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쥬운입니다

천재 배우로 전직을 명 받았습니다

무료웹소설 > 작가연재 > 현대판타지

쥬운 아카데미 작가
작품등록일 :
2020.11.27 17:58
최근연재일 :
2021.01.19 21:40
연재수 :
57 회
조회수 :
740,059
추천수 :
16,589
글자수 :
437,739

작성
20.12.26 2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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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7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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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4
글자
20쪽

Act 32. 액션은 이렇게 하는 겁니다 - (4)

DUMMY

세트장에 도착하자, 어느새 모든 준비를 마친 최성원이 싱글벙글하고 있다.

요새 시청률도 잘 나오고 반응도 좋다더니 어깨에 잔뜩 힘이 들어가 있다.


“지혁 씨, 오늘도 기대해도 되지?”

“네! 오늘은 전보다 훨씬 더 임팩트 있는 그림이 나올 것 같습니다.”

“오오, 그렇게 말하면 나 훨씬 더 기대해버리는데.”

“상범 씨가 잘 따라와 주셔서 믿어보실 만합니다.”

“역시 내가 보는 눈은 있다니까. 지혁 씨가 저렇게 칭찬할 정도면 상범 씨는 대체 어느 정도라는 소리야?”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공포심 제거 알약 때문일까?

감독의 기대가 처음엔 부담이 될 법도 한데, 마상범의 모습엔 긴장감도 공포감도 사라졌다.

오히려 약 때문에 본래의 성격이 드러난 것인지, 험상궂게 생겼지만 사실은 순박한 시골 청년··· 아니, 시골 아저씨를 보는 느낌이다.

물론 나야 그의 여린 면을 알고 있어서 그렇게 보이는 것이지, 모두에게까지 그런 것은 아니었다.

씨익 웃으며 소리치는 그의 모습에 최성원이 순간적으로 당황한다.


“조, 좋지! 그럼 바로 스탠바이 가도 될까?”

“네, 감독님!”


자신감을 회복한 마상범과 함께 자신 있게 대답하고서 나는 세트장 안으로 향했다.

순백으로 가득한 병실.

그 한쪽에 덩그러니 놓여있는 침상 위로 나는 슬며시 몸을 뉘었다.

쓰러졌던 리태홍이 치료를 받고 의식을 회복하는 장면으로 시작되는데.

덕분에 이렇게 편하게 누워서 시작하니 굉장히 사치스럽다.


“자, 그럼 모두 스탠바이해주시고!”


최성원의 외침이 세트장을 갈랐다.

분주하게 움직이던 스태프들은 황급히 주변 정리를 포함한 저마다의 준비를 마치고 세트장을 향해 집중한다.


배우들도 마찬가지다.

문틈 너머로 보이는 마상범은 결의를 불태우고 있다.

거기에 언제 도착한 것인지 연하윤은 부드럽게 웃으며 내 쪽을 바라보고 있다.

아, 눈 마주쳤다.

부드럽게 웃고 있던 연하윤이 눈꼬리를 길게 늘어뜨리며 조그맣게 입술을 움직인다.


‘화이팅.’


그리고는 양 주먹을 동그랗게 말아쥔 채, 응원하는 시늉까지 보인다.

하마터면 웃음이 터질 것만 같다.


“시작하겠습니다!”


이윽고 막내 조연출의 외침이 세트장 가득히 울려 퍼졌다.

나는 입꼬리에 만연한 미소를 지우고, 슬며시 눈을 감았다.

이제 잠들어 있던 다른 이의 의식을 깨울 차례다.


“레디 액션!”


여명의 후예.

조선인민공화국 특작부대 상위 리태홍.

아련하고도 많은 이야기를 담은 그의 의식을.


***


“······”


감겨 있던 눈꺼풀이 몇 번이고 반복해서 움직인다.

점멸하는 시야 사이로 잠들어 있던 의식이 서서히 깨어나기 시작한다.

나는 소리를 내는 대신 황급히 눈동자를 굴려 주변을 살폈다.


눈앞에 보이는 것은 순백으로 가득한 방이었다.

