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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대선 님의 서재입니다.

백설공주 구하기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전쟁·밀리터리

무대선
작품등록일 :
2022.05.17 13:44
최근연재일 :
2022.06.29 19:40
연재수 :
64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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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355,085

작성
22.05.17 13: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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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파락호 기사 백설공주를 구하러 가다 - 2

DUMMY

파락호 기사 백설공주를 구하러 가다 - 2


마틴은 리지의 철퇴처럼 휘두르는 국자를 피해서 집 바깥으로 달려 나와야 했다. 그 뒤를 무치가 바지를 들고 따라왔다.

마틴은 마굿간에서 무치가 건네는 바지를 받아 입어 겨우 옷이라는 것을 갖췄다.

하지만 갖춘 것은 말 그대로 그냥 옷일 뿐이었다. 상체의 젖꼭지가 드러나지 않고 하체의 그것이 드러나지 않는 차림, 농부라면 몰라도 귀족 기사로는 한참이 모자라는 차림이었다.

물론 마틴이 입은 서코트에는 귀족임을 뜻하는 마틴의 집안의 문장이 새겨져 있고 바지는 평민은 평생 꿈도 못 꾸는 고급 모슬린 천으로 된 바지였지만 상의는 열흘은 갈아입지도 빨지도 않은 듯한 냄새에 포도주 얼룩이 옷의 거의 삼분의 일을 차지하고 있었다.


“새 옷을 가지고 올까요? 검은?”


하지만 마틴은 고개를 흔들었다.


“아니 이대로가 좋아. 그리고 검이라고? 당치 않아.”


마틴의 집에 마굿간에는 말이 두필 있었다. 거세한 말과 군마인 성질이 거친 수말,

마틴은 거세한 말에 올라탔다. 성질이 온순해 군마에는 가당치 않고 짐을 나르거나 쟁기질이나 할 말이었다.


“말고삐를 잡게 무치, 아직 술이 덜 깼어.”


무치는 미간을 찌푸렸지만 아무말 없이 순순히 주인의 명령에 따랐다.

하인에게 말고삐를 잡힌 체 말 위에서 고개를 푹 수그리고 있는 마틴의 모습은 패잔병, 딱 그것이었다.

마틴의 이 꼴을 보는 대부분 사람들은 그 모습을 비웃었지만 꽤나 많은 사람들이 혀를 툭툭 차면서도 동정어린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저렇게 망가질만해. 아버지가 그렇게 되고 그길로 어머니마저 홧병으로 죽었어. 쯧쯧 아직 한창 나이인데, 안됐어. 훌륭한 기사였는데...”


왕성 앞에 이르렀을 때 창을 든 위병들마저 마틴의 모습을 보고 얼굴에 떠오른 경멸감을 감추지 않았다.

마틴은 그런 위병들의 얼굴을 보고 만족한 웃음을 떠올리며 그들의 어깨를 두드리며 말했다.


“수고가 많다.”


왕성 안에서는 말을 탈 수 없기에 말은 무치가 따로 끌고 가는 수밖에 없었다.

무치가 위병들의 창을 넘어 안으로 들어가는 마틴을 보고 뭔가 뜻있는 눈빛을 보냈지만 마틴은 고개를 가로 저었다.

왕성 안으로 터덜터덜 걸어 들어가는 마틴의 모습은 기사나 귀족이라기보다는 파락호 같았으나 아무도 그를 제지하는 사람은 없었다.

마틴은 유명이었다. 파락호든 뭐든 그는 왕의 오촌 조카였고 어찌 되었든 이 나라에서 최고 수준의 귀족이라는 것을 누구나 다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오, 마틴경 이거 오래간만이로군.”


“아니, 이거 에크하트경이 아닙니까.”


반쯤 정신놓은 파락호처럼 터덜대던 마틴이 갑자기 긴장하며 부동자세를 취하더니 정신이 말짱한 사람처럼 제대로 갖춘 격식으로 절을 했다.

에크하트경도 답례를 했지만 허리를 숙인 것은 마틴의 절반의 절반도 되지 않았다.


“왕의 부르심을 받았다고?”


머리칼은 기름을 발라 모두 뒤로 넘기고 턱까지 올라오는 하얀 레이스에 최고급 벨벳으로 짠 붉은 더블릿을 입은 에크하트경은 46살이라는 나이보다 딱히 젊어 보이지는 않았으나 오히려 그 나이에서 오는 중후함이 젊은이들에게는 없는 매력을 느끼게 하는 중장년의 남자였다.

나이는 들어 보였으나 주름살은 거의 없고 긴 콧날에 하루에 몇 시간은 정성을 들였을 콧수염의 소유자에 시와 예절, 무술과 전술에 능한 다방면의 능력자이기도 했다.

하지만 이런 에크하트경의 외모나 능력과는 별도로 마틴에게 중요한 것은 그가 왕비의 친척이며 이 왕실의 집사이며 사실상 실세라는 점이었다.


