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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코코 님의 서재입니다.

하얀 늑대( White Wolf )

웹소설 > 자유연재 > 로맨스

루코코
작품등록일 :
2019.04.07 20:06
최근연재일 :
2019.05.20 03:19
연재수 :
2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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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수 :
0
글자수 :
10,724

작성
19.05.05 22: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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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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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1.악몽(1:늪)

맹수




DUMMY

란희의 눈 앞에 펼쳐져 있는 어둠의 세포는 물샐 틈 없이 촘촘하고 견고했다. 시간을 가둬둔 동굴속에서 연공을 쌓은 육중한 어둠을 꺼내놓은 듯한 밤이었다. 낯설고 생경하기만한 깜깜하고 아득한 이곳의 정체는 무엇이고 여기는 대체 어디란 말인가? 이름 모르는 험준한 산길임에는 틀림없는데 더이상의 호흡이 불가할 지경에 다다른 가슴을 부여잡고도 왜 이토록 쉼없이 달리고만 있을까?

미친 듯이 날뛰고 있던 그녀의 심장과 촛불처럼 꺼져가는 이성의 끈이 물리적인 시간과 맞물린 밤이란 존재가 주는 공포의 올가미에 의해 조여들고 있었다. 그 위력은 너무도 거대해 밤과 어둠의 찬양자인 작은 벌레들마저 언감생심 밭은 숨소리조차 내쉬지 못하게 할 지경이었다. 그 와중에 들리는 거라고는 그냥 무작정 내달리는 그녀 자신뿐이었다.

란희는 자신의 가쁜 숨소리가 거슬렸다. 그녀의 발아래서 냉소를 쏟아내며 비아냥거리는 나뭇가지와 바스락바스락 비난을 숨기지 않는 마른 나뭇잎들마저 원망스러웠다. 세상의 모든 성조와 음향과 울림, 그리고 잡티에서 나오는 소리마저도 죄다 집어삼키고 있는 두껍고 시커먼 어둠이 어째서 란희 자신이 내는 소리에는 관용도 배려도 없는 것인지 분노가 치밀었다. 어쩌면 이런 상황으로 몰고온 나약한 스스로에게 내는 노여움인지도 모른다.

갑자기 날개가 돋아나 날아갈 수 있으면 모를까 그럴 수 없는 이상 도주한다는 게 더는 무의미했다. 다만 그것을 깨달으면서도 차마 멈추지 못하는 그녀의 무의식속에 잠재되어 있는 생명에의 의지를 믿고 따를 수 밖에 없을 뿐이었다. 반드시 살아야겠다는 집념 같은 것에 사로잡힌 란희는 바로 코 앞도 분간할 수 없는 숲을 헤치며 마지막 사력을 다해 탈주에 박차를 가하고 있었다.

그것은 죄다 놈들 때문이었다. 처음에는 하늘거리며 반짝이는 조각들이 별이라 생각되었다. 꿈속에서는 별들이 생명체일 수도 땅 위에서 춤을 출 수도 있을 테니까. 불가능함을 가능하게 하는 게 바로 꿈의 능력이자 장점이니까. 아름답고 눈부신 별들이 땅 위를 수놓으며 그녀와 더불어 밤새 화려한 축제의 장을 연출하려는 의도일 수도 있다. 또한 책들과 씨름하며 글쓰는 일 밖에 모르는 재미없고 무료한 그녀의 일상에 작은 위안이 되어주려는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착각이며 오산이었다. 란희의 두 눈을 홀리고 그녀의 마음을 동요시켜 놓은 것은 별들이 아니었다. 별들의 춤사위도 그들의 위안이나 위로도 하물며 축제의 장의 연출가도 아니었다. 흔들거리며 천천히 조금씩조금씩 다가서는 존재는 먹잇감을 노리는 괴물이며 맹수들이었다. 놈들은 단 한순간도 놓치지 않고 스며들 듯 이글거리는 눈빛을 쏘며 잡아 드시겠다는 의도와 의지를 가감없이 드러냈다. 그리고 단번에 제압해버리겠다는 위압감을 숨김없이 발산했다.

놈들의 실체를 정확히 가늠할 수는 없었지만 그 앞에서라면 어떤 목숨이라도 보잘 것 없고 하찮게 짓밟혀 사라지리란 것을 짐작할 수 있었다. 파리채 앞에서의 파리도 고양이 앞이나 쥐덫속의 생쥐도 그리고 바람 앞에 촛불도 그녀 자신 보다는 나은 처지로 여겨졌다. 아무리 위급하고 급박한 상황이라 해도 스스로를 처참하고 비굴하게 낮추는 일 따위는 해본 적이 없었다. 그 어디에서도 그 어떤 순간에도 그 누구 면전에서도 자존감을 잃지 않았던 그녀였었다.

