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선더볼트 님의 서재입니다.

용을 계승한 방랑자

웹소설 > 작가연재 > 판타지, 퓨전

선더볼트
작품등록일 :
2023.01.04 14:28
최근연재일 :
2023.01.18 14:30
연재수 :
15 회
조회수 :
5,261
추천수 :
165
글자수 :
79,360

작성
23.01.06 14:25
조회
546
추천
12
글자
13쪽

003화_상단

DUMMY

“여기서 헤어지도록 하지.”

“몸은 괜찮으시겠습니까?”

“지금까지 도와준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나머지는 내가 알아서 하마.”


진은 에밀의 탈출을 먼저 도왔다.

어릴 적 마구간 일을 해본 적이 있다던 에밀은 속성으로 전수해준 기마술을 금방 익혔다.


“여기다 발을 올려라. 고삐는 부드럽게.”

“기억이 납니다. 이렇게 말이죠?”


제법 눈썰미가 있고 머리도 영민한 에밀은 말타기에 곧 익숙해졌다.


“그만하면 됐다. 바로 출발해라.”

“나리는요. 혼자 타실 수 있겠습니까?”


그새 정이라도 들었는지 에밀은 진을 더 걱정하고 있었다.


“많이 좋아졌다. 신경 쓰지 않아도 돼.”

“그래도 같이 가시는 게 좋지 않을까요. 혹시 통증이라도 재발하시면 큰일 아닙니까.”

“우린 가는 길이 다르다.”


진은 단호했다. 눈치 빠른 에밀도 더는 재촉하지 않았다.


“부디 몸조심 하십시오, 나리.”


마지못해 말에 오른 젊은 노예는 꾸벅 고개를 숙이더니 이내 어둠속으로 사라졌다. 물끄러미 그 모습을 바라보던 진도 남아있던 말에 올라탔다.


“그쪽이 아니다.”


진은 본능적으로 앞서 간 말을 따라가려던 말머리를 반대방향으로 틀었다.

에밀이 향한 곳은 아센바엘의 영주성 인근의 고향.

진은 그 반대방향인 코루스칸트란 도시로 향했다.


*


아스트리아 대륙의 서쪽 끝인 이곳은 늘 비와 먹구름이 가득했다.

대양의 남쪽에서 흘러들어오는 해류와 북구의 찬기류가 만나는 접점이다 보니 맑은 날보다 흐린 날이 많았고 흐린 날보다 비 오는 날이 많았다.

일 년의 절반 이상이 습하고 음울한 분위기로 뒤덮인 대지.

특히 울라호른 산맥은 유독 더 그런 느낌이 강한 지역이었다.

오늘도 역시 마찬가지.

산맥 아래로 구불구불 이어진 가도에는 곧 비라도 쏟아질 것처럼 차고 축축한 기운이 넘실거렸다.


“하아...이놈의 동네는 몇 년을 다녔는데도 도무지 적응이 안 되는구먼.”


배불뚝이 상단주, 무스카는 향신료에 절인 고기볶음과 포도주를 들이키며 마차 밖을 살폈다.

시커먼 계곡과 숲은 당장이라도 뭐가 튀어나올 것만 같은 풍경을 하고 있었다.

오랜 경험에 비춰봤을 때 이런 개 같은 날씨와 분위기는 사람의 기분을 축 처지게 할뿐만 아니라 꼭 무슨 일이 벌어져도 벌어진다.


목적지인 코루스칸트까지는 아직 사흘길이 남은 상황.

중간에 마을 몇 개가 있긴 하지만 워낙 세상이 흉흉하다보니 다들 외부인을 들이길 꺼려했다.

곧 도착할 마을도 마찬가지였다.

최소한 은화 한두 닢은 쥐어줘야 마을 광장에서나마 야영을 허락할 것이다.


‘촌놈들 주제에 괜한 핑계로 돈이나 뜯어낼 속셈인 게지.’


뭐 그 정도는 상단생활을 하면서 늘 겪는 일상이라 크게 문제 될 건 없었다.

다만 오늘처럼 영 느낌이 안 좋은 날은 꼭 무슨 사고가 터져도 터진다는 게 문제였다.

이를테면 산적이라든가 몬스터 무리의 습격 같은.

오지를 횡단하는 상단은 늘 그런 사태에 대비해야 한다.


‘부디 이번 상행도 별 탈 없이 잘 마무리해야 할 텐데.’


오후 내내 비용계산과 수익배분 문제로 골머리를 앓았던 무스카는 초저녁 무렵이 되자 완전히 술에 절어버렸다.

