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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더볼트 님의 서재입니다.

용을 계승한 방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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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더볼트
작품등록일 :
2023.01.04 14:28
최근연재일 :
2023.01.18 14:30
연재수 :
15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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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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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5
글자수 :
79,360

작성
23.01.18 1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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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015화_결심

DUMMY

“그 벌레들 정체가 네놈들 자식새끼인지 뭔지는 모르겠다만...”


진은 벌벌 떠는 주민들의 모습을 보고 슬며시 눈에서 힘을 풀었다.


“이번엔 내가 묻겠다. 그대들은 저 벌레로 변했던 녀석들이 여기 있는 다른 아이들을 납치해갔어도 아무 상관없다는 것인가. 그래서 이 아이들까지 괴물이 되고 또 다른 희생자를 찾아 마을로 내려와서 납치를 반복하고...그러길 바란 것인가.”

“...”

“다시 한 번 말하지만 놈들은 이미 인간이 아니었다.”

“도대체 무슨 근거로 자꾸 그런 이상한 소릴 하는 거요?”

“근거? 세상은 눈에 보이는 것만이 전부가 아니다.”


진은 등 뒤에 차고 있던 검을 뽑았다. 그 모습을 본 주민들은 ‘어어’하며 뒤로 물러났다.

그러거나 말거나.

성큼성큼 아이의 시체로 다가간 진은 시체를 툭 차서 등 뒤가 보이도록 굴렸다. 몰린이 발끈하려 하자 촌장이 엄한 눈길로 제지했다.


“잘 봐라.”


진은 아이의 뒷목을 칼로 그었다.

갈라진 틈새로 뭉클거리는 검은 액체가 흘러나왔다.

액체의 출현과 함께 퍼진 엄청난 악취.

사람들은 코를 틀어쥐며 이맛살을 찌푸렸다.

하지만 진은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갈라진 후두부 사이로 손을 밀어 넣더니 뭔가를 쥐고 끄집어냈다. 그것은 아이의 뇌와 척수의 일부였다. 그런데...

희고 붉어야할 뇌척수는 온통 그로테스크한 괴물질에 잠식당한 채 변색되어 있었다.


“이 아이는 이미 인간이 아니었다.”


진은 손에 쥐고 있던 시커먼 덩어리를 몰린에게 집어던졌다.

으어억!

엉겁결에 그것을 받아든 몰린은 기겁을 하며 바닥에 떨어뜨렸다.


“뭐냐, 그 반응은. 사랑하는 아들의 실체를 봤으면 좀 더 다정하게 안아줘야지. 보기보다 매정한 아버지군.”


진의 비아냥에도 몰린의 얼굴은 여전히 넋이 나가 있었다.


“죽은 네 자식만 소중한 게 아니다. 내가 아니었다면 여기 있는 네 명의 아이들도 똑같은 꼴을 당했을 것이다.”


그제야 정신이 든 몰린은 시커먼 오염물질 같은 뇌척수를 끌어안고 엉엉 울었다. 다른 죽은 아이들의 부모들도 고개를 숙이며 흐느꼈다.

그 사이 말 위에 올라탄 진이 촌장 앞에 섰다.


“그럼 난 이만 가 봐도 되겠지?”


진은 촌장의 대답도 듣기 전에 말머리를 돌렸다.


“잠깐만 기다려주시오.”

“뭐지? 아직 할 말이 남았나.”

“당신 말대로라면 납치된 아이들이 저 시커먼 물질에 잠식당해서 괴물이 되었다는 건데 혹시 되돌릴 방법은 없는 겁니까?”

“없다. 내가 아는 선에서는.”

“마법이나 신성력을 사용해도 안 되는 거요?”

“그건 모르지. 하지만 그걸 가능케 할 정도의 실력자가 이런 촌구석에 존재할지는 의문이군. 내 생각에는 그런 뜬구름 잡는 가능성에 기대느니 남아있는 아이들을 먼저 보호하는 게 우선이지 싶은데.”


촌장은 잠시 고민하는 표정을 짓더니 다시 입을 열었다.


“이 마을에서 실종된 아이는 저 네 명을 포함해서 총 11명이오. 당신 말대로라면 괴물로 변한 아이들이 최소 일곱은 더 있다는 뜻인데...”

