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루코코 님의 서재입니다.

토우

웹소설 > 자유연재 > 로맨스

루코코
작품등록일 :
2018.04.30 16:26
최근연재일 :
2018.05.16 14:32
연재수 :
31 회
조회수 :
11,258
추천수 :
4
글자수 :
155,321

작성
18.05.11 00:06
조회
356
추천
0
글자
11쪽

본격적인 노동

토우 녹차




DUMMY

"민채씨? 이거 뭐야? 가마 온도 제대로 체크했어요? 색깔이 영 엉망인데?"

"1260도 맞췄었는데 ..., 혹시 물감을 잘못 쓰신 건 아닐까요? 다 마르지 않았는데 덧칠을 하셨다든지 농도 조절을 잘못 하셨을 수도 ......."

"그럼 전적으로 나의 실수라는 거예요?"

은정은 민채의 말을 가로채며 한치의 물러섬 없이 까칠하게 몰아붙이고 있었다.

"이 곳의 작업 환경을 나보다 더 잘 아는 것처럼 말하네요? 자기 잘못은 하나도 없는 것처럼? 하루 이틀 작업한 것도 아니고 익숙해도 내가 더 익숙하고 하나를 알아도 내가 더 알지 않겠어요? 며칠 되지도 않은 사람이 뭐가 그렇게 잘나서 내 말에 지적질을 해요? 반박을 할 사람이 따로 있지 ..., 난 여기서 벌써 10년이 다 됐어요. 아시겠어요?"

"죄송합니다. 다음부턴 체크된 온도라도 한번 더 확인하고 굽겠습니다."

민채는 많은 사람들의 시선이 더해지자 그냥 조용히 무마하고 싶었다. 그러나 은정은 아직 멈출 뜻이 없는 듯 했다.

"죄송하다면 다예요? 내일 물량을 맞춰야 하는데 이거 다 못 쓰게 됐잖아요! 듣기로는 조소 전공에 흙도 좀 만졌다더니 능력은 영 '꽝'인가 봐요?"

은정은 많은 동료들 앞에서 민채를 서슴없이 깎아내리고 있었다.

"그러니 그 정도의 경력에도 청소부에 허드렛일이나 하고 있겠지만? 그렇다고 그게 이 일의 면죄부는 될 수 없지 않겠어요? 어떻게든 책임을 지셔야지 ..., 아닌가요?"

"이런 말씀까지 드리고 싶지 않았지만 이 곳에서 경력이 10년까지 되셨다니 드리는 말씀인데 ..., 이건 누가 봐도 가마의 책임이라기 보다는 색을 잘못 칠한 분의 실수인 게 확실하지 않나요? 가마의 잘못이라시니 어떤 식으로든 책임을 지겠습니다만 자신의 잘못을 회피하기 위해서 두 번 다시는 에먼 사람은 안잡으시면 좋겠네요. 10년 경력이 아까우시니까요. 차라리 경력이 10년이나 됐다는 말씀은 하지 마시지 그러셨어요. 저 같으면 부끄러워서도 말 못했을 거예요."

은정은 화를 이기지 못하고 민채의 뺨을 올려 붙였다.

'찰싹!'

뺨을 때리는 소리가 작업장에 울려 퍼졌다. 민채보다 지켜보고 있던 사람들이 더 놀란 것 같았다. 수근대는 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려 나왔다. 민채는 잠깐 뺨을 문지르더니 그냥 허탈하게 웃었다. 그러자 자신을 비웃는다고 느낀 은정이 손을 다시 휘둘렀다. 그러나 민채는 이번에는 뺨 맞기를 거절했다. 은정의 손을 잡고 막았다.

"뺨으로 오늘 책임을 다 질 수 있다면 얼마든지 맞아 드리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이제 그만 하시죠, 은정씨!"

"뭐야? 뭐라구?"

