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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의 지리는 대충 외어두었다. 아무리 생각해보아도 이곳에는 마을이 있으면 안 되었다.
"뭐야..."
로인은 중얼거리며 린의 손을 잡고 마을로 다가갔다. 마을은 음산했다. 이제 아침임에도 불구하고 한기가 돌았다.
"누구 없어요?"
로인은 마을을 들어서며 말했다. 하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다. 로인은 마을 중앙에 피어있는 모닥불을 바라보며 인상을 찡그렸다. 모닥불은 꺼져 가고 있었다. 로인은 모닥불 앞에 앉아있는 검은 갑옷의 기사를 바라보았다.
'뭐야. 떡하니 앉아있는데 알아차리지 못했다?'
"저기..."
로인은 조심스럽게 다가가며 말을 걸었다. 가만히 앉아있는 상대의 기척을 알아차리지 못한 것은, 로인의 경계심을 올리기에 충분했다.
남자는 로인이 말을 걸자 고개를 돌렸다. 로인은 남자의 붉은 눈을 보고 흠칫했지만, 티 내지 않고 그를 바라보았다.
"여기 사시는 분이세요?"
남자는 잠시 로인을 바라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린은 남자를 보고 로인의 팔을 붙잡았다. 조금 겁을 먹은 듯했다.
"혼자... 사세요?"
남자는 고개를 저었다. 로인은 주위를 둘러보았다. 하지만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아무도 없었다.
"그럼 다른 분들은...?"
"밤에만 움직일 수 있는 녀석들이다."
남자는 허스키한 목소리로 말했다.
"아... 그렇군요."
로인은 고개를 끄덕였다.
'밤에만 움직일 수 있다고? 그게 무슨 소리야?'
로인은 속으로 생각하며 남자를 유심히 바라보았다. 붉은 눈에 검은 머리카락. 피부는 살짝 창백하다는 느낌이 들 정도.
'기운이...'
로인은 인상을 찌푸렸다. 기운이 이상했다. 보통 사람의 기운은 아니었다. 붉었다. 하지만 차가웠다. 마치... 생기가 없는 것처럼.
"저기요..."
로인은 긴장을 하며 입을 열었다.
"혹시... 인간이 아니세요?"
"인간이었지, 지금은 아니다."
로인은 남자가 아무런 변화 없이 말하자, 검을 뽑으려던 손을 내리며 남자를 마주 보고 앉았다.
"그럼 지금은... 언데... 아니, 죽은 몸이면서도 죽지 않은 영혼을 가진자. 불사의 존재... 인건가요?"
"인간들은 나를 데스 나이트라고 부르더군."
"..."
데스 나이트. 언데드 몬스터중에서도 상위 몬스터라고 할 수 있다. 다크 나이트가 진화하여 만들어진 몬스터였다. 개중에는 수십의 다크 나이트를 부리는 데스 나이트들도 있어서, 언데드 몬스터들 중에서는 가장 조심해야 하는 몬스터 중 하나였다.
"그럼 아까 그 녀석들... 이라고 불린..."
"그 녀석들은 다크 나이트라고 불리지."
"..."
로인은 입을 벌렸다.
고스트 타운. 언데드들의 마을이었다.
만약 이 데스 나이트가 도시를 공격했더라면 도시는 그 공격을 막지 못했을 것이었다. 데스 나이트는 적어도 소드 익스퍼트에 진입한 죽음의 기사였다. 게다가 다크 나이트들이 있다면, 라쿠스의 병력으로는 절대 막지 못할 것이 분명했다.
"저는 로인이라고 합니다."
"..."
"이번에 라쿠스 지방의 새로 영주가 되었죠."
"새로 영주가 되었다라..."
데스 나이트는 고개를 끄덕였다.
"축하하네. 뭐, 불사의 존재인 내가 할 말은 아니지만. 나는 죽음의 기사, 크론벨이라고 하네. 이렇게 되기 전까지는 블랙와이번 기사단의 단주였지."
블랙와이번 기사단. 로인도 책을 통해 접한 적이 있는 기사단이었다. 단주 크론벨과 50명의 기사. 70년 전 제국의 침략을 성공적으로 막아낸 것이 블랙와이번 기사단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신위가 뛰어났고, 유명한 기사단이었다.
크론벨은 소드 익스퍼트 중급에 이르렀고, 그 외 기사들은 소드 익스퍼트 하급이나 마나 유저 최상급에 이르렀다는 글이 있었다.
