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훼룡 님의 서재입니다.

레플리카 헌터는 많은 것을 바라지 않는다.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판타지

훼룡
작품등록일 :
2020.12.29 11:21
최근연재일 :
2021.06.03 19:00
연재수 :
117 회
조회수 :
8,856
추천수 :
338
글자수 :
636,119

작성
21.01.04 20:00
조회
124
추천
3
글자
12쪽

9화

DUMMY

레플리카 헌터는 많은 것을 바라지 않는다


9화


“이건 미친 짓이야. 작전도 아니라고. 도전, 모험, 그건 공무원이 할 짓이 아니지. 너희 공무원 아니었어? 세금으로 이런 짓 해도 되는 거야?”


책상 위 가득 쌓인 서류를 뒤적거리며D급 헌터이자 수석 연구원이자 소장. 나수빈은 넋두리를 늘어놓았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내 논문을 발표하지도 못하게 한 새끼들이 이제 와서 날 납치해? 그래놓고 뭐? 대국적인 작전에 참가? 지랄 났다.”


“그래서 연구비는 얼마나 주면 좋겠나. 나수빈 소장?”


수빈은 빠르게 뒤를 돌아보았다. 연구비 이야기가 나오자 그녀의 얼굴에 갑작스래 핏기가 돌았다.


“아..국장님 오셨습니까? 이런 아침부터 어떻게? 오시는 대 피곤하시지는 않으셨습니까?”


“진척 상황을 보고서로만 확인하려니 도저히 마음이 안 편하더군. 어제 마수들 실려온 배 타고 왔어.”


현터관리지원실 국장 오대현이 구둣발 소리를 내며 연구실 안으로 들어왔다. 특유의 밤색 정장이 인상적이었다.


“67호의 성장이 눈부십니다.”


“그래. 당연히 보고서는 읽어 봤지. 그런데 아무래도 걸리는 부분이 있어서 말이야.”


수빈은 긴 금발 머리를 뒤로 질끈 묶었다. 삭은 머리끈이 탁 하고 끊어졌다. 대현의 뒤에 서 있던 수행비서가 재빠르게 제 머리끈을 하나 건네주었다.


“세 달이나 지났는데 아직, 그것도 가장 강하다는 클론이 C급에도 도달하지 못한 건가?”


“보고서 읽어 보셨다면서 그런 말이 나오십니까?”


수빈은 노트북에서 만지작거리던 프래젠테이션 파일을 열었다.


“이건 스노우볼입니다. 한번 구르기 시작해야 커진다고요. 그리고 말이 세 달이지, 이 녀석들에게 쓸만한 자극을 주는 게 성공한 건 어제 한 번입니다. 한 번!”


“특전사 부대원들과 군인 출신 헌터들로는 부족했나?”


“네.”


대현의 얼굴에 뻘쭘한 기색이 스치자, 수빈은 봇물 터지듯이 말을 쏟아냈다.


“자극이라는 게, 애초에 이 녀석들에게 평범한 물리적 자극은 필요하지 않아요. 훈련시키려는 게 아니니까! 중요한 건 동기화입니다. 잠자는 빌딩숲의 왕자님과 동기화하는 거. 그걸 위해서는 마력과 관련된 자극만이 의미가 있어요.”


“그럼..”


“어제 마력 수치가 50이상 오른 애들이 많아요. 89호는 거의 100가까이 올랐어요. 게이트에 보낼 수 있다면 미친 듯이 등급이 오를 겁니다.”


대현 역시 C급 헌터였다. 마력이 하루 아침에 100 올랐다는 게 얼마나 대단한 건지는 잘 알고 있었다.


“현재 인원은 몇 정도인가?”


“사망자랑 준사망자 빼면 45명 정도입니다.”


“게이트 섭외해서 들여보내기에는 너무 많아. 혹시라도 6대 길드 관계자들 눈에 띄기라도 하면...”


그 다음 말은 수빈도 대현도 잘 알고 있었다. 바로 그날 저녁에 블루문 길드의 이서윤이 사신의 낫을 휘두르며 정문으로 들이닥칠 게 분명했다.


“헌터 죄수들을 80명 정도 넘겨받을 수 있었네.”


“교정본부랑 법무부 쪽에서 엄청 지랄하지 않았습니까? 언론에 새어 나갔으면 진짜 시끄려웠을 텐데 용캐도 구하셨네요.”