확실히 스트레스 해소에는 술만 한 게 없었다.

하지만 술로도 채울 수 없는 무언가는 다른 방법으로 해결해야겠지.


“어이, 거기.”


무스카는 마차 바로 옆에서 걷고 있던 절름발이 용병을 불렀다.


“왜 그러슈, 상단주 양반?”

“노예마차 쪽으로 가서 상단수행관 좀 불러주게.”


무스카의 명령이 대충 무슨 뜻인지 눈치 챈 절름발이는 엉큼한 얼굴로 씩 웃었다.


“뭐냐, 그 표정은?”

“크큭, 제가 뭘요.”

“그만 웃고 빨리 뛰어가지 못해!”

“예예, 알겠습니다요.”


여전히 빙글거리는 표정의 절름발이는 뛰는 시늉만하며 멀어져갔다.

쓰레기 같은 놈들. 저런 것도 용병이라고.

애초에 비용절감을 한답시고 삼류 용병만 고용한 건 생각 못한 채 남 탓만 하는 무스카였다.


“부르셨습니까, 주인님.”


어쨌든 얘기는 전했는지 곧 남방출신의 흑인 수행관이 달려왔다.


“물건들 상태는 어때?”

“양호합니다. 특별히 병에 걸렸다거나 아픈 놈은 없습니다.”

“다행이군.”

“뭐 필요하신 거라도...”

“아참, 전에 내가 말했던 그년. 지금 좀 데려와야겠다.”

“예, 준비시켜서 올려 보내겠습니다.”


눈치 빠른 수행관은 재깍 고개를 숙였다.

현재 무스카의 상단에는 총 두 대의 노예마차가 따라오고 있었다.

남자노예 일곱을 태운 마차 한 대와 여자노예 다섯을 태운 마차 한 대.

그중에는 흔치않은 고양이 수인족도 끼어있었다. 물론 암컷이었다.

묘족 수인은 체온이 높고 요염하다.

특히 간드러진 목소리와 수준급 잠자리 실력 덕분에 성별 구분 없이 성노예로 인기가 높았다.


‘팔아먹기 전에 내가 먼저 실컷 주무르고 즐겨야지.’


오늘처럼 기분 꿀꿀한 날은 그만한 노리개가 없다. 분위기전환용으로는 최고의 장난감이라 할 수 있겠다.

뭐 나만 즐기나. 하다보면 그년도 아마 좋아할 거야. 흐흐흐...

불끈대는 아랫도리를 주무르며 남은 포도주를 들이키던 그때였다.

덜컹.

잘 달리던 마차가 갑자기 멈춰 섰다.

곧이어 누군가 급하게 포장을 들추더니 고개를 들이밀었다.

방금 나갔던 흑인 수행관이었다.


“주인님, 저 앞에 누가 쓰러져있습니다!”

“무슨 소리야?”


술병을 집어던진 무스카가 벌떡 일어섰다.

놀란 토끼눈을 한 그의 얼굴은 언제 술을 퍼마셨냐는 듯 하얗게 탈색되어 있었다.

사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울라호른처럼 외지고 험한 지역에서는 항상 장애물을 조심해야 했다. 도적들이 시체나 바위 같은 방해물을 이용해 상단을 멈춰 세우는 수법을 자주 쓰기 때문이다.


“지금 당장 호위대를 마차 주위에 배치하고 용병들을 외각에 둘러 세워!”

“벌써 준비시켰습니다.”


역시 오랜 기간 상단을 관리해온 수행관다웠다.

한시름 던 무스카는 직접 상황을 확인하기 위해 대열 앞쪽으로 뛰어갔다.


“저잡니다. 꼭 죽은 것처럼 보이지만 숨은 붙어있습니다.”


수행관이 가리킨 손가락을 따라 무스카의 시선이 움직였다.

그곳에는 독특한 복색을 한 남자가 길바닥에 뻗어있었다.


“복장도 복장이지만 외모도 아스트리아 쪽 사람은 아닌 것 같습니다.”


무스카는 대답대신 고개를 끄덕였다.


‘도대체 어디서 굴러먹던 놈이지?’


수행관 말대로 남자는 이쪽 지역에서는 보기 힘든 외모를 가지고 있었다.

검은머리에 갈색피부.

제법 큰 키에 각이 잘 잡힌 몸매.

확실히 일반인의 느낌과는 거리가 멀었다.


‘보아하니 타클란 대륙에서 건너온 놈 같은데.’


한눈에 봐도 외모나 복장이 그쪽 지역출신들과 일치했다.


