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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한 님의 서재입니다.

그 헌터가 살아가는 법

웹소설 > 작가연재 > 현대판타지, 판타지

달한
작품등록일 :
2022.05.11 20:34
최근연재일 :
2022.07.20 1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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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6.29 2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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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쪽

낙원 (1)

DUMMY

낙원 (1)



“김치 군.”

“왜?”

“뭐라고 쓰면 좋을지 모르겠어.”

“그럼 쓰지마.”

“쓰고 싶어.”


한지연이 식당 메뉴판을 눈앞에 둔 것처럼 고민했다.

눈을 가늘게 뜨고 붉은 입술에 침도 발랐다.

나도 모르게, 틴트가 무슨 맛일까 하고 생각했다.


“김치 군, 가르쳐줘.”

“내가 말하는 대로 쓰려고?”

“그건 아니지만.”

“그럼 왜 묻는 거야?”

“아이디어를 얻을 수도 있잖아.”


한지연이 네임펜의 뚜껑 여닫기를 반복했다.

그러더니 내 팔을 가볍게 건드렸다.

정확히 말하면, 팔 전체를 덮은 초록색 깁스를 톡 두드렸다.


바트에르덴의 건틀릿에 얻어맞은 후, 양쪽 팔 모두 금이 갔다.

남동병원의 낙타 의사는 내 팔을 보고 분쇄골절 아닌 걸 다행인 줄 알라고 했다.

입원은 하지 않았지만 뼈가 붙을 때까지 초록색 깁스 신세가 됐다.


“있잖아, 김치 군.”

“또 왜?”

“김치 군의 깁스랑 내 팔 토시, 커플 아이템 같지 않아?”


한지연이 그렇게 말하며 자기 팔을 들어 보였다.

하복 셔츠 소매 아래로 검은 팔 토시를 끼고 있었다.

나는 무미건조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색도 모양도 달라.”

“둘 다 팔을 덮고 있잖아.”

“멍은 거의 사라지지 않았어?”

“응, 그렇지. 각성자는 멍이 금방 없어지니까.”


죽은 줄 알았던 사부-이우석-가 돌아온 후, 한지연에 대한 한영호의 강박적이고 무자비한 교육은 중단됐다.

사부가 한지연의 교육까지 담당하면서 한영호는 거의 손을 놓았다.

필드에서 살아남으려면 평소에 죽을 만큼 굴려야 한다는 지론에 변화가 생긴 듯했다.

그 결과, 멍투성이였던 한지연의 몸은 깨끗해졌다.

적어도 도복 소맷자락 아래로 드러난 모습은 그랬다.


“그런데 팔 토시는 왜 계속 쓰는 거야?”

“햇빛 알레르기라고 학교에 얘기해놓고 갑자기 벗으면 이상하잖아.”

“하긴.”

“근데 김치 군, 인기가 너무 없는 거 아냐?”

“뭐가?”

“깁스하면 보통 친구들이 와서 낙서하지 않아? 그런데 김치 군 깁스는······.”

“지저분한 거 싫어해.”

“그래서 못 그리게 한 거야?”

“맞아.”

“그치만 하나 있잖아.”


한지연이 내 팔을 들었다.

깁스 아랫부분에 정갈한 필체로 ‘그만 좀 다쳐. 얼른 낫고.’ 하고 쓰여 있었다.


“이거 누가 쓴 거야?”

“알아서 뭐 하게?”

“그냥. 궁금해서.”


한지연이 아무렇지 않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런데 어째서인지 온몸에서 냉기가 아우라처럼 퍼지는 것 같았다.

여름의 초입인데 싸늘했다.


“······.”

“알려줘.”


한지연이 내 옆구리를 쿡 찔렀다.

나는 무시했다.

한지연이 한 번 더 찔렀다.


“알려줘. 어서.”

“당사자의 신변 보호를 위해 묵비권을 행사하겠어.”

“아하하! 뭐야? 내가 그 사람을 괴롭히기라도 한다는 거야?”

“모르지.”

“모르다니?!”

“1%의 가능성도 무시할 수 없으니까.”

“우와! 너무해!”


나는 우리 반 반장, 정나은이 내 깁스에 낙서했다는 사실을 말하지 않기로 했다.

이번 기말고사도 당연하다는 듯 전교 1등을 한 전도유망한 인생이니까.

설마 필적감정으로 누구인지 밝혀내지는 않겠지.


“슬슬 내려가자. 곧 방학식이야.”

“내일부터 방학인데 김치 군은 기분이 어때?”

“똑같은데.”

“진심이야?”

