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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도황제

웹소설 > 일반연재 > 무협, 퓨전

이화영
작품등록일 :
2023.07.31 18:04
최근연재일 :
2023.12.30 10:43
연재수 :
93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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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59
글자수 :
649,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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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8.03 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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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마심아(馬心雅)

DUMMY

아우들이 수저를 내려놓고 나를 쏘아봤다.

짧은 시각.

나는 아우들의 도발적인 눈초리를 모두 받아냈다.

하지만 우려와는 다르게 그것으로 끝이었다.

능소 때문이었다.

녀석이 흥, 하고 콧방귀를 뀌더니 수저를 다시 집어 들고 만둣국을 바닥까지 긁어먹으며 지껄였다.


“잊을만하면 꼭 은퇴 얘기를 꺼내네. 밥맛 떨어지게··· 사람이 늙으면 진중함이 떨어진다더니.”


내가 탁자 위로 수저를 내던졌다.

수저가 머리 부분만 남기고 탁자 속으로 사라졌다.


“말 다 했냐?”

“다 했수, 왜 패기라도 하시게?”

“그래, 어디 오늘 너 죽고 나 죽어보자.”


소매를 걷어붙인 내가 의자를 박차고 일어났다.

내가 능소를 향해 금나수(擒拿手)를 펼치려는데 때맞춰 소추의 소맷자락을 빠져나온 은빛 실들이 마치 거미줄처럼 능소와 나 사이를 가로막았다.

내가 소추를 향해 일갈했다.


“막지 마라. 소추야, 오늘만큼은 내 저 녀석을 복날 개 패듯 좀 패야 속이 풀리겠다.”

“헤, 내가 그리 쉽게 맞아줄까 봐? 지상 형, 날 더는 물로 보지 마시오. 예전의 내가 아니야. 나 야야장 독귀 능소라고. 능소!”


빡-!


소추가 사기로 된 반찬 그릇으로 능소의 머리통을 후려갈겼다.


“아, 소추 형! 이건 반칙이야, 반칙. 이러면 안 된다고.”

“닥쳐, 인마. 지상 형님한테 말버릇이 그게 뭐야. 응? 이 자식이 오냐오냐해주니까. 형님들 머리 꼭대기에 올라서려고 그래.”

“알았으니까, 그만 때려. 혹 난다고!”


내가 팔짱을 낀 채 배시시 웃었다.


“꼴좋다, 이 자식.”

“지상 형님도 그만 해요. 그리고 아우들 앞에서 은퇴 얘기도 좀 그만하고, 진짜 떠날 사람은 그리 말도 안 하고 그냥 가. 매번 장난하는 것도 아니고, 형 떠나면 우린 어쩌라고 그리 말을 쉽게 하시오?”

“······.”


둘째의 예상 못 한 반격에 내가 꿀 먹은 벙어리가 되었다.

쓰러진 의자를 주워다 얌전히 자리에 앉았다.

능소가 머리를 문지르며 나를 째려보는 사이 주인장이 갓 삶은 비빔국수를 내왔다.

비빔장에 국수를 후루룩 비벼 먹고 다들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능소는 철두와 함께 마차를 타고 혈화문 장원으로 돌아갔다.

그 사이에도 철두에게 여자들이 진짜 자기한테 시집을 안 올 것 같냐고 집요하게 캐물었다.

철두는 얼굴에 식은땀을 뻘뻘 흘리며 끝까지 굳게 다문 입을 열지 않았다.


나는 소추가 잠깐 할 말이 있다 하여 내 숙소가 있는 죽림촌(竹林村) 방향으로 녀석과 길을 동행했다.

소추가 나란히 걸으며 말했다.


“형님, 아까 낮에 금파파(金婆婆)가 소홍루에 왔다 갔소.”


금파파는 혈화문 내 살림살이를 책임지는 할망구다.


“무슨 일로?”

“천룡회(天龍會) 총관(摠管) 곽규(郭赳) 양반이 형님을 좀 보자고 사람을 보내왔답디다.”

“곽규? 그 사람이 왜?”

“금파파는 아마 내년 봄에 있을 천룡회 회장 선거 때문인 것 같다고 했소.”

“천룡회 회장 선거? 뭐야, 시간이 벌써 그리됐어?”


깜빡 잊고 있었다.

7년마다 치러지는 천룡회 회장 선거.


“그러게, 그다지 변한 것도 없는데 시간은 참 빠르게 흘러가오.”

“저번 선거가 바로 엊그제 같은데 벌써 7년이란 세월이 지났구나.”

“누님한테 이번 선거 관련해서 따로 얘기 들은 거 없수?”


소추가 말한 누님은 혈화문 당홍설(唐紅雪) 문주를 지칭한다.

실제 그녀와 나는 네 살 밖에 차이가 나지 않고 그녀 역시 우리처럼 굴다리 출신이다.


하지만 입문은 그녀가 우리보다 훨씬 빨랐다.

