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x고북손 님의 서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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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북손
작품등록일 :
2021.05.19 19:42
최근연재일 :
2021.06.20 23:58
연재수 :
30 회
조회수 :
2,578
추천수 :
122
글자수 :
150,244

작성
21.05.28 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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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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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글자
12쪽

새로운 국면

DUMMY

‘꿈이라고 생각하는 건가.’


알바를 하는 내내 집중이 되지 않았다. 그녀가 나에게 건넨 말들이 잊히지 않았다.

내가 점장에게 내리친 그 접시의 모습을 그녀는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다.


‘강렬한 기억은 무의식에 남는다.’


언젠가 교양 수업에서 잠재의식에 대해 배운 적이 있었다. 이런 일이 일어날 줄 알았다면 좀 더 열심히 들을 걸 그랬다.


‘일상적인 일들은 상관없는 건가.’


일단 내가 내린 결론이었다. 일상의 사소한 일들은 우리가 쉽게 잊는 것처럼 내가 돌린 시간도 대부분 기억 속에서 사라질 것이다.

하지만 결정된 역사와 너무 크게 엇나간 일들은 기억에 강렬히 남아 마치 꿈처럼 남는 것이다.


‘하긴 조금 강렬하긴 했지.’


손에 잡히던 접시의 감각, 파편이 튀는 경쾌한 소리, 아수라장이 된 손님들의 모습까지, 그 강렬한 모습은 무의식에 자리 잡기에 충분했다.


‘찌르는 꿈을 꿨어.’


순간 어제 괴한이 건넸던 말이 기억을 스쳤다. 그 괴한은 분명히 나에게 말했다.


‘네가 신고한 거 맞지?’


그 괴한은 어떻게 확신할 수 있었을까. 그리고 왜 찌르는 꿈을 꿨다고 했을까.

그것은 정말로 꿈이었을까? 아니면 자신이 실제로 찌른 순간을 무의식중에 기억하는 것일까.


‘···김현수.’


그는 나와 만난 적이 없었다. 아니, 만난 적은 있었지만 그 순간은 분명히 LOAD 버튼과 함께 사라졌다.

내가 저장하지 않은 순간이었지만 그의 무의식은 그 장면을 확실히 기억하고 있었던 것이다.


‘젠장.’


혼란스러웠다. 이 능력은 사건을 지울지언정 기억을 완벽히 지울 수는 없었다.

단순히 꿈처럼 기억에 남는 것인가? 아니면 실제로 꿈을 꾸는 것인가?

내가 당장 알 수 있는 부분은 하나도 없었다.


‘···앞으로 조심하자.’


적어도 오늘 점장의 머리를 한 번 더 내리치려고 했던 계획은 취소였다. 나는 좀 더 신중하게 이 능력을 사용해야만 했다.


“강희재!”


그런 다짐을 하자마자 점장이 나를 불렀다. 나는 한숨을 내쉬며 그쪽으로 다가갔다.


‘···그냥 한번만 더 때릴까.’


그런 생각이 입 밖으로 나오는 것을 꾹 참았다. 한손에는 특유의 젓가락을 들고 서류를 바라보던 그가 다시 말했다.


“저번에 발주 넣으라고 했던 거 몇 개 잘못 들어간 거 같은데?”


이건 내가 해야 할 업무가 아니었다. 하지만 언제부턴가 내가 자주 담당하게 되었다.


“이건 제대로 들어간 거 아닌가요?”

“아니, 그러니까 이거 봐봐. 상식적으로 빵이 이만큼 들어갔는데 지금 채소가···.”


전형적인 책임 전가였다. 자기가 잘못 적어놓고 나의 상식을 논하고 있었다.


“일하면서 틈틈이 재고관리 안 해? 이건 보면 바로 알 수 있잖아.”

“일단 한 번 더 확인하겠습니다.”


나는 확인을 위해 들고 있던 접시를 테이블에 내렸다. 그런데 그때 갑자기 점장이 움찔했다.


“으윽···!”


소스라치게 놀라는 그 모습은 나 또한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혼란스러운 눈빛 너머로 점장이 다시 말했다.