“훈련 시간이 늘어난다는 점은 좋지.”

“김치 군, 사는 게 재미없지 않아?”

“재미로 사는 인생이 아니야. 넌 소감이 어떤데?”


한지연이 후아─ 하고 길게 숨을 들이마셨다.

그리고 옥상 철창 너머로 풍경을 응시하며 말했다.


“인생 마지막 방학이야. 소중해.”

“지난번에 했던 이야기네. 겨울방학은 사실상 방학이 아니라던.”

“맞아.”

“추억을 만들고 싶다고 했지?”

“그것도 맞아.”


한지연이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방학이니까 추억을 만들고 싶다는 19살 여고생다운 말이 어쩐지 듣기 좋아서 기억에 남았다.


그에 비하면, 나는 진작에 추억 같은 건 필요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한지연은 가족이 있고 미래가 있다.

나는 아무것도 없다.

입장이 다르다.

가족으로부터 버림받은 시한부 각성자란 그런 거다.


“김치 군.”

“왜?”


한지연이 갑자기 내 팔을 잡았다.

그리고 네임펜으로 깁스에 글씨를 쓰기 시작했다.


「절대로 포기하지 마.」


깁스에는 그렇게 쓰여 있었다.

나는 물을 수밖에 없었다.


“뭘 포기하지 말라는 거야?”

“미래를. 어떻게든 치료할 방법을 찾을 테니까. 난 그러기 위해 김치 군을 만나게 된 거야.”


내 속마음을 읽기라도 한 듯한 말.

당황스러울 만도 한데 아무렇지 않았다.

그냥 자연스러웠다.

한지연이니까 그런 말을 할 수도 있지, 라는 게 내 반응이었다.


나는 한지연에게 실은 진작에 포기했다는 고백을 할 수 없었다.

급성각성자의 치료는 불가능하다고.

그러니까 헛수고하지 말라고.

네 시간을 소중히 쓰라고는 차마 말할 수 없었다.

대신 나는 거짓말을 했다.


“그래서 열심히 사는 거잖아. 수련도 열심히.”

“그렇다면 다행이지만.”


한지연이 그렇게 말하며 나를 향해 엷게 미소 지었다.

한지연은 머지않은 미래에 나 없는 세상을 살게 될 것이다.

그런 생각을 하니 어쩐지 기분이 이상했다.

아니, 아마도 머지않은 미래가 아니라 가까운 미래일 것이다.

시간은 어처구니없을 만큼 빠르게 흐르니까.

응? 하고 돌아보면 몇 달이, 또 몇 년이 지나 있다.


······며칠 후 나는 깁스를 풀었다.

한지연이 비행선을 타고 9박 10일의 여행 동안 상하이, 홍콩, 쿠알라룸푸르, 싱가포르, 세부, 타이베이를 여행했다.

한지연은 비행선 슬롯머신의 레버를 아버지 대신 당겨 잭팟을 터뜨렸다.

그 돈으로 기념품을 잔뜩 샀다며 내게 선물을 줬다.


나는 사부에게서 이가벽괘장과 팔극권을 배웠다.

이가벽괘장의 무기 중 하나인 묘도(苗刀) 수련을 시작했다.


두꺼운 천 옷을 입고 사부가 기르는 개, 늑대 무리를 상대로 훈련했다.

사람을 상대하는 것만큼이나 짐승을 상대하는 게 몬스터와의 싸움에서 도움이 된다는 게 사부의 설명이었다.


어둠과 소음 속에서 집중력을 유지하는 훈련도 했다.

필드에서의 싸움은 불협화음 속에서 이뤄진다는 사부의 지론에 기반한 훈련이었다.


방학은 그렇게 아무 일 없이, 극한의 수련에 잇따르는 고통 속에서 지나갔다.


2학기 역시 괴로움 속에서 평온했다.

내 주변에서는 온갖 사건이 벌어진다며 곁에 있게 해달라는 송하율의 바람이 무색하게 사건은 벌어지지 않았다.

1학기에 굵직한 사건을 몇 번이나 겪으며 죽을 뻔한 게 비정상이란 사실을 새삼 깨달았다.

정신 차리고 보니 2학기 말이 코앞이었다.


***


고등학교 3학년 학생들은 진학 상담을 한다.

이맘때면 어느 대학에 갈지, 혹은 어떤 분야의 직업을 얻을지 담임과 대화를 나누고 조언을 얻는다.


단, 각성자는 다르다.

각성자는 재해교육 담당 교사와 상담한다.

그런 이유로 나는 유미리 선생님과 함께 진로진학상담실에 앉아 있다.