“뭐, 다음에 고위 헌터 연류 범죄 터졌을 때 무조건 한 달 이상은 교도소 보내주겠다고 했지. 그것들이 한 달이라도 그런 데 들어간다는 게 얼마나 상징적인가?”


수빈은 쓰게 웃었다.


콘체른의 2인자 고은유는 제 오라비 고효산에게 신품 갑옷을 맞춰 주기 위해 머리를 굴렸다. 탈세와 횡령과 이런저런 중소 길드들에게 받아낸 상납금을 합쳐 1조 5천억원의 부당 이익을 취했다.


콘체른 길드의 변호사들이 총출동한 약식 재판 끝에 벌금은 2천억 원이 나왔다. 남은 1조 3천억이 어디로 갔는지는 아무도 묻지 않았다. 그녀는 구형받은 2천억 벌금을 일시불로 이체하고 법정을 또각또각 걸어 나왔다.


미르한의 마지막 제자이자 최근에 자신의 길드를 세워 독립한 이한성은 마약과 성매매 관련 전과 신기록을 몇 번이나 갱신했다. 그가 헌터가 아니었다면 징역이 세 자릿수로 나왔을 죄목들이었다.


하지만 그는 세계에서 가장 강한 헌터 중 한 명이었고, 그의 길드 레드 서클은 대한민국 강원도와 충청북도에 열리는 수많은 게이트들과 싸우고 있는 중이었다.


싸우는 중에 장수를 바꿀 수는 없다는 옛말은 여전히 유효했다. 법은 그에게 빈정대는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조금의 벌금을 선고했다.


그 후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처방을 받은 헌터에게 전문가로 구성된 위원회는 적절한 항정신성 의약품을 처방할 수 있다’


라는 조항이 마약류 관리 법률에 추가되었다. ‘적절한’의 기준과 ‘처방 가능한 항정신성 의약품의 종류’를 관리하는 위원들은 다섯 명이었고, 그 중 고위 헌터가 넷이었다.


하지만 그런 신 같은 특별한 취급은 말 그대로 신 같은 힘을 가진 헌터들만이 받을 수 있었다.


“E급이랑 D급 애들로 구했다. C급 최하위도 두 명 있어. 전부 이 섬에서 처분해도 좋아. 80명 전부 다 제물로 바치면 C급 20명 만들 수 있겠나?”


“20명이요?”


“관광 버스 하나에 전부 탈 수 있는 인원으로 만들어달라고 했을 텐데.”


“아, 예. 충분히 가능합니다. C급이 20명보다 더 나오면 어떻게 할까요?”


“한번 C급이 되면, 그때부터는 바깥으로 돌릴 수 있어. 남겨는 놔. 스페어 플랜이 필요해질지도 모르니까.”


그 후로 둘은 오랫동안 복잡하고 골치 아픈 담소를 나누었다. 커피 두 잔과 쿠키 세 봉지가 사라지고, 나수빈은 홀로 연구실에 남았다.


“하아.”


그녀는 연구실 책상 위로 엎드렸다. 차가운 조명이 그녀의 금발 위로 쏟아져 내렸다.


“나 살 수 있을까?”


오래된 기억 몇 개가 머릿속을 스쳤다. 지독하게 시리고 아름답던 푸른빛과, 그것조차 외면한 자신.


수빈은 인상을 찌푸렸다. 전화가 울렸다.


“소장님. 와 보셔야 할 것 같습니다. 클론 둘이 CCTV에 찍혔어요.”


***


삐 하는 소리와 함께 목걸이에 초록 불이 꺼졌다.


“오늘은 대련을 중심으로 대 헌터전 전문의 훈련을 시작할 거다. 사망자나 큰 부상자가 나오지 않도록 주의하도록. 혹시 열외자 있나?”


교관은 혹시나 하며 물었다. 특전사 훈련을 받을 때 교관들이 묻던 말버릇이었다. 그는 지난 세 달 동안 단 한번도 클론들이 손을 드는 것을 보지 못했다.


“없으면..응?”


43호는 천천히 손을 들었다. 저 단상 위에 교관을 바라보며 숨을 고르고, 태어나서 처음으로 연기를 시작했다.


