다.


여긴 지구이고, 화성에서 온 피난민 캠프의 병원이라고.

이제 안전하다고.


소년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유탄 파편에 맞았고, 화상까지 입었었다던 모양이다.

다행히 경미한 부상이라 후유증 없이 치료될 거라는 말을 들었다.


그렇게 소년은 지구에 왔다.

옆에는 어머니도, 동생도 없는 채로.


소년이 어렸을 적 이후로 처음 오게 된 지구는 낯설면서도 친숙했다.


소년이 태어났던 곳.

하지만 집과는 아주 멀리 떨어진 곳.

어머니와 동생과 함께 도달하고자 했던 곳.


회복되어가던 소년에게 날아온 것은 복사 붙여넣기로 찍어낸 두 장의 사망 통지서였다.

각각 어머니와 동생의 이름과 함께 유감을 표한다는 짤막한 글이 적힌 메일이었다.


그걸 보고 소년은 깨달았다.

이제부터 자신은 혼자라는 것을.


그로부터 3개월 후.

화성을 점령하고, 달의 월면 기지를 장악한 제국군은 이젠 지구 본토에까지 쳐들어왔고.


소년은 국제 연합군에 입대 신청서를 냈다.


작가의말

타 플랫폼에서 찾아온 생태계 교란종입니다. 연재 속도가 상당한 굼뱅이이지만 잘 부탁드립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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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망령이 돌아오는 장소 (4) 23.07.28 3 0 27쪽
4 망령이 돌아오는 장소 (3) 23.07.28 4 0 26쪽
3 망령이 돌아오는 장소 (2) 23.07.28 4 0 10쪽
2 망령의 기억 (2) 23.07.28 6 0 10쪽
» 망령의 기억 23.07.28 12 0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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