요동치는 시야 사이로 전신에 이질감이 걸린다.

가장 큰 이질감의 근원지는 팔이었다.


황급히 이불을 들춰보니 팔에는 정체 모를 바늘이 꽂혀있다.

다행히 그 외에 따로 구속구는 보이질 않는다.

나는 황급히 바늘을 뽑고 상반신을 일으켰다.


“윽!”


전신이 안 아픈 곳이 없었다.

전에 맞은 총상으로 인한 통증도 통증이지만 신체 능력이 극히 저하되었다.

몸을 움직이는 데까진 문제가 없지만, 지금 상태라면 제대로 임무를 수행할 수 없다.

치료의 흔적이 있는 걸로 보아 분명 총상의 흔적 역시 발각되었을 터.

너무 오랜 시간 노출되어 있었다.

한시라도 빨리 이곳에서 벗어나야 한다.


나는 황급히 몸을 일으키고 문 쪽으로 향했다.

허나 그 걸음은 오래가지 못했다.


끼익.


갑작스럽게 열리는 문 너머로 익숙한 얼굴이 들어선다.

덕분에 바쁘게 움직이던 걸음이 제 자리에 멈추어 선다.


“어딜 기렇게 가십네까?”

“······김필성이.”


남조선에 있어서는 안 될 얼굴이자.

내 손으로 내가 직접 키운 공화국의 전사다.

그 어느 누구보다도 자랑스러운 전사이지만, 지금 가장 만나서 안 될 이들 중 한 명이다.


“동무도 날 죽이러 왔네?”

“······”


김필성은 대답이 없다.


철컥.


대신 딱딱하게 굳은 표정으로 방문을 잠그고 내 쪽으로 다가올 뿐이다.

지금 몸 상태로 김필성과 싸우는 것만큼은 피해야 한다.

멀쩡한 상태라면 모를까.

만신창이가 된 몸으론 김필성을 결코 이길 수 없다.


“정신 차리라우! 조국을 배신한 반역자 손에 놀아나고 있다는 거 모르네?”


서슬 퍼런 살기가 김필성을 향한다.

허나 상처투성이에 환자복을 입고서야 그 살기가 제대로 먹힐 리가 없다.

코앞까지 다가온 김필성이 걸음을 멈추고 나와 눈을 마주친다.


“반역자는 교관 동지입네다.”

“뭐라?”


이미 눈동자는 결의로 가득하다.

어떠한 설득도 먹히지 않을 눈치다.

곧이어 그의 입에서는 사무적인 말이 흘러나온다.


“현 시간부로 조국을 배신한 반역자 리태홍을 여기서 처단합네다.”


어떠한 감정도 담기지 않은 싸늘한 한 마디에 입가에 헛웃음이 피어난다.


“···간나새끼. 많이 컸구만 기래.”


더 이상의 대화는 없었다,

곰 같은 덩치의 김필성은 나에게로 곧장 주먹을 내질렀다.

총상을 당해 몸 상태가 말이 아니라지만, 여기서 이렇게 죽을 수는 없다.

나는 있는 힘껏 가드를 올렸다.


쿵!


“큭!”


분명 가드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전신에 통증이 울린다.

전신에 치밀어 오르는 통증을 억누르며 나는 복부를 걷어찼다.

하지만.


“몸이 아직 완전히 낫지 않았나 봅네다?”


그 일격으로 김필성은 내 상태를 정확하게 파악했다.

김필성은 꿈쩍도 하지 않은 채로 나를 향해 비소를 던졌다.


“아새끼 거참 말 많구만 기래. 내래 그리 가르쳤네?”


시간을 오래 끌수록 내게 불리한 상황이다.

잠깐 움직인 것만으로도 봉합된 상처가 터져 다시 피가 흘러나오고 있다.

출혈도 출혈이지만, 이어지는 통증, 거기에 뜻대로 움직이지 않는 몸은 연달아 비명을 내지른다.


“기렇다면 소원대로 빨리 보내 드리갔습네다.”


거구의 덩치와는 어울리지 않게 김필성은 빠른 속도로 움직였다.