“아, 아무튼 잘하라고! 너를 믿으니까 일을 맡기는 거 아니야.”


점장은 그렇게 말하며 주방으로 들어갔다. 나는 사색이 된 표정으로 방금 상황을 정리해봤다.


“···설마.”


나의 착각이었으면 좋겠지만, 그 강렬한 기억은 그에게도 남아있었다.

내가 접시로 내리치던 그 순간은 무의식적인 트라우마가 되었던 것이다.


‘···일단 그만둘 이유는 하나 더 늘었네.’


점장이 건넨 차트를 바라보던 나는 허탈하게 웃었다. 오늘 알바가 끝나면 바로 통보할 것이다. 이 공간에서 생활하는 것은 오늘이 마지막이었다.



“점장이 뭐래?”


일이 좀 한가해지자 예은이가 물었다.


“발주 잘못 넣었대. 근데 지가 잘못 적어준거야.”

“미친 거 아냐? 오늘도 여전하네.”


예은이가 웃으며 말했다.


“애초에 네가 해야 할 일도 아니잖아. 아무튼 웃겨.”

“괜찮아. 어차피 오늘···.”


무언가 더 말하려던 나는 이내 입을 닫을 수밖에 없었다.

오늘 그만둔다. 그 말을 꺼내기가 어려웠다.


“오늘 뭐?”

“아니, 오늘 퇴근도 얼마 안 남았는데 그냥 신경 안 쓰려고. 한두 번 저러나.”


나의 말에 예은이는 웃었다. 그리고 나에게 말했다.


“주말 약속 잊지 않았지?”

“어?”

“토요일.”


당연히 잊지 않았다. 우리는 알바 끝나고 영화 약속을 잡았다.


“당연하지. 왜 잊겠어?”

“어제 일도 기억 잘 못하길래. 혹시나 했다. 기억력이 안 좋아졌나.”

“그럴 리가 없잖아.”


나는 그렇게 말하고 웃었다. 그런데 그녀의 다음 말은 나의 예상을 완전히 벗어났다.


“···그래도 너와 함께 일해서 다행이야. 너 없었으면 당장 그만뒀을 걸?”

“뭐?”

“아니, 그냥 말 잘 통하는 친구 있으니까 할 만하다고. 또 오해하지 말고.”


예은이는 그렇게 옆구리를 팍 치고 떠났다. 마침 주문이 들어왔고 나도 곧바로 움직였다.


‘나 때문에 버틴다고?’


생각하지 못했다. 이 끔찍하도록 지겨운 공간, 마음에 안 드는 점장, 이 시간들을 나는 탈출해야하는 현실 정도로 생각했다.

하지만 그동안 정말로 행복하지 않았을까? 비좁은 단칸방, 기약 없는 미래, 돈을 벌기 위해 일을 멈출 수 없는 현재 상황 속에서 행복한 순간이 단 한 번도 없었을까?


일상은 물처럼 그저 흘러가기에 그 소중함을 느끼지 못했다.

답 없고 절망적이라고 생각하면서 나는 나의 삶과 순간들을 결코 소중히 생각하지 않았던 것이다.



“조심히 들어가.”

“그래. 내일 보자.”


예은이는 그렇게 말하고 손을 흔들었다. 결국 오늘 그만둔다는 말은 하지 못했다.

더 이상 강제로 일할 필요가 없어지자, 이 공간이 나에게 주던 의미가 달라졌다.


그녀와 함께 합을 맞춰 일하는 순간들은 나에게 결코 가치 없지 않았다.

그 어떤 비싼 값을 치르더라도 다신 사지 못할 순간이었던 것이다.


‘···주말까지만 하자.’


토요일 우리는 알바가 끝나고 영화를 보기로 했다. 적어도 그때까지만 알바를 유지하기로 마음먹었다.

다신 올 일이 없는 장소라면, 하루 정도는 괜찮았다.


‘그리고 어차피 월요일 전까지는 그만둬야해.’