“그래서?”

“가능하다면 나머지도 당신이 처리해주셨으면 하오.”


촌장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여기저기서 소란이 일었다.


“그게 무슨 말입니까, 촌장!”

“절대로 안돼요!”

“맞습니다. 내 아이만큼은 절대로 저렇게 죽게 만들 수 없소!”


실종아동의 부모들은 기겁을 하며 반대했다.


“정신들 차리시오!”


내내 유한 모습을 보이던 촌장이 처음으로 버럭 소리쳤다.


“여러분도 보지 않았소. 이미 그 아이들은 사람이 아니오. 괴물이 되어버린 그 아이들 때문에 남아있는 다른 아이들까지 저런 꼴을 당하게 만들 참이오!”

“전 촌장님 의견에 찬성입니다.”


긱스였다.


“여러분도 아시겠지만 다음 달이 제 아내의 산달입니다. 난 이 세상에 곧 태어날 내 아이가 절대 저런 괴물에게 붙잡혀가게 두고 보지 않을 겁니다.”


제법 날이 선 창을 땅바닥에 ‘쿵’ 찍은 긱스의 표정에는 반드시 자신의 의견을 관철시키겠다는 의지가 결연했다.


“저도 긱스의 말이 옳다고 생각합니다.”

“맞아요. 이미 납치당한 아이들에게는 좀 미안하지만 산 사람은 살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주민들은 너도나도 긱스의 뜻에 동의를 표했다.

대세가 기울자 아이를 잃었던 부모들도 더는 반대하지 못하고 입을 다물었다.

괴물이 된 자식을 정상으로 되돌릴 수만 있다면야 목숨이라도 내놓을 수 있었다. 하지만 그건 불가능한 일이었다.

지금은 할 수 있는 일, 해야만 하는 일을 할 때였다.


“다행히 주민들의 의견은 어느 정도 모아진 것 같소.”


촌장은 한시름 던 표정으로 진을 쳐다봤다.


“보아하니 용병 일을 하시는 분 같은데 부탁 좀 드리겠소.”

“웃기는군.”

“예?”

“네놈들끼리 신나서 합의한 걸 나더러 어쩌라고. 내가 언제 도와준다고 했던가?”

“아니 그게 무슨 말씀...?”

“나도 사람이다. 이따위 푸대접을 받고도 내가 또 나서줄 줄 알았나.”

“대가를 지불하겠소. 얼마면 되오?”


촌장이 우물거리자 아이 가진 부모 중 하나가 나섰다. 그러자 너도나도 돈을 보태겠다며 동참했다.


“지나간 일은 우리가 대신 사과하겠습니다. 오해해서 정말 미안합니다.”

“그래요, 부디 마음 푸시고 용서해주십시오.”

“우릴 좀 도와주세요, 제발.”


남아있는 아이들의 부모들은 절박하게 매달렸다.

그 모습을 오연하게 내려다보던 진은 한참이 지나서야 다시 입을 열었다.


“다급하긴 다급했나보군. 그런데 너희 같은 시골 촌부들이 모아봤자 몇 푼이나 된다고. 지금은 그딴 푼돈을 받고 풀릴 정도의 기분이 아닌데 말이지.”

“드릴 수 있는 건 뭐든 내드리리다.”


촌장도 합세하고 나섰다.


“마을 운영비는 물론 토지세와 인두세 같은 세금을 내기위해 모아둔 돈까지 모두 드리겠소. 합치면 대충 은화 90닢은 될 거요.”


은화 90개라 봐야 금화 한 닢도 채 안 되는 돈이었다.

나름 통 큰 제안이라고 내놓은 것 치고는 약소했지만 이들 입장에서는 그래도 상당한 금액이었다.

뭐 그렇다면 한번 움직여나 볼까.

어차피 추가적인 마물의 존재를 확인한 이상 진은 이미 이 일을 처리하기로 마음먹은 상태였다.

어쩌면 단순한 벌레괴물 이상의 무언가가 배후에 존재할지도 모르는 상황.

충분히 구미가 당기는 먹잇감이었다.