유미리 선생님이 노크식 펜을 눌러 딸깍딸깍 소리를 냈다.


“선생님은 치우 군이 궁금해요. 어떤 어른이 되고 싶나요?”


나는 그 물음에 간단히 대답했다.


“질문이 너무 애매한데요.”

“알면서 그러네요! 진로에 관해서 묻는 거예요오. 각성자에게는 두 갈래 길이 놓여 있어요. 뭔지 아나요?”

“헌터와 헌터 아닌 사람, 맞습니까?”


유미리 선생님이 손뼉을 치듯 볼펜으로 딸깍 소리를 내고는 말했다.


“세상은 헌터를 필요로 해요. 몬스터의 위협이 끊이지 않으니까요. 앙골모아 사태 이후 30년 가까이 지났는데도 국토 절반이 위험지대고요. 군사력도 필드에서는 무용지물이죠. 활성 게이트에는 기계와 화기가 거부되니까요. 헌터는 대체 불가한 직업이에요오.”


유미리 선생님이 무슨 말을 하는지 안다.

각성자만이 할 수 있는 일이 있다.

각성자는 세상을 위해 헌터가 되어야 한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않다.

각성자 중 일부만 헌터가 된다.


“그러니까 선생님은 각성자인 학생들에게 진로로 헌터가 어떠냐고 권해야 해요. 헌터가 되면 병역 의무가 면제되고, 높은 수준의 재정 지원을 받을 수 있어요. 연금과 보상금도 상당해요. 협회와 교육청에서는 이런 소리를 하라고 대본까지 줬어요.”


유미리 선생님이 종이 한 장을 내밀었다.

나는 집어 들고 내용을 확인했다.

한 장의 A4 용지에 헌터가 되면 받을 수 있는 혜택이 쭉 나열되어 있었다.

국가는 경제적 보상 외에 명예까지 보장했다.

공적에 따라 국가유공자가 될 수 있고 훈장도 받을 수 있었다.


“하지만 선생님은 강요하고 싶지 않아요. 필드에 들어가 몬스터를 상대하는 일이 어떤 건지 조금은 아니까 절대로 권할 수 없어요. 아무것도 모르는 학생을 속여 소년병으로 징집하는 모병관이 된 것 같아요.”


유미리 선생님의 얼굴이 어두웠다.

평소의 활기와 낙천성을 찾아볼 수 없었다.


“선생님.”

“네?”

“스무 살까지 두 달도 안 남았어요. 알 거 다 알고요. 소년병은 말도 안 되는 소리예요.”


사부로부터 무술 외에도 많은 걸 배웠다.

‘직업으로서의 헌터’가 어떤 것인지 듣고 많은 생각을 했다.

내 말을 듣고도 유미리 선생님은 여전히 걱정스러운 듯했다.


“도진 군은 훌륭한 자질을 지녔어요오~ 그 점 인정해요. 그치만 꼭 헌터가 될 필요는 없어요!”

“헌터가 될 겁니다. 오래전부터 결심한 일이거든요.”


나는 그렇게 단호하게 말했다.

유미리 선생님이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담배를 피우지 않고 있는데, 어쩐지 입에서 담배 연기가 흘러나올 것 같았다.


“선생님은 헌터가 되고 싶었답니다.”

“그렇습니까.”

“네에~ 하지만 비각성자는 헌터가 될 수 없잖아요오~ 인생이 불공평하다고 생각했어요. 각성했으면서 헌터의 길을 포기하는 사람들에게 불만 품기도 했고요.”


유미리 선생님이 미간에 깊은 주름을 새기며 말을 이었다.


“그런데 협회에 취직해 여러 길드 소속 헌터와 부대끼면서 생각이 바뀌었답니다. 헌터는 그들밖에 못 하는 일을 해서 세상에 꼭 필요한 존재지만, 내가 아끼는 사람은 안 했으면 좋겠다아~ 랄까! 너무 괴로우니까요. 헤헤헷.”


유미리 선생님이 멋쩍게 웃었다.

나는 선생님이 과거의 기억에 젖어 감상에 빠지는 걸 방해하지 않고 가만히 기다렸다.

1분쯤 지나자 유미리 선생님은 본래의 낙천적이고 밝은 얼굴로 돌아왔다.


“치우 군, 결심에 변함은 없나요?”

“없습니다.”

“알겠어요. 그럼 진로를 같이 알아볼까요오~?”


유미리 선생님이 팸플릿을 책상 위에 흩뿌렸다.

이제 막 성년이 되는 각성자를 대상으로 학교에 배포하는 팸플릿이었다.

