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선 오류가 있었음을 밝힙니다.
어부를 따라 도착한 곳의 명칭은 우라소에가 아니라 이소이고, 그곳의 지배자의 이름은 슌텐이 아니라 에이소입니다.
그럼 본론으로 들어가서...
정설은 아니지만 삼별초와 여몽연합군이 싸우는 난리속에 탈출한 일부 고려 유민이 문명의 전파자가 되었고, 덕분에 류큐의 발전이 급물살을 탔다는 가설이 있습니다.
'계유년(1273년)고려와장조(고려의 기와 장인이 만들다)'라는 글귀가 적힌 기와의 출토가 이 설을 뒷받침합니다.
꽤나 유명하지요.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그게 아니면 고려의 기와가 류큐에서 나올 까닭이 없죠.
석기시대에 머물던 고대의 류큐에서 구스쿠 시대를 기점으로 류큐 지역에 철기가 등장했다는 것이 정설입니다.
그런 구스쿠가 11세기~12세기에 처음으로 생겨나고 14세기까지 구스쿠 시대가 이어졌다고 합니다.
25대 17802년동안 류큐를 다스렸다는 신화 속 천손씨는 빼고, 현실로 류큐에 최초로 존재했다는 슌텐 왕조에 대해서 전설(이라 쓰고 날조라고 말하겠습니다.)이라는 설이 존재합니다.
일단 슌텐 왕조에 대해 기록된 저서는 모두 후대의 것이고, 슌텐 왕조의 유물이나 유적은 제대로 밝혀진 것이 없기 때문이죠.
왕조가 1187년~1260년에 존재했다면서 지금은 아무런 흔적도 찾을 수 없다?
제 생각에 천손씨의 시대는 물론 슌텐 왕조도 그저 전설(이라 쓰는 날조)입니다.
그리고 슌텐왕조에 대해 기록된 저서(후대의 것)에서 슌텐의 아버지가 일본에서 건너간 무장이라고 일류동조론을 펼치고 있으니 슌텐왕조의 존재에 대해 더더욱 신빙성이 떨어지는 느낌입니다.
(슌텐 다음의 에이소 왕조만 하더라도 신화 속 천손씨의 후예를 자처했는데 슌텐의 시조가 뜬금없이 일본 혈통?)
이러한 것을 바탕으로 이글에서 정한 류큐의 설정은 이렇습니다.
1. 류큐는 제대로 된 왕조가 없는 부족 사회다.(어차피 왕이라 해도 연맹장 같은 느낌이지만)
2. 아직 에이소가 나라를 못 세웠다.(1260년 슌텐 왕조의 왕 기혼으로부터 왕위를 물려받았다고 하지만 슌텐 왕조가 구라다... 정확히 1260년에 나라를 세웠다는 것을 믿기보다 그저 13세기 후반에 건국되었다고 생각하자.)
3. 당시 류큐에 철기가 존재했을 수는 있다.(구스쿠 시대부터 철기가 등장했고, 이 글의 시대가 구스쿠 시대이니...)
4. 일부의 철기가 존재하지만 그것이 결코 대중화되지 못했다.(류큐의 북동쪽에는 일본이 있다. 비록 무역의 거점이 된 시대가 아니라고는 하지만 가끔 일본인들과의 물물교환이 발생하여 들어온 철기가 존재할 가능성은 차고 넘친다. 그러나 청동기 문화 수준으로도 나라가 세워지고 그것이 철기라면 당연한 법이다. 그러니 구스쿠 시대라 하더라도 왕조가 없던 시기에는 철기가 있기는 했지만 소수의 지배층만 가지고 있었다고 밖에는 설명할 길이 없다. 그런데 삼별초 토벌 후 유입된 고려의 유민이 제철기술을 보유하고 있었고, 에이소가 고려 유민을 자신의 세력으로 끌어들였다면 에이소의 건국이 충분히 설명된다.)
구스쿠 시대의 류큐에서 어째서 석기를 쓰는지에 대해 의아해하신 분이 계셨습니다.
저는 글을 쓰려고 찾아보다가 이런 것들을 접했지만, 그분은 어떻게 이때가 구스쿠 시대임을 아시는지...ㄷㄷ 내공이 대단하신듯...
어쨌든 '구스쿠 시대=철기 시대'라는 것에서 벗어나 만들어낸 설정이다보니 역사에 해박하신 분이 도리어 의아해하시더군요.
혹시 다른 분들도 그러실까봐 공지를 남깁니다.
하...하하... 공지의 글자 수가 무려 1600자가 넘었네요.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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