그렇지만 이젠 큰소리나 호언장담 따윈 섣불리 입밖으로 내뱉을 수가 없게 되었다. 번뜩거리며 노려보는 놈들의 눈동자가 별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차리던 즉시 심장의 펌프질이 거세짐과 동시에 간덩이도 쭈그러져 버렸다. 그리고는 이내 온몸의 땀구멍이 곤두섰다.

두려움은 한순간이었다. 머릿속은 백짓장이 되어 현기증을 불러일으켰다. 소름끼치도록 싸늘한 공기속이었지만 뒤돌아서 달아나기도 전에 입고 있던 옷가지들이 식은땀에 의해 축축하게 거의 녹초가 되어가고 있었다. 시선과 눈빛이 오가던 찰나의 시간 동안 그녀는 이미 놈들에게 제압당한 채 그 아구지속으로 찢겨 들어가고 있었던 것이다.

그녀를 뒤쫓는 존재가 무엇이든지 간에 당장이라도 불을 뿜어낼 듯한 잔인한 눈빛과 먹잇감을 한입에 아작을 낼 것 같은 날카로운 이빨들만으로도 충분히 난폭하고 공포스러운 놈들임을 감지했다. 그 비열한 눈빛과 위협적인 이빨은 으르렁거림이 터져나오는 순간 삶의 끝을 예고하는 듯했다. 설상가상으로 그 놈들이 한두 마리가 아니라는 것이었다. 처음 맞닥쳤을 때의 경악과 두려움을 어떻게 떨쳐내고 도망칠 생각을 했는지 그것은 기적과도 같은 것이었다.

놈들의 위협은 너무도 막강해 그 자리에 주저앉아 죽음을 받아들이는 게 현명한 처사이자 덜 비굴한 저승길인 것처럼 여겨졌다. 놈들을 벗어날 수 있는 길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고 벗어난다 해도 찰나일 뿐 결국은 놈들의 더러운 손바닥 안일 게 분명했다. 더욱이 그녀에게는 어두운 밤이라는 최악의 상황이 놈들에게는 더없는 최상의 조건일 테니 탈출구나 비상구를 찾는다는 건 낙타가 바늘구멍을 지나갈 확률보다 훨씬 더 어림도 없는 경우의 수였다. 아니 어쩌면 경우의 수라는 게 계산이나 될런지 의심스러울 지경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란희는 움직임이 둔화된 지친 다리를 이끌고 대탈주를 결심했다. 운동신경이 부재인 여성일지라도 인간으로서의 자존감은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 그녀였다. 야생의 짐승에게 스스로를 쉽게 포기하여 제물로 내어주기는 죽기보다도 싫었던 것이었다. 비록 달아나다 물어 뜯겨 죽는다 해도 적어도 세상에 하나의 생명체로 태어나게 해주신 부모님에 대한 예의는 지켜야 하는게 아닐까? 부모님께서 사랑으로 주신 귀한 목숨을 끝까지 지키려는 최소한의 시도는 해야 하지 않을까?

그리하여 란희는 결국 살기 위해 사력을 다해 탈주를 감행했다. 끈적끈적 비척지근한 놈들의 침내를 뒤로한 채 내달리기 시작한 것이다. 그 어떤 귀인도 구원자도 없는 고독하고 공포스러운 길을 어둠이라는 또다른 괴물과 싸우며 스스로 검은 그림자로의 변신을 감행했다. 더이상의 주저나 망설임은 생사의 기로에 서 있는 소소한 선택권마저 쓰레기통에 쳐넣는 꼴이라 여겨졌다. 그리고 그렇게라도 해서 조금이라도 놈들과의 거리를 벌려 놓으면 그만큼 생명줄도 좀더 길어질 것이라 판단했다.

그러나 그녀가 놈들과 멀어졌다고 느끼는 순간 싸워야 할 다른 녀석들이 하나둘씩 생겨났다. 그녀의 내면의 불안과 위협이 만들어내는 수많은 허상들이 잔인한 속내를 드러내며 달려들었다. 이 녀석들에게서도 역시 자비를 기대할 수는 없었다. 끝이 보이지 않는 까마득한 어둠속에서 그녀가 할 수 있는 일이란 고작 보이지도 않는 길도 아닌 길을 무작정 달리는 것뿐이었다.

자유를 갈망한다는 것이 지금의 처지에서는 사치였다. 다만 겁에 질린 애처로운 몸둥이 하나 구겨넣을 수 있는 작은 공간이라도 발견하기를 바랐다. 절체절명의 위기를 잠깐이라도 비껴갈 수 있는 곳이면 지옥의 한귀퉁이라도 좋을 듯 싶었다. 숨이 턱까지 차올라 거칠게 내몰아쉬는 숨소리에 실려 오장육부가 전부 튀어나올 것 같았다. 아니 어쩌면 오장육부가 튀어나오기도 전에 심장이 먼저 터져버려 피를 토하고 꼬꾸라져버릴 수도 있는 일이었다.