"피차 더 추해지기 전에 그만두는게 좋지 않겠어요? 모자란 물량은 며칠 있다가 배송해드린다고 사과드리면 되는 거고 그게 안된다면 더더욱 죄송하다고 다른 그릇들로 맞춰 드리겠다고 하면 되지 않겠어요? 물론 그마저도 거부 당하면 제가 모두 변상해드리겠습니디. 가진 건 없지만 그것만이 책임을 다하는 방법이라면 어쩌겠습니까, 저의 방이라도 빼야지 ......."

민채는 농담처럼 말하고 있었지만 진심이었다.

"그러니 이제 그만 하시고 하시던 작업 마저 하세요. 제가 도울 일이 있으면 돕겠습니다. 이미 들으셨으니 아시겠지만 흙을 전혀 모르지는 않거든요. 비록 근무시간에는 그게 제게 주어진 일이라 허드렛일 밖에는 할 수 없지만 퇴근 시간 지나면 흙을 좀 만져도 되지 않을까요? 만져도 된다면 도와 드리겠습니다."

"됐어요. 당신 도움 따윈!"

은정은 주춤거리더니 자신의 작업 자리로 돌아가고 있었다. 화는 조금 누그러진 듯 했다. 민채는 지켜보던 시선들에게 미안한 미소를 지어보이며 말없이 인사를 남기고 밖으로 걸음을 떼어놓았다. 손수레를 들고와 조금 전 그 실패작들을 쓰레기장으로 가져가기 위해서였다. 그 일 역시 그녀가 맡은 노동 중에 하나였다. 실패작들이 생기면 수거해서 그것들을 죄다 깨부수는 일.

민채는 손수레에 실린 실패작들을 쏟아 붓다가 힘에 부친 듯 앞으로 철퍼덕 꼬꾸라졌다. 끌고 오는 동안 모든 힘을 다 소모시킨 탓에 남아 있는 힘이 거의 없었다. 그런데 하필이면 장갑도 미리 챙겨 끼지 못해 상처가 제법 깊었다. 게다가 깨진 조각들이 그녀의 낡은 청바지를 뚫고 무릎까지 할퀴고 있었다. 민채는 아무렇지 않게 그 깨진 그릇들의 조각 위에 엉덩이를 붙여 쉬었다. 자신의 지금을 닮아 있는 그것들을 만지작거리며 힘없이 웃었다. 이런 일이 다른 사람들 눈에는 하찮고 시시하고 보잘 것없이 보이겠지만 민채는 이런 일에서 새삼 고마움이 느껴졌다. 빈틈없이 꽉 채워져 쉴틈없이 돌아가는 일과가 있어 그나마 가슴 저리는 아픔 따위나 누군가에 대한 간절한 그리움을 잊으며 지내는 것이다. 이런 노동이 아니었다면 수없이 무너지고 자빠져서 하루에 열 두번도 더 울었을 것이고 수천 수만 번도 더 후회했을 것이다. 그러니 이 까짓 상처가 대수며 이 따위 피가 뭐 그리 대단한 아픔이겠는가. 그냥 웃어 넘기면 그만일 뿐이다. 민채는 한껏 추켜 세워놓은 손수레 바퀴에 기대 앉으며 하늘을 올려다 보았다. 순간 하늘이 아니라 태주의 화난 얼굴이 드리워져 보였다. 환영처럼 느껴졌다. 하도 복수니 앙갚음이니 주절주절거린 탓인가 보다. 그렇게 생각했다. 그러나 그는 실체였고 실사였다. 그의 쩌렁쩌렁한 목소리가 그것을 증명해 주고 있었다.

"일어나!"

민채는 놀라 자리를 박차고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윗사람을 대하듯 정중하게 인사를 올렸다.

"따라와!"

하지만 그 명령만은 받아들이고 싶지 않았다. 예비 출근 날 그의 추행은 드러나지는 않았지만 민채에게 트라우마로 자리하고 있었다.

"여기서 말씀 하셨음 좋겠습니다."

태주는 냉담한 얼굴로 민채를 쳐다보며 천천히 웃음을 떠올렸다. 그녀의 말의 의미를 알아챈 것이었다.

