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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창 님의 서재입니다.

어느샌가 이능력 사이언티스트

무료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SF

완결

민창
그림/삽화
제이지
작품등록일 :
2021.06.25 09:12
최근연재일 :
2021.10.06 13:05
연재수 :
104 회
조회수 :
51,597
추천수 :
895
글자수 :
532,633

작성
21.06.30 14:05
조회
1,320
추천
20
글자
11쪽

취업준비생

DUMMY

마트에서 집까지는 걸어서 왔다. 아버지는 또 택시를 잡으려고 했지만 어머니가 기겁을 하며 말렸다.


그런 어머니를 주동화는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주동화와 어머니의 삶에 택시라는 교통수단은 없었으니 말이다.


그랬기에 두 사람은 늘 부지런해야 했고 늘 시간에 쫓겨야 했다. 그 탓에 몸이 고단한 것은 말할 것도 없다.


그가 춘천에 있는 대학에 지원한 것도 교통비와 무관하지 않다. 어차피 서울에 있는 대학을 갈 성적이 되었던 것도 아니지만.


계속 서서 일해서 힘들 텐데 차를 타자는 말을 어머니는 칼같이 자르고 걸어서 집에 도착했다.


어머니는 '옷은 그게 뭐예요? 결혼식장 가요?' 하고 쏘아붙였고 아버지는 '당신을 마중 가는 것이 결혼식 가는 것보다 중요하지요.' 하고 능청스럽게 대답했다.


어머니는 짧게 한숨을 쉬었지만 기분이 나빠 보이지는 않았다. 그런 어머니한테 아버지는 빨리 차를 사야겠다며 내일은 같이 자동차 매장에 가자고 말했다.


주동화는 두 사람의 대화에 굳이 끼어들지 않았다. 그가 끼어들 자리도 없었지만 끼어들 필요를 느끼지도 못했다. 그에게 아버지가 낯선 것처럼, 아버지에게도 그가 낯설 것이라 생각했다.


평범한 부자간에는 어떤 이야기를 할까, 따위의 고민을 하며, 그는 쉴 새 없이 어머니에게 말을 걸며 계단을 올라가는 아버지의 넓은 등을 물끄러미 바라볼 뿐이었다.


그리고 그때였다.


“못 보던 아저씨네?”


집주인 아주머니였다.


주동화가 느끼기에 아주머니는 어머니가 지나갈 때를 기다리기라도 하는 것 같았다.


꼭 어머니와 집에 들어갈 때면 계단에서 마주치니 말이다. 밀린 월세를 달라고 말하려고 매번 이렇게 기다리는 거라면 죄송한 마음도 들지만, 어머니가 오늘 아침에 월세를 입금했다고 통화하는 것을 들었다.


그러니 이번에는 돈 달라고 말하려는 것이 아니다. 아주머니는 그냥 사람한테 말 거는, 아니 시비 거는 것을 좋아하는 성격일지도 모른다.


“네, 저희 남편이에요. 얼마 전에 집에 왔어요.”


어머니가 대답하자 주인 아주머니는 아버지를 위아래로 훑어보더니 못마땅한 표정으로 쏘아붙였다.


“사람은 얼굴값을 한다더니. 조강지처를 홀로 두면 쓰나.”


아주머니의 독설은 처음 보는 아버지를 상대로도 변함이 없었다.


하지만 사정을 모르는 사람이라면 저렇게 생각할 수도 있었다. 어머니는 '아니에요~ 이 사람한테 사정이 있었어서...' 하고 해명 아닌 해명의 말을 했다.


어머니는 상대가 누가 되든 간에 언성을 높이거나 날카롭게 대하는 법이 없었다. 아주머니가 무안을 줘도 언제나 이렇게 웃으며 대답을 한다.


그런데 아버지는 어머니 같은 성격은 아닌 것 같았다.


“예? 아줌마, 뉴스에서 나 못 봤어요? 그럼 그런 말 못 하실 텐데. 뉴스도 안 보시나 보네.”


아버지가 퉁명스럽게 말했다. 아버지도 주인 아주머니 못지않게 처음 보는 사람한테 가차 없었다. 어머니는 그런 아버지를 째려보고서 말했다.


“아주머니, 그동안 제가 폐를 많이 끼쳤는데 늘 기다려주셔서 감사해요. 저희가 이사를 갈 건데...”


그러자 아주머니는 어머니의 말을 딱 자르고서 말했다.


“이사? 어디로 가는데? 요즘같이 어려울 때 괜히 돈 낭비하지 마. 동화 엄마 돈도 없잖아.”


