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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하범 님의 서재입니다.

괴물들이 사는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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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하범
작품등록일 :
2021.01.15 13:48
최근연재일 :
2021.10.02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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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7.03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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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화.

DUMMY

김현은 벤치에 앉아 맥주를 한 모금 홀짝이고, 밤하늘을 올려봤다.


밤하늘에 걸린 보름달이 야속하게 밝았다. 마치 보석의 가루처럼 번지는 달무리가 온 세상에 축복을 내리는 것만 같다.


오직 하나, 그를 제외하고.


김현이 피식, 자조 어린 웃음을 흘리고는 담배를 입에 물었다.


담배맛도, 술맛도 쓰디썼다.


11월 9일.


오늘은 그의 생일이자, 부모님의 기일이었다.


축복해주는 이도 없고 위로해주는 이도 없는, 여느 때와 같은 날이기도 했다.


김현은 김빠진 맥주를 입안에 털어 넣고, 공원을 둘러봤다.


공원엔 사람이 몇 없었다.


술에 취해 비틀거리는 한 쌍의 커플과 공원 구석의 벤치에 자리 잡은 노숙자, 그리고 김현 자신뿐.


헤진 겨울옷을 입고 몸을 잔뜩 움츠린 채 누워있는 노숙자. 그 옆에는 누렇게 때가 탄, 조그맣고 귀여운 포메라니안이 몸을 둥글게 말고 있었다.


김현은 문득 포메라니안과 눈이 마주쳤다는 느낌을 받았다.


저 솜뭉치 같은 귀여운 멍멍이가 그를 응시하고 있었다.


솜뭉치의 반응을 이끌어내고 싶어서인지, 김현이 우스꽝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지하철에서 아기들과 눈이 마주쳤을 때, 종종 하는 행동이었다. 그때면, 아기들이 그를 향해 방긋 웃어주곤 했다.


하지만 솜뭉치는 어림도 없다는 듯이, 홱 고개를 돌렸다. 마치 못 볼 꼴을 봤다는 듯한 모습이었다.


김현은 내심 충격을 받아 망연자실했다.


그때, 커플의 대화 소리가 점점 더 크게 들려왔다. 여자 쪽은 아예 가로등을 붙잡은 채 허리를 숙이고 있었다.


“우웩, 우웩.”

“어휴, 조금만 마시라니까. 오빠가 집까지 바래다줄게.”

“우웩.”


청춘이다, 김현은 생각했다.


그들의 삶이 부럽지 않다면 거짓이었다. 그도 평범한 사람들처럼 살고 싶었다. 술에 취해 들어가면 잔소리를 퍼붓는 엄마와 가끔 같이 술잔을 기울일 아빠. 그리고 가족들과 함께 먹는 따뜻한 집밥···.


하지만 십여 년 전의 오늘, 그날 이후로 영영 꿈으로만 남은 소망이었다.


“크웩.”

“야, 아영아! 너 피! 야! 그만 토해!”


남자의 목소리가 소란스러워졌다.


김현이 가늘게 눈을 뜨고 커플을 바라봤다.


환한 가로등 아래, 여자가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그녀의 입은 토악질을 멈추지 않았다. 소화 과정의 음식물을 전부 쏟아낸 건지, 이제는 붉은 액체를 왈칵 쏟아내기 시작했다.


설마 피?


김현이 짐짓 얼굴을 굳혔다.


“야! 야!”


남자는 안절부절 주변을 둘러보다가, 김현과 눈이 마주쳤다.


“아저씨! 119, 119에 신고 좀 해주세요!”

“예, 예!”


김현은 남자의 다급함에 동화돼, 황급히 구닥다리 폴더폰을 꺼냈다. 그리고 119를 눌러, 전화를 걸었다.


- 119 상담센터입니다.

“저기, 지금 신고했으니까, 잠시만···.”


어?


김현은 말을 잇지 못했다.


흘러내리는 머리칼 사이로, 노랗게 번들거리는 눈동자. 음영 밑에서도 번뜩이는 노란빛은 지독하리만큼 선명하다.


김현의 기억 속에 있는 눈동자였다. 십여 년 전 오늘, 그의 삶을 파괴했던 눈동자.


