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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창 님의 서재입니다.

어느샌가 이능력 사이언티스트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SF

완결

민창
그림/삽화
제이지
작품등록일 :
2021.06.25 09:12
최근연재일 :
2021.10.06 13:05
연재수 :
104 회
조회수 :
51,152
추천수 :
892
글자수 :
532,633

작성
21.07.04 01:02
조회
1,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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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글자
12쪽

철저한 보안

DUMMY

고등학교 과정도 어려운 주동화에게 온통 영어로 된 과학 전문 용어는 그냥 외계어였다.


아예 읽는 방법도 모르는 단어들이 수두룩했고 연구원들이 나누는 대화도 반 이상은 이해하지 못했다.


그래서 주동화는 연구실에서 알아들을 수 있는 이야기가 화제가 되면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었다.


"이번에 과기부에서 R&D 들어가자고 했대. 5년 과제로."


오늘은 김충민 선임이 연구실에 소식을 하나 가져왔다. 임이섭이 말했다.


"당연히 거절하겠죠. 대표님이 나랏돈 받은 적 있나요?"

"이러다 진짜 정부 눈 밖에 나는 거 아니야?"

"이미 났죠. 감사 엄청 쪼이는 거 봐요."


임이섭이 ‘뭐, 우리는 대표님 돈 받는 거니까 나랏님이 아니라 대표님께 충성해야죠.’ 하고 덧붙이자 연구원들은 그 말이 맞다며 웃었다. 김충민이 말했다.


"그러게. 우리야 상관없지 뭐. 법무팀이랑 회계팀만 죽어나는 거지."

"그 바늘구멍 같은 감사를 빠져나가는 걸 보면 진짜 신기하다니까요."


연구실에서 이런 이야기는 심심찮게 들렸다. 정부에서 공동연구개발을 제안하면 백이면 백 거절을 한다는 것이었다.


정부에서는 막대한 자금을 지원하고, 세금 혜택도 준다고 하는데도 틸엘은 단 한 번도, 정부와 손을 잡은 일이 없다.


그랬기 때문에 정부로서는 틸엘이 눈엣가시일 수밖에 없었다. 온갖 기관에서 시도 때도 없이 감사가 나왔고 언론으로 선동을 하며 파워싸움을 걸었다.


한 번은 틸엘과 상관도 없는 한빛항공 일을 끌어들여 영업정지 처분까지 내렸었으나, 전 세계 유일무이한 기술력 앞에 정부는 곧 꼬리를 내려야 했다.


전국의 병원에서 틸엘의 룩스미터가 없으면 정상적인 의료행위를 할 수 없다고 결의까지 하니 더는 버티지 못하고 물러났던 것이다.


룩스미터는 의료인의 업무를 20% 가까이 감소시켰다는 평가가 있었다. 의료 외적인 업무를 최소화시켜 고도의 집중력과 지식을 요구하는 업무에 집중할 수 있게 해준다는 의견이었다.


수출 실적이야 말할 것도 없다. 주은표 회장의 원칙이 내수 우선이라 미국과 유럽에서는 없어서 못 구할 정도였다.


전 세계 어디에도 없는 기술이 대한민국의 기업에 있는데, 그 기술을 공유하기 위해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는 것은 대한민국 정부로서는 당연한 제스쳐였다.


"하지만 특허도 안 내고, 이러다 다른 회사에서 개발을 하면 어떻게 하죠?"

"맞아. 룩스미터를 연구용으로 사가는 기업도 많잖아. 뜯어서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보려고."


임이섭과 김충민은 역시 신경이 쓰이는지 특허에 대한 우려를 말했다. 두 사람의 말처럼 룩스미터는 특허 등록이 안 되어 있다.


특허를 내려면 제품의 원리에 대해 대략적으로나마 기술해야 되는데, 주은표 회장은 그것조차 거부한 것이다.


그러니 룩스미터는 독점권이 없는 제품이었다. 때문에 다른 기업은 물론 정부출연 연구기관에서도 눈에 불을 켜고 복제품을 만들려고 기를 쓰는 중이었다.


"한 세기는 앞선 기술이야. 그래서 절대로 흉내 낼 수가 없고. 심지어 직원인 우리도 모르잖니."


박관배 책임의 말처럼, 룩스미터의 원천기술을 아는 사람은 오직 주은표 회장뿐이었다.


"책임님도 모르세요?"


임이섭이 놀란 얼굴로 물었다. 박관배는 고개를 끄덕였다.


한 세기가 앞선 놀라운 기술을 개인이 독점하는 상황, 철저하다 못해 유난스러울 정도의 기술 보안.


이런 상황에 주동화는 조금씩 의심이 생겼다. 룩스미터의 기술이 아버지가 다녀왔다고 주장하는 ‘다른 차원’에서 비롯된 것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그랬기 때문에 실종 직후 집으로 돌아와서 회사를 차리고 성공할 것이라 예언했던 것이 아닐까.


