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룡의 귀환
“자, 어서 가서 저 금군을 무찔러라!”
“봉명”
장대룡 대장군의 명령에 사(四)장사가 봉황루에서 사뿐히 뛰어내렸다. 검은 머리를 질끈 동여맨 길고 푸른 운갑의 머리띠가 수직으로 하강했다. 적산과 싸우려면 마족은 힘을 비축해야
하기에, 인간들의 싸움은 사(四)장사가 맡기로 한 것이다.
“도깨비불이 황궁을 덮쳤다!”
놀란 금군들이 떼로 몰려들었다.
‘사. 암. 타. 법.’
고미가 모래 바람을 일으키자, 이번엔 외팔이 장사 황시운이 묵철검을 돌려 회오리바람을 일으켰다.
금군들이 서로 뒤엉켜 아비규환이 된 사이, 김겸이 정확히 우두머리의 미간을 향해 암기를 내던졌다.
‘피위윅’
‘헉’
이것은 일종의 신호였다. 암기에 수장이 쓰러지는 동시에 관저궁에서 귀신 폭탄이 굉음을 내며 터졌다.
‘쿠궁 궁궁’
‘파바박 파바박’
어떤 이는 마름쇠가 급소를 찔리기도 했고, 어떤 이는 허벅지 안쪽에 박혀 그 자리 주저앉아 피를 흘렸다. 역대 왕조와 비견해도 그 실력이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청의 군대였지만, 치밀하게 준비된 푸른 눈썹 부대의 전력에 맥을 못 추는 형국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푸른 눈썹 부대의 절박함을 따를 자가 아무도 없었으므로...
‘악~ 으윽 으윽’
사선재에서 귀신 폭탄이 터지고, 정확히 일다경 후, 관저궁에서 다시 폭탄이 터질 걸 알고 있었던 터라 굉음과 함께 사(四 )장사는 몸을 피했다.
그런데, 최전방에 있던 외팔이 장사 황시운이 미처 몸을 피하지 못해 마름쇠의 공격을 받고 말았다. 그의 단단한 허벅지에서 피가 쏟아져 나왔다. 놀란 운갑이 푸른 머리띠를 풀어 그의 상처에 끈을 질끈 묶었다. 금세 푸른 천위로 붉은 피가 배어 나왔다. 놀란 나머지 장사들이 그를 관저궁 뒤로 옮겨 은신시켰다.
“어서들 가시오. 내 여기서 상처 잘 추스르고 바로 합류하리다.”
고통과 땀으로 범벅이 된 사(四)장사의 눈빛은 투지에 가득 차 있었다.
******
같은 시간,
대룡 대장군과 마족 전사들이 후궁을 통해 한비의 별궁으로 향하는 길-. 얼마 전 그들이 직접 묻었던 한비의 무덤이 보였다. 그런데, 무덤이 모두 파헤쳐 있는 게 아닌가?
“비열한 적산 새끼...”
산자는 물론 죽은 자까지도 능멸하는 파렴치한 존재에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자하랑이 비격이랑창으로 땅을 치자, 번개 섬광이 번쩍했다. 하지만 여기서 시간을 지체할 수는 없는 일, 별궁으로 걸음을 재촉했다. 다행히 별궁의 문 앞에 장 숙수가 대기하고 있었다.
“어서 오시지요. 서둘러야 합니다. 청녕궁 안이 아무래도 심상치 않습니다.”
“무슨 기별이라도 있는 게요?”
“아니요. 너무 조용해서 그게 더 걱정되는군요.”
급한 마음에 장 숙수는 별궁 대문에 서둘러 열쇠를 꽂았다. 그러나 자물쇠가 열리지 않았다.
“어 왜 이러지? 조금 아까까지만도 열렸던 거 확인했는데?”
‘달그락달그락’
순간, 하늘 위에 까마귀 떼가 나타나더니, 일제히 장 숙수를 쪼기 시작했다.
‘까악 까악’
순식간이었다.
“아아악 아아악”
자하랑이 비격이랑창을 들어 까마귀를 향해 휘둘렀다.
‘더러운 적산의 짓이구나!’
