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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출
작품등록일 :
2017.06.26 16:15
최근연재일 :
2017.07.06 22:49
연재수 :
11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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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4
추천수 :
9
글자수 :
41,655

작성
17.06.26 1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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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쪽

프롤로그. 암녹(暗綠)

DUMMY

뜨거운 태양빛이 부서져 내리듯이 쏟아지고 있었다. 주변에는 태양을 피할 나무 그늘 하나 보이지 않았다. 사방 어디를 둘러보아도 모래와 흙먼지 뿐이었다. 만지면 화상을 입을 정도로 뜨겁게 달궈진 모래에서는 모락모락 김이 피어오르고 있었다. 김이라는 말은 적절하지 않다. 아이는 그것이 수증기가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수증기가 피어오르기에 이곳은 너무 건조하다. 저것은 정령의 몸부림이다. 모래의 뜨거움 속에서 공기의 정령이 비명을 지르며 몸을 뒤틀면 마치 저렇게 김이 나는 것처럼 주변이 일그러지는 것이라고 그는 배웠다.

그는 정령조차 뜨거워 몸부림치는 그 모래를 맨손으로 파내고 있었다. 바위처럼 단단한 손을 가진 어른 오크조차 함부로 한낮의 모래를 파헤치지는 않는다. 밤의 사막이 너무나 어두워 아무것도 찾을 수 없을 지경이 아니었다면, 반드시 해야 할 일이 아니었다면 그도 이런 일을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태양을 등진 등은 마치 불이라도 붙은 것처럼 뜨거웠다. 햇빛의 그슬린 그의 암녹색 피부로 구슬땀이 흘러내렸다.

순간 그의 손이 멈칫했다. 왼손 약지의 손톱이 벗겨지려 하고 있었다. 피가 흐르는 것은 왼손 약지만이 아니었다. 그의 열 손가락 전부, 손끝이 벗겨져 피가 흐르고 있었다. 그는 잠시 망설이듯이 덜렁거리는 손톱을 바라보다가 손을 입으러 가져갔다. 그리고 앞니로 손톱을 물어 뜯어냈다. 아이의 눈가에 살짝 눈물이 맺혔다. 하지만 그는 비명을 지르지 않았다. 그의 목소리를 듣고 달려와 그를 달래줄 사람은 이제 없었다. 눈물을 말리기 위해 그는 고개를 들어 잠시 태양을 바라보았다. 사막의 햇빛 아래 반사된 그의 두 눈동자는 노오란 태양처럼 반짝이고 있었다. 그는 태양을 바라보면서 이제 다시는 듣지 못할 그 다정한 목소리를 조금이라도 더 생생하게 기억해 내려 애썼다.

‘꾸흐뜨. 오늘은 어디에 나갔다 왔니? 너무 멀리 나가면 안 된다.’

‘사막에서 왜 아지랑이가 피어오르냐고? 꾸흐뜨, 그것은 사막의 달궈진 모래 사이에서 공기의 정령이 몸부림치기 때문이란다.’

‘‘꾸흐뜨’는 오크의 옛 말로 ‘태양’이라는 뜻이란다. 네가 태어났을 때 태양처럼 빛나는 두 눈동자를 보고 지은 이름이야.’

할머니는 옛 오크어를 기억하고 있는 몇 안 되는 늙은 오크들 중 한 사람이었다. 그리고 마지막 오크 주술사였다. 젊은 오크들은 더 이상 늙은 오크들의 옛 이야기를 신경쓰지 않았다. 그리고 오크어를 알려고 하는 사람도 없었다. 할머니는 때때로 그것을 안타깝게 생각했다. 하지만 그것으로 젊은 오크들을 탓하지 않았다. 상황이 옛날과 같지 않음을 이해하고 계셨기 때문이었다.

꾸흐뜨는 시야 좌우를 가로지르며 어디까지나 뻗어있는 것 같은 거대한 산맥을 바라보았다. 갸우트마단 - ‘여덟시 방향의 산맥’ 이었다. 할머니의 할머니가 태어나기도 전에, 갸우트마단에서 사막으로 흐르는 거대한 강이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이제 그 강은 흐르지 않는다. 물을 구하기 위해서는 드래곤의 영역인 산맥 근처나 인간들의 땅 근처에 우물을 파는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어느 우물이나 늘 위험에 노출되어 있었고 충분한 물을 얻기도 어려웠다. 생명의 근원인 물을 잃어버린 이 죽음의 땅을 인간들은 ‘레아 후(버림받은 땅)’라고 부른다.

그럼에도 할머니는 항상 이 땅을 옛 오크어로 ‘꺄뜨 브후근(녹색의 땅)’ 이라고 불렀다. 그러나 할머니가 말하는 녹색은 이 땅 어느 곳에도 없었다. 만약 있다면 그것은 할머니가 꾸흐뜨의 여린 새싹 색의 얼굴을 쓰다듬는 동안 그의 눈동자 안에 꿈처럼 반짝일 뿐이었다.

새로운 오크의 세대들은 갈수록 옛 오크의 땅에서 멀어지고 있었다. 하지만 살만한 곳을 찾아 영역을 확장하다 보니 인간들과의 마찰이 불가피했다. 인간들은 오크들과의 공존을 허락하지 않았다. 녹색의 피부, 위협적인 엄니, 인간은 오크를 ‘괴물’이라고 불렀다. 하지만 그들의 말이 그다지 틀릴 것도 없었다. 오크들은 인간들보다 월등한 힘과 체력을 무기로 식량과 우물을 약탈하고 사막 상인들에게서 물자를 빼앗았다. 몇몇 오크들은 지중해로 나가 해적이 되기도 했다. 인간들에게 분명 오크들은 괴물이었다. 그렇게 괴물이 된 남자 오크들이 가져오는 식량으로 오크의 아이들은 조금이나마 살아남았다. 그리고 그렇게 길을 떠나간 많은 오크들이 다시는 마을로 돌아오지 못했다. 꾸흐뜨의 아버지 또한 예외는 아니었다.