나는 그것들을 눈으로 훑었다.


“헌터가 되기로 한 각성자에게는 크게 두 가지 길이 있어요오. 첫째로 국가기관!”


유미리 선생님이 짜리몽땅한 손가락을 하나 세우며 말을 이었다.


“군과 경찰, 기관은 늘 각성자와 헌터를 필요로 해요. 업무 강도와 보수는 어떤 조직에 들어가느냐에 따라 달라져요. 경찰 쪽이 상대적으로 강도가 낮고, 기관은 무시무시하다고 해요. 하지만 공통적으로 체계화된 훈련과 지원을 받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어요. 월급도 꼬박꼬박 나오고요.”

“기관 중에서도 가장 강도 높은 임무를 주는 곳에 들어가고 싶은데, 가능합니까?”


내 말에 유미리 선생님이 눈을 살짝 찌푸리더니 손가락을 까딱거렸다.


“치우 군, 시작부터 무서운 말을 하네요오~ 대답은 NO예요. 헌터에게는 경력이 절대적이랍니다. 갓 고등학교를 졸업한 스무 살이 우리나라에서 가장 어렵고 위험한 임무를 수행하는 요원이 될 수는 없어요오.”

“그럼 별로네요. 협회는요?”

“협회 말이죠······ 모든 각성자는 자동으로 협회 회원이 되는 건 알죠? 하지만 직접 고용하는 헌터는 많지 않아요. 게이트 관련 업무를 길드에 위임했기 때문이죠. 협회에는 위법한 각성자를 상대하는 체포조가 있는데, 구성원 중에 헌터 출신이 많아요.”

“그게 전부예요?”

“회수조라는 것도 있어요. 무시무시한 실력자들이 사라진 마핵 회수 관련 업무만 당당해요. 그리고 실재하는지 모르겠지만, 협회 내부에 특수한 임무를 수행하는 비밀스러운 조직이 있다고는 해요. 하지만 치우 군이 그쪽으로 갈 수는 없겠죠. 그런 조직은 자체적으로 적임자를 탐색해 선발하니까요오.”

“협회도 별로군요.”

“네. 고등학교에 갓 졸업해서 협회 소속 헌터가 되는 건 어려워요. 후보군에서 빼는 게 나아요오.”

“나머지는 길드겠네요.”


유미리 선생님이 손가락 두 개를 세웠다.


“맞아요. 둘째로 길드! 길드는 이거다, 하고 말하기 어렵네요오~ 기업 문화가 서로 다르듯 길드도 저마다 특색이 있거든요. 다만 군경이나 국가기관보다는 대체로 자유로운 분위기일 거예요.”


길드란 이름은 허울이다.

실은 PMC-민간군사기업-나 다름없다.

헌터는 PMC의 컨트랙터고.

앙골모아 사태 이후 세상이 게임이 되고, 각성자가 나타나면서 사람들이 친숙하게 느끼도록 [길드]란 명칭을 쓰는 것뿐이다.


“길드는 임무도 제각각, 보수도 제각각이에요~ 블랙 기업 같은 곳이 있어서 잘못 들어가면 노예처럼 부려 먹히는 수가 있어요. 그 정도면 다행이고, 말도 안 되게 위험한 임무에 던져져서 목숨을 잃는 일도 벌어져요. 업계의 평판을 잘 알아봐야겠죠? 길드가 헌터를 신중히 고용하듯이, 헌터도 길드를 잘 알아보고 골라야 해요.”

“그렇겠네요.”

“길드도 명성 있고 규모 큰 곳으로 가는 게 좋아요. 기업으로 치면 대기업이에요. 하지만 그런 곳은 소속되기 어려워요. 경력과 평판이 중요하거든요오~”

“경력 있는 신입을 뽑는 거네요.”


내 말에 유미리 선생님이 쓴웃음을 지으며 대답했다.


“맞아요. 거대 길드에는 신입인데도 헌터로서 3년, 5년, 10년씩 활동한 사람이 많아요. 다른 길드에서 에이스급이 신입으로 들어가는 거예요~ 쌩신입을 뽑기도 하는데 숫자가 적고 그나마도 인턴 채용이라 기준 미달이면 모조리 탈락이라고 해요.”

“경력 쌓을 곳을 찾는 게 낫겠네요.”