이런저런 생각으로 진이 뜸을 들이는 사이.

다급해진 주민들은 혹시라도 그가 의뢰를 거절하려는 게 아닌가, 오해를 하고 더욱 적극적으로 매달렸다.


“촌장님께서 말씀하신 금액으로는 의뢰비가 턱없이 부족하다는 걸 저희도 잘 압니다. 어떻게든 모아서 최소한 그 돈 이상을 마련해볼 테니 부디 이번 일을 맡아주십시오.”

“됐어, 일단은...”

“나도 한 말씀드리겠소.”


진이 막 대답하려던 찰나, 작심한 표정의 몰린이 앞으로 나섰다.

곤죽이 되어버린 뇌척수를 어루만지느라 양손이 시커멓게 변하긴 했지만, 통곡의 흔적을 지우느라 얼굴마저 심하게 얼룩이 져 있었지만 진을 바라보는 그의 눈빛에는 제법 단호함이 서려있었다.


“감사합니다, 나리.”


뜻밖의 말과 함께 몰린이 고개를 숙였다.


“내 아이에게 안식을 베풀어주신 은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고개를 푹 숙인 몰린의 눈에서 또다시 눈물이 차올랐다.

닦지는 않았다. 목소리도 좀 끅끅거리긴 했지만 듣기에 썩 불편한 정도는 아니었다.


“성급하고 무도했던 저의 행동을 부디 용서해주십시오.”


몰린의 곁으로 다가온 아내가 남편의 어깨를 어루만졌다.

다른 죽은 아이들의 부모들도 그들 뒤에 섰다.


“용서하시고 부디 이들의 부탁을 들어주시길 간청합니다.”


몰린은 더욱 깊이 허리를 숙였고 다른 부모들도 하나둘 허리를 숙였다.

하늘은 화창한데 딱 한 점 떠있던 구름이 이들의 머리위로 그림자를 드리웠다. 고요했다. 답답한 듯 ‘히힝’거리는 말 울음소리만이 마을의 정적을 깨고 있었다.


“진심인가.”


진이 물었다.


예, 진심입니다.

고개를 든 몰린은 눈빛으로 뜻을 전했다.

눈가에는 여전히 눈물이 맺혀있었지만 흔들림 없는 눈동자만큼은 진을 직시하고 있었다.


“좋소. 오늘밤까지 모든 것을 정리하고 돌아오겠소.”


수락의 뜻을 전한 진은 두말 않고 말머리를 돌렸다.

주민들은 멀어져가는 검은 용병의 모습을 말없이 바라보고 있었다. 몇몇이 나직한 탄식을 내뱉었고 누군가는 한숨을 내쉬었지만 더 이상 입을 여는 이는 없었다.


“저기, 잠시만요!”


진의 말이 막 마을을 나서려던 참이었다.

주민들 무리에서 빠져나온 아낙 한명이 뛰어오더니 그를 붙잡았다.


“뭐지?”


이미 온 얼굴이 눈물콧물로 범벅이 된 여인은 막상 진이 멈춰 서자 쉽사리 입을 열지 못했다.


“괜찮으니까 말하시오.”

“저기...”


몇 번이나 입술을 달싹거리던 여인은 또다시 울먹이더니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감정에 복받친 그녀는 연신 죄송하다며 진의 눈치를 살폈지만 진은 그저 대답 없이 기다렸다.


“죄송합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한참이 지나서야 겨우 마음을 추스른 여인은 힘겹게 무릎을 짚으며 일어섰다.


“죄송할 것 없소. 하고픈 말이 있다면 편하게 하시오.”

“감사합니다, 나리.”

“...”

“...”

“괜찮으니까 말 하시오.”

“나리, 혹시라도...혹시라도...”


그녀는 덜덜 떨리는 아랫입술을 애써 깨물며 힘겹게 말을 이어나갔다.


“제 아이가 괴물이 된 모습으로 나타나서 나리께 죽임을 당하게 되더라도 부디...부디 그 아이를 너무 아프지 않게 보내주시길 부탁드립니다. 어미로서의 마지막 바람입니다.”

“...노력해보겠소.”


간신히 말을 마친 여인은 다시 그 자리에 주저앉았고 진은 그렇게 마을을 나섰다.