여자가, 엄마가, 남자의, 남편의 목을 끌어당긴다. 그녀의 입이 그의 목으로 향한다. 날카로운 이빨이 목덜미의 살점을 크게 한입 베어 문다.


콰직.


그의 목에서 핏물이 분수처럼 뿜어진다. 핏방울이 사방으로 흩뿌려지고, 가로등의 누런 불빛을 받아 산란하듯 깨어져 나간다.


김현은 십여 년 전 그날처럼, 멀거니 붙박인 채 그 광경을 무기력하게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



“으으!”

찹찹.

“안돼···.”

찹찹.

“안돼!”


김현이 번쩍 눈을 떴다. 그리고 눈 앞에 펼쳐진 생경한 광경에 화들짝 놀라 소리를 질렀다.


“악!”

알알!


생전 처음 보는 새하얀 강아지가 그의 뺨을 핥고 있었다. 강아지는 김현의 비명에 덩달아 놀랐는지, 대뜸 왈왈 짖어댔다.


“뭔···?”


강아지가 왜 자신을 핥고 있단 말인가?


김현은 영문을 알 수 없어, 주변을 휘휘 둘러봤다. 자신의 집이 맞는지 먼저 확인한 것이다.


“맞는데···?”


그리고 대충 훑어본 결과, 김현 자신의 집이 맞았다.


그럼 이 강아지는 뭐야?


“넌, 뭐니···?”


스스로 생각해도 미친 짓 같았지만, 김현이 강아지에게 조심스레 물었다.


하지만 정상적인 답변을 들을리는 만무했다.


알알!


역시 돌아오는 건, 개 짖는 소리.


강아지는 뭐가 그리 좋은지, 학학대며 김현의 뺨을 다시 핥았다.


김현은 이 강아지가 자신의 집에 들어온 경과를 파악하기 위해, 기억을 더듬었다.


퇴근길에 편의점에 들려 맥주 한 캔 사고, 근처 공원에서 맥주를 깠다.


평소 그의 소비습관을 고려한다면, 크나큰 지출이었기에 한모금 한모금 아끼며 맛있게 먹었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그 뒤는···.


“어라···?”


마치 안개가 낀 것처럼 뿌얬다. 아무리 끙끙거려도, 기억이 되돌아오지 않는다.


결국, 이 강아지의 출처에 대해 알아낼 수 없었다.


김현은 출처를 밝히는 것을 포기하고, 강아지를 관찰했다.


강아지는 영 멀쩡한 상태가 아니었다. 원래는 분명, 풍성하고 하얬을 털이 떡이 지고 누렇게 때가 탔다. 마치 1년은 족히 씻기지 않은 듯한 모양새였다. 주인이 누군지 궁금해질 지경이다.


하지만 태생적인 귀여움은 가릴 수 없어, 김현은 저도 모르게 강아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조그맣고, 귀엽다. 강아지에 대한 인상은 그 두 가지 단어로 전부 표현되었다.


“유기견?”


김현이 강아지의 정체를 미루어 짐작해 보았다. 그리고 견종은 포메라니안으로 추측되었다. 아무리 김현이 견종에 대한 지식이 없다 한들, 포메라니안과 같은 유명 견종은 쉬이 알아볼 수 있었다.


“일단, 좀 씻자.”

알알!


강아지가 씻기 싫다는 듯 발버둥 쳤지만, 김현의 손아귀에서 벗어나는 건 무리였다.


귀여운 건 귀여운 거고, 더러운 건 더러운 거다. 그리고 그는 강아지만 씻길 생각이 없었다. 그 자신도 씻을 생각이었다.


“악몽이라도 꿨나?”


온몸이 축축했다. 자는 사이 땀이라도 한 바가지 흘린 것 같았다. 그 찝찝함을 김현은 도저히 견딜 수 없었다.


이 정도 악몽이면 기억날 법도 하건만, 떠오르는 이미지조차 없다.


김현은 고개를 절레절레 내젓고 화장실 문을 열었다. 그리고 빽 비명을 질렀다.


“악!”

“왂!”

“누, 누구세요!?”


생판 처음 보는, 웬 검은 선글라스에 노숙자 차림의 노인이 변기에 앉아있다.


“아, 아니 잠깐만.”

“남의 집에서 뭐 하시는 거냐고요!!”




