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곤륜환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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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하랑
작품등록일 :
2023.05.10 1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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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7.01 1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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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5.12 1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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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곤륜(2)

DUMMY

“......했습니다. 기어이 올라와서 행패를 부리더군요.”


낯선 목소리.


“대금은 다 갚지 않았더냐. 그리 많은 것을 내어줬거늘.”

“비급의 가치가 충분하지 않다고 발뺌하덥니다.”

“허허......”


두런두런 들리는 대화 소리가 백연의 정신을 천천히 깨워갔다.


“장문인, 더 이상 아이들을 들이시면 안됩니다. 다 같이 굶어 죽기라도 하시렵니까?”

“만금장 말고 다른 곳은 없느냐? 아직 운룡각에 비급 몇개가 남아 있다. 혹 운연공(雲煙功)이라도......”

“운연공은 모두 거절 당했습니다. 가치가 없다 하더군요.”


두 남자의 목소리였다.

한쪽은 분명 쓰러지기 전에 들렸던 목소리였고, 다른 한쪽은 그보다 조금 젊은 이인듯 싶었다.


“어렵구나, 어려워.”

“......장문인.”

“우선은 내 조금 힘을 써서 자금을 융퉁해 보도록 하겠다. 가을까지는 버틸만 할 것이다.”


눈을 가늘게 뜨자 희미한 불빛이 눈에 들어왔다.

촛불 하나가 어두운 방을 밝히고 있었다.

그 불빛 앞에 앉아있는 남자의 등이 보였다.


“헌데, 저 아이는 어디에서 데리고 오신겁니까.”

“후문에 쓰러져 있더구나. 그쪽에는 절벽밖에 없는데 어찌 된 일인지.”

“혹 저 아이도 들이실 생각은 아니시지요?”

“행색이 귀하게 자라 보이는데, 깨어나면 사연이라도 들어보자꾸나.”

“장문인. 더 이상은 진짜 안됩니다. 저희가 개방도 아니고...!”


남자가 답답한 목소리를 내는 순간, 백연이 작게 기침을 했다.

그에 백연을 등지고 앉아있던 남자가 고개를 홱 돌렸다.


선이 굵은 얼굴이었다.

송충이 같은 눈썹은 진했고 단단한 눈매가 험상궂은 인상을 더했다.

두르고 있는 도포마저 커다란 체격을 더욱 돋보이게 만들어 줄 뿐이었다.


전체적으로 곰 같은 인상의 사내였다.

다르게 표현하면, 산적.


“깨어났으니 이야기 나누시지요. 저는 이만.”


남자가 못마땅한 표정으로 눈을 부라리더니 일어나 방을 나가버렸다.

외양만 보면 녹림에 있어야 할 듯 싶은 인재인데. 백연은 생각했다.


“소란스럽게 해 미안하구나.”


그제서야 곰 같은 남자에 가려있던 사람의 모습이 드러났다.


‘도인이네.’


초로에 접어든 사내였다.

희끗희끗한 머리를 단정하게 넘긴 것이 그의 성품을 어느 정도 짐작 가능하게 만들었다.


“본도는 운결이라 하네. 미욱한 몸이네만 곤륜의 장문에 이름을 걸어두고 있지.”

“백연이라 합니다.”


백연이 예를 취하려 일어나자 운결이 손을 내저었다.


“그냥 편한대로 있게. 많이 지쳤을 터인데.”

“감사합니다.”

“허면, 몇가지 물어도 괜찮겠나?”


백연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운결의 입이 열렸다.


“어찌하다 자네 같이 어린 소년이 여기까지 올랐는가?”


두세가지 의미가 함축된 물음이었다.

백연은 그 속에서 짧은 고민을 마치고 답을 내놓았다.


“가문이 몰살당했습니다.”

“......허어.”


찰나에 여러가지 표정이 스쳐 지나가는 운결의 얼굴.

백연은 속으로 양심이 조금 찔려오는 것을 애써 무시했다.

그가 말한 것에는 진실밖에 존재하지 않았으니까.


“허면, 이곳에 오른 이유는.”

“곤륜에 입문하고 싶습니다.”


곤륜파.


중원의 일곱 대방파중 일좌를 차지하고 있는 문파이자, 절세의 경신법과 개세적이고 날카로운 검법으로 이름을 떨치는 검문.

그 위상은 소림, 무당과 더불어 가장 드높으며 특히 마도와 사파의 무인들에게는 그 둘보다도 무서운 문파로 꼽혔다.

신교의 내로라하는 강자들이 곤륜의 검에 쓸려나갔으니.


‘그리고 내 검법과도 비슷한 부분이 존재한다.’


청휘가 보여주었던 곤륜의 검격.

그것의 모습은 일견 백연 자신이 만들었던 검과도 닮은 부분이 존재했다.

중원의 벽으로써 수많은 일전을 치루며 가장 실전성이 짙은 검이었기 때문이리라.