죽음이란 게 두렵지 않을 리는 없었다. 한때는 삶보다 죽음에게 더 기대고 의지하며 애착을 넘어 집착에까지 도달했었음을 녀석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란희에게 글쓰는 일은 그런 것이었다. 제살을 깎다 못해 뼛속까지 하얗게 제분시키는 그런 처절한 일 말이다.

글쓰는 삶을 산다는 것은 배고픔을 가중시켜 육체를 쪼들리게 하는 것 이상으로 영혼을 고문하고 괴롭히는 일이었다. 능력이나 재주나 기술 따위가 다른 작가들에 비해 턱없이 모자란 수준임을 인정하면 할수록 온전한 정신이 버텨낼 여지는 점점 각박하고 황폐해졌다. 영혼까지 탈탈 털어버리는 것은 고사하고 생각의 바다를 흙더미로 메꾸고 돌덩이로 내리눌러 제대로 된 글 한줄도 쓰지 못해 절필할 지경에까지 다다랐었다.

그런 그녀가 세상의 끈을 끊으려 저승 문턱 앞에서 우물쭈물 하고 있는 사이 변화의 바람이 불었던 것 같다. 그 바람은 미풍이 아니라 태풍이며 쓰나미였던게 아니었던가 싶다. 그녀가 인지하지 못하던 혼수상태에서 어떤 과정을 거쳐 거기까지 이르게 되었는지는 모르지만 세상살이를 내려놓는 법이 몸에 배여 있었고 그 덕분에 병원 침상에서 깨어나자마자 글쓰기를 재가동하기 시작했다.

여기까지 오는 데 걸린 시간에 크게 의미를 부여하고 싶지는 않았다. 부끄럽게도 스스로의 목숨을 가벼이 여겨 지옥 끝에다 하찮게 던져버리려 한 전적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인지 버젓이 작가라는 구역에 이름을 올려 놓고도 늘 무언가 부족하고 모자람 투성이라 스스로를 낮추며 어디에서든 늘상 뒤꽁무니만 빼는 꼬락서니였다.

그런 소심하고 비겁한 못난이 작가에게 뜻밖의 제안이 들어왔고 란희는 그것을 거절할 단 하나의 이유도 없었다. 시도 때도 없이 역마가 발동하여 한 곳에서 가만히 붙박혀 글쓰는게 체질이 아니라는 타고난 팔자 소관 때문인지 서른을 훌쩍 넘긴 나이에도 방 한칸 제대로 없던 그녀였다. 글을 써서 들이오는 약소한 인세마저도 모두 집으로 송금해야 했으니 돈을 모을 여력마저도 허락되지 않은 처지였다.

다만 글쓰는 일을 천직으로 여긴 탓에 가난이나 배고픔 따위는 그녀의 삶의 장애물 축에도 끼지 못했다. 게다가 돈에 대한 거창한 꿈이나 환상은 개나 줘버린지 오래였다. 글을 쓸만한 자그마한 공간만 있다면 환영에 불과한 돈은 필요한 가족들이 나눠 쓸 수 있는 것으로 만족을 대신했다. 그녀가 글을 쓰고자 했던 이유는 글쓰는 작업 그 자체를 애정하며 정신과 영혼의 풍요로움을 채우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그랬던 그녀인지라 낯선 제안을 덥썩 낚아채 물고 생소하다 못해 일면식도 없는 미지의 땅으로 가리라고는 상상조차 해본 적이 없었다. 아마 란희 자신도 그녀의 결정에 속으로는 소스라치게 놀라면서도 자존심을 세우느라 때늦은 후회나 뒷북치는 계약 파기는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었던 게 틀림없었다. 그러니 그런 대형 사고를 쳐놓고 혼자 속앓이를 얼마나 했으면 이렇듯 악몽속에서 헤어나오질 못하고 어둠의 늪에 빠져 허우적거리고 있는 게 아닐까.

그러나 그녀는 꿈속이든 현실이든 지금껏 그래왔던 것처럼 최선을 다하고 있었다. 자존심도 지키며 자존감도 잃지 않은 채 적절한 노력을 쏟아붓고 있었다. 완연한 형체도 모르고 정확히 어떤 성질이나 취향을 가졌는지 알 수 없는 허상 같은 놈들에게 끝까지 무릎을 꿇는 일은 없을 것이다.

시작점이 어디였든 어쩌면 처음 맞닥친 그놈들 또한 냉혹한 어둠이 빚어낸 망상의 일환일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러니 빛줄기 한자락이면 거뜬히 미로 같은 이곳을 벗어날 수 있을 것이다. 한줄기 빛을 찾기만 한다면 여기서의 모든 불행과 절망은 끝낼 수 있으리라. 하지만 문제는 그때까지 그녀에게 달릴 여력이 남아 있을지 의문이었다. 의식이나 의지와는 상관없이 그녀가 버텨낼 에너지를 전부 소진할 시엔 엎어지면 코 닿을 데에 희망의 빛이 손짓을 한다 해도 무용지물일 테니까.

란희는 나름의 계산 방식으로 힘의 균형과 분배를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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