순식간에 그의 손아귀에 환자복이 빨려 들어가듯 쥐어진다.


“이런!”


쾅!


정신을 차릴 틈도 없이 시야가 빠른 속도로 구른다.

단지 내던져진 것이 전부임에도 불구하고 정신이 아득하다.

대체 몸이 얼마나 망가져 있는 것인지 이제야 좀 실감이 된다.


‘이대로는 방법이 없다.’


맨손으론 절대 무리다.

흉성을 깨운 곰 같은 김필성을 이기려면 무기가 필요하다.


“우아아!”


김필성은 자신의 가장 큰 무기인 육중한 몸으로 그대로 달려든다.

저 거구의 덩치에 부딪히는 순간 이성은 그대로 끊길 것이다.

나는 황급히 바닥을 굴렀다.


쾅!


등 뒤에 있던 병실 배드가 그대로 뒤집어진다.

찰나의 순간 그의 등이 훤히 비었다.

나는 잽싸게 놈의 다리를 걷어찼다.


“큭!”


정확히 오금을 노린 일격에 김필성의 무릎이 바닥을 찍었다.

한번 자세가 무너진 지금이 기회다.

나는 배드 옆에 있던 링거의 끈으로 그의 목을 감았다.

링거에 연결되어 있던 끈이 순식간에 팽팽해지며 김필성을 목을 옥죄었다.

김필성의 손이 황급히 손을 목과 끈 사이에 집어넣어 보지만, 정확히 울대를 누른 끈은 그의 기도를 정확히 틀어막았다.


“케, 켁!”


발로 그의 등을 최대한 밀어내면서 끈을 팽팽하게 당기자, 그의 얼굴이 점점 붉게 달아오른다.

하지만 근력이 너무 부족했다.

끝내 기도를 포기한 그의 손이 뒤로 감긴 끈을 잡고 세게 잡아당겼다.

내가 주고 있던 힘 이상의 힘이 가해짐과 동시에 끈을 당기고 있던 몸이 동시에 앞으로 쏠린다.


쾅!


끈에서 풀려난 그의 주먹에 몸이 옆으로 튕겨져 날아간다.

거구의 덩치에 담긴 힘이 어찌나 강한지.

시야가 어지럽게 움직인다.

황급히 몸을 일으키려 하지만······.


“끅!”


어느새 회복에 성공한 김필성이 내 멱살을 잡고 들어 올린다.

지면에서 떨어진 발이 허공으로 그대로 들려 올려졌다.

조여오는 숨통 사이로 그의 목소리가 낮게 울려 퍼진다.


“마지막으로 한 가지 묻고 싶은 것이 있습네다.”

“···뭐이네!”


한참을 버둥거린 끝에 겨우 대답이 흘러나온다.


“교관 동지가 정말 공화국을 배신한 겁네까?”


남은 숨도 얼마없는 와중에 헛웃음이 새어 나왔다.

한편으로는 그의 질문의 저의가 이해되면서도, 너무 당연한 대답을 끌어내기 때문이다.


“귓구녕 열고 잘 들으라우. 전사는 절대 공화국을 배신하지 않아!”


발악과 함께 터져 나온 포효와 함께 나는 잡고 있던 김필성의 복부를 강하게 걷어찼다.

그제야 겨우 그의 팔이 풀려나며 막혀있던 숨이 폐부를 가득히 채운다.

황급히 마저 공격을 이어가려던 찰나.


철컥.


“움직이지 마시라요, 교관 동지.”

“간나새끼··· 총을 가지고 있었네?”


어느새 가슴팍에서 꺼낸 권총이 내 미간으로 향한다.

소음기까지 장착된 권총의 방아쇠 앞에는 손가락까지 걸려있다.


“마지막으로 묻갔습네다.”

“자꾸 뭘 그래 묻는 거네? 죽이라우.”

“전사는 공화국을 배신하지 않는다고 했습네다. 기렇다면, 교관 동지는 전사입네까?”


김필성의 눈동자가 오롯이 내게로 향한다.

질문의 의미가 없는 같잖은 질문이다.

너무 당연하고도 당연한 대답만이 나올 질문이었으니까.