당홍설은 어린 나이에 혈화문 전임 문주의 눈에 띄어 그의 애첩이 됐다.

그리고 적당한 때가 됐을 때.

전임 문주와 그의 식솔들을 모조리 살해했다.

살해 방법이 상상을 초월한다.

잠자리에서 전임 문주의 어딘가를 물어뜯었다고 한다.

소문이긴 한데 내가 겪은 당홍설의 실제 성격으로 보아 사실일 가능성이 농후했다.

죽은 문주의 가족들도 하나같이 잔인하게 살해했다.

전임 문주가 평소 개를 좋아해 당시엔 혈화문 장원 안에 큰 개장이 존재했다.

개들의 수도 백 마리가 넘었다.

개들을 일주일을 내리 굶긴 다음 문주의 가족들을 개장에 집어넣었다.

그리고는 복날이 되자 그 개들까지 모조리 도륙 내서 큰 잔치를 벌였다.


그 일이 있고 나서 야야장 사람들은 당홍설을 철혈여후(鐵血女后)라 불렀다.

하지만 그마저도 당홍설이 싫어한다는 이유로 설중혈화(雪中血華)라는 별호가 대신 자리 잡았다.


그렇게 불과 열여섯 나이에 혈화문의 문주 자리를 차지한 홍설이 굴다리로 찾아와 우리를 입문시켰다.


“형님?”

“응?”

“뭔 생각을 그리 깊이 하시오.”

“잠깐 과거 좀 회상했다. 근데 너 아까 나한테 뭘 물어봤었지?”

“홍설 누님이 형한테 이번 선거에 관해서 따로 언질한 게 있었냐고 물었소.”

“아니, 없어. 그리고 나 누님 본 지도 오래됐다. 누님 방에서 나는 아편 냄새가 싫어서 호출이 있어도 일부러 핑계 대고 피했어.”

“그래? 그렇구만. 하지만 그리 싫어도 오늘 중으로는 누님을 한번 봬야 할 거요. 곽규 그 양반 만나기 전에 문주의 의중을 정확히 알고 있어야 할 거 아니요.”

“곽규가 언제 보자고 했는데?”

“내일 미시(未時)에 소중원(小中原) 백운기원(白雲棋園)에서 보자고 했다 하오.”

“기원? 바둑두는 곳?”

“응.”

“욤뵹 할.”

“왜? 형을 생각해서 장소를 정한 것 같은데? 형님, 바둑 고수잖소?”

“고수는 개뿔이. 먹고 살기 바빠서 바둑 둔 지도 오래됐다. 이제 바둑판 내려다보고 있으면 잠만 솔솔 와.”

“그럼, 연락해서 장소를 바꾸던가.”

“됐어. 어차피 할 얘기도 없는데 서로 제 할 말만 하면 끝나겠지. 근데 그게 전부야? 너 아까 나한테 긴히 할 얘기 있다고 했잖아?”

“맞다. 형님. 살인 청부 건 하나 들어왔는데 그거 일단 내가 맡기로 했소.”

“수월한 거야? 안 도와줘도 돼?”

“응, 그냥 항상 하던 거. 치정에 의한 복수. 그건 내가 알아서 할 테니까 형은 신경 쓰지 마시오. 그리고··· 형한테 진짜 하고 싶은 말은 그 백화 녀석 관련해선데. 형, 백화를 어찌 생각하시오?”


소추의 입에서 백화 이름이 나오자, 내가 문득 걸음을 멈췄다.

나는 잠시 대답을 주저하다가 길가에 놓인 커다란 바위의 앞면을 털고 그것을 등진 채 담배를 꺼내 입에 물었다.

소추가 옥으로 만든 화섭자(火攝子)를 꺼내 불을 붙여줬다.

녀석의 애인 애기가 선물한 귀한 물건이었다.

내가 담배 연기를 내뿜으며 소추에게 물었다.


“갑자기 백화 얘기를 꺼낸 이유가 뭐야?”

“형이 그 녀석을 안 좋게 보는 것 같아서.”


내가 퉁명스럽게 반문했다.


“그럼, 반대로 너한테 물어보자. 소추 네가 생각하기에 내가 백화를 좋게 봐줄 이유가 있냐? 백화가 아무리 명문정파 화산파 출신이고 무공이 높다고 해도 일단 거기서 파문당한 녀석이잖아. 게다가 우리는 녀석이 뭣 때문에 파문당했는지도 모르잖아.”

“아니 그건 우리가 따로 조사해봤지만, 정확한 내막을 아직도 파악하지 못했지 않소.”

“그러니까 제 입으로 말해 주면 될 거 아니야, 그런데 안 하잖아.”

“그건 누님이 백화한테 따로 말하지 않아도 된다고 명하셨으니까···.”

“그런데 보자보자하니까 이 새끼가, 너 혹시 백화한테 뇌물이라도 받아 처먹었어? 왜 아까부터 계속 백화 편을 들고 지랄이야?”


