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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도황제

무료웹소설 > 일반연재 > 무협, 퓨전

이화영
작품등록일 :
2023.07.31 18:04
최근연재일 :
2023.12.30 10:43
연재수 :
93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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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59
글자수 :
649,521

작성
23.08.01 0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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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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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천룡회(天龍會)

DUMMY

달빛이 먹장구름에 가리기가 무섭게 서늘한 바람이 찾아들었다.

차가운 물방울까지 뺨을 스쳤다.

수하 철두(鐵頭)와 함께 야야장(夜夜場) 내 영업장들을 둘러보고 있던 나는 발길을 재촉해 골패방 안으로 들어섰다.

계산대에서 꾸벅꾸벅 졸고 있던 아상(阿裳)을 깨웠다.


“어서 옵쇼~”

“미친놈.”

“어라, 부 문주님! 웬일이세요?”

“웬일은 무슨··· 어제는 안 왔냐? 철두야, 이 자식 이거 눈 빨간 것 좀 봐라. 이제 영업 시작인데 벌써 이 지랄이면 어떡하려고, 시발. 당장 가서 세수하고 와.”

“죄, 죄송합니다.”


꽁지가 빠지라 뛰어가는 아상을 쫓다 자연스럽게 가게 안으로 시선이 움직였다.

누군가 골패 한 쌍을 내던지며 괴성을 내질렀다.


“야호!! 났네, 났어. 또 났어. 하하하, 오늘은 진짜 눈감고 쳐도 패가 짝, 짝 들어맞는구나. 크크크.”


골패방 단골손님, 염상(鹽商, 소금 상인) 채 씨였다.

일주일 내내 앓는 소리만 늘어놓더니 오늘은 제법 손맛이 좋은 가 보다.

한데··· 콧노래를 부르며 은자를 쓸어 담고 있는 채 씨 맞은편에 낯익은 얼굴의 중년인이 앉아있었다.

웬걸?

내가 쳐다보기가 무섭게 그 남자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기억이 날듯 말 듯 했다.

그자가 나를 한 차례 일별하더니 곧장 내 쪽으로 걸어왔다.

깔끔하게 기른 수염, 고급스런 자색 비단 장삼과 몸 곳곳에 두른 황금빛 장신구.

중년치곤 호리호리한 몸매에 잘 생긴 이목구비가 꽤 인상적인 사내였다.

기억이 났다.

그의 이름은 마영인(馬營忍).

야야장에서 그를 모르면 간자(姦者) 소리를 들을 만큼 유명한 부호 중 한 사람이었다.

저런 부자가 골패방에 와있는데도 내게 기별조차 없었다니···.

내가 이제 막 세수를 하고 돌아온 아상을 째려보자 수하 철두가 녀석의 머리에 꿀밤을 쥐어박았다.


“거기 혹시 혈화문(血華門)의 부 문주 이지상님 아니시오?”


마 대인의 질문에 내가 공수의 예를 올리며 정중히 응답했다.


“맞습니다. 마 대인. 한데 귀한 분께서 어인 일로 이런 누추한 곳까지 행차하셨습니까?”


마 대인은 계산대 옆 옷장에서 장포를 꺼내 걸치고는 차분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역시나, 야야장 흑도 사이에 보기 드물게 겸양의 예를 아는 인물이 있다더니, 그게 딱 이지상님을 두고 하는 말이었군요.”


의례 오가며 할 수 있는 인사말이었지만, 그럼에도 나는 고개를 갸웃했다.

마 대인 개인이야 친해져서 안 될 게 없는 인간이지만 그를 둘러싼 배경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그는 엄연히 비룡방(飛龍幇)의 비호를 받는 사람이었고 비룡방은 우리 혈화문과는 원수지간이나 다름없는 곳이었다.

내가 얼굴을 딱딱하게 굳히고 마 대인을 향해 물었다.


“한 번 더 여쭙겠습니다. 저희 영업장엔 무슨 일 때문에 오셨습니까?”


마 대인이 내 소맷자락을 붙잡더니 가까이 다가와 속삭이듯 말했다.


“잠깐, 조용한 곳에 가서 얘기 좀 나눕시다. 되도록 둘이서만.”


나는 철두에게 술상을 내오라 시킨 뒤 마 대인과 함께 골패방 내실로 향했다.

차 한잔 마실 시간이 채 지나기도 전에 마 대인은 자신이 하고자 하는 얘기를 모두 끝마쳤다.

내가 숙고 후 심각한 어조로 마 대인에게 물었다.


“혹시 실례가 안 된다면 대인께서 제 사업에 대해 알게 되신 경위를 말해 주실 수 있습니까?”


마 대인이 빈 술잔을 탁자에 가만히 내려놓더니 거침없이 대답했다.


“혈화문 문주 당홍설님의 조카 이름이 당구 맞소이까?”

“맞습니다.”

