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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디귿 님의 서재입니다.

기적과 함께(Now is mirac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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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디귿
작품등록일 :
2018.01.06 20:23
최근연재일 :
2018.03.11 21:27
연재수 :
10 회
조회수 :
1,197
추천수 :
0
글자수 :
52,920

작성
18.01.27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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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8화. 스페인 북부의 이 천리 길

DUMMY

“화요일에 출국이라고? 얼마나 있을 생각이야?”


“저도 확실히 모르겠어요. 행사 기간이 대략 17일 정도 되고, 그 뒤로 세 달 정도 예상하고 있긴 한데··· 돈이 문제죠.”


“세 달이나?”


오르간 앞에 앉아 악보를 정리하던 마리아 누나가 놀란 눈으로 돌아봤다.


“너 아주 작심하고 가는구나?”


“당연하죠. 회사까지 그만두고 가잖아요. 마음 같아서는 불법체류라도 해서 더 있고 싶죠.”


“아서라. 아서. 다른 사람이면 불법체류지만 넌 누가 봐도 딱 해외도피 범죄자야. 똑같이 잘못해도 넌 총 맞을 수도 있어.”


너무 자주 듣는 말이라 이젠 반박하기도 귀찮다.


“아이고, 압니다요. 주임 신부님도 의도는 다르지만 비슷하게 말씀하시더라고요.”


“그래? 뭐라고 하셨는데?”


“이왕 회사까지 그만두고 나가는 거 잡힐 때까지 들어오지 말고 버텨보래요. 대신에 전 오해 받기 쉬운 인상이라 총 맞을 지도 모르니까 걸리면 무조건 싹싹 빌라고 하시대요.”


말이 끝나기 무섭게 마리아 누나의 자지러지는 웃음소리가 성전을 울렸다.


“근데 의외다. 직접 불법체류를 권유하시고.”


“원래 신부님 그런 농담 잘 하시잖아요. 게다가 제 나이에 쉽지 않은 기회니까 최대한 활용해 보라는 의미시겠죠.”


2, 3년에 한 번씩 열리는 가톨릭교회의 행사인 세계청년대회(World Youth Day)에 참석하기 위해 5년 동안 다닌 회사까지 그만둔 마당에 행사 기간만 채우고 돌아오기엔 너무 아까운 기회였다.


“하긴. 쉬운 기회는 아니지. 나도 가고 싶었는데 너처럼 퇴사할 용기는 안 나더라.”


1년 전 세계청년대회라는 행사의 존재를 접했을 때 누구보다 반겼던 건 마리아 누나였다. 연애나 결혼에는 관심이 없고 오로지 여행이 인생의 전부인 그녀에게 세계청년대회의 열정은 새로운 도전 의식이 싹트기에 충분했다. 하지만 그녀의 바람은 현실이 되지 못했다.


“맞다. 휴가 못 받았다고 했었죠? 누나네 회사 외국계라고 하지 않으셨어요? 휴가 쓰는 거 자유롭지 않아요?”


“응. 그렇긴 한데 그때가 제일 바쁠 때거든. 더군다나 회사에서 내 위치가 그때 자리를 비우기 좀 애매해.”


아쉬움이 마리아 누나의 얼굴 가득 묻어있었다.


“섭섭하겠네요.”


“어쩌겠니. 팔자려니 해야지. 가서 네가 누나 몫까지 재밌게 놀다 와.”


“여부가 있겠습니까. 제가 다른 건 몰라도 누나 몫까지 짊어지고 있다는 사명감은 절대 잊지 않겠습니다.”


“하여간 말이나 못 하면··· 그나저나 이제 열흘도 안 남았는데 여행 계획은 좀 세운 거야?”


“아뇨. 아직 별 계획 없어요.”


“뭐? 너 WYD(세계청년대회) 신청한 게 작년 아니야?”


마리아 누나의 반응만 보면 내가 죽을죄라도 지은 것 같았다.


“그럼 최소 8개월은 넘은 건데 그동안 여행 계획도 안 세운 거야? 내일 모레 나가는 애가 지금 정신이 있는 거니? 없는 거니?”


소나기처럼 잔소리가 쏟아졌다. 내가 생각해 봐도 한심하긴 마찬가지다. 천천히 준비하면 되겠지. 시간은 많아. 아직 괜찮아. 라며 막연하게 생각하다 보니 어느새 지금까지 와버렸다.


“그래도 아주 무계획인 건 아니에요. 행사 끝나고 며칠은 비오하고 스페인 남부 관광하기로 했어요. 그리고 그 뒤에 휴가 오는 친구랑 마드리드에서 만나서 열흘 동안 같이 관광할 거고요.”


설명이 아니라 변명이 돼버렸다.


“그래봐야 한 달이네? 그 뒤엔?”


“그게 문제죠. 그 뒤가 없어요. 하하하.”