룩스미터, 그리고 엘 글래스. 그 놀라운 기술들은 마치 비밀의 아이템처럼 오직 이 틸엘 안에, 아니 대표실 안에 꼭꼭 숨어 있을 것이었다.



***



언제나처럼 일찍 출근한 주동화가 자리에서 공부를 하고 있는데, 박관배 책임이 두꺼운 보고서 하나를 건넸다.


"동화야, 이걸 이해가 될 때까지 읽어라."

"네, 알겠습니다."


보고서를 읽고 이해를 하라니, 청천벽력같은 소리였지만 주동화는 일단 두 손으로 보고서를 받아들었다. 다른 보고서에 비해 배로 두껍다.


제목은 '룩스미터의 정밀도를 높이기 위한 방안 연구'. 최근 연구실에서 작성한 보고서였다.


제3연구실은 룩스미터의 측정값을 더욱 세밀하게 하기 위한 연구 중이었다. 내시경을 대체할 수 있을 정도까지 정밀도를 끌어올리려는 목적이다.


주동화가 알고 있는 것은 이 정도가 전부였다. 연구실에서 이런 연구를 하고 있다 정도만 이해할 뿐이지 연구의 내용은 전혀 알지 못했다.


회의에 들어가면 무슨 이야기인지 알아듣지 못해서 눈만 꿈뻑이고 있었고, 연구실에서 실험을 할 때는 내용 이해는커녕 준비할 시약 이름을 받아 적는 것만으로도 벅찼다.


때문에 주동화는 박 책임이 숙제를 내준 것이라 생각했다. 여기에서 일하고 싶으면 공부를 하라는 의미일 것이다.


옳은 말이긴 하지만 이 보고서는 대학 논문 수준이라 읽는 것조차 불가능할 것 같았다. 그런데,


"책임님, 이거..."


생각지도 못하게, 박 책임이 건넨 보고서는 주동화가 생각했던 내용이 아니었다.


"내가 어릴 적엔 과학 선생님이 꿈이었어."


박 책임의 말처럼, 보고서는 정말 초등학생이나 중학생이 읽어도 이해가 갈 만큼 자세하게 적혀 있었다. 그 세세한 설명들이 보고서의 두께를 곱절로 늘어나게 한 것이었다.


군데군데는 손으로 쓴 메모로 ‘이것은 외울 것.’ ‘중요한 공식’ 등 기억해야 할 것을 메모해 놓기도 했다.


주동화는 놀라움에 한참 동안 보고서를 쳐다보고 있었다. 이걸 모두 읽고 이해한다면, 엘 글래스의 설계도를 이해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희망이 생겼다.


물론 이 두꺼운 보고서를 공부할 생각을 하니 눈앞이 캄캄했지만, 주동화는 박 책임에게 감사는 표시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모자란 부하 직원을 위해 자기 시간을 깎아서 이런 일을 해줄 수 있는 상사가 어디에 있겠는가. 아무리 상대가 대표 아들이라고 해도 말이다.


"감사합니다."

"동화 네가 열심히 하니까 그런 거야."


인정. 이런 것이 인정일까. 주동화는 기분 좋게 가슴이 두근거렸다.


그는 무능하기에 이곳에서 ‘일 잘 한다’라는 말은 절대로 들을 수 없을 것이었다. 그러니 ‘열심히 한다’라는 말은 지금 그의 수준에서 들을 수 있는 최상급의 칭찬이었다.


‘열심히 한다’라는 말이 이 정도인데, ‘일 잘 한다’라는 말을 들으면 기뻐서 심장이 터질 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학교 다닐 때도 선생님한테 칭찬을 들어본 적이 없으니 그에게는 칭찬에 대한 면역력이 없었다. 이것은 어머니한테 듣곤 했던 ‘잘했어, 우리 아들’이랑은 전혀 다른 느낌이었다.


물론 어머니의 칭찬도 기분이 좋지만, 가족이 아닌, 그것도 회사의 상사에게 듣는 칭찬은 전혀 다른 차원의 뿌듯함을 주었다.


"그러게요. 주동화 씨는 너무 열심히 해요."


옆에 있던 임이섭이 말했다. 생각지도 못한 칭찬에 주동화는 조금 당황했다.


"네? 고맙습니다..."

"별로 고마울 건 아닌데. 칭찬을 한 것도 아니고."


임이섭이 중얼거리듯 말했다. 주동화가 느끼기에도 확실히 칭찬하는 느낌의 말투는 아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일 잘한다는 말을 하루에 몇 번씩 듣는 임이섭에게는 열심히 한다 따위가 칭찬이 될 수 없을 것이었다.


하지만 주동화에게는 틀림없이 칭찬이었고, 기분이 상할 이유도 없었기에 차분하게 대꾸했다.


"아... 네. 더 노력하겠습니다."

"이미 충분히 노력하고 있어요. 지금처럼 계속한다면 올해 안에 생명과학1은 떼겠죠."


