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뒤돌아보면 님의 서재입니다.

초강력 입술 탈취단

무료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로맨스

뒤돌아보면
작품등록일 :
2021.05.27 11:54
최근연재일 :
2021.06.22 23:58
연재수 :
32 회
조회수 :
788
추천수 :
17
글자수 :
175,650

작성
21.05.27 13:26
조회
50
추천
2
글자
12쪽

1화. 번개는 맞았는데.

DUMMY

기나긴 코로나의 시대가 끝나고 세상은 다시 활기를 찾기 시작했다.

서울 한복판에 있는 무극태권도장에서도 힘찬 기합 소리가 들려왔다.

“하앗!”

여성 일반부 수련생들이 열심히 앞 발차기를 하고 있었다.

그 수련생 사이를 한 여자가 뒷짐을 진 채 돌아다니며 소리쳤다.

“더 세게.

그렇게 해서 악당 남자들이 달려들 때 자신의 몸을 지킬 수 있겠습니까?

이제 정권을 내 뻗습니다.”

수련생들을 지도하는 이는 26살의 보조 사범 김은정이었다.

은정의 호령에 수련을 받는 젊은 여성들이 악을 쓰며 주먹을 내질렀다.

하지만 모두가 그런 건 아니었다.

“사범님, 다리가 너무 아파와요.”

힘든 표정을 짓는 수련생 몇이 투덜대기 시작했다.

은정은 가차 없었다.

“이런 고통을 이기지 못하면 자기의 몸을 지킬 수 없습니다.

우리 도장에서 코로나 시대에 환자가 한 명도 나오지 않은 것도 오로지 강인한 정신력과 체력!

이것 때문입니다.

거기 여자분.

놀지 말고 더 강하게!

하나둘, 하나둘!”

은정은 훈련 강도를 줄이지 않았다.


여성 일반부 교육 시간을 마친 은정은 관장실로 불려갔다.

“아빠, 왜?”

“관장이래도!”

아버지의 호통에 은정은 인상을 쓰며 호칭을 바꾸었다.

“관장님, 왜 부르셨어요?”

김기락 관장은 그제야 찡그린 인상을 폈다.

하지만 여전히 표정은 굳은 채 무겁게 입을 열었다.

“너 때문에 여성 일반부 회원들이 매일 탈퇴를 하고 있다.”

은정의 표정이 잔뜩 찡그려졌다.

“아니, 무슨 여자들이 그렇게 인내심이 없어?

자기 몸 지키게 해준다는데 엄살은.”

“후, 은정 조교.

여자들이 격투기 훈련하는 게 쉬운 게 아니잖아.

좀 차근차근 강도를 높여줘야지.”

“알았다고요, 관장님.

이제 좀 훈련 강도를 낮출게요.”

그런데 김 관장의 엄한 표정은 누그러지지 않았다.

“넌 잠시 쉬거라.

네 악평이 자자해서 도장 운영에 도움이 안 되니.”

그렇게 은정은 아버지로부터 휴직 명령을 받았다.


쿵쿵쿵.

열 받은 은정은 근처 가게에서 아이스크림 두 개를 사서 가게 건물 뒤에 쭈그려 앉았다.

“아빠, 미워.”

와구와구.

아이스크림 하나가 분노한 은정의 입속으로 구겨지듯 넣어졌다.

쩝쩝쩝.

입안 가득 채워진 아이스크림을 녹여 먹는데.

누군가 다가와 말을 걸었다.

“야, 김은정. 너 또 잘렸다며.”

입안을 채운 아이스크림 때문에 대답하는 은정의 목소리는 엉망이었다.

“버으서 다서버째라고오.

바그 사버님.”

그 소리를 들은 박 사범의 얼굴이 붉어졌다.

“야, 김은정~.

입에 처넣은 그 아이스크림이나 넘기고 말해.”

잠시 후.

꾸울꺽.

혀를 굴려 녹여낸 아이스크림이 은정의 목구멍으로 사라졌다.