"너한테는 아쉬운 말이겠지만 .., 난 장소 따위는 안 가려. 어느 누구의 시선 따위도 신경쓰지 않으니까. 그러고 싶다면 여기서도 얼마든지 할 수 있다는 뜻이야. 알겠어? 그러니 괜히 자극하지 말고 따라오는게 좋을 거야."

민채는 그의 뒷모습을 쏘아보며 마지못해 걸음을 떼어놓았다.

"앉아!"

태주는 의자를 들이밀며 그녀에게 자리를 만들어 주었다. 그리고는 구급약상자를 가지고 나와 그녀 앞에 있는 테이블 위에 내려놓고 그녀와 마주 앉았다.

"믿지 않을지도 모르지만 의대 본과 2년 때 조소과로 편입했었어. 그러니 기본 치료는 어느 정도는 해."

그는 약상자를 열어 소독약과 연고, 붕대와 일회용 밴드를 꺼내 그녀를 치료하기 시작했다. 먼저 자신에게서 의심의 눈빛을 풀지 않는 민채의 손을 잡아 억지로 끌어다 꺼내 놓았다. 그리고 핀셋으로 솜뭉치를 집어 소독을 먼저 시작했다. 민채는 의외의 그의 정교하고 군더더기 없는 치료에 의대생이었다는 말은 믿기로 했다. 그러나 그가 또 언제 돌변해 자신을 당혹하게 만들지 긴장을 늦출 수가 없었다. 손 치료는 생각보다 시간이 걸렸다. 도자기들이다 보니 깨어진 가루가 상처 사이사이에 끼어 눈에 보이는 큰 상처들 보다 더 아팠다. 그는 맑은 식염수를 부어 피와 가루들을 씻어내고 슬쩍 문질러 보더니 연고를 발랐다. 가루들이 거의 씻겨 내린 것을 확인했던 것 같았다. 꼼꼼하게 소독과 연고를 다 바르고 나서 붕대를 돌려 감는 그의 손놀림은 물레 위에서 도자기를 빚어내듯이 유려하고 능숙했다. 순간 민채는 그가 전향하지 않고 그대로 의사가 되었더라도 실력 있는 뛰어난 의사가 되지 않았을까 라는 생각을 했다. 그는 잠깐 그런 민채를 흘낏 보고 나더니 바닥에 무릎을 꿇고 앉았다. 찢어진 청바지 아래로 드러난 상처를 치료할 참이었다. 민채는 당황해 하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다리는 됐습니다. 손도 괜찮았는데 말씀도 안해주시고 억지로 치료를 하시는 바람에 그냥 하시는 대로 있었을 뿐이에요. 이것으로 충분합니다. 이것만으로도 감사합니다. 그러니 무릎은 그냥 두셔도 정말 괜찮아요. 아프지 않아요. 부위가 넓어 그렇지 깊지는 않은 상처라 ......."

태주는 민채의 말이 끝을 맺기도 전에 바지를 찢어 발겼다. 자신의 단순한 호의조차 거부하는 그녀에게 화가 났다. 그의 친절한 배려조차 불순하게 받아들이는 데 분개했다. 그래서 그녀를 찢어 발기는 대신 분노의 수치 만큼 힘을 끌어 올려 그녀의 바지를 찢어버렸다. 치료를 위해서이기는 했지만 의도치 않게 앞트임 청바지가 되고 말았다. 그는, 너무 놀라 멍하니 찢어진 바지를 내려다보며 말문을 잃어버린 민채의 손을 잡아 아래로 힘껏 끌어 앉혔다. 그리고 마침내 참지 못하고 폭발해버렸다.

"넌 왜 그렇게 말을 들어먹질 않니? 안아다 침대로 끌고 가 내동댕이를 쳐당해 봐야 말을 들을래? 도대체 뭐가 문제니, 뭐가 잘못된 거냐고?"

민채는 아버지의 노여움을 산 아이처럼 눈물이 맺혔다. 그리고 커다란 눈망울로 그를 쳐다보다가 고개를 떨구었다.

"죄송합니다. 그냥 이 정도는 아프지 않아서 그냥 이 정도는 괜찮아서 굳이 번거롭게 치료 않으셔도 되니까 그래서..., 죄송합니다. 화나시게 해서. 죄송합니다."