내가 사납게 따져 묻자 소추가 멋쩍은 듯 빙그레 미소지으며 말했다.


“하여간 눈치 하나는 끝내준다니까. 그래, 맞소. 나 백화한테 뇌물 받았소. 하하, 아니 실은 어제 백화가 소홍루로 찾아와서 나랑 술 한잔하자고 하더니 갑자기 형님 얘기를 꺼내면서 하소연을 합디다. 자기도 형님한테 잘하고 싶고, 철두처럼 총애받고 싶은데 형님이 도무지 틈을 안 준다고 말이오.”

“지랄.”


나는 잠시 말을 멈추고 담배 연기를 폐 속 깊이 빨아들였다.

소추가 가까이 다가와 진지하게 물었다.


“혹시 녀석을 싫어하는 이유가 따로 있는 거 아니요? 말해 주시오. 나 진짜 궁금하니까.”


내가 눈을 가늘게 뜨고 소추를 바라보며 말했다.


“너무 똑똑해.”

“응?”

“백화 그 녀석, 머리가 너무 비상하다고. 소추 너보다, 능소보다, 철두보다 똑똑해. 바로 그게 문제야.”


소추가 턱을 잡고 잠시 생각하더니 이해하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만일 형이 진짜로 혈화문을 떠나게 되면 백화가 우리 위로 올라설까 봐, 그게 걱정이 돼서 그런거구만. 맞소?”

“그래, 인마. 게다가 백화를 향한 문주의 총애도 무시 못 할 정도고.”

“하하, 편애가 조금 심하긴 심합디다.”

“그러니 나라도 녀석을 견제해 줘야지. 안 그럼 백화 녀석도 당구처럼 고삐 풀린 망아지가 될지 모르잖아.”

“듣고 보니 일리가 있네. 지상 형, 내가 생각이 짧았소.”

“알았으면 됐고, 소추야, 나 아까 애들 있을 때 한 말 그거 빈말 아니다.”

“또, 또 시작이다. 그놈의 은퇴 얘긴 뭐든 결정되면 그때 합시다. 암튼, 오늘은 여기까지. 나 형한테 할 얘기 다 했소, 잊지 마시오. 오늘 누님 만나러 가는 거.”

“알았어. 들어가.”


그 길로 난 소추와 헤어져 죽림촌에 있는 내 거처로 돌아왔다.

원래 모두의 숙소는 혈화문 장원에 마련돼 있지만, 다들 자유분방한 성격 탓에 그곳을 이용하는 이가 적었다.

문주도 그 심리를 잘 아는 터라 비상연락망만 잘 유지하면 다른 곳에 숙소를 마련해서 사는 걸 대충 눈감아 주었다.

피곤한 몸을 침상에 누이자 순식간에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



“아저씨, 아저씨. 일어나세요. 누가 찾아왔어요.”


꼬마 녀석의 목소리에 잠에서 깨어났다.

기지개를 켜며 창밖을 돌아보자 해가 어느새 서산에 걸려있었다.


“아저씨, 누가 찾아왔다니까요.”


하숙을 묵고 있는 주인집 아이가 내 팔을 붙잡고 칭얼거렸다.


“알았으니까, 나가 봐.”

“엄마가 양고기 절여놨는데 식사하고 나가실 건지 아저씨한테 물어보랬어요.”

“양고기? 음, 그러면 먹고 가야겠다. 가서 엄마한테 식사하고 간다고 전해.”

“네.”


아이가 쿵쿵 걸음으로 방을 빠져나갔다.

벗어놓은 옷을 주워입으면서 창밖으로 머리를 내밀었다.

못 보던 말 한 필이 집 근처 향나무 아래 묶여 있었다.

누굴까.

검이 달린 요대를 차고 방을 나섰다.

계단을 내려서자 대청에 놓인 대나무 탁자에 앉아 차를 마시고 있는 젊은 남자가 보였다.

한데 척 보자마자 남자의 생김새가 조금 요상했다.

남자치곤 선이 너무 곱다고나 할까.

둘째 소추가 경극 때 여장했을 때랑 약간 비슷한 느낌이 났다.

그 사람이 나와 눈이 마주치자 재빨리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자가 척척 내게 다가와 다짜고짜 손을 내밀며 말했다.


“안녕하십니까, 이 대인. 저는 금강상단(金鋼商團)에서 나온 마심아(馬心雅)라고 합니다. 상단의 대행수(大行首) 자리를 맡고 있고, 오늘은 상단주이신 마영인 대인의 명을 받고 찾아왔습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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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심아(馬心雅) +2 23.08.03 1,435 17 11쪽
3 교룡곡(蛟龍谷) +2 23.08.02 1,694 19 11쪽
2 천룡회(天龍會) +7 23.08.01 2,433 20 12쪽
1 서(序) +1 23.07.31 2,792 22 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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