결국, 김현은 노인의 강제퇴거를 용변 이후로 미뤘다. 용변을 도중에 끊고 내보낼 정도로, 그는 비위가 좋지 않았다.


“할아버지, 빨리 나가세요. 지금 이거 주거침입이에요!”

“아, 아니 잠깐만 내 말 좀 들어보게!”

“듣고 자시고 할게 아니라, 빨리 나가시라고요! 그리고···.”


김현이 강아지를 들어 올렸다.


알알!


동그랗고 까만 눈동자가 자신을 응시하자, 슬그머니 죄책감이 밀려왔다. 하지만 김현은 억지로 강아지를 노숙자에게 안겼다. 이 이상 같이 있으면 정 들 것 같았다.


“이 개도 할아버지꺼죠?”

“내 말을 들어보래두!”


노인이 자꾸 ‘잠깐’을 외쳤지만, 김현은 매몰차게 거절했다. 자택침입자의 변명 따위, 들어줄 이유는 없었다.


“지금 안 나가시면 경찰에 신고···.”


김현은 휴대전화를 들었다. 휴대전화 액정에는 생소한 시간이 띄워져 있었다.


[ 7시 11분 ]


- 부재중 전화 (7)


김현의 얼굴이 새하얗게 질렸다.


“나가세요, 빨리!”

“자, 잠깐만···!”


김현은 있는 힘껏 노인과 강아지를 집 밖으로 내보냈다. 그리고 자신 또한 집 밖으로 나왔다.


“할아버지, 다음에도 이러시면 경찰에 진짜 신고합니다.”

“아니, 내 말 좀 들어보라니까···!”


김현은 노인의 말을 무시하고 전력으로 내달렸다. 계단 네다섯 개를 한 번에 성큼성큼 내려갔다.


그의 출근 시각은 6시 정각. 그리고 지금 시간은 7시 11분. 아니, 이제 막 7시 12분.


미친놈미친놈미친놈···.


김현이 쉼 없이 자책의 욕설을 중얼거리며 휴대전화를 들었다. 전화를 건 지 채 3초가 지나기 전에, 상대가 전화를 받았다.


- 너, 어디야!

“죄송합니다! 뛰고 있습니다!”

- 뭐 하고 있었는데?

“늦잠 잤습니다! 죄송합니다!”


때론 빠른 사과가 변명보다 나은 법이었다. 상대는 김현의 우렁찬 사과에 기가 질렸는지, 맥빠지는 소리로 대꾸했다.


- 하아, 빨리 튀어와라.

“옙!”


빌라에서 빠져나와 급격히 커브를 돌자, 평소와 다른 광경이 펼쳐졌다.


평소 흡연자 몇몇을 제외하고 사람이 거의 드나들지 않는 골목길에, 인파가 가득 몰려있다.


“죄송합니다! 실례하겠습니다!”


김현은 다급한 얼굴로 인파 속을 비집고 들어갔다.


“어머, 무슨 일이래요?”

“살인사건이래요, 살인사건!”

“에구머니! 살인이요?”

“예, 그렇다니까요. 웬 여자가 남자친구를 죽였대요···.”

“아이고, 요즘 세상에···.”


살인사건?


김현이 슬며시 눈길을 돌렸다. 집 근처, 자주 들리는 공원을 중심으로 노란색 폴리스 라인이 빽빽이 줄을 쳤다.


순간, 머릿속에서 무언가 간질간질한 느낌이 들었다.


“어?”


하지만 감각은 찰나였다. 그 기묘한 감각은 김현이 의식하자마자, 신기루처럼 휘발되었다.


“뭐지?”


김현이 고개를 갸우뚱하고 재차 발길을 옮겼다.



***



찰칵찰칵.


새하얀 옷을 입은 현장 감식 요원들이 연신 셔터를 눌러 댔다. 짐승이 물어뜯은 듯 목 주변이 움푹 파인 남자의 시체와, 스스로 목을 조른 모양새로 두 눈을 뒤집어 깐 여자의 시체가 여과 없이 카메라에 담겼다.


처참한 현장을 보고 있자니, 이진호는 선배들이 담배를 달고 사는 이유를 어렴풋이 알 것 같았다.


