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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미 님의 서재입니다.

내 일상


[내 일상] 벌레와 함께 살아가기

온갖 벌레들과 같이 살아야 한다는 사실을 유쾌하게 받아들일 사람은 많지 않을 듯싶습니다. 시골살이 5 년 만에 내린 결론은 그저 적당히 타협하며 살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여기저기 빈틈을 메우고 약으로 도배를 하면 막지 못할 것도 없다지만, 그 많은 살상을 감당할 자신도 없고, 그렇게 한다 해도 순순히 물러날 벌레들도 아니라는 생각입니다.

그동안 지네한테 대여섯 번 물렸습니다. 습하고 따뜻하고 어두운 곳을 좋아하는 습성 때문인지 자꾸만 내 잠자리로 파고듭니다. 장모님이 딸내미 결혼시킬 때 해주신, 35 년 된 보료 위로 올라와 고랑내 나는 발을 물어댑니다. 희한하게 무는 부위도 만날 똑같습니다. 오른발 네 번째, 다섯 번째 발가락 사이입니다.

딱 한 번, 목덜미를 물렸는데 뒤통수까지 퉁퉁 부어올랐습니다. 발가락은 여러 번 물렸지만 발등까지 부어오른 적은 한 번 뿐입니다. 무척 가렵기는 했지만 며칠 지나니 자연히 가라앉았습니다.

며칠 전에 또 다시 큼지막한 지네한테 발가락 같은 부위를 물렸습니다. 이번에는 책상 밑에서였습니다. 놈은 목숨으로 응분의 대가(?)를 치렀는데, 이번에는 따끔하더니 며칠 가렵다 맙니다. 붓기도 전혀 없이 지나갔습니다. 살살 물린 건지, 독소가 주입되지 않은 건지, 내성이 생긴 건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생각해 보면 벌레들과 같이 산다는 것이 그렇게 끔찍한 일은 아닙니다. 바닥에 떨어진 감자 부스러기나 밥알을 보고 새까맣게 몰려드는 개미들을 보면, 벌레들에게 생존에 유리한 환경을 제공해주니 그렇게들 집안으로 파고 드는구나 합니다.

갈수록 안전이 중요한 사회 문제로 부각되는 일이 많아집니다. 사람 목숨을 소홀히 생각해서 생기는 특별한 사고들도 문제지만, 자연과 환경으로부터 오는 재앙이 우리 삶의 안전성을 근본적으로 위협하는 수준으로 커지고 있습니다. 시골에서도 비온 뒤가 아니면 맑은 하늘을 보기가 힘들어집니다.

기본적으로 우리가 자연과 타협하는 방법, 수준, 원칙 모두에 무지하기 때문에 생기는 일입니다. 이미 우리의 삶의 뿌리를 흔들고 있는 자연의 변화 속에서 이 땅에 인간들이 모두 사라진다 해도 자연은 또 그대로의 자연으로 균형을 맞추어 갈 것입니다. 받은 만큼 그대로 돌려주는 균형 말입니다.

우리가 자연으로부터 안전을 보장받을 수 있으려면, 선택은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모두가 아는 바로 그, 더 이상 자연을 해치지 않고, 파괴한 것들을 원상회복시키는 것이겠지요. 그런데 많은 사람들은 그것이 가능하지 않다고 여기고 있습니다. 이미 확보하고 있는 안전한 삶이 깨질 거라고 두려워 합니다.

다른 하나는 자연을 완벽하게 인간의 힘으로 통제하는 것입니다. 은연중에 그런 사고가 상식으로 우리를 지배하고 있습니다. 과학이 발달하면 가능할 수 있다는 믿음도 만만치 않습니다. 과연 인간이 자연을 완벽하게 통제할 수 있을까요 ? 인공지능의 발달로 그 가능성에 대한 믿음도 커지지 않을까 두렵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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