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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채색의 마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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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masquerR
작품등록일 :
2018.08.02 17:46
최근연재일 :
2020.05.08 00:06
연재수 :
81 회
조회수 :
9,441
추천수 :
82
글자수 :
474,693

작성
19.08.08 22:27
조회
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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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2쪽

죽음의 삶#2

DUMMY

얼굴을 크게 덴 밴딜은 타버린 후드 부분을 마력으로 잘라냈다. 수염과 눈썹마저 시꺼멓게 타버렸으나, 그는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고 마법을 퍼부었다. 그의 주변을 감싸는 붉은 불길을 뚫고, 간신히 세라스의 근방에 닿았다.


큰 폭발이 일어나자, 시오르는 다급히 그쪽으로 달려가려 했다. 하지만 레아가 확실하게 자신의 팔목을 붙잡았다.


"시온."


밴딜의 목표는 자신이다. 어찌 되었든, 지금은 자신이 도망치는 게 할 일이다. 하지만 세라스에게 알려줘야 할 사실은 말해야만 했다.


"세라스! 환영을 조심해! 그 사람이 환영을 진짜처럼 둔갑시키고 있어!"

"거기냐!"


분에 찬 목소리와 함께, 그가 있는 방향으로 푸른 마력이 쏟아졌다. 시오르는 미리 펼쳐둔 방어막으로 밀려든 마력을 막아냈다. 그에게 다가오려는 것을 저지하듯, 솟구친 맹화는 바람에 흩날리는 옷자락처럼 흔들렸다.


화염을 뚫고 나온 세라스는 고양이처럼 착지하고는 급히 뒤로 돌았다. 그녀가 그려낸 마법진은 화염을 진흙처럼 토해냈다. 기어 나온 화염은 보도를 타고 밴딜의 방어막을 녹여 내렸다. 퍼렇게 튀어 오르는 마력이 잠시나마 화염의 진입을 늦췄다. 밴딜을 성공적으로 저지한 그녀는 뒤로 돌아서며 말했다.


"야! 뭔 짓을 했는진 몰라도, 알아서 해!"

"고마워! 레아, 가자!"


그들은 재빨리 안전한 길로 달려갔다. 이에 세라스는 얼굴을 찌푸렸다. 한껏 소리치긴 했지만, 진짜로 자기를 두고 가다니. 대충은 이유가 짐작이 가도 씁쓸한 건 어쩔 수 없었다.


"아 씨.... 그냥 도와달라 할 걸 그랬나...."


화염으로 벽을 만든 그녀는, 벽을 통째로 밀어서 전방을 쓸어버렸다. 주변으로 튄 불똥이 주변에 널브러진 잔해를 집어삼키고, 걷잡을 수 없게 범위를 넓혀나갔다.


세라스 본인도, 사실 싸움에는 자신 없었다. 매번 머리가 나쁘다고 한 소리 듣는 건, 내색하지 않아도 매번 상처받는 일이다. 기술이 능치 못하고 잔꾀를 굴리기 힘들다. 하지만, 그럴 때일수록 동생인 알렌과 일치하는 의견이 있었다.


그럼, 단순한 힘을 더 기르면 되지 않을까?


화염은 탐욕스럽게 주변을 먹어 치웠다. 그녀의 체온이 무척이나 상승했으나, 그녀는 개의치 않고 손에 힘을 주었다. 화염 속에 갇힌 밴딜을 할퀴고 휘감을 마력이 필요했다. 저항조차 못하게, 소용돌이치는 화염의 구덩이에 밀어 넣는 게 목적이다. 그에 걸맞은 마력을 끌어내야만 했다.


나르시아와 정반대로, 검붉은 제복을 입은 그녀에게도 여러 이명은 있었다. '리버스 가의 이단아'나 '모지리' 같은 건 그닥 마음에 들지 않았던 그녀지만, 유독 남들이 지은 멸칭 중에 그녀의 마음에 든 게 있었다.


"꺼내 드는 것은 힘. 유지, 화염, 날카로움."