“예, 근위대 장교인 윌리엄경이 왔다갔다 더군요. 그래서 이렇게 급히 전하를 배알하러 왔습니다만은... 이거 급히 오느라 옷차림이....”


“왕께서는 어디 격식을 중요하게 생각하시는 분입니까. 하지만 청결은 격식과는 다른 것, 그건 좀 신경을 썼으면 좋겠소. 그려.”


에크하트가 중년 남자의 넉넉한 웃음을 보이면서 권유하듯이 그렇게 말하며 지나쳐 갔다.

마틴은 자기 등줄기에서 식은땀이 흐르는 것을 느꼈다. 어쩌면 분노를 느껴야 했는지도 모르지만 우선은 두려웠다.

늑대가 어미양을 물어 죽인다면 그걸 본 새끼양이 분노할 것인가. 아마도 아닐 것이었다.


‘목숨 부지만 한다해도 감지덕지일 테지.’


아마도 왕비전으로 가는 듯한 에크하트의 뒷모습을 보며 마틴은 중얼거렸다.

마틴은 다시 등을 돌려 왕의 거처로 향했다. 중간에 어떻게 알았는지 근위대 장교 윌리엄이 마중을 나왔다. 두 사람은 가볍게 인사하고 같이 알현실로 향했다.

은빛으로 반짝이는 흉갑을 입고 은은한 향수 냄새까지 풍기는 평민기사 윌리엄은 최고 귀족 기사 마틴의 몰골을 보고 눈살을 찌푸렸다가 다시 펴고 다시 찌푸렸다가 펴고는 했다.


“헛걸음 하게 해서 미안하오.”


“아닙니다. 제가 먼저 통보를 하고 찾아갔어야 했습니다. 왕의 명령이 워낙 황급해서요.”


“전하의 신상에 무슨 일이라도?”


“그런 것은 아닙니다. 솔직히 왜 경을 부르시는지 저도 모릅니다. 자세한 것은 왕께 들으셔야 할 듯 합니다.”


“그렇군요.”


만약에 마틴을 체포할 요량이었다면 에크하트는 왕비전으로 가지는 않았을 것이었다.

그러면 이 윌리엄이라는 녀석은 어떨까. 벌써 왕비에게 매수 되었을까. 똑똑한 녀석이라면 아마 벌써 그렇게 되었겠지만 이 금발머리 푸른 눈의 미남은 솔직히 그렇게까지 똑똑해 보이지는 않았다.


“국왕전하!”


왕좌에 앉아 있는 오소릭 국왕 앞에서 마틴은 격식대로 한쪽 무릎을 꿇고 절했다.

마틴이 절하자 오소릭은 자리에서 일어나 말했다.


“어서 오너라. 나의 조카야.”


왕이 일어나서 맞이하여 준다는 것은 보통 귀족은 받지 못하는 영예였다.

그렇다면 이런 영예를 마틴은 평소에도 받고 있었는가. 그건 아니었다. 왕이 이런 영예를 베푼다는 것은 뭔가 특별히 할 말이 있다는 것을 뜻했다.


“일어 나거라. 조카야.”


왕이 왕좌에 앉으며 부드럽게 다시 말했다.

마틴이 일어나 왕을 보았다. 왕의 나이는 만으로 54살, 하지만 지금 그의 모습은 60대로도 보이고 70대로도 보였다.

어찌되었든 모르는 사람이 54살로 볼 일은 절대 없었다. 190cm에 달하는 큰 키와 어린애 머리 정도는 한손으로 움켜서 터트릴 만한 힘줄이 울뚝불뚝한 손은 여전히 사람을 위압할 만했다.

하지만 이제는 2/3가 세어 버린 흰머리이고 제대로 손질하지 않은 너저분한 반백의 수염과 맥주와 포도주에 하나 남김없이 썩어버린 누렇고 검푸른 이빨, 특히 볼까지 축 쳐져 버린 눈밑, 턱까지 축 쳐져 버린 볼 살은 그가 한때 비교할 바 없는 완력과 무술과 기마술을 가진 전사였음을 의심하게 하였다.


“한잔 하겠느냐?”


크리스탈 잔에다 직접 포도주를 따르는 왕의 손이 떨렸다.

시종이 은쟁반을 들어 마틴 앞으로 가져왔다. 마틴이 잔을 집어 입술을 축였다. 마시지는 않았다. 독을 탔으리라고 생각한건 아니었다. 아무리, 왕의 술병에서 직접 나온 술이었다. 아직은, 최소한 아직은 왕비가 왕을 독살할 정도로 대담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전하, 건강은 어떠하신지요.”


“의례적인 인사이냐? 건강이야 좋지. 아직 이 팔에 힘이 가시지는 않았으니까. 하지만 이제 나의 때는 다 지나갔다. 세상 모든 사내들이 무서워하던 남자는 이제 술주정뱅이 노인에 불과해.”


“어인 말씀이십니까. 지금도 이 세상의 모든 남자들은 전하의 주먹을 두려워합니다.”