*


목적지는 마을로부터 제법 거리가 떨어진 검은 가시나무숲이었다.

마을을 떠나기 전, 촌장으로부터 얻은 정보에 의하면 그곳이 놈들의 근거지로 추측되고 있었다.


-이유는?

-유일한 생존자가 한 명 있었소. 이름은 마리안. 불쌍하게도 지금은 완전히 미쳐버렸지만. 전에 그 아이가 한 말에 의하면 그 숲 어딘가에 지하무덤으로 통하는 길이 있다고 했소.

-지하무덤? 놈들이 무덤가에 모여 있다는 건가?

-거기까지는 나도 모르오. 그 아이도 그냥 그렇게 들었다고만 했으니까.

-듣다니. 누구한테?

-이 모든 사건의 원흉.


지하무덤이라...

왠지 냄새가 좀 나는데.

먼 과거, 코루스칸트가 현재의 모습을 갖추기 전.

이 땅에는 고대문명의 왕국이 존재했다.

이후 아스트리아 전체를 지배했던 제국의 시기를 제외하면 그 왕국의 도시가 가장 오랫동안 이 지역을 다스렸던 문명이라는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었다.

사실 천년도 훨씬 넘은 과거의 일이라 진이 문헌으로 읽었던 내용은 극히 일부였다.

대신 이 땅에는 카타콤이란 이름의 대규모 지하무덤이 존재하고 있었다. 고대왕국의 역사는 후대에 발견된 카타콤 유적을 통해 지금도 이어지고 있었다.

머나먼 옛날, 신과 악마가 혼재되어 선악의 구분조차 모호하던 시절.

사대마신 중 하나인 로스무스와 그 수하, 아라무트를 숭배하던 고대문명의 흔적, 카타콤.


‘이 마을 역시 코루스칸트로부터 그리 멀지 않은 곳이니까 어쩌면 카타콤의 한 지류가 이어져있을 지도 모르지.’


그런데 로스무스든 그 떨거지든 왜 놈들의 망령은 하필 아이들을 납치해서 이런 더러운 장난을 일으킨 걸까.

정보가 워낙 부족하다 보니 그 부분이 잘 연결되지 않았다.


‘뭔 상관이랴. 이놈이든 저놈이든 내가 강해지는데 도움이 된다면 일단 잡고 보는 거지.’


그런데 그 검은 가시나무숲이란 곳이 이쪽으로 가면 나오는 게 맞긴 한 건가?

사람의 흔적이 사라진 오래된 길은 중간중간 몇 개의 갈림길로 흩어지면서 진의 선택을 난해하게 만들었다. 그래도 한 가지 특징적인 점이 그의 판단에 도움을 주었다.


“저쪽인가.”


길은 여러 개였지만 오직 한 곳만이 주변과 다른 풍경을 하고 있었다.

아직 가시나무 같은 건 안보였지만 길 주변부로 보이는 풀과 나무들이 유독 시커멓게 변색되어 말라죽은 모습.

어쩌면 저 음산한 풍경은 어젯밤 보았던 안개의 흐름과 연관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의 예상은 정확하게 맞아떨어졌다.


말라죽은 풀과 나무를 따라 약 한 시간쯤 달렸을 무렵.

진은 드디어 숲 전체가 가시나무로 뒤덮인 요상한 풍경을 마주하게 되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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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013화_안개 23.01.16 146 10 12쪽
12 012화_유괴 23.01.15 223 8 12쪽
11 011화_난장판 23.01.14 220 9 12쪽
10 010화_사제 23.01.13 238 10 11쪽
9 009화_당근 +1 23.01.12 250 10 12쪽
8 008화_외딴마을 23.01.11 284 10 15쪽
7 007화_의뢰2 23.01.10 312 8 12쪽
6 006화_의뢰 23.01.09 355 11 11쪽
5 005화_습격2 23.01.08 469 14 11쪽
4 004화_습격 23.01.07 450 11 13쪽
3 003화_상단 23.01.06 547 12 13쪽
2 002화_금광 23.01.05 698 14 12쪽
1 001화_프롤로그_내단 23.01.04 800 17 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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