언제나와 같은 아주머니의 직설화법에 어머니가 대답을 잠시 망설이는 동안, 아버지가 불쑥 끼어들었다.


“이제 저희 와이프한테 낭비할 돈이 있거든요.”


아버지는 웃지도 않고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평생 써도 다 못 쓸 만큼이요.”


심각한 얼굴로 이런 말을 하는 아버지를 보며 어머니는 작게 웃음을 터뜨렸다. 어머니의 웃음에 주동화도 같이 미소가 배어 나왔다.


통쾌함과 안도감, 듬직함. 그런 낯설지만 그리웠던 감정들에 가슴이 뿌듯할 정도였다.


그리고 주동화는 생각했다. 저런 남자가 되고 싶다고.



***



3년 후



주동화의 아버지는 정말로 회사를 설립했고, 각본이 짜여져 있기라도 했던 것처럼 자연스럽게 대성공을 거두었다.


회사명은 틸엘(TILLEL)이며, 의료기기 분야에 혁명을 일으키며 순식간에 거대 기업으로 성장했다.


주동화는 물리학자인 아버지가 어째서 바이오산업에 뛰어들었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어찌 되었든 틸엘은 엄청난 성공을 거두었고 시작할 때의 아담한 임대 사무실은 높디높은 빌딩이 되었다.


직접 가보지도 않고 인터넷으로 계약을 했던 사무실에서, 정말 1년 만에 30층짜리 사옥으로 옮기고 아버지가 말했던 대로 직원은 수백 명이 되었다.


그로부터 2년이 더 지난 지금, 그때보다 몸집이 더 커진 것은 말할 것도 없다.


그리고 주동화는 그의 할아버지가 한빛그룹의 오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한빛그룹은 한빛항공, 일광물산 등의 유명 사업체를 보유한, 대한민국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는 재벌 기업이다.


아버지가 돌아오자 할아버지는 일선에서 은퇴하셨고 아버지가 회장직을 이어받았다. 즉, 그의 아버지는 한빛그룹의 총수이자 틸엘의 대표이사인 것이었다. 틸엘이 한빛그룹의 계열사 대우를 받고 있는 것은 물론이다.


한빛그룹의 자본력에 기반을 둔 공격적인 경영으로 틸엘은 짧은 시간에 초거대 기업으로 성장하여, 의료기기에서부터 제약, 건강보조식품까지 생명과 관련된 모든 시장에 진출하였다.


그 결과 대표이사인 아버지는 훌륭한 과학자인 동시에 유능한 사업가로 칭송받게 되었고, 가끔 나가는 강연만으로도 수천만 원씩 쓸어 담았다.


그리고 그의 아들인 주동화는 현재, 취업준비생이다.


생명과학이나 의료공학 전공의 연구원, 외국어가 능통한 영업사원들만 재직할 수 있는 틸엘에 그가 들어갈 수 없는 것은 당연했다.


아버지는 들어와서 일을 배워 보라고 했지만 그가 거절했다.


바이오 분야에는 관심도 없었다. 오직 게임회사에 들어가는 것이 인생의 목표였고, 이제 그 목표를 이루어야 할 때였다.


그러나 서류전형에 몇 번 탈락하면서, 그는 슬슬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그의 스펙으로 들어갈 만한 회사가 있을지 모르겠다.


대기업은 감히 꿈도 못 꾸고, 작은 게임회사에도 모두 이력서를 넣어봤지만 아직까지 연락이 없었다.


그렇게 변하는 것 없이 시간만 하루하루 흘러갔다. PC방에 와서 게임을 하면 그렇게 시간이 잘 간다.


“와, 나는 니가 진짜로 이해가 안 간다.”


옆자리에서 게임을 하던 한규성이 탄식하듯 말했다.


한규성은 한 달 전에 서울에 있는 회사에 합격했다면서 이사를 왔는데, 거기가 무려 신성건설이었다.


신성건설은 굴지의 건설회사로, 한규성은 거의 졸업과 동시에 입사하게 된 것이었다.


PC방 같이 가자고 조르기만 하던 놈이 어느 틈에 신성건설에 들어갈 스펙을 쌓은 건지, 주동화는 내심 한규성이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어쨌든 한규성이 서울로 이사를 온 덕분에 주동화에게는 게임 친구가 생겼다.


그 전까지는 아는 사람이 한 명도 없어서 진짜 혼자 게임만 했었다. 지금도 게임만 하긴 하는데 한규성과 함께인 점이 다르다.


이제 PC방비가 아쉽지 않은 주동화는 하루에 스무 시간씩 게임방에 있기도 한다.