“입문이라......”


운결의 표정이 복잡하게 변했다.

잠시 고민에 잠긴 듯 보이던 그가 이윽고 되물었다.


“그런데 어째서 여기인가? 아니, 그 전에 어떻게 여기에 온겐가?”

“예?”

“곤륜이라는 문파를 어찌 알고 입문하겠다 찾아왔는지 모르겠구나.”


전혀 예상치 못한 대답이었다.


“육파일방의 일좌인 곤륜을 모를 수가 없지 않습니까.”

“육파일방? 그건 무슨 소리인가. 구파일방이지 않나.”

“......예?”


백연의 목소리가 흔들렸다.

지금 이게 대체 무슨 소리지?


무언가가, 잘못되고 있었다.



※※※



곤륜이 망했단다.

아니, 애초에 그런 것보다 중요한건 따로 있었다.


‘신교대전이 백여년도 더 전이라고?’


곤륜의 장문인은 역사에 해박했다.


신교대전.

신교가 천마의 유지를 받들겠다며 일으킨 대 전쟁.

그것은 수년간 지속된 싸움이자, 마도에서 가장 큰 세력인 신교가 중원 무림의 정파에 정면으로 도전한 일이었다.


팽팽하게 이어진 전쟁이 장기적으로 심화될 무렵, 신교의 배후를 급습한 이름 모를 세력으로 인해 전쟁의 균형추가 무너졌다고.

그 후로도 국지전은 무려 십년 가까이 더 지속 되었지만 종국에는 버티기에 급급하던 신교가, 모든 세력을 십만대산으로 철수 시키는 것으로 마무리 되었다 했다.


“......그 이름 모를 세력은 아무래도 나인 것 같고.”


일장로를 위시한 신교의 장로들을 넷이나 죽여버렸으니 전력 손실이 없을 수는 없었을 터.


육파일방이라는 말을 들은 운결이 기억을 더듬어 들려준 이야기였다.

분명 그때까진 곤륜이 이름을 떨치던 대방파였으나, 지금은 아니라고.


“소림, 무당, 화산, 종남, 공동, 아미, 청성, 점창, 그리고 모산이라고 했나.”


그들을 통틀어 현 세간에서 구파라 일컫는다 했다.

눈 씻고 찾아봐도 곤륜은 들어있지 않았다.

뒤의 네 문파는 전생에 한두번 밖에 들어보지도 못했던 이름이건만.


“망했네. 폭삭 망했어.”


아닌게 아니라 곤륜의 상태는 처참했다.

빈말로도 문파라고 불러주기 민망할 정도로.


백연은 눈앞에 자리한 전각들을 보며 미간을 찌푸렸다.

저것들을 전각이라 할 수 있을까.

보수한지 적게 잡아도 수십년은 넘어 다 썩어가는 전각들과, 깨진 돌길들.

어두운 밤에 달빛까지 드리우니 흉가가 따로 없었다.


차라리 거지 소굴이라고 부르는게 어울릴 몰골이다.


그러나 문제가 그것 뿐이었다면 괜찮았으리라.

진짜 문제는 다른데에 있었다.


“아무리 문파의 세가 기울어도 그렇지......”


검문이라는 놈들이, 문파의 무공을 팔아치워?


“허, 허허.”


검귀 시절 만났던 곤륜의 검객들이 들었다면 미치고 팔짝 뛸 일이었다.

엄밀히 말하면 팔아 치웠다기 보단, 빼앗긴것에 가까워 보이긴 한다만.


“남은게 없네.”


결과는 그러했다.


신교대전 이후, 문파의 고수들이 대거 죽어 약해진 곤륜. 약해진 대방파는 좋은 먹잇감이었고, 중원은 너무 멀었다.

사마외도의 영역에 홀로 고립된 곤륜은 그렇게 몰락했다.


“하여간 정파라는 새끼들은 한결같기 그지없단 말이지.”


쯧쯔. 백연이 혀를 찼다.

아무리 중원에서 곤륜까지 거리가 있다 한들 도우려 했으면 도울 수 있었을 터인데.

사마외도와 분쟁할 때에는 최선봉으로 삼았으면서, 전쟁이 끝나자 손익을 따져서 버리는 꼴이 감탄고토가 따로 없었다.


“어쨋든 이제 문제는......”


그가 이곳에 남느냐, 마느냐였다.


이곳에 올라온 목적은 이미 대부분 상실했다.

곤륜에 남은 것이라곤 다 쓰러져가는 전각과 문파의 사람들 몇명, 그리고 찌꺼기만 남은 비급 몇개 뿐이었다.

대방파의 검법을 배우고자 한다면 다른 곳으로 떠나는게 옳았다.


‘가까운 곳은 공동이나 청성, 그리고 점창.’


더 들어간다면 섬서의 화산과 종남도 있었다.

입문이 쉽지는 않겠으나, 백연은 어떤 시험을 겪어도 전부 쉬이 통과할 자신이 있었다.