“내래 비록 누명을 뒤집어쓰고 공화국의 배신자로 낙인찍혔지만.”


나는 눈에 힘을 주고 김필성을 노려봤다.

싸늘하게 얼어붙은 눈동자가 김필성을 향했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그의 총구를 붙잡았다.


철컥.


“기, 기 무슨!”


갑작스러운 행동에 도리어 김필성에게서 당혹성이 터져 나왔다.

하지만 나는 거기서 멈추지 않고 총구를 내 이마에 붙였다.

그와 동시에 늘 가슴 속에 묻어 두었던 한 마디가 흘러나온다.


“지금껏 단 한 번도 전사가 아닌 적은 없다.”


***


“컷!”


이질적인 목소리.

현재의 상황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목소리에 단번에 의식이 깨었다.

전신을 지배하던 리태홍의 의식이 무너지고 본래의 정신이 다시금 전신을 가득 채운다.


“······”


세트장은 조용했다.

늘 그랬던 것처럼 모두 한데 모여 찍힌 화면을 체크하고 있었다.

나는 마상범을 데리고 영상을 확인을 끝낸 최성원에게로 향했다.


“감독님?”

“음, 지혁 씨?”

“그림 잘 나왔습니까?”


질문과 동시에 시선이 최성원의 입으로 향한다.

앞으로 나올 저 한 마디에 이번 촬영의 여부가 달려있다.

이윽고 그의 입가에 씨익 미소가 번진다.


“상범 씨도 지혁 씨도 대체 얼마나 연습을 했으면 이렇게 합도 척척 맞아떨어질 수가 있어? 둘이 아주 한 몸처럼 움직이는데 그림이 아주 기가 막히네. 둘이 나 몰래 밤새 연습이라도 한 거야?”


최성원의 입가에 함박웃음이 번졌다.

기분 좋게 웃고 있는 그를 보고 있으니 내 입가에도 미소가 번진다.


“잘 나왔습니까?”

“다른 감독님들과도 더 이야기를 해봐야겠지만, 지금 찍힌 그림만 보면, 두 번 세 번 찍을 필요도 없을 것 같은데? 임팩트도 있고, 몰입감도 장난 아닌 게, 딱 저번 초소 전투씬 같은 느낌이야.”


장안의 화제이자 여명의 후예 최고의 장면으로 손꼽히는 초소 전투씬이 거론될 정도라면 걱정은 없다.

아마 오디오나 조명 등의 부분에서 큰 문제가 없는 한 이대로 갈 수 있을 것이다.


“상범 씨.”

“예!”


그러다 문득 최성원의 눈이 마상범에게로 향한다.

호명 당한 그가 군기 바짝 든 신병처럼 대답하자, 그를 지켜보던 최성원의 입가에 또다시 미소가 번졌다.


“이번에 정말 노력 많이 했던데, 고생 많았어요. 다음에도 잘 부탁해요.”

“······예?”


혼이라도 날 것이라 예상했던가?

마상범의 대답이 한 박자 늦게 흘러나온다.

그의 반응에 씩 웃던 최성원은 멍한 그를 바라보며 말을 덧붙였다.


“액션 센스도 좋고, 감정이랑 대사도 썩 괜찮았어요. 우리 다음에는 더 비중 있는 캐릭터로 같이 일해 봅시다.”

“예, 알겠습니다!”


그 어떤 소식보다도 최고의 소식을 건네고서 최성원은 다시 본래 있던 자리로 돌아갔다.

마상범은 아직 최성원의 말이 와닿지 않은 것인지 멍한 표정으로 그가 사라진 방향만을 바라보고 있다.

나는 씨익 웃으며 그의 등을 두드렸다.


“감독님 말씀 들었죠? 상범 씨 오늘 정말 잘했어요. 연습 때보다 훨씬 잘하셔서 저도 덕분에 더 몰입해서 연기할 수 있었어요.”

“저, 정말입니까?”

“내가 왜 거짓말을 해요? 오늘 정말 잘했어요. 그리고 정말 고생 많았어요.”


나직한 한마디와 동시에 그의 고개가 바닥으로 처진다.