뒷머릴 긁적이며 어색한 웃음을 흘리자 마리아 누나는 한심하다는 듯이 혀를 찼다.


“쯧쯧. 고기도 먹어본 사람이 먹는다더니··· 안드레아야, 너 뭘 어떻게 준비해야 할지 잘 모르겠지? 여행 책자나 인터넷 뒤져봐도 결정을 못 하겠고?”


“맞아요. 남들이 하라는 대로 여행하는 것도 성격에 안 맞고, 그렇다고 영어도 못하는 제가 무작정 제 멋대로 계획을 짜도 괜찮을지 확신도 안 서고 그래요. 제가 게으름 떤 것도 있지만 뭘 어떻게 준비해야 할지 감이 안 잡혀서 손을 놓게 된 것도 있어요.”


“으이그, 이 화상아. 그걸 지금 변명이라고 하는 거니? 미리 누나한테 물어보고 그랬음 됐잖아.”


“그러니까요! 제가 왜 그 생각을 못했을까요?”


손뼉을 치며 초등학생의 학예회 연기 같은 어색한 말투에 마리아 누나의 따가운 시선이 얼굴에 박혔다. 입술이 실룩거리는 게 다시 또 엄청난 잔소리가 쏟아질 것 같았다. 하지만 성전을 울리는 건 마리아 누나의 잔소리가 아닌 과하다 싶을 정도로 밝고 경쾌한 목소리였다.


“안녕하세요.”


익숙한 목소리였다. 고개를 돌려 보니 역시나 목소리의 주인공은 아녜스였다. 아녜스를 먼저 발견한 마리아 누나가 먼저 큰 소리로 그녀의 이름을 불렀다.


“아녜스야!”


“언니!”


예상대로 이산가족 상봉이 떠오르는 장면이 펼쳐졌다. 목소리만큼이나 밝은 표정으로 다가온 아녜스가 팔을 크게 벌리고 기다리고 있던 마리아 누나의 품에 안긴 것이다.


“매주 만나면서 그러는 것도 병이다. 병··· 얌마! 그리고 넌 오빠는 안 보이냐?”


“안녕. 오빠. 일찍 왔네?”


얼싸안은 팔을 푼 아녜스의 표정은 여전히 밝았다.


“나는?”


“응? 뭐가?”


“야, 나도 일주일 만에 봤는데 반갑게 안아주면 안 되냐?”


팔을 활짝 벌리고 가슴을 내밀었다.


“왜? 오빠도 안아줄까?”


매주 반복되는 농담일 뿐이었다. 그에 따른 아녜스의 대답은 한결 같았다.


‘안 돼! 나중에 오빠 애인한테 혼나.’


있지도 않은 애인 타령 한다며 나는 면박을 주고 아녜스는 능청스럽게 조만간 생길 거라며 웃어넘긴다.


이게 평소의 모습이고 예상했던 그림이었다. 하지만 아녜스는 낯선 대답과 함께 팔을 활짝 펼치며 정말 안아줄 것처럼 서서히 다가왔다.


“안 돼!”


내게로 향하던 아녜스의 걸음은 채 세 발자국도 떨어지기 전에 마리아 누나의 손에 멈춰졌다.


“아녜스는 내 거야!”


마치 아끼는 인형을 뺏기지 않으려는 아이처럼 마리아 누나는 아녜스를 다시 꼭 끌어안았다.


“아, 네. 가지세요. 누나 거 하세요.”


아무도 모르게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가슴을 쓸어내렸다. 먼저 농담을 던지긴 했지만 술이라도 취한 상태라면 모를까 아녜스가 방금 보여준 행동은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연인이 아닌 사람과의 포옹이나 과한 스킨십은 나이가 먹어도 썩 익숙해지지 못했다.


“참, 언니! 사무장님이 이거 언니 드리라고 하던데요?”


아녜스는 가방 안에서 아직 비닐 포장이 뜯기지 않은 책을 한 권 꺼내 마리아 누나에게 내밀었다.


“어머, 구하셨구나!”


마리아 누나는 반색하며 아녜스에게 책을 받아들었다.


“무슨 책이에요?”


“카미노라고 알아?”


“카미노요?”


“응. 스페인 북쪽에 있는 성지 순례길인데 못 들어봤니?”


생소한 단어였다. 표정을 보니 아녜스도 처음 듣는 것 같았다.


“얼마 전에 TV에서 다큐멘터리 했었는데 못 봤어?”


“누나 저 TV 안 보는 거 아시잖아요.”


“아, 그랬지? 아무튼, 약 800km 정도 되는 길인데 도보로 순례할 수 있는 길이야. 야고보 성인 유해가 있는 산티아고까지 가는 거야.”


“800km요? 정말 그 거리를 걸어요?”


놀라 소리치는 아녜스의 목소리가 비명처럼 들렸다.