‘희한하군. 대륙의 동쪽에서 해협 하나를 더 건너야 이를 수 있는 타클란 출신이 어쩌다가 아스트리아 서쪽 끝에서 이런 몰골로 나타난 걸까.’


비하인드 스토리가 궁금하긴 했지만 사실 그딴 건 별로 중요한 문제가 아니었다.

한참이 지나도 일당으로 보이는 무리가 안 나타나는 걸 보면 걱정하던 산적의 습격은 아닌 것 같고.

뭐 그럼 된 거지.


“어떻게 처리할까요?”


수행관이 물었다.


“흠...”


직업이 직업인지라 무스카는 이리저리 남자를 관찰하며 상품으로써의 가치를 살폈다.


‘잘 단련된 신체를 보아하니 검투사 노예로 팔아먹으면 제법 값을 받을 수 있겠어. 갑옷이나 무기도 품질이 좋은 것 같으니까 그쪽도 돈이 좀 될 것 같고.’


방금 전까지 도적의 습격을 걱정하던 무스카가 오히려 인신매매를 계획하는 모습은 실로 아이러니했다.


“보우시.”

“예.”

“저놈이 입고 있는 갑옷과 무기를 벗겨내고 혹시 모르니까 양손도 결박해서 노예마차에다 실어라.”

“예, 주인님.”


전문 노예상과 그 수행관답게 두 사람은 신속하게 길 위의 남자를 처리했다.


“아참, 가는 길에 포도주도 한 병 더 가져오고.”


보우시는 무스카가 두 병째 술을 찾는 걸 보고 기분이 썩 괜찮은 모양이구나 하고 생각했다.

하긴 걱정하던 도적대신 뜻밖의 꽁돈을 주웠으니 그럴 수밖에.

원래 꿀꿀하던 기분이 사라지면 술맛도 더 동하는 법.

무스카는 자신의 예감이 빗나간 오늘밤이 무척 기분 좋은 밤이 되리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


무스카의 명령으로 총 일곱 명의 남자노예가 타고 있던 마차에 새로운 인물이 합류했다.


“어이, 거기. 빨리빨리 일어나라. 그쪽에다 자리 좀 만들란 말이다.”

“너, 그리고 너. 얼른 안 받아 올리나! 맞고 움직일 테냐!”


노예들은 쓸데없이 으르렁대는 용병과 일꾼들 기세에 눌려 어렵사리 공간을 마련했다.

갑옷이 홀랑 벗겨진 신입노예는 양손이 결박된 채로 마차 한구석에 처박혔다.

잠시 후 상단행렬이 다시 이동을 시작하고.

내내 꿈쩍 않고 있던 신입이 조용히 눈을 떴다.


“저기 몸은 괜찮으세요?”


곁에 있던 소년노예가 걱정스런 표정으로 신입의 안부를 물었다.


“쉿.”


눈을 뜬 신입은 씩 웃는 얼굴로 손가락을 입에 갖다 댔다.


“아까 용병들 얘길 들어보니 이 외지고 험한 가도에 혼자 쓰러져있었다던데 무슨 안 좋은 일이라도 당한 겁니까?”

“보면 몰라? 노상강도를 당한 게지.”

“하긴...아무리 그래도 너무 무모했구려. 이런 험한 길을 혼자 걸어가다니.”


신입이 몸을 일으키자 너도나도 한마디씩 말을 건넸다.


“다들 그만하고 일단 물이라도 좀 마시게 해드리게.”

“아, 네.”


중년노예의 제지에 소년노예가 재깍 일어섰다.

상단이나 용병들의 거친 행동과 비교되는 노예들의 인간적인 모습.

신입노예는 오히려 뭔가 반대가 되어야 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에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전 닐스라고 하는데 아저씨는 이름이 뭐예요?”


물동이에서 물 한 사발을 떠온 소년 닐스가 신입에게 물었다.


“혁진, 권혁진이라고 한다. 하지만 여기선 다들 그냥 진이라고 부르지.”

“특이한 이름이군. 몸은 좀 괜찮소?”


중년노예가 물었다.


“특별히 아픈 곳은 없소. 깜박 졸다가 말에서 떨어지긴 했지만.”

“아, 그러고 보니 저 사람들이 당신이 입고 있던 갑옷과 무기를 벗겨간 것 같던데 혹시 어딘가에 소속된 군인이나 용병이요?”

“그건 아니고. 한 때 지체 높으신 분의 호위병노릇을 하면서 칼밥을 먹긴 했었지.”

“저런, 어쩌다가 이런 험한 곳에 홀로 버려져서 노예 신세가 되어버렸누.”