태주는 아무말 없이 양쪽 다리도 능숙하고 재빠르게 치료를 마쳤다. 그러는 동안 그의 화도 노여움도 조금씩 풀린 듯 했다. 그는 다시 자리에 앉으며 그녀를 자신 앞으로 바싹 당겼다. 그리고 손을 뻗어 그녀의 턱을 걷어 올리며 시선을 맞추었다.

"상처는 참는게 아니라 치료를 해야 하는 거야. 그게 외상이든 마음의 상처든 치료 방법은 있으니까. 알겠니?"

민채는 눈물로 흐려져 보이는 그에게 말없이 고개를 끄떡거렸다. 착한 아이처럼. 그는 그녀의 행동이 만족스러운 듯 턱을 받치고 있던 손을 거둬 그녀의 뺨으로 손을 옮겨놓았다.

"아까 맞은 뺨은 괜찮니?"

그의 손길에도 놀랐지만 그의 뜻밖의 질문에도 민채는 흠짓했다. 그는 은정과 자신과의 말다툼을 지켜보고 있었던 것이다. 민채는 대답을 하는 대신 눈물 속에서도 그의 지금 표정이 어떤지 보고 싶어졌다. 눈물에 어려 희미하게 보였지만 그는 자상하게 웃고 있는 것 같았다.

"내 선택이 옳았던 것 같다. 아까 은정이와 있는 널 지켜보면서 넌 내 관심과 사랑을 전부 다 가져도 아깝지 않은 여자란 걸 또 한 번 느꼈으니까."

그는 어느새 자신의 입술을 그녀가 은정에게 맞은 뺨 위에 갖다대고 있었다. 마치 자신의 입술로 그녀의 붓기를 낫게 하려는 듯이. 민채가 눈물이라는 장애물에 걸려 미처 손 쓸 새도 없이 태주는 그녀의 뺨에 입을 맞추고 자신의 진심을 전하려고 애쓰고 있었다.




\lov.nov/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토우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31 회귀...실화상봉수 18.05.16 338 0 15쪽
30 생사의 갈림길 18.05.16 338 0 12쪽
29 검은 시선 18.05.15 342 0 11쪽
28 위험한 관계 18.05.14 344 0 12쪽
27 음모 ...모종의 계약 18.05.13 349 0 12쪽
26 동행 ... 중국을 가다 18.05.13 354 0 12쪽
25 오해와 방해 18.05.12 353 0 13쪽
24 질투 18.05.12 371 0 10쪽
23 재회 18.05.11 359 0 13쪽
22 작업실 입성 18.05.11 354 0 13쪽
» 본격적인 노동 18.05.11 357 0 11쪽
20 술 대신 묵은 추억을 마시다 18.05.11 352 0 10쪽
19 예비 출근 18.05.10 360 0 11쪽
18 시작을 위한 마지막 18.05.10 359 0 12쪽
17 때늦은 아쉬움 18.05.09 362 0 10쪽
16 108배 18.05.09 377 0 10쪽
15 새로운 시작 18.05.08 351 0 11쪽
14 이별 ... 열병! 18.05.08 347 0 11쪽
13 서울행 18.05.07 353 0 10쪽
12 첫 여행 ... 첫 키스 18.05.07 385 0 10쪽
11 죽음과 현실 18.05.06 367 0 11쪽
10 인연의 시작 18.05.05 374 0 10쪽
9 운명의 실타래 18.05.05 369 0 10쪽
8 추억은 지우는게 아니라 기억하는 것 18.05.04 352 0 12쪽
7 살아남은 자의 눈물 18.05.03 362 0 9쪽
6 떠나가는 영혼 18.05.03 367 0 12쪽
5 착한 거짓말 18.05.02 384 0 11쪽
4 사랑하고도 +2 18.05.02 379 1 11쪽
3 운명의 퍼즐 +2 18.05.02 369 1 12쪽
2 곡우 +2 18.05.01 394 1 10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