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x고북손 님의 서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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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북손
작품등록일 :
2021.05.19 19:42
최근연재일 :
2021.06.20 23:58
연재수 :
30 회
조회수 :
2,577
추천수 :
122
글자수 :
150,244

작성
21.05.19 20:15
조회
299
추천
15
글자
7쪽

새로운 시계

DUMMY

비좁은 단칸방, 침대 하나와 컴퓨터 하나를 둘 수 있는 작은 책상이 내 공간의 전부이다.

남은 시간을 쥐어짜듯 게임에 몰두하던 나는 이내 컴퓨터를 끌 수밖에 없었다.

이만 일하러갈 시간이 다가왔기 때문이다.


“젠장···.”


5분 늦었다. 급하게 옷을 차려입고 비좁은 문을 나선다.

비좁은 복도를 지나 시커먼 계단을 내려가면 번화가 뒤편의 칙칙한 동네가 눈앞에 펼쳐진다.


‘거의 다 깼는데···.’


게임을 하다보면 문득 그런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아무리 강한 적을 만날지라도 저장만 한다면 몇 번이고 불러와 결국에는 승리하게 되는 전능한 능력.


만약 인생에도 세이브와 로드가 있다면 얼마나 편리해질까.

그런 능력이 있다면 적어도 오늘 하던 게임을 마저 끝낼 수는 있었을 것이다.


이런 어처구니없는 상상을 하던 나는 새로 산 시계를 바라보았다.

시간이 없었다. 버스를 놓친다면 분명히 지각할 것이다.


버스에 올라 문득 나는 본능적으로 주머니를 뒤졌다. 무언가 있어야할 물건이 없었다.

핸드폰을 두고 온 것이다.


‘아 이런···.’


돌아갈 시간은 없었다. 알바 시간은 다가오고 있었고 나는 찜찜한 기분을 뒤로한 채 창밖을 바라보았다.



하늘은 장엄한 노을이 지고 있었다. 붉은 하늘은 건물들을 검게 물들여 실루엣이 지게 만들었고 이상하게 뒤틀린 구름들은 나의 감정도 묘하게 만들었다.

그것은 왠지 모르게 불길한 징조를 가슴에 느끼게 해주었다.


“조심해!”


버스에서 내려 몇 걸음 내딛던 순간 어디선가 날아온 축구공을 나는 본능적으로 막았다.

강한 충격에 나는 뒤로 몇 걸음 물러서며 가까스로 몸을 지탱했다.


“크윽...!”

“괜찮으세요?”


중학생 정도 되어 보이는 아이들이 나에게 달려왔다. 나는 적당히 괜찮다고 말한 뒤 옆에서 나뒹구는 축구공을 발로 건네줬다.


그리고 잠시 시간을 확인하려고 손목을 들던 나는 인상을 찡그릴 수밖에 없었다.

얼마 전에 산 스마트워치가 박살이 났기 때문이다.


“이런 젠장···.”


내 손목에 깨진 채 매달려있는 그 시계는 최신 제품으로써 그동안 전례 없었던 많은 기능들이 담긴 시계였다.


오랜 시간 알바를 하면서 가까스로 구매한 시계였고 그 오랜 시간을 투자한 시계를 나는 고작 일주일도 사용하지 못하고 망가뜨린 것이다.


나는 일그러진 표정으로 운동장을 바라보았지만 그들은 이미 멀어져있었고, 이미 괜찮다고 말한 뒤 망가진 시계를 선보이며 어린 친구들에게 따질 마음이 들지 않았다.

그들은 이미 진지한 축구 경기에 몰입하고 있었으니까.



“혹시 새옹지마라는 말을 알고 계신가요?”


문득 누군가 부르는 소리에 뒤를 돌아봤다. 이 거리에 전혀 어울리지 않는 하얀 정장을 입은 여인이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녀의 말끔한 미소는 나의 대답을 기다리고 있었다.


“···네?”


“좋은 일과 안 좋은 일은 반복해서 일어난다고 하잖아요.”


갑작스러운 그녀의 말에 나는 조용히 그녀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건물 너머에서 비추어오는 석양이 그녀의 양복을 붉게 물들였다.


“그러니까 사람은 좋은 일이 일어났을 때도, 안 좋은 일이 일어났을 때도 항상 의연해야 합니다.”


“···의연해야 한다고요?”


내가 답하자 그녀는 묘한 미소를 지으며 나에게 물었다.


“최근에 기분 좋은 일이 있지 않았나요?”


조심스럽게 기억을 되짚어봤지만 그런 기억은 없었다. 나의 표정을 읽었는지 그녀가 다시 물었다.