“아, 박 사범님.

또 약 올리려고 왔어요?”

얼굴이 각진 중년의 박 사범 입에서 한숨이 흘러나왔다.

“후. 넌 어째 평소엔 잘하면서 보조 사범만 시키면 호랑이가 되냐?”

“흥.

여자들이 말이죠.

강해져야 악당 남자들한테 안 당하는 거거든요.

그래서 코로나도 이겨냈잖아요.

강하게 키워준대도 내 진심을 몰라, 이것들이.”

“어휴.

넌 모든 여자 수련생들이 어렸을 때부터 태권소녀였던 너 같은 줄 알아?

그러니 관장님한테 매번 잘리지.”

은정의 얼굴엔 반항기가 감돌았다.

“도대체 내가 태권도 5단을 바라보는 4단인데 말이죠.

이건 학력 차별이라고요.

태권대학 나온 친구들은 졸업만 하면 사범에 자기 도장 차린다던데.

그 대학 안 나왔다고 보조 사범 경력 3년은 채워야 한다니.

내가 도장만 차리면 수련생 수만 명은 몰려들 텐데.”

박 사범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특기생으로 태권대학 가랄 때 해외여행 전문가 하겠다며 싸돌아다닌 게 누군데?

태권대학에서 사범 기본 자질은 다배우는.”

“어휴. 또 그 잔소리.

듣기 싫어!”

귀를 틀어막는 은정을 보며 박 사범은 한숨을 내쉬었다.

“어휴.

도대체 네가 차린다는 도장에 수련생이 몇이나 올지 의문이다.

하여간 비 올 모양인데 잠시 후 들어와.

관장님은 내가 설득할 테니.”

박 사범은 다시 건물로 돌아갔다.

은정이 고개를 드니 하늘은 정말 비를 뿌릴 듯 먹구름이 몰려들고 있었다.

은정은 왼손에 남은 아이스크림을 보았다.

슬슬 녹아내리기 시작하는 아이스크림이었다.

은정은 아이스크림을 번쩍 들어올려 입에 넣으며 소리쳤다.

“내가 무슨 일이 있어도 사범 된다 이거야!

하늘아, 너도 내 맘 알지?”

번쩍.

은정의 질문에 화답이라도 하듯 하늘에서 거대한 번개가 내리쳤다.

당연히 가게건물 피뢰침으로 떨어지려니 안심하는 은정이었지만.

지릿지릿.

번개는 높이 쳐든 아이스크림 손잡이 과자를 때리더니 은정의 입으로 파고들었다.

은정은 고통도 느끼지 못한 채 의식이 희미해져 갔다.

“나, 이렇게 죽는······ 거?

요즘 소설들처럼 과거로 가려나.

그럼 내가 반드시 태권대학 간다!”

쓰러지며 비장한 결의로 과거 회귀를 바라는 은정이었다.


짝짝.

으음.

은정은 뺨에 느껴지는 고통에 인상을 찌푸렸다.

“어떤 새끼야!”

그때 어이없는 듯한 소리가 가물거리는 은정의 정신을 깨웠다.

“후.

박 사범 새끼다.

이게 바로 들어오랬더니 길바닥에 퍼질러 자고 있네.”

눈을 동그랗게 뜬 은정은 자신의 따귀를 때린 박 사범의 손을 바라보았다.

자신은 누워있고 박 사범은 쭈그려 앉아 다시 따귀를 때릴 자세였다.

그런데 은정의 입에서 나온 질문은 왜 때렸냐가 아니었다.

“지금 몇 년도에요?

나 몇 년이나 과거로 온 거?”

어이없어진 박 사범은 손을 내린 채 고개를 푹 숙였다.

“후, 이게 도대체 뭐 하는 정신 상태인지.

과거는 얼어 죽을 과거.

너 들어오라고 한 지 30분 지났다.”

“나 번개 맞았는데.”

“야! 번개는 무슨 번개!