“어제 내상을 깊게 입었었는데, 재생하는 과정에서 종양이 생겼습니다. 근육이 틀어졌는지 걷는 것도 불편합니다. 의무실에 다녀와도 되겠습니까?”


몇 번인지, 정확히 어디가 아픈지는 일부러 말하지 않았다.


잠시 후 교관은 당황한 기색과 함께 대답했다.


“그래. 최 조교. 쟤 의무실까지 안내해 줘.”


“교관님. 얘 너무 힘들어하는 것 같은데, 부축해줄 사람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제가 조교님과 함께 가겠습니다.”


자연스럽게 44호가 따라 붙었다. 43호는 44호의 어깨에 능청스럽게 팔을 둘렀다.


됐다. 한순간 67호의 눈이 빛났다.


양 옆 높은 펜스과 철조망을 둔 길을 따라 걸었다. 길에 깔린 작은 자갈들은 밟을 때마다 뽀드득 거리는 소리가 났다. 펜스 너머에서 해당화가 가지를 뻗었다. 촌스럽지만 밝은 색의 꽃이 피어 있었다.


“여기가 C동이다. 의무실이랑 연구동이랑 붙어 있으니까 저쪽으로 들어가면 돼. 71호, 여기서 나오는 건 네가 처음일수도 있다? 돌아올 때는 알아서 와라.”


“감사합니다.”

“이 친구 잘 챙겨 오겠습니다.”


돌아선 교관이 점처럼 보였다. 43호는 44호의 어깨에 두른 팔을 풀고 언제 다리를 절였냐는 듯이 허리를 쭉쭉 폈다.


“살겠다. 구부정하게 걷느라 힘들어 죽는 줄 알았어. 무슨 의무실이 이렇게 먼 거야? 오다가 죽겠다.”


“그러게 말이야. 어휴. 오는 길에 힘든 척만 하지 진짜로 기대? 안 그래도 나 몸 무겁단 말이야.”


44호는 어깨를 돌리고 목을 이리저리 돌렸다.


“그리고 손을 어디에 뒤야 할지 몰랐어가지고 엄청 어색했어.”


“그치..? 잠깐? 손?”


44호는 잠시 팔을 어깨에 두르는 모션을 취했다. 그리고 손에 어디쯤에 닿는지 떠올린 44호의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랐다.


“그, 그건 그렇고, 너 그 명찰은 어디서 난 거야?”


43호는 주머니 속에 넣어 둔 자신의 명찰을 만지작 거렸다. 지금 가슴에 붙어 있는 건 엊그제 71호를 구덩이 속에서 데리고 나올 때 혹시나 해서 스리슬쩍 챙겨 둔 명찰이었다.


“엇그제 71호한테 챙겼지. 너도 그런 거 아니야?”


43호는 눈치 있게 화재를 바꾸었다.

44호의 가슴에는 31번이 붙어 있었다.


“당연하지. 우리 꽤 잘 맞는다. 이런 것도 통하고. 아, 너 명찰에 피 묻었다.”


43호는 명찰 뒤퉁이에 묻은 약간의 피를 슥슥 닦고, C동이라 불린 건물을 올려다보았다.


“대단하네. 우리 숙소만큼 큰 거 같다.”


C동은 거대한 정사각형 상자 같이 생겼다. 검푸른 유리로 벽을 둘러 마치 값비싼 보석 큐브 같았다. 햇살이 반사되 반짝반짝 빛났다.


“예쁘다. 우리보다 사는 사람은 적을 텐데 건물은 더 좋네.”


44호는 약간의 질투심을 담아 건물을 흘겨보았다.


잡초 자란 언덕에 아스팔트 길을 따라 자동문 앞에 섰다. 44호는 능청스럽게 43호의 어깨에 팔을 둘렀다. 뭔가 바뀐 것 같다는 눈빛을 43호가 보냈지만, 그녀는 애써 외면했다.


아무런 카드 없이, 신원확인 없이 문이 열렸다. 단정한 로비가 눈에 들어왔다. 특유의 모던함에 두 클론은 잠시 눈을 빼앗겼다. 화려하기보다는 깔끔한 공간이었지만 매일 단조로운 하얀 방에서 살던 둘에게는 충분히 인상적이었다.

“어? 진짜 클론들이야? 여기는 어쩐 일로 왔어? 너희 여기 함부로 오면 안돼. 혹시 의무실에서 나온 거야?”