“치우 군은 압도적인 SARA 점수를 가졌으니까 뛰어난 신체 능력으로 거대 길드의 문을 두드려볼 수도 있을 거예요. 물론 결과는 장담할 수 없지만요오~ 다시 말하지만 헌터는 경력과 평판이 중요해요. 높은 능력치의 각성자라도 경험이 부족하면 어떨까요? 능력을 발휘 못 하고 짐이 되는 경우가 잦아요. 선생님은 우수한 자질의 헌터가 몬스터 앞에서 패닉에 빠진 모습을 직접 목격했답니다아~”


나는 유미리 선생님의 말을 들으며 팸플릿을 하나씩 확인하기 시작했다.

경찰과 군부대의 모집 팸플릿이 있었고, 그밖에도 여러 길드의 소개와 구인 팸플릿이 많았다.

유미리 선생님 말대로 누구나 알 만한 거대 길드의 팸플릿은 보이지 않았다.


“중소 길드에서 차근차근 경력을 쌓은 다음, 거대 길드로 이직하는 게 정석이겠네요.”

“맞아요오~ 치우 군은 어떤 길드에 들어가고 싶나요? 그야 대우 좋은 거대 길드에 가고 싶겠지만, 현실적인 이야기를 하자면요? 선생님 생각에는 잘 찾아보면 강소기업 느낌의 좋은 길드가 있을 테니 그런 곳을 노리는 게 좋을 것 같은데.”


나는 고민하지 않고 대답했다.


“블랙기업 같은 길드에 갈 생각입니다.”

“······네?”

“더럽게 위험하고, 업무 강도는 미친 듯이 높고, 초짜를 활성 게이트에 망설임 없이 집어넣는 블랙기업 같은 길드요.”

“뭐, 뭐라구요오?”


유미리 선생님이 입을 쩍 벌렸다.

몇 초가 지나도 계속 벌리고 있어서 턱이 빠지지는 않았을까 걱정스러웠다.


“여기 좋아 보이지 않아요?”


나는 팸플릿 하나를 유미리 선생님이 볼 수 있도록 책상 위에 놓았다.

그 팸플릿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다.


「어려운 임무, 끊임없는 위험, 저임금, 적은 휴일, 안전한 귀환을 보장할 수 없음. 성공 시 시민과 사회의 안전에 기여.」


팸플릿을 본 유미리 선생님의 표정이 잔뜩 일그러졌다.

신맛 나는 사탕이라도 먹은 얼굴로 소리쳤다.


“뭐 저런 길드가 다 있어요오?! 말도 안 되는 소릴 하고 있어!”

“마음에 드는데요.”

“치우 군, 정신 차려요!”

“낙원.”


수많은 팸플릿 중에서도 단번에 내 눈길을 사로잡은 문구의 길드 이름은 ‘낙원’이었다.


“낙원 길드의 입사 시험을 보고 싶은데요.”

“네엣?!”

“교통비, 숙식비 지원해주는 거 맞죠?”


헌터지망생에게 주어지는 몇 가지 소소한 혜택.

그중 하나가 면접 시 교통비 및 숙식비 지원이다.

쉽게 말해서, 협회에서 돈이 나온다는 거다.

여기에 더해 규모 있는 길드에서는 면접자에게 따로 면접비를 챙겨주기까지 한다.


“안 돼요오! 절대로!”


나는 유미리 선생님의 열성적인 반대를 무시하고 낙원 길드의 팸플릿을 챙겼다.

길드 사무실의 주소는 서울시 종로구 낙원동.

낙원동에 있는 길드라 낙원 길드인 건가?

팸플릿에는 ‘상시 모집’이라 쓰여 있다.

조만간 서울에 가야 할 것 같다.

정나은이 서울에 있는 대학에 논술시험과 적성시험을 보러 다닌다는데, 나는 대학 대신 길드 면접을 보러 다니는 셈이다.

학교에서 출석 인정을 해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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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3 디오니소스 축제 (2) +1 22.07.11 342 14 22쪽
62 디오니소스 축제 (1) 22.07.10 383 17 22쪽
61 인간과 몬스터 (3) 22.07.09 406 14 17쪽
60 인간과 몬스터 (2) +1 22.07.08 391 17 18쪽
59 인간과 몬스터 (1) +1 22.07.07 429 16 18쪽
58 졸업 (1) +1 22.07.06 405 20 22쪽
57 FTX: Field Training Exercise (4) +1 22.07.05 411 12 22쪽
56 FTX: Field Training Exercise (3) +1 22.07.04 391 13 21쪽
55 FTX: Field Training Exercise (2) +1 22.07.03 399 14 20쪽
54 FTX: Field Training Exercise (1) +1 22.07.02 454 18 1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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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 나이트 런 (4) 22.06.27 472 15 2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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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 나이트 런 (2) 22.06.25 495 17 2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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