피뢰침 깔린 건물이 수두룩한데 여기 있는 너한테 무슨 번개가 떨어져!”

은정은 뻗어있던 몸을 벌떡 일으켰다.

“어, 멀쩡하네?

정말 번개 맞았는데.”

손에 들렸던 아이스크림만 없어졌을 뿐 그녀의 몸엔 생채기 하나 없었다.

쯔쯔쯧.

그런 은정을 바라보며 박 사범이 옆에서 혀를 차고 있었다.

그제야 정신차린 은정의 눈빛에 간절함이 배었다.

“박 사범님, 아빠 설득했어요?

나 계속 보조 사범 경력 쌓아야 해요.”

다시 한숨을 내쉬는 박 사범이었다.

“후, 열심히 설득했는데.

관장님이 용서해준다고 20분 기다리다 도장 분점 둘러보러 나가셨다.

열 받아서 너 꼭 자르라는 말을 하면서.”

“망했다.

이놈의 번개 때문에.”

박 사범은 머리를 저으며 몸을 돌려버렸다.

은정의 눈동자에는 허망함만이 가득했다.


***


**아파트 901호 거실엔 초저녁부터 맥주캔과 치킨이 수북이 쌓여 있었다.


“맥주 한잔에 절망을 담고.”

꿀꺽, 카아.

맥주를 들이킨 은정의 손이 양념 치킨 한 조각으로 향했다.

“닭다리 하나로 아버지를 씹고.”

으적으적.

자신을 해고한 아버지에게 치킨으로 분풀이하는 은정이었다.

몇 번 분풀이를 한 은정의 시선이 거실 벽을 향했다.

거실 벽은 꽃미남 연예인의 브로마이드로 가득했다.

“귀염둥이 대준이, 너 때문에 내가 산다. 엉엉.”

꿀꺽꿀꺽.

“목소리 끝내주는 영민이, 너 때문에 내가 산다. 흐흐흑.”

으적으적.

“아아, 민재 오빠. 아아앙.

오빠 때문에 내가 살아요.”

꿀꺽꿀꺽 우적우적.

치킨을 넘긴 후 그녀는 일어섰다.

그리고 벽에 걸린 브로마이드로 다가갔다.

이어 차례로 브로마이드에 키스마크를 남겼다.

그 브로마이드들은 이미 수많은 립스틱 자국으로 도배되어 있었다.


다시 자리에 앉아 맥주 캔을 따는데.

철컥, 끼익.

현관문이 열리는 소리에 눈이 풀려가던 은정은 고개를 돌렸다.

“지영이야?

커윽.

오늘 일찍 왔네.”

거실로 들어서는 건 오랜 동갑내기 친구 안지영이었다.

키가 좀 작지만 귀여우면서도 야무진 인상이었다.

직장 업무를 마치고 귀가한 것이다.

휘익.

배낭을 거실 한구석에 던져버린 지영은 치맥 판을 벌이는 은정을 보며 한심하다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참 내.

태권도 사범 한다는 계집애가 초저녁부터 술이나 처먹고 있네.”

그 소리에 은정은 한숨을 내뱉었다.

“후. 말도 말아.

나 또 잘렸다.”

더 잔소리하려던 지영의 눈이 커졌다.

“헐. 또?

너, 니네 아버지한테 잘린 게 몇 번이야?”

“다섯 번째, 엉엉.

친구야, 내 슬픔을 위로해줘.”

그 말에 지영도 은정의 앞에 턱 주저앉았다.

치익. 꿀꺽꿀꺽.

그런데 은정의 슬픔을 달랠 생각은 없이 맥주 캔을 개봉해 혼자 입에 들이부었다.

“카, 죽인다.

오늘따라 맥주가 더 당기네.”

말하곤 치킨에 손을 뻗는 지영이었다.

눈이 풀려가던 은정은 그런 지영을 게슴츠레 바라보았다.

“너도 만만치 않은 모양이네.”

으적으적.

“프로그램 개편 계획안 나왔거든.