검은 여성 정장에 긴 스타킹을 신은 여자가 말을 걸었다. 그녀는 명찰을 달고 있지 않았다. 44호는 얼마나 자세하게 둘러낼지 잠시 고민했다.


“엇그제 몸이 심하게 뚫렸다가 자가치유 했는데, 몸 안쪽에 종양이 생긴 거 같아요. 의무실 가 보라고 해서 교관님이랑 왔는데...의무실 어느 쪽인지 아세요?”


“아아. 나도 원래 여기서 일하는 사람은 아니라서 잘 모르는데...저 안쪽이라고 알고 있어.”


자가치유와 종양 이야기를 들은 그녀는 놀란 표정을 감추지 않았다.


에써 괴로운 척하는 44호를 짊어진 43호는 그녀의 정체를 생각했다. 원래 여기서 일하는 사람이 아니라고 했다. 그럼 둘 중 하나, 침입이거나 높으신 분의 방문이었다.


일단 침입자가 정장을 입고 이 바다를 건너오지 않았을 거라고 가정할 수 있다. 그럼 높으신 분의 방문이었다.


헌터 클론을 만들어놓고 게이트에도 보내지 않고 있는 현 상황을 분석해 봤을 때, 자신들의 존재는 극비에 가까웠다. 즉, 그 높으신 분이 여기 온 이유는 활동하는 척하기 위해 사진 좀 찍으려 온 게 아니다.


‘그럼 남은 건 하나야. 우리를 만든 사람들이다. 의무실로 갈 필요도 없을지도 몰라.’


44호와 43호의 눈빛이 교묘하게 마주쳤다.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43호는 그 길로 사라지는 척 하다 돌아와 그녀의 뒤로 따라 붙었다. 어느새 일행이 한 명 나타났다. 밤색 정장을 입을 사내였다. 여자의 태도를 보니 그쪽이 상관 같았다.


“이거 장난 아니다.” 입가에서 마른 미소가 떠나지 않았다. 은근한 긴장감에 심장이 나대는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정장남과 정장녀는 미로처럼 복잡한 복도를 지나 한 방으로 들었다. 금발 의 여자가 책상 위에 엎드려 있었다.


“저쪽으로 들어갔어.”


두 클론은 방문 앞에 바짝 붙었다.


“이건 미친 짓이야. 작전도 아니라고. 도전, 모험, 그건 공무원이 할 짓이 아니지. 너희 공무원 아니었어? 세금으로 이런 짓 해도 되는 거야?”


푸념과 함께 듣고 싶었던 이야기가 시작되었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1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레플리카 헌터는 많은 것을 바라지 않는다.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27 27화 +1 21.01.28 98 3 12쪽
26 26화 +1 21.01.27 100 3 12쪽
25 25화 허물 Fin +1 21.01.26 111 3 12쪽
24 24화 +1 21.01.25 112 3 12쪽
23 23화 +1 21.01.22 104 3 13쪽
22 22화 실험실의 코끼리 +1 21.01.21 113 3 12쪽
21 21화 +1 21.01.20 113 3 12쪽
20 20화 +1 21.01.19 115 2 12쪽
19 19화 +1 21.01.18 107 4 11쪽
18 18화 사형집행 +1 21.01.15 118 3 14쪽
17 17화 +1 21.01.14 110 3 12쪽
16 16화 +1 21.01.13 113 3 12쪽
15 15화 +1 21.01.12 117 3 12쪽
14 14화 +1 21.01.11 121 3 12쪽
13 13화 +1 21.01.08 127 3 13쪽
12 12화. 뿌리 +1 21.01.07 114 4 13쪽
11 11화 +1 21.01.06 122 4 12쪽
10 10화 +1 21.01.05 133 3 12쪽
» 9화 +1 21.01.04 125 3 12쪽
8 8화. 성장통 +1 21.01.01 152 4 12쪽
7 7화 +1 20.12.31 152 3 13쪽
6 6화 +1 20.12.30 162 4 12쪽
5 5화. 인스트럭션 +2 20.12.29 184 5 12쪽
4 4화 +1 20.12.29 194 5 12쪽
3 3화 +1 20.12.29 243 5 12쪽
2 2화. 프로젝트 이미테이션 +1 20.12.29 309 4 13쪽
1 1화. +2 20.12.29 435 5 14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