월요일은 당첨금을 받으러 멀리 나가야하는 날이었다. 매우 중요한 날이었고 당연히 그전까지는 그만두는 게 맞았다.


나는 뒤를 돌아 레스토랑이 있는 건물을 바라보았다.

어디에나 널린 평범하고 커다란 상가, 꼴도 보기 싫은 곳이었지만 그만둔다고 생각하니 조금은 정이 들었다.

항상 그렇지만 모든 일은 마지막이 다가왔을 때 아쉬워지는 법이다.



‘한번 저장하자.’


시계를 확인해보니 저장을 안 한지 꽤 되었다. 만약 여기서 LOAD를 누른다면 나는 거의 오늘 하루를 다시 보내야했다.

매일 시간이 빠르게 흐른다고 생각했지만 이 능력을 사용하면 괴로울 만큼 시간이 가지 않는다.

몇 번 경험한 이후로는 항상 신중해질 수밖에 없었다.


[SAVE]


버스를 기다리던 나는 조용히 침을 삼켰다. 붉게 빛나는 그 글씨는 항상 나를 압박했다.

저장하는 순간 더 이상 과거로는 가지 못한다. 그 간단한 사실은 이 능력을 결코 쉽게 사용하지 못하게 만들었다.


‘···집 가서 누르자.’


지금 저장해봤자 돌아오면 다시 버스를 기다려야할 것이다. 그런데 생각해보니 버스를 기다릴 필요가 없었다.

습관이 돼서 정류장으로 왔지만 그냥 택시를 타고가면 됐다. 굳이 버스를 기다리고 불편하게 갈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이렇게 생각하면 돈이 더 마법 같은 능력이었다.


‘콜택시를 부를까.’


전화기를 꺼내려는데 저 멀리 택시 몇 대가 보였다. 야경이 비치는 번화가 근처에 택시 정류장이 있었다.

나는 버스 정류장을 떠나 어두운 길을 따라 걸었다. 그런데 문득 골목 너머로 누군가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어딘가 낯익은 목소리, 검은 머리의 그녀였다.


‘뭐야.’


조금 당황스러웠다. 어제 처음 만난 사람을 우연히 오늘 또 마주쳤다.

단순한 우연인가? 생활 반경이 같을 수도 있었다.

이런 내 생각과 반대로 어두운 골목 너머의 그녀는 나를 신경조차 쓰지 않은 채 계속 전화를 하고 있었다.


‘내 눈에 띄지 마.’


어제 그녀가 했던 이야기가 떠올랐다. 그것은 분명한 경고였다. 물론 나는 그녀의 눈에 띄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하지만 어제 봤던 그녀의 모습은 나의 호기심을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뭘 하는 사람이지?’


그녀는 심각한 표정으로 전화를 받고 있었다. 대화 내용은 잘 들리지 않았지만 사실 내가 신경 쓸 필요는 없었다.

그래, 그냥 신경 쓰지 말고 지나가면 되었다. 단순한 호기심 때문에 정체불명의 사람을 쫓아갈 이유는 없었다.


그런데 그때 그녀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골목 저편으로 사라진 그 모습을 바라보자 나는 조용히 침을 삼켰다.


“눈에 띄지 말라고?”


붉게 빛나는 SAVE 버튼, 나는 그것을 누르고 그녀가 사라진 골목으로 향했다.

이 능력을 사용한다면 그녀의 눈에 띄는 일은 없을 것이다. 마주칠지라도 과거로 돌아가면 그만이었다.


골목 너머로 말소리가 계속해서 들렸다. 그녀는 전화를 하면서 움직이는 것 같았다.

심각한 목소리 너머로 순간 다른 사람의 목소리가 함께 들렸다.

당황한 남자의 목소리, 여자는 전화를 끊었고 나는 골목 너머로 그들의 모습을 확인했다.


“아악!”


짧은 비명, 그 사이 무언가에 맞은 남자가 바닥에 쓰러졌다. 무언가를 정확히 던져 머리를 명중시킨 것이다.

나는 사색이 되어 골목 뒤로 숨었다. 도대체 무슨 상황이지? 내 생각보다 위험한 여자였나?