“노예는 무슨. 난 그냥 택시가 필요해서 얻어 탔을 뿐이오.”

“택시? 그게 뭡니까?”

“여기 말로는 역마차 비슷한 거랄까. 운 좋게 꽁으로 마차를 얻어 타는 중이니까 당분간 조용히 묻어갑시다.”


쥐도 새도 모르게 결박을 끊어낸 진은 늘어지게 하품을 하더니 짚단 위로 드러누웠다.

곧 비라도 쏟아낼 것처럼 음울하기만 하던 하늘은 어느새 구름이 걷혀있었다. 말간 밤하늘에는 은하수가 반짝이고 있었다.


‘나른하군.’


몸 상태는 제법 괜찮았다.

광산을 빠져나온 이후 거의 48시간이 지난 현재.

내단의 흡수는 절반이상 마무리된듯했다. 통증도 거의 사라졌다.

대신 급격한 체력소모로 기절까지 하며 위기를 맞을 뻔도 했지만 이렇게 히치하이킹도 성공했다. 지금부터는 천천히 쉬면서 체력을 회복하면 된다.

급할 건 없었다.

갑작스런 테렐포트에 관한 비밀 같은 건 앞으로 천천히 알아 가면 될 일.

잃어버린 책자도 당장 필요한 물건은 아니었다.

돌아가 봤자 반겨줄 사람도 없었고.

지금은 100년 만에 누리는 혼자만의 자유를 만끽하고 싶을 뿐이었다. 적어도 내단의 힘을 온전히 내 것으로 만들 동안만큼은 말이다.


“저기...물 드세요.”

“아 그래, 고맙다.”


이런저런 대화와 딴생각을 하느라 소년이 쥐어준 물사발을 깜박했다.


“음? 물에서 냄새가 좀 나는 것 같은데.”


막 물을 들이키려던 진이 미심쩍은 눈으로 쳐다보자 닐스는 당황해하며 크게 고개를 저었다.


“네? 아...그럴 리가 없는데. 이거 오늘 새벽에 샘터에서 새로 길어온 물인데.”


소년과 물사발을 번갈아 쳐다보던 진은 킁킁거리며 물냄새를 맡아보았다. 녀석의 말대로 물에는 이상이 없는 것 같았다. 그럼 뭐지?

썩 좋은 느낌의 냄새는 아니었다.

익숙하지만 결코 익숙해지고 싶지 않은 냄새.

자연스럽게 미간을 찡그린 진은 창살 너머 어둠으로 시선을 돌렸다. 흐릿한 냄새와 함께 들릴 듯 말 듯 기괴한 소리가 거리를 좁혀오고 있었다. 하지만 진을 제외한 어느 누구도 냄새나 소리를 인지하지 못한 듯 했다.


‘이 동네도 썩 평온한 곳은 아닌 모양이군.’


대충 상황파악을 마친 진은 다시 짚단 위로 드러누웠다.


“한 며칠 조용히 쉴까 했더니만 영 귀찮은 상황이 벌어질지도 모르겠어.”


툴툴거리며 진이 돌아눕자 닐스는 그제야 한숨을 돌렸다.

살그머니 일어난 소년은 남은 물을 창살 밖으로 쏟아 붓고는 물동이 옆으로 쪼그려 앉았다.

곧이어 간간이 이어지던 대화도 사라지고.

마차 안은 다시 조용해졌다.

진을 제외한 일곱 명은 덜컹거리는 바퀴소리를 자장가삼아 하나둘 눈을 붙이기 시작했다.

반면 진은 눈만 감고 있었다.

조금씩 조금씩 상단을 향해 다가오는 미지의 무언가가 지속적으로 그의 심기를 건드리고 있었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용을 계승한 방랑자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15 015화_결심 +1 23.01.18 141 12 12쪽
14 014화_누명 23.01.17 129 9 12쪽
13 013화_안개 23.01.16 146 10 12쪽
12 012화_유괴 23.01.15 223 8 12쪽
11 011화_난장판 23.01.14 220 9 12쪽
10 010화_사제 23.01.13 238 10 11쪽
9 009화_당근 +1 23.01.12 250 10 12쪽
8 008화_외딴마을 23.01.11 284 10 15쪽
7 007화_의뢰2 23.01.10 312 8 12쪽
6 006화_의뢰 23.01.09 355 11 11쪽
5 005화_습격2 23.01.08 469 14 11쪽
4 004화_습격 23.01.07 450 11 13쪽
» 003화_상단 23.01.06 547 12 13쪽
2 002화_금광 23.01.05 698 14 12쪽
1 001화_프롤로그_내단 23.01.04 800 17 7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