이 말만 안 했어도 정말 기분 좋은 아침이 되었을 텐데, 마지막은 결국 비아냥으로 끝났다.


역시 임이섭은 좋은 말로 대화를 마무리할 위인이 아니었다. 주동화의 화가 끓어오를 때쯤 연구원들이 하나둘씩 출근을 했고, 주동화는 아직 반 이상 진도가 남아있는 생명과학 참고서를 서랍에 집어넣었다.


그리고 한편으로 생각했다. 임이섭의 말처럼, 열심히 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았다.


언제까지고 박 책임에게 의지해서 일을 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게다가 이런 쪽팔리는 사정을 다른 연구원들에게 들키기라도 하면 어떻게 되겠는가.


지금은 연구보조라서 크게 문제는 안 되지만, 연차가 쌓이게 되면 승진을 할 수도 있는데, 아는 게 없어서 승진을 못 하는 꼴사나운 짓은 하지 않아야 할 것이다.


주동화는 박 책임에게 받은 보고서를 책상 책꽂이의 가장 가까운 곳에 넣었다. 틈이 날 때마다 읽기로 결심했다.


연구원들이 모두 출근을 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박 책임이 공지할 것이 있다며 일어섰다.


"오늘 오전 회의는 오후로 연기합니다. 제가 다른 일정이 생겼습니다."

"네? 출장 가시나요?"


연구원 중 누군가가 물었다. 박 책임은 고개를 가로젓고 대답했다.


"아니요, 임원 회의가 있습니다."


박 책임은 짧게 대답하고 자리에 앉았다. 갑작스러운 임원 회의 일정에 연구원들 표정은 썩 개운해 보이지 않았다.


회의를 갑자기 취소한 것으로 보면 어젯밤이나 오늘 오전에 잡힌 일정인데, 외부 미팅이라면 모를까 임원 회의가 이렇게 돌발적으로 개최되는 일은 없기 때문이다.


회사 내부에 어떤 사고가 생겼거나 긴급히 해결해야 할 문제가 있는 것이다. 연구원들은 눈치를 보며 사내 메신저를 주고받았다.


박 책임의 굳은 표정은 연구원들의 걱정에 무게를 실었다. 연구실에 침묵이 흘렀다.



***



오전 회의가 취소된 덕분에 연구실은 조용했다. 임원 회의가 길어지는지 박관배 책임은 점심시간이 지나고도 들어오지 않았다.


연구원들은 각자 자료를 정리하거나 연구결과를 점검하는 등 묵묵히 할 일을 하고 있었다.


주동화도 박 책임에게 받은 보고서를 보며 뜻 모를 내용들을 이해해보려고 노력 중이었고 말이다.


포털사이트 백과사전을 켜놓고 검색을 하면서 하나씩 뜻을 찾아보고 있는데 아무래도 사람이 할 짓이 못 됐다.


무슨 단어만 쳤다 하면 뜻이 백 줄씩 나오고 온갖 숫자와 영어로 된 공식들이 두세 개씩 튀어나왔다.


그중에 알아들을 만한 내용이 있는지를 찾느라 주동화는 눈이 다 빠질 지경이었다. 모니터가 뚫어져라 웹문서들을 쳐다보고 있을 때, 김충민이 부르는 것을 들었다.


"동화씨, 간 2차 연구결과 데이터 좀 뽑아줄래?"

"네, 알겠습니다."


룩스미터 성능 개선을 위한 간 부위 2차 연구, 4월 20일. 주동화는 기계적으로 손을 움직여서 프린트를 했다. 그는 연구실에서 진행된 모든 연구의 제목과 날짜를 기억하고 있었다.


연구 내용은 전혀 모르지만 연구 제목과 날짜는 모두 머릿속에 있었다. 주동화는 인쇄한 데이터를 김충민에게 가지고 갔다.


"고마워. 아, 종양 관련해서 했던 거 있지? 그것도 찾아줄래?"

"종양... 네 알겠습니다."


그런데 이런 식으로, 연구 내용을 말하는 경우가 문제가 되었다. 주동화는 머릿속이 하얗게 된 채로 일단 대답을 하고 자리로 돌아갔다.


컴퓨터를 앞에 두고 주동화는 고민을 시작했다. 좀 전에 간 이야기를 했으니 간과 관련된 것일 텐데. 간 연구들 중에 종양과 관련된 게 어떤 보고서인지 모르겠다.


간 부위 연구가 1차에서 4차까지 있고, 초음파와 이식과 관련된 세부 보고서들도 있다. 이 중에 무엇인지 알 수가 없다.


부끄럽지만 김충민에게 정확한 제목을 묻는 수밖에 없을 것 같았다. 한숨을 푹 쉬고 김충민에게 말을 하려는데,


"김 선임님, 그 데이터는 제가 뽑아놓은 게 있어요. 제가 드릴게요."


임이섭이 김충민에게 말했다.


작가의말

다음 업로드는 내일 오후 2시경입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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