심장이 크게 뛰었고 다시 전화를 받는 소리가 들렸다. 잠시 침을 삼킨 나는 다시 고개를 돌려 골목을 바라보았다.

그런데 그곳에는 아무도 없었다.


‘···뭐야.’


눈앞에 있던 모든 것들이 사라져있었다. 바닥에 쓰러진 남자도, 검은 머리의 그녀도, 가로등이 비추는 낡은 골목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내가 착각한 것인가? 분명 그곳에서 모든 일들이 일어났는데, 마치 환상처럼 그곳에는 더 이상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았다.


“어떻게 된 거야.”


나는 가까이 다가가 주위를 둘러보았다. 별다른 단서는 없었다. 다만 한 가지 바닥에서 무언가 찾을 수는 있었다.

실제로 그 사건이 일어났다는 흔적, 그녀가 던진 것으로 추측되는 커다란 동전이 바닥에 떨어져있었다.


‘어느 나라 동전이지?’


처음 보는 동전이었다. 크기는 일반 500원보다 훨씬 컸다. 잠시 그것을 바라보던 나는 조용히 시계를 바라보았다.


‘이건 미친 짓이다···.’


나는 LOAD버튼을 눌렀다. 어두운 골목 입구가 눈앞에 나타났다.

그대로 집으로 돌아가면 그만이었다. 하지만 방금 확인한 이상한 현상은 참을 수 없었다.

눈앞에서 사라진 사람들, 만약 그곳으로 다시 향한다면 내가 보지 못한 순간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다시 그녀가 지나간 골목을 향해 들어갔다. 아까와 같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미 했던 대로 똑같은 걸음 거리로 걸어간다면 그녀와 마주치지 않고 뒤를 쫓을 수 있을 것이다.


‘이쪽 코너로 돌면···.’


그런데 문득 이질감이 느껴졌다. 대화 내용이 미묘하게 바뀐 것 같았다.

아니 그 전에, 그녀의 목소리가 순간 끊김을 느낄 수 있었다.


‘시발···.’


코너를 돌지 말았어야 했다. 그녀는 아까와는 완전히 다르게, 뒤를 돌아 정확히 나를 노려보고 있었다.


“너 뭐야?”


전화를 끊으며 그녀가 나를 바라보았다.


“너 뭐냐고.”

“다시 만났네?”


나를 기억 못하는 눈치였다. 그녀가 다가오자 내가 다시 말했다.


“그냥 집 가는 길인데···.”


나는 반걸음 뒤로 물러서다가 이내 도망쳤다. 그런데 나의 뺨을 스치고 무언가가 지나갔다.

그것은 눈앞의 담장에 그대로 박혔다. 동전이었다.


“움직이지 마.”


나는 움직일 수 없었다. 그녀가 천천히 다가왔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작가의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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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 선택과 운명 21.06.20 28 1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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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결전의 순간 21.06.15 65 1 13쪽
22 폭풍전야 +1 21.06.13 55 2 11쪽
21 모순 21.06.12 53 2 12쪽
20 중요한 날 21.06.10 54 1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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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사사로운 일 +2 21.06.08 69 2 11쪽
17 세이브 포인트 21.06.07 68 2 13쪽
16 불길한 필연 21.06.05 72 2 12쪽
15 기시감 21.06.04 71 6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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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우월한 거래 21.05.30 85 7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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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로운 국면 21.05.28 91 4 12쪽
10 변수 21.05.27 101 4 12쪽
9 가능성 21.05.26 108 6 12쪽
8 위험한 밤 21.05.23 107 6 15쪽
7 작은 실수 21.05.22 107 6 10쪽
6 분기점 21.05.22 115 8 7쪽
5 SAVE 21.05.21 124 6 14쪽
4 돌아가면 안 되는 밤 21.05.20 135 7 7쪽
3 능력 확인 21.05.20 152 8 9쪽
2 세이브, 그리고 로드 21.05.19 190 13 10쪽
1 새로운 시계 21.05.19 300 15 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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