모래를 파던 꾸흐뜨의 손이 마침내 멈췄다. 모래 사이로 회색빛의 마른 나무 조각 같은 것이 보였다. 꾸흐뜨는 조심스럽게 그것을 파내어 두 손으로 감싸 올렸다. 꾸흐뜨의 미간 사이에 주름이 깊어졌다. 손톱이 벗겨졌을 때보다 울음을 참기가 더 힘들었기 때문이다. 꾸흐뜨는 울지 않기 위하여 엄니를 악다물었다.

“할머니...”

엄니 사이로 신음과 같은 목소리가 울려 나왔다. 그는 처연한 눈동자로 회색 덩어리를 내려다보았다. 어린 시절 배가 고파 할머니의 품에 안겨 서럽게 울다가도 두근대는 그 심장소리를 듣고 있으면 어느새 울음은 가라앉고 반짝이는 꿈속으로 빠져들고는 하였다. 할머니의 품 너머로 들리는 고동 소리는 그에게 든든한 울타리였고 집이었고 고향이었다.

식량이 극단적으로 부족한 오크의 마을에서는 죽은 사람의 시체를 마을 사람이 나누어 먹는 ‘공식’의 풍습이 있었다. 할머니도 자신이 죽으면 그렇게 될 것을 알고 있었다. 마을의 남자들이 약탈해 온 음식을 먹어온 마을의 일원으로써, 그것은 피할 수 없는 일이었다. 할머니는 종종 꾸흐뜨에게 말하고는 하였다. 원래 오크들은 땅으로 돌아가 땅에게 먹혀야 하는 것이라고. 땅은 오크에게 먹을 것을 주고, 그 대가로 오크들은 땅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그러나 오크들은 땅에게 버림받았고, 오크들은 땅을 버렸다. 서로에게 절연장을 던진 채 몸의 단 한 조각 조차 땅에게 주지 않게 되었다. 아니, 땅에게 준다 하여도 이제는 땅이 먹지 않는다. 이 땅에 파묻은 오크의 몸은 썩지도 않은 채로 바싹 마른 미이라가 될 뿐이니까.

그럼에도 할머니는 자신의 몸을 땅에게 주고 싶어 했다. 사이가 멀어진 가족에게 늘 먼저 손을 내미는 따스한 어머니처럼.

할머니가 돌아가셨을 때, 마을 사람들이 할머니의 몸을 나누어 먹고 가족인 꾸흐뜨에겐 할머니의 심장이 주어졌다. 꾸흐뜨도 알고 있었다. 공식의 풍습은 마을 공동체의 중요한 제의이다. 그것을 거부하면 마을 밖으로 쫓겨나는 수밖에 없었다. 어린 오크가 마을 밖으로 쫓겨난다는 것은 곧 죽음을 의미했다. 하지만 꾸흐뜨는 마을에서 쫓겨날 것을 각오하고 할머니의 심장을 마을 밖으로 가지고 나왔다. 마을 어른들은 꾸흐뜨의 행동을 적극적으로 말리지는 않았다. 꾸흐뜨는 이제 고아였다. 공동양육을 하는 오크 마을에서 고아 아이의 입 하나가 줄어든다는 것은 자기 아이에게 가는 식량이 조금이라도 더 늘어난다는 의미였다. 한 살 어린 친구 ‘타그르’가 울며 마지막까지 꾸흐뜨를 말렸지만, 그럼에도 그의 고집을 꺾을 수는 없었다.

그리고 꾸흐뜨는 할머니가 늘 원했던 대로 사막의 땅에 심장을 묻었다. 그것은 마지막 오크 주술사인 할머니가 땅에게 보내는 화해의 손짓이었다. 자신의 몸을 먹고, 오크들에게 다시 먹을 것을 달라는. 그리고 꾸흐뜨는 삼일을 기다렸다. 땅이 할머니의 화해요청을 받아들였는지 확인해야 했다. 그리고 오늘, 꾸흐뜨는 그 결과를 확인했다.

땅은 할머니의 몸을 먹지 않았다. 화해는 무산되었다.

너무나 슬펐고 원망스러웠지만 꾸흐뜨는 사막을 저주하지는 않았다. 할머니는 늘 꾸흐뜨에게 젊은 오크들이 흔히 그러는 것처럼 땅을 저주해서는 안 된다고 하였다. 결코 ‘버림받은 땅’이라고 부르는 것을 허락하지 않으셨다. 지금은 죽음과 절망만을 오크들에게 가져다준다 하더라도, 언젠가 할머니의 믿음처럼 땅이 화해를 받아들이는 날이 올 것이다. 꾸흐뜨는 애써 자신을 설득시켰다.

그는 품에서 낡은 천조각을 꺼내 회색 덩어리를 조심스럽게 감싸고는 품에 집어넣었다. 그리고 서서히 불어오는 모래 바람을 등지고 ‘중앙’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마을로부터 가져온 식량은 삼일 만에 바닥을 드러내고 있었다. 꾸흐뜨는 자신이 바로 다음날 사막에서 죽을 수도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 때는 할머니와 함께 사막에 묻힐 뿐이다. 꾸흐뜨는 그렇게 생각했다. 자신을 지켜주던 할머니의 심장을 이제는 자신이 보호해야만 했다. 언젠가 다시 할머니가 사랑했던 ‘꺄뜨 브후군’에 할머니를 돌려보낼 때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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