리버스 가문의 상징인 사슬이 둥근 마법진 가운데에 새겨졌다. 그 안에서 튀어나온 마력이 한 일은, 그녀의 화염을 응축한 것이다. 구슬처럼 모인 불길은 방어막 뒤에서 마법을 준비하는 밴딜에게 날아갔다. 둥근 화염에 담긴 마력을 읽어낸 그는, 사용하려던 마법을 취소하고는 급히 방어를 신경 썼다.


"터져라!"


자신 넘치는 목소리로, 그녀는 마법을 가동했다. 둥근 구슬은 바닥에 픽 하고 떨궈지며 박살이 났다. 하지만, 그 안에 담긴 화염은 탐식하듯이 주변을 먹어치웠다. 톱날이 회전하듯이 솟구치는 화염은 밴딜의 방어막조차 장작으로 삼았다.


'방화의 세라스'. 조촐하면서도 불쾌한 의미지만, 그녀는 그 말이 살짝 마음에 들었다. 이명이 붙는 건 쉬운 일도 아니고, 무엇보다 '얼음꽃의 여제'라는 이명을 가진 언니와 비슷한 느낌을 받았다. 그런 감상처럼, 끝날 생각이 없는 산불처럼 그녀의 힘이 퍼져나갔다.


하지만 충분하지 않다는 게 분명히 느껴졌다. 화염 속에서 꿈틀거리는 다른 이의 마력은, 아직도 사그라지지 않았다. 자신이 시간을 끄는 게 전부라는 생각이 드니, 괜히 더 기분이 나빴다. 대체 가족을 집으로 데려간다는 간단한 일이 어쩌다가 이렇게 된 것일까? 그런 생각에 루니르노 마법사가 더 불쾌했다.


예상대로, 솟구친 화염 기둥 중앙으로 솟구쳐오른 거대한 마법진은 불길함을 자아냈다. 푸른빛이 아닌, 검은빛을 내는 마법진은 주변에 있는 마력을 빨아먹었다. 세라스의 화염은 점차 진화됐고, 시야는 분명해졌다.


그을린 건물 사이로, 밴딜은 빠드득 이를 갈며 전방을 노려봤다. 검은 마력에 휩싸인 그는 마치 땅에 집어 삼켜지는 듯 보였다. 하지만, 그런 모습도 잠시, 하늘에서 차가운 얼음이 화살처럼 떨어졌다.


"언니!"

"세라스, 위험하니까 물러서!"


미끄러지듯 다가온 나르시아는 얼음으로 만든 세검을 쥐고 밴딜의 머리를 노렸다. 날카로운 면이 그에게 닿기 전, 바닥에서 솟구치는 검은 마력이 자연스레 얼음을 절단했다. 순도 높은 마력의 차이를 알면서도, 그녀는 물러서지 않았다. 그에게 시간을 줘선 안 된다는 조급함에, 나르시아는 빠르게 얼음 사슬을 만들어 노인을 붙잡았다.


"더 방해하지 마라!"


하지만, 나르시아는 집어 던져지듯 날아갔다. 건물 외벽에 부딪히기 전에 주변에 있는 얼음을 물로 바꾼 그녀는, 자신을 부여잡는 마법을 써서 온몸이 부딪치는 것을 막았다. 하지만, 자신이 안전하다고 사태가 끝난 건 아니었다.


밴딜은 전력을 다해, 자신을 감싸는 마력을 땅바닥에 쑤셔 박았다. 맨손으로 땅을 찍으면서, 뼈가 분질러지는 소리가 났지만, 그는 개의치 않았다. 오히려, 피로 절기 시작한 손을 나풀거리며 마법을 사용했다. 핏방울은 흩뿌려지며 그의 발을 적셨다.


"저주를! 죽음을!"


그 짧은 영창은, 도시의 바닥이 작살나기 시작한 것으로 역할을 다했다.