“네 말이 사실이라 하여도 이제 아무 쓸모도 없는 일이다. 남자가 두려워해도 될 여자는 단 한명뿐이다. 바로 어머니 말이다. 그 외의 여자를 두려워한다면 이 세상의 그 어떤 사내도 그를 존경하지 않는다. 그렇지 않으냐.”


“제 아내는 제가 파락호 짓을 한다고 이혼하고 저를 떠났습니다. 제 하녀는 같은 이유로 국자로 저를 두들겨 패려고 했습니다.”


왕은 마시려던 와인을 뿜으면서 왕좌를 후려치며 호탕하게 웃었다.


“와하하하, 그러냐? 그래 그렇군. 그래, 너의 어머니는 죽었고 너는 이혼 당했고 하녀의 국자에 맞는 신세라는 거군 그래.”


왕은 그렇게 주워섬기며 낄낄거리다가 갑자기 들고 있던 크리스탈 잔을 땅바닥에 내동댕이쳤다.

요란한 소리와 함께 아름다운 술잔이 박살나고 파편이 사방으로 흩어졌다.

시종의 안색이 변하고 근위기사 윌리엄도 움찔했지만 마틴은 동상처럼 꼼짝도 하지 않았다.


“한심한 일이야. 정말 한심해. 미안 하구나 마틴, 네 인생이 그 따위가 된 것, 지금 하고 있는 몰골이 나 때문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왕은 눈물이라기보다는 진물이라고 불러야 할 색깔있는 걸죽한 액체를 눈으로 흘리며 마틴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위로든 무엇이든 대꾸를 해주기를 바라는 눈빛이었으나 마틴은 별다른 대꾸를 하지 않았다.

왕은 흐느끼는 건지 뭔지 한동안 얼굴을 감싸고 어깨를 들썩거렸다.

마틴은 크리스탈 잔을 든 체 그런 왕을 가만히 지켜보기만 했다.

한동안이 지나고 왕이 코를 한차례 들이마시더니 자리에서 일어났다. 의자에서 앉아서 질질 짜던 한심한 노인네가 갑자기 불쑥 커 보였다.

왕이 뒷짐을 진 체 한동안 이리저리 왔다갔다 하다가 불쑥 말했다.


“마틴, 네 누이가 기억나느냐? 마르가르테 말이다.”


“매기, 스노우 화이트 말씀입니까?”


마틴이 심드렁하게 대꾸했다.


“스노우 화이트, 그래, 그렇게 많이들 불렀었지. 눈처럼 희고 피처럼 붉고 숯처럼 검은, 정말 그대로의 아이였지.”


“예, 정말로 그랬지요. 벌써 8년이나 지났습니다. 그때 제게 혼약자가 있지 않았다면 도전해 보았을 텐데요.”


“그때 그 아이는 일곱 살이었어.”


“그리고 지금은 열 다섯이지요. 결혼하기 꼭 좋을 나이가 아닙니까. 전하,”


“그래, 마틴, 네 말이 맞아. 지금 살아 있다면 결혼하기 꼭 좋을 나이이지. 멧돼지가 물어가서 갈기갈기 찢어놓지 않았다면 말이야. 그런데 말이야 마틴, 내 말을 잘 들어라, 만일에 그 아이가 죽지 않았다면, 살아 있다면 어쩔 것이냐?”


“무슨 농담의 말씀을, 전하, 아무리 전하시라고 하나 죽은 공주의 일입니다. 그런 말씀은 하시면 안 됩니다.”


“농담? 내가 왜 일부러 너를 불렀다고 생각하지? 농담이나 하려고? 나는 술에 찌든 노망난 노인네에 불과하지만 이런 일을 가지고 농담을 할 만큼 미치지는 않았어.”


이미 오래전에 한심한 늙은 주정뱅이가 되어버린 왕이었지만 이 말을 할 때에는 젊은 시절의 활기가 돌아온 듯 똑바른 목소리와 마치 20년은 젊어진 듯한 왕의 얼굴이 보였다.

왕이 크리스탈 잔을 내동댕이칠 때, 좌중의 모든 사람이 겁먹고 놀랐다.

하지만 그때도 마틴은 눈도 깜짝하지 않았다. 그러나 지금 왕의 얼굴을 볼 때에는 마틴은 자기도 모르게 손에 들고 있던 크리스탈 잔을 놓쳐 버렸다.


‘마르가리테 공주가 살아 있다고?’


마틴은 귓결에 와장창 하는 소리가 들렸다. 유리 파편이 발등을 때리고 짙은 포도주가 발을 적셨지만 전혀 느낄 수 없었다.


‘그 백설공주가 살아 있다고?’


마틴은 왕이 대체 자신을 왜 불렀는지 그 이유를 이제야 알 것 같았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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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파락호 기사 백설공주를 구하러 가다. - 4 22.05.17 96 18 13쪽
3 파락호 기사 백설공주를 구하러 가다. - 3 +1 22.05.17 98 19 12쪽
» 파락호 기사 백설공주를 구하러 가다 - 2 22.05.17 131 35 12쪽
1 파락호 기사 백설공주를 구하러 가다 - 1 22.05.17 248 44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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