갑작스럽게 시선을 떨구는 모습에 나도 모르게 의문이 튀어나왔다.


“상범 씨?”

“······사실 오늘도 실패하면 배우는 포기할까 생각했었습니다. 자꾸 누군가를 다치게 하면 안 하느니만 못하니까, 오늘도 제대로 못 하면 이대로 배우를 포기하려고 생각했는데.”


마상범의 목소리가 가늘게 떨린다.

묻어두었던 속마음을 털어놓는 그를 보며 나는 입가에 부드러운 미소를 그렸다.


“포기하지 않길 잘했죠?”

“선배님.”

“고생 많았어요, 상범 씨.”


나는 먼저 그를 향해 오른손을 내밀었다.

한참 동안 내 손을 바라보던 그의 초점이 흔들리기 시작한다.

설마 아직 트라우마가 남아있는 것일까? 아직 약효가 남아있을 텐데.

하지만 그것은 내 착각에 불과했다.


뚝, 뚝.


푹 숙인 그의 양 볼을 타고 맑은 물방울이 떨어져 내리기 시작했다.

갑작스럽게 떨어져 내리는 물방울에 나도 모르게 눈동자가 크기를 더했다.


“···상범 씨?”

“선배님··· 선배님 덕분입니다. 선배님 덕분에 과거의 악몽에서 벗어날 수 있었습니다. 정말··· 정말 감사드립니다!”


거구의 덩치와는 어울리지 않는 여린 마음의 울먹임이 연달아 감사를 표한다.

우는 얼굴이 보이지 않게 고개를 푹 숙인 그 모습이 오래전 군에서 있었던 기억을 불러일으켰다.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정 중사님 덕분입니다.’


괜스레 마상범의 모습과 기억 속의 모습이 겹쳐진다.

나도 모르게 눈꼬리가 길게 반월을 그린다.


“그동안 고생 많았어요.”


덩치와는 맞지 않게 굵은 물방울을 뚝뚝 흘리는 그의 등을 토닥였다.


“와아!”


마상범의 등을 토닥이는 와중에 스태프들 사이로 환호성이 번진다.

최성원이 말했던 것처럼 원 샷에 오케이 사인이 떨어진 모양이다.

그러다 문득.


“······”


그의 모습이 동공에 스친다.

환호성으로 가득한 이들 사이에서 유일하게 웃지 못하는 이.

김현호.


계속 지켜보고 있었던 것일까?

나는 마상범의 등을 몇 번 더 토닥이고는 그에게로 걸어갔다.

당장 찢어 죽일 듯한 눈동자가 내게로 고정된다.

그의 코앞까지 다가간 나는 그의 귀를 향해 고개를 쓰윽 내밀었다.


“액션은 이렇게 하는 겁니다.”

“크윽!”


분노로 일렁이는 두 주먹이 허공에서 파르르 떨렸다.

감독인 최성원이 그렇게까지 칭찬하고 분위기도 이렇게 한껏 달아올랐는데, 찬물을 끼얹을 순 없겠지.

거기에 객관적으로 봐도 마상범의 연기는 훌륭했다.

운동선수라는 출신이 무색하게 그간 얼마나 많은 노력을 쏟아부었는지 훤히 보일 정도로 훌륭한 연기를 선보였던 것이다.

결국 비웃지도, 트집을 잡지도, 화를 내지도 못한 채 김현호는 얼굴을 붉히는 것이 전부였다.


“봤으면 좀 배워. 노력도 안 하고 잘하려고 욕심만 부리지 말고.”

“너 이······!”


너무 성질을 긁은 걸까?

끝내 분을 못 이긴 그에게서 노성이 터져 나오려던 찰나.


“······”


김현호의 몸이 덜컥 굳었다.

그는 턱 끝까지 차오른 분노를 겨우 삼킨 채, 두 주먹을 파르르 떨고 있을 뿐이다.

피어오른 호기심은 그의 시선을 따라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옆을 보자 곧바로 이해가 되었다.


김현호의 시선이 다다른 곳.

그곳엔 마상범이 두 눈을 부릅뜨고 노려보고 있었다.