------


머리가 어지러울 정도의 환각은 시오르와 레아를 힘겹게 만들었다. 시시각각 나타나는 기수를 지나치게 경계한 나머지, 같은 자리를 도는 건 잦았다. 게다가 기껏 만날 수 있었던 사람들은 죄다 뒤집힌 나무가 새겨진 밴딜의 부하들이다.


"제발 가만히 있어 주면 고맙겠는데."

"인질이 멀쩡해야 우리가 유용하거든."

"거절할게요!"


시오르는 방어막을 펼치고 앞으로 돌진했다. 루니르노 마법사들을 무시하고, 안전한 테사르노 마법사가 있는 곳으로 향한다면 그들 정도는 어떻게든 될 것이다. 루니르노 마법사들이 치는 마력 그물을 빠르게 절단한 그는 황급히 움직였다.


그런 와중, 기수들은 골목마다 나타나며 그들의 행적을 추격했다. 군데마다 진짜 마력이 담긴 기수가 섞여 있어서, 밴딜이 마법을 걸 만큼 여유가 난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찝찝함을 느꼈다. 차라리 그가 마법을 제어하지 못한다면, 적어도 세라스의 안전은 후자가 더 보장해주는 일이니까.


"시온! 앞!"


기수가 내지른 공격에 다급하게 방향을 튼 두 사람이지만, 세 명이나 되는 루니르노 마법사들까지 쫓아오니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레아는 결국 강화마법을 포기했다. 턱까지 차오른 피로감만큼, 흐릿해지는 의식은 다음에 쓰는 마법은 생명에 지장이 간다는 것을 암시했다.


시오르는 지쳐버린 그녀 대신, 도망가는 데에 마법을 집중했다. 강화 마법이 없어서 착지가 불안정했고, 달리는 내내 다리가 무거워졌다. 시야마저 불안한 환영들이 가득해져서는 집중을 할 수 없었다. 다행히, 시오르는 지금까진 실수를 범하지 않았다.


문제는 그들 앞에서 무언가가 터지는 소리가 들렸을 때였다. 자신들이 완전히 길을 역행해왔음은, 세라스가 검은 마력에 밀쳐지며 그들이 있는 곳으로 왔을 때 비로소 인지됐다. 세 사람은 서로의 얼굴을 보고는 잠깐 이해를 못 한 듯이 바라봤다.


"잠깐, 밴딜 님이 위험하시다!"

"계획 변경이다!"


서로 무슨 일이냐고 묻기도 전에, 시오르는 급히 방어막을 펼쳐야만 했다. 뒤에서 날아든 마력은 화살 형태를 취한 채, 그들을 공격했다. 게다가 루니르노 마법사들은 건물을 타고 방어막을 넘어서 사격을 가했다. 위험한 공격을 피한 일행은, 급히 골목길로 우회했다.


"야! 넌 왜 돌아온 거야!"

"저 사람들한테 쫓겨서...."

"젠장, 지금 그 늙은 마법사. 갑자기 폭주하고 있다고."

"폭주?"

"온통 검은 마력으로 뒤덮여서 공격이 닿질 않아. 바닥에 흘린 피는 마법진 마냥 엉망진창으로 마법을 써대고...."


뒤로 묶은 머리가 헝클어질 기세로 머리를 부여잡은 세라스. 세 사람 다 걸음을 재촉했으나, 어느새 자신보다 훨씬 느려진 두 사람을 본 그녀는 더 속이 심란해졌다.


"아니, 너희 너무 약골 아니야?"

"미안...."

"그럼 누나는?"

"언니는 혼자 막아보고 있어. 빨리 돌아가야 하는데, 젠장!"


위에서 날아오는 마력을 화염으로 태워버린 그녀는, 겨우 좁은 거리를 나왔다. 처음 그녀가 나섰던 거리는 원래 형태를 잃은 채로 망가져 있었다. 그을린 건물조차 보이지 않는 황량한 시야에 나타난 것은 얼음으로 지면에서 튀어나오는 마력을 막는 나르시아였다.