그래. ‘입문하는 것’에는 자신이 있었다.


‘청성파가 사천에 있었던가.’


지금 그가 있는 곳이 청해의 끝자락.

그러하니 사천까지는 꽤나 멀리 떨어져 있었다.

가장 가까운 청성이 그 모양이니 다른 문파는 말할것도 없으리라.


‘이 몸으로 사천까지 걸어간다라.’


벌써부터 다리가 아파오는 기분이었다.

게다가 그 전에, 우선 곤륜산을 내려가야 한다.


그 절벽을.

다시?


“......하.”


백연이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쥐었다.


“청휘야, 청휘야. 이딴 곳도 고향이라고 구경 시켜주겠다고 했냐.”


그러기도 잠시, 백연은 결국 한숨을 푹 내쉬며 일어났다.

고민은 길지 않았다.


“까짓거, 망한 문파 한번 살려보지 뭐.”


꼬맹이 시절부터 홀로 마도를 떠돌며 자라났던 그였다.

바닥부터 시작하는 건 익숙한 일이다.

그 대상이 혼자의 몸에서, 문파 하나로 바뀌었다는 점 외에는 아무런 차이가 없었다.


“곤륜파의 뿌리에, 내 검을 남긴다라.”


정종 검술을 배우려 했던 것은 어디까지나 스스로의 검술을 발전시키기 위한 것.

지금 선택하려는 것은 당장은 조금 돌아가는 길이 되겠지만, 그 결과는 훨씬 나을지도 모른다.

백연의 입꼬리는 자신도 모르는 새에 올라가 있었다.


“재밌겠네.”


결국, 검귀였다.



※※※



“곤륜에 입문하고 싶습니다.”


운결은 자신의 앞에 엎드린 소년을 보며 복잡한 표정을 지었다.


“......일단 일어나게.”


이름이 백연이라고 했던가.

정좌해 앉는 소년의 모습이 가지런했다.

몸에 익은 예법, 고운 피부와 연배에 비해 성숙한 품행.


가문이 몰살당했다 했던가. 그런 참극이 일어나지 않았다면 필히 귀하게 자랐을 아이다.

운결의 눈에는 그렇게 보였다.

그런 아이가 하필 스러져가는 문파에 들어와 고생을 자처하려 하다니.


“진심인가?”

“예.”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나오는 대답에 운결은 한숨을 내쉬었다.


“다른 문파에 가는것이 네 앞날에 있어 더 좋은 일일 터인데.”

“그건 모르는 일이지요.”

“내 구파에 조금이나마 아는 이가 있네. 연통을 취해줄 수 있으니......”

“장문인.”


깨끗하면서 단호한 목소리가 울렸다.

운결은 고개를 들어올린 백연과 눈을 마주쳤다.

맑은 눈빛을 보는 순간 운결은 깨달았다.


‘이미 정했구나.’


“허락만 해주신다면, 곤륜에 입문하겠습니다.”

“......”

“저는 이곳에 남고 싶습니다.”


그 말에 운결은 결국 고개를 끄덕이고 말았다.

그래. 저 아이는 이곳 청해에서 나고 자랐을 것이다.

가족의 흔적이 남아있는 장소를 떠나고 싶지는 않을테지.


“알겠네.”

“감사합니다.”


백연은 고개를 숙여 감사를 표했다.

이리 빠르게 허락할 줄은 몰랐는데.

무언가 조금 오해가 섞여 있는 것도 같았지만 아무튼 백연으로썬 잘된 일이었다.


“신웅, 있느냐.”


운결이 말하기가 무섭게 문이 벌컥 열렸다.

그곳에는 아까 전 보았던 곰 같은 사내가 서 있었다.


“장문인. 제가 분명 더는 어렵다 말씀을......”

“너도 들었지 않느냐.”

“허......”


그가 두꺼운 손으로 얼굴을 쓸어내리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이번이 마지막입니다. 더는 진짜로 안됩니다.”

“알겠다.”

“백연이라고 했나? 따라오거라.”

“신웅이 처소를 안내해줄 테니 함께 가거라. 나머지는 날이 늦었으니 내일 하자꾸나.”


포권을 올린 백연이 신웅과 함께 사라지고, 적막함이 방을 채웠다.

한동안 소년이 떠난 자리를 응시하던 운결이 이윽고 붓을 들어올렸다.


문파가 기울었다 하여 곤륜의 제자들을 굶주리게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의 힘이 닿는데까지 최선을 다해야겠지.


그의 손이 흰 종이 위를 움직이며 바쁘게 서신을 써내려가기 시작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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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곤륜(3) +9 23.05.13 20,016 298 13쪽
» 곤륜(2) +16 23.05.12 21,987 298 11쪽
2 곤륜 +10 23.05.11 24,447 318 12쪽
1 서장(序章), 검귀 유백연 +15 23.05.10 32,919 328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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