주동화가 대꾸하지 않자 한규성은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나라면 블랙카드로 PC방 충전 같은 건 안 해.”

“그럼 뭐 할 건데.”

“당장 아파트부터 사야지.”


한규성은 할머니와 둘이 살았었는데, 직장 때문에 서울에서 자취를 하게 되어 할머니가 춘천에 혼자 계신다. 그래서 빨리 서울에 집을 구하고 싶어 한다.


그 사정을 아는 주동화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러자 주동화의 반응이 미적지근하다고 느꼈는지, 한규성은 목소리를 한 톤 높여 말했다.


“돈이 그렇게 많은데 PC방에 처박혀있는 놈이 어딨냐? 차라리 클럽을 가는 게 낫지.”

”너 클럽 가봤냐?“

“아니.”

”가보지도 않았으면서 아는 척은.“


PC방 알바한테도 말을 못 걸던 놈이 클럽에 잘도 가겠다. 주동화가 핀잔을 주자 한규성은 머쓱해 하며 말했다.


”아무튼! 나라면 너처럼 게임 하면서 시간 낭비는 안 해. 너 지금 완전 그거잖아. 캐쉬 무한충전 버그.”


캐쉬 무한충전 버그. 틀린 말은 아니었다.


이제 돈은 써도 써도 마르지 않는다. 하지만 주동화는 원래 게임 캐쉬에는 별로 관심이 없었다.


애초에 현질은 엄두도 못 내니 게임에서도 돈은 그의 관심사가 아니었다.


물론 어릴 때야 현질도 하고 싶고 현질하는 애들이 부러웠지만, 그것을 부러워 해 봐야 본인만 힘들다는 것을 알고 나서는 현질에는 아예 관심을 끊었다.


그는 오직 게임의 밸런스, 최고 효율 파악, 강력한 전략을 짜는 데에만 관심이 있었을 뿐이다. 현질을 제외한 모든 방법을 써서.


결과적으로는 패배했지만 말이다.


“나라고 시간을 낭비하고 싶겠냐. 이력서를 내도 뽑히질 않는 걸 어떻게 해.”


취업의 문턱은 높았다. 한규성은 입사한 회사가 야근이 너무 많다며 힘들다고 했지만, 백수인 주동화의 입장에서는 야근이든 뭐든 간에 취직만 되면 감사한 일이었다.


“틸엘 들어가면 되잖아. 아버지께서 들어오라고 한다며.”

“난 바이오 그런 거 관심 없어. 알지도 못하고 머리 아프고.”


주동화의 투덜거림을 듣던 한규성은 좋은 아이디어가 떠올랐는지 ‘아!’ 하며 고개를 번쩍 들었다.


“그럼 그냥 니가 만들어!”

“뭘?”

“게임 회사. 요즘 1인 기업 같은 것도 많잖아.”

“야, 그게 말처럼 쉽냐.”

“돈이 그렇게 많으면서 못할 건 뭔데. 너 만들고 싶은 게임 만들어서 팔면 되지!”

“내가 어떻게 회사를...”


주동화는 황당무계한 이야기라고 생각했다. 아는 게 아무것도 없는데 갑자기 회사라니.


“아버지 말씀 잘 들으면 투자금 꽤 받을 수 있지 않겠어? 틸엘에 입사한다고 하면 뭐든 해주실 걸?”


한규성은 ‘그러면 캐쉬가 무한충전되는데 뭐가 걱정이냐.’라면서 진지하게 설득하는 것이었다.


그렇게 오랫동안 꿈꿔온 건데 한 번 일을 저질러 보는 것도 괜찮다며, 그게 가진 자의 특권이라면서 괜히 아는 척을 했다.


그리고는 이렇게 묻는 것이었다.


“넌 어떤 게임 만들고 싶은데?”

“어...”


갑자기 이런 질문을 받으니 주동화는 대답을 할 수가 없었다. 게임이라면 뭐든지 만들고 싶은 것은 분명했지만, 딱히 어떤 게임을 만들겠다는 생각은 해본 적이 없었다.


밸런스 좋고 완성도 있는 게임을 만들고 싶다는 생각은 하고 있다.


하지만 구체적으로 어떤 게임을 만들고 싶은지는 모르겠다. 가장 좋아하는 건 역시 고전 RPG지만 막상 그걸 만들고 싶은 마음은 없다. 수요도 없을 거고.


어떤 게임을 만들면 좋을까. 나는 무슨 게임을 만들고 싶은 건가.


역설적이게도 주동화는 게임개발자를 꿈꾸면서 한 번도 이 질문을 자신에게 해본 적이 없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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