밴딜은 한시도 멈추지 않고 무언가를 중얼거렸다. 바닥을 적신 피는 이미 사람이 흘릴 수준이 아니었고, 그 위를 타고 올라오는 검은 마력은 톱날 같았다. 나르시아는 얼음과 물을 이용해서 피를 지워나갔지만, 터무니없는 마력이 그녀의 마법을 튕겨냈다.


"누나!"

"위험하니 물러서."


나르시아는 왼손의 통증을 참아가며 얼음을 끌어올렸다. 바닥에 떨어진 피를 어떻게든 검은 마력과 분리하려 했지만, 폭발하듯 무너지는 마법은 일행에게 참담함을 안겨줬다. 어느 순간에 검은 마력 사이에 갇힌 나르시아는 자신 주변으로 검은 마력이 번지지 않게 막아야만 했다.


시오르는 자신의 마력을 쥐어짜서 벽을 만들었다. 검은 마력을 짓누른 벽은 나르시아의 뒤까지 뻗어 나가며, 바닥에 고인 피를 바닥에 비볐다. 금방이라도 뚫고 올 듯한 움직임을 무시한 채, 시오르와 세라스는 그 길로 달려갔다.


"언니! 뒤로 와!"

"너희들...."

"우선 물러서서 생각하자. 게다가 뒤에 루니르노 마법사들이...."


그 말대로, 레아의 나약한 방어막에 날카로운 마력이 꽂혔다. 급히 무너진 잔해를 탄환처럼 던지며 물러선 레아를 보자, 나르시아는 자신의 얼음을 끌어모아서 창처럼 발사했다. 몸을 관통당한 루니르노 마법사들은 급히 태세를 재정비했다.


레아의 곁으로 이동한 순간, 시오르의 마력을 녹여버리고 검은 마력이 치솟았다. 자신의 마법이 파괴당함을 인지한 시오르는 따끔한 감각에 팔을 붙잡았다. 몸까지 저릴 정도로 격한 저항이다. 스스로 불사르면서까지 이 난폭한 마법을 쓰는 밴딜의 모습은, 충분히 이해하기 힘든 일이다. 그렇기에 그의 마음속에서는 의구심이 밀려왔다.


뭐가 미워서 자신의 생명마저 낭비하며, 모두를 괴롭히는 걸까? 묻고 싶은 생각이 들어도 꾹 참았다. 그가 꿈꿔온 영웅들의 삶은 이보다 더 잔혹하다. 옆에 있는 애인이 다른 이를 좋아했다는 것만으로, 질투심에 세상을 등진 악당도 있다. 그들마저 이해하려 한다면, 세상에 이해받지 못할 사람은 없다. 그러니, 시오르는 어떻게든 밴딜을 막으려고 결심했다.


분명한 것은 그가 모두를 위험으로 몰고 있다는 것과 그가 악의로 이런 일을 벌인다는 것뿐이다. 이해는, 그가 아직은 할 수 없는, 너무나도 힘든 일이었다.


작가의말

요새는 약속으로 나가있는 일이 많아서 업로드가 너무 늦고 마네요

조금이라도 더 성실해지도록 하겠습니다ㅠㅠ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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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6 정말로 잃어버린 것#1 19.09.12 44 0 12쪽
55 죽음의 삶#5 19.09.05 59 0 12쪽
54 죽음의 삶#4 19.08.29 47 0 14쪽
53 죽음의 삶#3 19.08.22 46 0 15쪽
» 죽음의 삶#2 19.08.08 56 0 12쪽
51 죽음의 삶#1 19.08.01 45 0 11쪽
50 경계#10 19.07.25 58 0 13쪽
49 경계#9 19.07.18 48 0 15쪽
48 경계#8 19.07.11 42 0 12쪽
47 경계#7 19.07.04 52 0 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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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 경계#4 19.06.13 69 0 11쪽
43 경계#3 19.06.06 52 0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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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 3류 서사시#3 19.05.02 68 0 13쪽
37 3류 서사시#2 19.04.18 100 0 11쪽
36 3류 서사시#1 19.04.11 87 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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