“성지순례 같은 거예요?”


서울에서 부산까지 약 400km이니 서울에서 출발해 부산까지 걸어갔다 다시 서울까지 걸어오는 정도의 거리다. 그 거리면 도대체 며칠이나 걸어야 할까?


“음··· 그렇지. 옛날부터 순례를 위해 걸었던 길이니까. 근데 지금은 꼭 순례를 위해서만 걷는 건 아닌가봐. 나도 자세히는 모르지만 개인적인 깨달음을 얻기 위해서 걷는 사람도 있고, 고행이나 도전이 목적인 사람도 있나봐.”


“그럼 잠은 어디서 자요?”


상상도 해본 적 없는 신비한 길에 흥미를 느꼈는지 마리아 누나에게 질문하는 아녜스의 눈이 초롱초롱 빛나고 있었다.


“마을마다 순례자용 숙소가 있대. 가격도 다른 여행지에 비해 상대적으로 굉장히 저렴하고.”


“여자도 걸을 수 있대요?”


“이 책 쓴 사람도 여자야.”


마리아 누나는 아녜스의 얼굴 앞에 책을 흔들며 말을 이었다.


“운동을 전문적으로 했던 것도 아니고, 체력도 그냥 보통 수준이야. 근데도 순전히 걸어서 완주 했대.”


“여자 혼자요?”


“응. 도중에 사람들 만나서 일행이 된 적도 있는데 일단 출발은 혼자 했대.”


“위험하지 않대요? 저도 유럽에 가본 적은 없지만 듣기로는 치안이 굉장히 안 좋다면서요.”


“정말 안전한 곳이래. 나도 예전에 바르셀로나에서 소매치기 당한 적 있지만, 그런 곳하곤 전혀 다른가봐.”


“와, 대단하다. 여자 혼자 800km. 오빠, 800km면 얼마나 되는 거야?”


“서울 부산 왕복? 자동차로 쉬지 않고 8시간 정도 가야 하는 거리? 성인 평균 걸음이 시속 4km라고 했을 때··· 8일 동안 쉬지 않고 걸으면 되겠네.”


“진짜? 그걸 사람이 걸을 수 있는 거야?”


군대 행군이 떠올랐다. 대략 4~50km에 군장과 총, 거기에 대부분 야간 행군. 그 길이 어떤 곳인지 모르지만 짐은 군장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가벼울 테고 총도 없다. 더군다나 군대처럼 규율과 규칙에 얽매일 필요도 없겠지.


“굉장히 많이 걷던데? 한국에도 요즘 많이 알려져서 엄청 많이 가나봐. 대략 한 달 정도 걸린대.”


한 달이면 하루에 대략 30km씩 걸어야 한다. 군대 행군과 비교하면 무난할 것 같았다. 다만 그걸 매일 반복해야 한다는 건 도무지 가늠이 안 됐다.


“와! 한 달··· 근데 언니도 거기 가려고요? 그래서 책 산 거예요?”


“응. 한 달 넘게 휴가를 써야 해서 당장은 어렵지만 조만간 가려고. 아, 맞다!”


마리아 누나의 큰 눈이 내게 향했다.


“안드레아! 너 여기 어떠니?”


“글쎄요. 흥미롭긴 한데······.”


한 달이다. 그리 어렵게 간 유럽에서의 한 달을 걷는데 써야한다니 쉽게 결정할 문제는 아니었다.


“그럼 일단 알아봐. 순례자용 숙소도 싸고, 식당마다 순례자 메뉴라는 게 있어서 가격도 싸대. 아마 다른 여행지 보다 돈은 훨씬 덜 들걸.”


“맞다! 오빠 다음 주에 유럽 가지? 내 선물 잊지 마요.”


“선물 같은 소리 한다. 여행 중간에 돈 떨어질까봐 벌써부터 걱정하는구만.”


“에이, 남자가 소심하게 뭘 그런 걸 벌써부터 걱정하고 그래. 괜찮아. 오빠는 잘 다닐 수 있을 거야.”


“그래서? 선물 사오라고?”


“응.”


너무 해맑고 당당하게 대답하니 도리어 대꾸할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미사 준비로 분주히 움직이는 동안에도, 미사가 진행되는 중에도, 미사가 끝난 후에 청년회합 때도, 회합이 끝나고 가진 술자리에서도 한 단어가 귓가에 계속 머물러 있었다. 마리아 누나에게 들었던 그 카미노라는 단어가.

2011-10-03 09.10.51.jpg


작가의말

(앞으로의 이야기는 안드레아의 감정을 최대한 살리기 위해 1인칭 시점으로 진행됩니다.)

요즘 한국이 많이 춥다고 들었습니다.

미끄러운 길을 조심하세요.

감기는 약 먹고 푹 쉬면 낫지만 미끄러운 길에서 넘어지면 쪽팔려서 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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