“며칠 전에 그 친구가 비룡거리에 있는 망빙루에서 지인들과 함께 술을 마셨는데, 공교롭게도 그 자리에서 지상님 얘기가 나왔습니다. 제가 마침 그 뒤편에 앉아 있었구요.”


마 대인의 말에 흠칫했다.

부하들에게 기밀유지를 그리 당부했건만, 정작 그걸 깬 게 문주의 하나뿐인 조카 당구라니···.

머릿속에 당구 녀석의 뻔뻔한 면상이 떠올랐다.

마 대인이 다시 입을 열었다.


“지상님, 얘기가 더 새 나갔을 걱정은 안 하셔도 됩니다. 때가 늦은 새벽이었고 또 그날 망빙루에 손님이라곤 당구 일행과 저뿐이었습니다.”


내가 마 대인에게 물었다.


“그래, 마 대인께서 예까지 찾아와서 헛소리나 처하실 양반은 아닐 테니 일단 그 문제는 그렇게 넘어갑시다. 한데 성공 여부가 불투명한 제 사업에 야야장(夜夜場) 최고 큰 손이신 마 대인께서 돈을 투자하시려는 이유가 뭡니까? 또 설사 제가 대인의 제안을 받아들인다고 해도 향후 비룡방의 문책은 어찌 감당하시려고요?”


내 말에 마 대인이 갑자기 파안대소를 터뜨렸다.

순간 나도 모르게 홍사검(紅蛇劍)으로 손이 뻗쳤다.

황당했다.

방금 내가 한 말 어느 부분이 그리 우스워서 사람을 앞에 두고 저리 비웃는단 말인가.

마침 휘장 밖에서 대기 중인 철두와도 눈이 마주쳤다.

베어 버릴까?

내가 눈빛으로 묻자 철두가 각진 고개를 빠르게 끄덕였다.


“마 대인!”


냉랭한 분위기를 감지한 마 대인이 웃음을 그쳤다.

그가 곧 진중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미안합니다, 부 문주. 사업 생각에 나도 모르게 갑자기 실소가 터져 나와서 본의 아니게 큰 무례를 저질렀소이다.”

“마 대인이 보기에 내가 하려는 사업 어느 부분이 그리 웃깁니까? 아니 그리 생각하시면서 도대체 돈을 투자하시려는 이유는 또 뭡니까?”

“오해입니다. 제 말은 그런 의미로 우습다는 게 아닙니다. 사실 지상님이 계획한 사업을 제가 십여 년 전에 똑같이 준비했던 적이 있습니다.”

“······.”

“하지만 그 당시엔 사람들의 조롱 때문에 사업을 바로 접었습니다. 한데 그때와 똑같은 사업을 남들의 눈도 아랑곳하지 않고 추진하려는 사람을 만나게 되니, 마치 인생의 지인을 만난 것만 같아 너무 기뻐 그만 웃음이 터져 나온 겁니다.”


최대한 참고 있지만, 마영인의 얼굴엔 웃음꽃이 한가득 숨겨져 있었다.

보아하니 진정으로 기뻐하는 것 같았다.

내가 마 대인을 향해 몸을 기울이며 물었다.


“하면 비룡방은 어쩌시렵니까? 방주 추문강(秋刎鋼)이 가만있지 않을 텐데요?”


마 대인이 손으로 수염을 쓸어내리며 대답했다.


“그건 지상님이 신경 쓰지 않으셔도 됩니다. 이래 봬도 제겐 나름 강력한 뒷배가 있답니다. 하하, 그리고 말이 나와서 말인데 제가 그동안 비룡방과 거래를 유지한 건 아버지 대의 인연이 있어서였습니다.”


그가 술잔을 비운 뒤 말을 이어나갔다.


“부친께서 돌아가신 지도 오래됐고, 또 비룡방과는 그동안 손발이 맞지 않아 의견 다툼이 많았습니다. 덕분에 제가 입은 손실도 꽤 컸구요. 그런 이유로 이번 기회에 혈화문 지상님과 손발을 한 번 맞춰볼 생각입니다. 뭐 잘되면야 앞으로 다른 일도 함께해볼 생각이고요. 물론 지상님이 허락하신다면 말이죠.”

“······.”


직접 듣고도 믿기지 않았다.

호박이 넝쿨째 굴러들어온다는 말이 이런 경우를 두고 하는 말이 아니겠는가.

야야장 최고의 큰손 마영인.

하나하나가 명문에 해당하는 거대 표국 세 개를 소유하고 있고, 또 동해 앞바다에 최대 규모의 물류창고까지 갖추고 있는 대부호 마 대인.

그가 지금 내게 동업을 제안하고 있다.


“지상님?”


나는 손에 묻은 땀을 재빨리 옷자락으로 훔치고 마 대인이 내민 손을 꽉 붙들었다.


“좋소, 그리 해봅시다.”

“하하, 역시 화끈하게 응하실 줄 알았습니다. 그럼 자세한 사항은 내일이나 모레쯤 다른 장소에서 만나 의논하기로 합시다.”

“그럽시다.”