나 잘릴 거 같아.”

예상 밖이라는 듯 은정의 눈이 커졌다.

“야야야.

너만한 오지 탐험에 생존 전문가가 어디 있다고.

오지 생존 프로그램하면 여자로는 너가 최고지.

이것들이 사람 보는 눈이 없어.

그래서 바뀌는 여자 진행자 누구?”

“전에 우리 프로그램에 두 번 참여했던 신 뭐시기 있잖아.”

“아, 사막 탐험한다는데 화장 떡칠했던 그 계집애?

별명이 신 날씬이었나?

어벙한 남자들이 환장한다던데.”

꺼윽.

트림까지 내뱉은 지영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 계집애가 PD를 홀린 모양이야.

요즘 그 애 이야기가 자주 나오거든.”

은정은 맥주 캔을 내밀었다.

“친구야. 니 인생도 파란만장하다.

그 수많은 여행에 오지 탐험 경력에도 잘릴 팔자라니.”

“친구야. 내 슬픔을 위로해줘.”

“그래, 우린 서로의 슬픔을 위로하는 거야.

우리는 영원한 친구!”

퉁.

캔을 부딪친 두 사람은 맥주를 물 마시듯 들이부었다.

눈이 풀려가던 지영의 시선이 벽에 걸린 브로마이드와 꺼져있는 TV로 향했다.

“헐. 너 또 그 병 도졌냐?

브로마이드하고 TV에 미남만 나오면 입술 박치기하는 거.

겨우 일주일 비웠는데 브로마이드하고 TV에 찍힌 립스틱 자국이 도대체 몇 개야?”

“꺼윽. 요즘 그 낙으로 산다.

내 맘대로 할 수 있는 게 그거밖에 없거든.”

쩝쩝쩝.

치킨을 뜯고 입맛을 다시던 지영이 리모컨을 집어 들었다.

“꺼억. 지금 하는 드라마 뭐 있나.

우리의 울적한 기분을 달래줄 드라마가 있어야 하는데.”

꿀꺽꿀꺽, 카아.

다시 맥주를 들이킨 은정이 귀찮다는 듯 대답했다.

“새 드라마 ‘달빛 물든 구름’ 할 시간이긴 한데.

시작하자마자 인기래.

그런데 줄이면 달물구잖아.

달나라 토끼가 물구나무 서 있는 거도 아니고.

달물구가 뭐냐, 달물구가.

꺼윽.

요즘 드라마 작가들 너무 편하게 먹고산다니까.”

지영은 그런 은정을 향해 혀를 찼다.

“쯔쯧.

그거야 줄이니까 달물구지.

‘달빛 물든 구름’, 좋기만 한데.

헉. 가만 그거 나도 들은 드라만데.

어디서 들었더라.

어우, 벌써 머리 쑤셔 오네.”

은정은 트림을 내뱉으며 지영을 한심한 듯 쳐다보았다.

“꺼억. 지영이 바보.

너네, 오지 생존 프로그램 방영하는 TVZ 채널 드라마잖아.”

짝.

은정의 핀잔에 지영이 갑자기 좋아하며 손뼉을 쳤다.

“꺄악, 귀염둥이 대준이 나온다던 그 드라마잖아.”

은정의 눈이 동그래졌다.

“대준이?

전에 드라마 막내 형사로 나와서 시청률 대박 터뜨렸던 그 이대준?

내가 브로마이드로 매일 입술 박치기하는 그 이대준?”

“맞아, 그 이대준.

우리 채널에서 드라마 찍는다더니 벌써 방영 시작했나 보네.”

둘의 시선이 허공에서 마주쳤다.

“무조건 틀어!”


이렇게 번개를 맞은 건지조차 애매한 그 날,

두 사람은 자신들의 운명을 바꿀 역사적 드라마와 접하게 되었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초강력 입술 탈취단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 1화. 번개는 맞았는데. 21.05.27 51 2 12쪽
1 프롤로그 21.05.27 122 8 9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