"나도 이곳의 주민이니, 영주인 자네의 말을 따라야 하는 건가?"
"...어... 글쎄요?"
로인은 말했다. 사실 크론벨은 자신이 어떻게 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었다. 일단 몬스터인데다가, 자신보다 강한 기사였다. 그런 그에게 어떠한 지시를 내릴 수는 없었다. 부탁이라면 몰라도 말이다.
"영주민이 되고 싶습니까?"
"인간이 될 수는 없겠지만... 인간답게 살고 싶군."
크론벨은 로인의 말에 답했다.
"그럼... 인간답게 살게 해드리겠습니다. 기사답게 살게 해드리죠. 라쿠스 성으로 오십시오. 머물 곳과 훈련할 곳을 마련해 드리겠습니다."
"...자네는... 특이 하군."
"제가요?"
로인은 린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진정을 시키다 말고 고개를 들었다.
"나는 데스 나이트일세. 언제든 자네의 영지민들을 공격할지 모른다는 것이지. 그런데 영지의 중심 도시로 나를 끌어들인다? 쉽게 할 수 있는 일은 아니지."
크론벨의 말에, 로인은 미소를 지었다.
"저는 당신을 데스 나이트로 보지 않고, 한 명의 기사로 보았을 뿐입니다."
"...한 명의 기사라... 그렇군. 고맙네."
로인은 크론벨이 고개를 살짝 숙여 감사를 표하자 고개를 저었다.
"아니요, 해드린 게 없는데 감사 인사는 부담스럽습니다."
"내가 이곳에 얼마나 있었는지 아나?"
"..."
"50년이 넘도록 이곳에 있었네. 인간들은 나를 보자마자 죽음을 각오하고 달려들었지, 그들에게 나는 그저 몬스터일 뿐이었어. 나도 내가 몬스터인지, 아니면 크론벨인지... 항상 고민하고 있었지. 나를 한 명의 기사로 생각해주는 인간은 자네가 처음이었네. 그것에 대해 고맙네, 아니, 감사합니다. 나의 로드시여."
"..."
로인은 크론벨이 한쪽 무릎을 꿇으며 말하자 자리에서 일어났다.
"저, 저는 당신의 로드가 아닙니다. 저는 단지 이곳의 영주일 뿐, 당신을 감당할 만한 그릇이 되지 못합니다."
"감당할 만한 그릇이 못된다... 로드는 몬스터의 몸을 입고 있는 저를 한 명의 인간으로 대해주셨습니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합니다."
"..."
로인은 말을 잃고 크론벨을 바라보았다.
"...저를 로드로 인정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로인은 입을 열었다. 그는 바보가 아니었다. 크론벨은 분명 엄청난 무력을 가지고 있는 기사였다. 그런 크론벨을 아군으로 삼는다면 좋은 점은 분명히 많았다. 몬스터의 습격에도 더더욱 안전할 것이었다. 로인은 그런 크론벨이 아군이 되어 주겠다는데 거절할 사람이 아니었다.
"저도 최선을 다하죠. 앞으로 당신의 신뢰를 더욱 얻기 위해 말이에요."
크론벨은 여전히 무릎을 꿇고 있었다.
"이제 일어나시고... 밤에 휘하 다크 나이트들도 데리고 오시겠습니까?"
"그러겠습니다."
크론벨은 고개를 끄덕였다.
"밤에는 몬스터들이 극성이니 조심하시고, 오신다면 병사가 신라에는 이라고 물을 테니, 화랑이라고 답하시면 됩니다."
로인은 크론벨을 바라보며 말했다.
"감사합니다."
크론벨은 고개를 숙였다.
"저는 이만 가보아야 할 것 같군요. 몬스터들 때문에 한시도 마음을 놓을 수가 없어서..."
로인은 중얼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린이 로인을 따랐다.
"마스터."
"응?"
"마스터는 왜 그가 마스터를 로드로 섬기겠다고 한 것 같아?"
"글쎄... 잘 모르겠어. 내가 단지 한 명의 기사로 보아주었다는 것 때문만은 아닐 것 같은데."
"나는... 그가 마스터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에게 기사로 보이고 싶었던 것 같아."
린의 말에 로인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럴 수도 있겠네."
"얼마나 외로웠을까? 50년 동안..."