“그 시계, 발매된 지 얼마 지나지 않은 것 같은데, 최신 제품을 구매하실 때 기분이 좋지 않았나요?”


내가 침착한 표정으로 대답을 미루자 그녀가 계속 말했다.


“하지만 그 시계를 사기 위해 오랜 시간을 투자했을 때는 많이 힘들고 괴로웠겠죠. 오랜 시간 돈을 모아야 했을 테니까요.”


그녀의 말은 사실이었다. 하지만 그것은 사실이라고 말하기도 우스울 정도로 당연한 말이었다.

어처구니없는 이야기에 답하기도 전에 그녀가 다시 웃으며 말했다.


“만약 당신이 시계를 사지 않았다면 지금 불행할 일도 없었겠지요. 당신을 기쁘게 할 만한 물건은 곧 그것이 언젠가 망가졌을 때 당신을 불행하게 만드니까요.”


“그래서 무슨 말을 하고 싶으신 겁니까?”


망가진 시계를 상기시키는 그녀의 말은 나의 신경을 건드리기에 충분했다. 내가 일그러진 표정을 짓자 그녀가 재미있다는 듯이 웃었다.


“별다른 이야기는 아닙니다. 지금 당신에게 불행이 찾아왔으니 이번에는 도와드리고 싶어서요. 저의 작은 호의가 당신에게 작은 행운이 되어준다면 그것이야말로 기쁜 일이 아닐까요?”


그녀는 손에 들고 있던 작은 가방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다름 아니라 저는 전자제품 회사에서 일하고 있어요. 최근에 시제품을 만들어 테스트를 진행하고 있는데, 생각해보니 당신에게 하나를 드리면 어떨까 해서요."


그녀의 차분한 미소가 나를 향했다.


"저는 어차피 테스터가 필요한 입장이고, 당신은 새로운 시계를 가질 수 있고, 서로에게 좋은 일 아닐까요?”


“네?”


나는 놀라 그녀에게 소리쳤다. 그녀는 가방에서 꺼낸 하얀 케이스를 개봉하며 나에게 말했다.


“지금 이 제품을 드리겠다는 것입니다. 단, 제가 드리는 이 연락처로 간단한 후기와 설문조사만 해주시면 됩니다. 나중에 제품이 출시되었을 때 간단한 리뷰정도를 해주시면 감사하고요.”


“그러니까 그냥 이 시계를 주신다고요?”


“이 시계의 '테스터' 가 되어달라는 것입니다. 어때요? 방금 찾아온 불행에 걸맞은 작은 행운 아닌가요?”


그녀는 상자에서 꺼낸 시계를 들고 웃었다. 나는 조용히 침을 삼켰고, 운동장에서 들리는 공차는 소리가 적막한 황혼에 울려 퍼졌다.


“주신다면 감사하죠. 그런데 제가 지금 빨리 가봐야 해서 시간이···.”

“그냥 지금 들고 가세요. 여기 제 명함만 잘 챙기시고요.”


그녀는 그렇게 말하며 하얀 정장에 어울리는 하얀 명함을 건네주었다. 하얀 명함과 하얀 시계, 그것이 어느새 내 손에 들어왔다.


“그럼 시계 잘 사용하시고요. 테스트 잘 부탁합니다.”


그녀는 미묘한 미소를 지으며 뒤를 돌았다. 그리고 천천히 거리를 따라 걸어갔다.


‘도대체 뭐야.’


나는 시계를 바라보며 그녀가 했던 말을 곰곰이 생각해봤다. 도대체 무슨 이유로 나에게 시계를 줬다는 것인가.

단순히 테스터라는 명목으로, 물론 그런 테스트를 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지만 이런 식으로 시계를 건네받을 줄은 몰랐다.


잠시 그런 생각을 하는 사이 그녀는 어느새 내 눈앞에서 사라졌다. 마치 처음부터 그 자리에 없었던 것처럼.


작가의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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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세이브 포인트 21.06.07 68 2 13쪽
16 불길한 필연 21.06.05 72 2 12쪽
15 기시감 21.06.04 71 6 11쪽
14 방관 21.06.02 69 5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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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분기점 21.05.22 115 8 7쪽
5 SAVE 21.05.21 124 6 14쪽
4 돌아가면 안 되는 밤 21.05.20 135 7 7쪽
3 능력 확인 21.05.20 152 8 9쪽
2 세이브, 그리고 로드 21.05.19 190 13 10쪽
» 새로운 시계 21.05.19 300 15 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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