맨정신으로는 도저히 볼 수 있는 광경이 아니었다. 속이 느글거려, 당장이라도 전부 게워내고 싶었다.


한 사내가 이진호 옆으로 다가왔다. 이진호가 그를 향해 가볍게 인사했다.


“오셨습니까?”

“어.”

“근데 선배님, 오늘 비번 아니셨습니까?”

“반장님이 당장 튀어 나가라던데? 아직 퇴근 시간 아니라고.”

“저런···.”


이진호는 짧게 애도를 표했다. 현재 시각 7시 12분. 안타깝게도, 당직은 8시까지였다.


“최초 신고자는?”

“저기 계십니다. 산책 중에 목격했다고 합니다.”


선배, 강창진의 물음에 이진호가 한 벤치를 가리켰다. 20대 중후반의 여자가 벤치에 앉아있었다. 얼굴이 하얗게 질린 채 담요를 끌어안고, 온몸을 덜덜 떨면서.


“나만큼 재수 없는 처자네.”

“뭐, 그쵸···.”


이진호는 어떻게 대꾸해야 할지 몰라, 어색하게 말꼬리를 늘어트렸다. 그는 아직 선배들처럼 현장에서 농담 따먹기를 할 만큼 무뎌지지 않았다.


이진호에게 사람의 죽음은 아직까지 너무 낯설고, 너무 비극적인 것이었다.


“난 아무리 봐도, 그 사건이랑 비슷해 보이는데 넌 어떠냐?”

“상계동 인육사건 말입니까?”


강창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몇 주 전, 또 다른 살인사건이 있었다. 그건 평범한 살인사건이 아니었다. 범인이 피해자를 먹었으니까. 살점 하나 남기지 않고 깔끔하게.


덕분에 피해자의 신원식별에 꽤나 애를 먹었다.


“강철순, 또 그 새끼가 저지른 짓 아니냐?”


강철순, 상계동 인육사건의 범인. 특이사항은 왼쪽 귓불을 도려낸 듯한 상처.


모든 증거가 그를 가리키고 있었다. 내연녀와의 관계도, 캐리어에서 채취한 지문도, 그 사건 이후 자취를 감춰버렸다는 점도.


이진호가 강창진의 의견을 부정했다.


“아마 아닐 겁니다. 죽은 여자의 입에서, 사람의 살점 같은 게 나왔다고 합니다.”

“뭐?”

“검식해봐야 알겠지만, 지금으로선 저 여자가 범인일 가능성이 높답니다.”

“저 죽은 여자가?”

“예.”


스스로 목을 조른 모양새로 죽은 여자. 이 또한 영문을 알 수 없었다. 그나마 짐작해 볼 수 있는 건, 음독으로 인한 자살, 혹은 독살.


강창진이 이맛살을 찌푸렸다.


“뭐가 어떻게 된 거야?”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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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 25화. 21.07.04 42 0 12쪽
24 24화. 21.07.04 44 0 12쪽
23 23화. 21.07.03 57 0 15쪽
» 22화. 21.07.03 57 0 12쪽
21 21화. 뒷이야기 21.05.29 63 0 13쪽
20 20화. 비전교회 (15) 21.05.25 72 1 12쪽
19 19화. 비전교회 (14) 21.05.24 62 2 14쪽
18 18화. 비전교회 (13) 21.05.22 67 1 16쪽
17 17화. 비전교회 (12) 21.05.20 65 1 13쪽
16 16화. 비전교회 (11) 21.05.19 77 2 12쪽
15 15화. 비전교회 (10) 21.05.19 76 2 13쪽
14 14화. 비전교회 (9) 21.05.15 84 1 13쪽
13 13화. 비전교회 (8) 21.05.15 84 2 12쪽
12 12화. 비전교회 (7) 21.05.15 84 1 13쪽
11 11화. 비전교회 (6) 21.05.15 80 1 14쪽
10 10화. 비전교회 (5) 21.05.15 93 1 14쪽
9 9화. 비전교회 (4) 21.05.15 84 1 12쪽
8 8화. 비전교회 (3) 21.05.15 101 1 13쪽
7 7화. 비전교회 (2) 21.05.15 116 1 12쪽
6 6화. 비젼교회 21.05.15 126 1 14쪽
5 5화. 회사 (5) 21.05.15 158 2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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