한 마디라도 꺼냈다간 선배고 뭐고 당장 앞발로 후려칠 것 같은 눈빛이다.


“······하여간 이놈이고 저놈이고!”


김현호는 홱 하니 등을 돌려 세트장을 벗어났다.

전형적인 악당의 대사와 함께 자리를 뜨는 그 모습을 보니 웃음이 터질 것만 같다.


“선배님. 괜찮으십니까?”


흉포한 곰과 같은 기세는 어디로 갔는지 그는 금세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달려왔다.

좀 전과는 다르게 눈물을 터뜨릴 것 같은 표정에 결국 웃음이 터지고 말았다.


“괜찮아요. 오히려 제 쪽에서 좀 약을 올렸거든요.”

“그렇습니까?”


마성범은 멋쩍은 듯이 뒤통수를 긁적였다.

눈물 때문에 붉어진 눈으로 우물쭈물하는 모습을 보니 뭔가 하고 싶은 말이 있는 모양이다.


“저, 선배님.”

“말해요.”

“한 가지 부탁이 있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그는 이윽고 감춰두었던 속내를 털어놓는다.


“혀, 형님이라고 불러도 되겠습니까?”


정말이지.

그 녀석과 정말 똑 닮았다.

나를 트라우마에서 벗어나게 해주었던 그 녀석과.

그 녀석에게도 그리 대답했듯이, 내 대답은 정해져 있다.


“안 됩니다.”

“역시 저로서는······”


단호한 대답에 그의 어깨가 축 처졌다.

하여간 놀리는 맛도 비슷하다.


“그게 아니라 형님이라고 부르면 너무 조폭 같잖아요.”

“그, 그렇다면?”

“형이라고 불러.”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형!”


그날 나는 오랜 기억 속의 그 녀석. 연주와도 같은 또 다른 동생을 얻었다.


***


“일이 좋게 끝나서 다행이네요.”

“그러게요. 하루 사이에 너무 많은 일이 있었어요.”


회사로 돌아가는 차 안.

오늘 있었던 일을 떠올리자 입가에 웃음이 피어났다.

상범이라는 동생이 생긴 일도 그렇지만, 이후에 진행된 모든 촬영도 순조롭게 잘 마무리되었다.

특히 연하윤과의 촬영이 대박이었다.


“하윤 씨 덕분에 정말 많이 배운 것 같습니다.”


직접 두 눈으로 마주한 연하윤의 연기는 정말 일품이라는 말로는 부족할 정도였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유명한 여배우 중 한 명이라는 이름이 무색하지 않게 그녀의 연기는 절로 감탄을 불러일으켰다.


연하윤과 달리 김현호의 연기는 노력 하나 보이지 않는 그저 그런 연기에 불과했는데.

연하윤은 그런 김현호의 연기를 특유의 흡입력과 감정선으로 보다 자연스럽게 유도해냈다.

마치 오래되고 물러진 재료를 일류 셰프의 실력을 통해 요리로 탈바꿈시키는 듯한 느낌.

덕분에 보는 것만으로도 많은 공부가 되었다.


“한숨 주무세요. 오늘 고생도 많으셨는데. 도착하면 깨워 드릴게요.”

“아니에요. 아, 맞다 팀장님 혹시 제 스마트폰······”

“아, 잠시만요.”


운전 중이던 김수아는 왼손으로 운전대를 잡은 채로 오른손으로 상의 안주머니를 뒤졌다.

잠시간의 수색 끝에 익숙한 스마트폰이 그녀의 손을 따라 나온다.


“여기요. 생각해보니까 아까 문자 오신 것 같던데. 촬영 중이라 미처 말씀 못 드렸어요.”

“문자요?”


혹시 지현이의 문자일까?

슬슬 저녁 때가 되었으니, 한세강의 문자일지도 몰랐다.


- 임무 [교정]을 완수하셨습니다. -

- 보상으로 2000코인이 지급됩니다. -


앞선 두 가지 예상과는 달리 스마트폰의 메시지는 보은의 메시지였다.

상범이의 트라우마를 해결해준 것에 대한 결과 메시지.