이후 골패방 밖으로 마 대인을 배웅했다.

빗줄기가 굵어져 마차를 따로 불러주려 했으나 마 대인이 한사코 거절했다.

내가 생각이 짧았다.

일순 골목 어귀에 숨어있던 대인의 황금 마차가 우리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마차는 총 다섯 필의 말 탄 무사들이 앞뒤로 호위하고 있었고 그들에게서 느껴지는 진기도 예사롭지 않았다.


마 대인이 떠난 뒤, 나는 철두와 함께 수금한 돈을 자루에 챙겨 넣었다.

이것으로 대충 오늘 일과는 끝이었다.

그런데 그때 갑자기 골패방안으로 백화(白花) 녀석이 뛰어 들어왔다.


“지상 형님! 큰일 났습니다. 능소 형님이 오대루에서 사고를 쳤습니다.”


내게는 친동생과 다름없는 아우들이 있다.

지금 같이 있는 철두와 백화는 한 다리 건너 동생들이고 진짜 아우들은 능소와 진소추란 놈들이다.


우리 세 사람은 태어나자마자 야야장 걸인배들이 모여 사는 굴다리 밑에 버려졌고, 저잣거리에서 동냥 밥으로 목숨줄을 연명하다 거의 같은 시기에 혈화문이라는 살수 조직에 입문했다.

작금에 사람들의 입방아에 오르내리는 야야장 삼귀(三鬼)가 바로 우리 세 사람이다.


검귀(劍鬼) 이지상(李志常).

독귀(毒鬼) 능소(凌瀟).

사령귀(絲靈鬼) 진소추(陳韶萩).


나와 철두, 백화는 거센 빗길을 내달려 순식간에 오대루에 도착했다.

굳게 닫힌 문을 쾅, 쾅쾅 두드리자 안에서 문이 열리며 혈화문 부하들이 우르르 쏟아져 나왔다.

냉큼 주루로 들어서자 기가 막힌 광경이 눈앞에 펼쳐졌다.


키가 내 배꼽에도 안 차는 단신 능소가 발가벗은 채로 탁자 위에서 춤을 추고 있었다.

바닥에는 아까 백화가 말한 무림맹 사람이 입에 거품을 물고 쓰러져 있었다.

그자의 이름은 조문락(曺蚊落).

야야장 거리에서 혈화문 뒤를 봐주며 뇌물을 받아먹고 사는 부패 위사 중 하나였다.

맥을 짚어보니 아직 죽지는 않았다.

다만 왼팔 전체가 푸르딩딩한 색으로 물든 것으로 보아 능소의 독에 당한 것 같았다.


“해독약은?”


백화에게 묻자 녀석이 말없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마침 능소가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탁자 위로 몸을 날려 녀석의 멱살을 붙들었다.

그제야 나를 알아본 능소가 배시시 웃으며 지껄였다.


“어라? 형님. 언제 오셨수? 딸꾹.”

“미친 새끼야. 해독약 어딨어?”

“해독약? 무슨 해독약? 아, 저 돼지 새끼 살릴 해독약? 저거 그냥 죽게 내버려 둬. 죽어 마땅한 놈이야.”

“야, 이 개새끼야. 내가 당분간 사고 치지 말라고 했어, 안 했어. 누이가 알면 어쩌려고 건드려도 하필 무림맹 사람을 건들어, 이 미친 자식아.”

“형, 그렇게 화내지만 말고 내 말 좀 들어봐. 저 조문락 새끼가 아까 나한테 뭐라고 한 줄 알아? 내가 평생 장가를 못 갈 거래. 심지어 홍등가 기녀들도 나한테는 시집을 안 올 거래. 형, 내가 그런 소리까지 들으면서 참아야겠어? 응? 이 사나이 대장부 능소가 그따위 말도 안 되는 모욕을 참아야 하냐고? 응? 말해봐, 당장 말해보라고!”

“닥쳐, 이 새끼야.”


내가 팔꿈치로 능소의 혼혈을 찍었다.

쓰러진 능소를 백화에게 넘긴 뒤 주루 사람들을 불러모았다.

목격자의 수는 루주 부부 포함 손님 셋, 점소이 둘 이렇게 일곱이었다.

그 수는 많지 않았지만 루주 부부와 점소이는 이 바닥에서 오래도록 장사를 이어온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바닥에 엎드려 몸을 바들바들 떨고 있었다.

용기 낸 늙은 루주가 무릎걸음으로 내게 다가왔다.

그가 내 바짓가랑이를 붙들고 자신은 죽어도 좋으니 부인만큼은 살려달라 애처롭게 애원했다.

곁에 있던 백화가 늙은 루주를 발로 차 멀찌감치 밀어버리고는 카앙- 소리와 함께 백룡도를 뽑아 들었다.


열린 창문으로 번쩍번쩍 천둥벼락이 내리쳤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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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천룡회(天龍會) +7 23.08.01 2,444 20 12쪽
1 서(序) +1 23.07.31 2,819 22 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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