"휘하에 기사들이 있잖아. 많이 외롭지는 않았을걸?"
로인은 안타까운 얼굴로 말하는 린의 모습에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게 아니야, 휘하에 얼마나 많은 기사가 있어도, 여자는 없을 거 아니야."
"..."
로인은 린의 말에 아무런 답도 하지 않았다.
"남자는 여자가 필요하다고 했어. 마스터도 여자가 필요하잖아?"
"..."
생각해보면 그리 간단한 문제는 아니었다.
린의 말대로 남자는 여자를 필요로 한다. 기본적으로 성욕이라는 것이 있는 것이다. 예비 기사들도 여자를 필요로 한다. 아무리 데스 나이트라도 여자를 필요로 할 수도 있었다.
"...지극히 현실적인 문제네..."
로인은 중얼거리며 걸음을 옮겼다.
"영주님!"
로인이 집으로 돌아오자, 예비 기사들이 그를 반겼다.
"자, 오늘도 실전 같은 수련 시작이다."
로인은 미소를 지으며 예비 기사들을 이끌고 몬스터 서식지로 향했다.
"실전 같은 수련이라니... 그냥 실전이잖아..."
"그래도 성장이 무쟈게 빠르잖아. 정말 황당할 정도로... 나도 내 변화가 적응이 안 될 때가 가끔 있다니까."
뒤에서 예비 기사들의 말소리가 들려왔다. 로인은 그런 예비 기사들을 보며 입을 열었다.
"전방에 오크 마을 하나 발견이다. 규모는 300, 오크 워리어도 15마리 정도 있는 것 같으니 조심하고. 나는 가만히 지켜보기만 할 테니 알아서 공격해."
로인을 말을 하고 도약해 나뭇가지 위로 올라갔다.
"나는 좌측."
"나는 우측"
"나도 우측으로."
예비 기사들은 짤막하게 대화를 나눈 다음, 두 개의 조로 나뉘어 오크 정찰조들을 순식간에 해치웠다.
익숙하게 움직이는 기사들의 모습에, 로인은 미소를 지었다. 예비 기사들이 움직여 오크 마을로 진입하자, 로인은 언제든지 도와줄 수 있도록 몸을 긴장시켰다. 예비 기사들은 먼저 건물들에 불을 붙였다.
오크들은 공황에 빠져 건물에서 나오기 시작했다. 혼란에 빠져 있는 오크들을 죽이기란 간단했다. 로인은 실전 수련을 마치면 인간과 몬스터의 신체에 대해 자세히 알려주고는 했다. 오크와 트롤 등 인간과 비슷한 몸을 가지고 있는 몬스터의 약점을 알고 있는 예비 기사들은 최소한의 움직임으로 오크들을 쓰러뜨렸다.
예비 기사들은 조를 나누어 오크들을 처리하고, 몇 명은 오크 워리어를, 몇 명은 오크 킹을 상대했다.
"크윽."
오크 킹을 상대하던 예비 기사가 신음을 흘리며 뒤로 물러났다. 오크 킹의 도끼에 가죽 흉갑이 뜯겨나가며 상처를 입었던 것이다. 로인은 나가서 도와줄까 했지만 다행히 그리 깊은 상처는 아니었다.
상처를 입은 예비 기사는 뒤로 빠져서 오크를 상대하기 시작했고, 다른 예비 기사가 와서 그의 자리를 메꾸었다.
예비 기사 세 명이 오크 킹을 상대하였지만, 오크 킹은 그리 쉽게 쓰러지지 않았다. 무식한 체력도 체력이었고, 힘도 대단해 거대한 도끼를 마치 나무로 만들어진 것 마냥 휘둘렀다.
로인은 잠시 오크 킹을 바라보다가 고개를 돌려 이제 슬슬 정리되어 가는 일반 오크들을 바라보았다. 예비 기사들은 순식간에 오크들은 처리하고 오크들이 얼마 남지 않자 오크 워리어를 상대하기 시작했다. 그에 오크 워리어를 상대하던 기사들이 뒤로 물러나며 오크들을 상대하기 시작했다.
"뭐, 잘하고 있군."
로인은 고개를 끄덕이며 중얼거렸다. 로인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예비 기사들은 잘하고 있었다. 로인은 조금 안심이 되는 것을 느끼며 미소를 지었다.
- 작가의말
이얍얍! 프롤로그에 나왔던 크론벨, 드디어 등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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