하지만 끝인 줄 알았던 메시지는 이것이 전부가 아니다.


- 업적 [마음의 치료사]를 완수하셨습니다. -


‘마음의 치료사?’


저번 프로필 촬영 때와 같은 업적 완수 메시지.

하지만 저번과는 달리 낯선 이름에 당장 의문부터 튀어나온다.

그리고 그에 대답하듯 업적에 대한 설명이 이어졌다.


- 업적 : 마음의 치료사 -

- 달성조건 : 큰 충격으로 트라우마를 얻은 이들 3명의 마음을 치료할 것. -

- 현재까지 트라우마를 치료한 이들 목록 : 정지혁, 한세강, 마상범 -


거기엔 트라우마를 치료한 이들 목록 중에 있는 나의 이름과 함께.


- 업적 달성에 따른 보상으로 ‘재능 : [공감]’이 지급됩니다. -


내게 배우의 길을 열어준 [몰입]과 같은 또 다른 재능이 나타나 있었다.


작가의말

상처를 치료해줄 사람 어디 없나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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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7 Act 57.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 (完) +57 21.01.19 5,906 206 19쪽
56 Act 56. 제작 발표회 +20 21.01.18 6,127 218 14쪽
55 Act 55. 퇴장은 이별이다 +16 21.01.17 6,453 238 16쪽
54 Act 54. 인간의 조건 +18 21.01.16 6,989 218 18쪽
53 Act 53. 은혜는 바다 같이 - (2) +22 21.01.15 6,933 228 14쪽
52 Act 52. 은혜는 바다 같이 - (1) +11 21.01.15 6,680 189 13쪽
51 Act 51. 스승과 제자 - (2) +19 21.01.14 7,856 234 19쪽
50 Act 50. 스승과 제자 - (1) +18 21.01.13 8,095 237 19쪽
49 Act 49. 드림팀 - (4) +22 21.01.12 8,563 267 17쪽
48 Act 48. 드림팀 - (3) +16 21.01.11 8,990 265 18쪽
47 Act 47. 드림팀 - (2) +39 21.01.10 9,337 322 18쪽
46 Act 46. 드림팀 - (1) +18 21.01.09 9,906 264 19쪽
45 Act 45. 잡초를 뽑을 땐 뿌리까지 - (2) +19 21.01.08 9,918 311 15쪽
44 Act 44. 잡초를 뽑을 땐 뿌리까지 - (1) +21 21.01.07 10,303 257 18쪽
43 Act 43. 마지막 퍼즐 +15 21.01.06 10,792 273 20쪽
42 Act 42. 너 인성 문제 있어? +23 21.01.05 10,491 312 18쪽
41 Act 41. 여러분이 제 힘입니다 - (2) +17 21.01.04 10,789 294 20쪽
40 Act 40. 여러분이 제 힘입니다 - (1) +16 21.01.03 11,209 295 19쪽
39 Act 39. 마음의 치료사 - (3) +19 21.01.02 11,142 308 17쪽
38 Act 38. 마음의 치료사 - (2) +14 21.01.01 11,219 305 19쪽
37 Act 37. 마음의 치료사 - (1) +22 20.12.31 11,714 321 20쪽
36 Act 36. 마녀의 남자 - (3) +24 20.12.30 12,175 289 18쪽
35 Act 35. 마녀의 남자 - (2) +16 20.12.29 12,104 296 20쪽
34 Act 34. 마녀의 남자 - (1) +14 20.12.28 12,897 293 20쪽
33 Act 33. 꿈이 무엇입니까? +12 20.12.27 12,755 304 19쪽
» Act 32. 액션은 이렇게 하는 겁니다 - (4) +13 20.12.26 12,709 294 20쪽
31 Act 31. 액션은 이렇게 하는 겁니다 - (3) +12 20.12.25 12,431 286 17쪽
30 Act 30. 액션은 이렇게 하는 겁니다 - (2) +20 20.12.24 12,724 308 20쪽
29 Act 29. 액션은 이렇게 하는 겁니다 - (1) +18 20.12.23 13,175 301 1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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