백마로 현현한 흑비도 발을 흔들어 까마귀를 흔들었다. 그때, 청룡 대장군의 명령이 떨어졌다.
“웅달, 문을 부수시오!”
“봉명”
금광불괴의 몸인 12척 장신의 웅달이 주먹으로 문을 내리치자, 문 두 짝이 순식간에 부서졌다.
‘빠지직 쿵 쿵’
부서진 문을 밟고 별궁으로 들어서자, 어딘가에서 적산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듣기만 해도 소름이 돋는 기분 나쁜 비릿한 웃음소리가 섞여 있었다.
“끌끌끌 ... 내게 선물을 주려, 이리 친히 납시셨구려~ 황천길까지 같이 가는, 참~ 우애도 좋은 동무들이구려~. 끌끌끌.”
“비겁하게 숨어서 못난 짓 하지 말고, 더러운 모습을 보이거라!”
“감히 네깟 것들이 내 모습을 볼 수 있을 거라 생각하나? 너 같은 것들은 이자들이 상대할 것이다!”
적산이 주문을 외우자, 독운무 사이에서 전사들이 천천히 대룡과 마족들 앞으로 다가왔다.
“앗 저자들은!”
그들 앞에 나타난 자들은 전투에서 명을 달리한 진수림, 임호, 박치수, 장귀주의 혼이었다.
그들이 나타난 동시에 부서진 문 쪽에선 금군을 물리치던 사(四)장사가 달려들었다. 적이 되어 나타난 4장사(四) 원혼을 보고 기겁을 하긴 이들도 마찬가지.
“진수림 장사, 임호 장사... 구천을 떠도는가 보군... 이를 어째유?”
고미가 발을 동동 굴었다. 허나 지금 별궁에서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어떻게든 여의주가 있는 청녕궁으로 이동을 해야 했다.
“자네들이 여기를 지켜주시오.”
대룡이 사(四)장사에게 적산의 흑마법의 포로가 된 원혼들과의 싸움을 맡겼다. 이어 자하랑의 비격이랑창을 돌려 몸이 사라지게 했다.
‘신. 소. 도. 법’
숨을 멈추게 한 채 적을 피해 육신을 보이지 않게 하는 무공으로 대룡과 마족의 젊은 전사들이 청령궁에 도달했다. 그 사이, 살아 있는 사(四)장사는 눈물을 머금고 원혼이 된 사(四)장사와 어처구니없는 싸움을 해야 했다.
‘챙 챙 챙챙챙’
청녕궁이 도착한 대룡과 마족 전사들은 적산의 침소로 향했다. 침소의 문을 열자 청 황제의 몰골을 한 적산의 육신은 거미줄 집을 반쯤 푼 채, 허개비 처럼 버둥거리고 있었다.
귀월 역시 거미줄에 꽁꽁 묶인 채 천장에 매달려 있었다.
마법을 써 몸에서 빠져나온 적산의 원혼이 귀월을 붙잡아 스스로 거미줄의 갇히게 한 것이다.
“대룡 대장군! 조심하셔야 합니다. 여기는 비살 독운무가 가득하여, 어디서 악귀들이 나타날지 모릅니다.”
“여의주의 행방은 찾았소?”
“아니, 어디 있는지...”
무언가를 말하려는 순간, 극한의 고통을 느끼는지 귀월이 비명을 질렀다. 그러더니 귀월이 적산의 목소리를 내며 거미줄 떼어냈다.
“끌끌끌... 여의주의 주인이 난데, 왜 그 행방을 귀월이 년한테 묻는 거요?”
거미줄을 다 떼어낸 적산은 천장을 기어 옥좌에 앉았다. 그리고는 옥좌 옆에서 오색 보합의 상자를 꺼내 열어 보였다. 형용할 수 없는 영롱한 색으로 빛나는 여의주였다. 허나, 지난번 그렇게 당했던 기억이 되살아나, 섣불리 달려들 수 없었다.
“그건 청룡의 제1 신기, 내 아비의 것이오!”
청룡이 월문언월도를 꺼내 들고 서서히 옥좌 앞으로 다가갔다.
“끌끌끌... 하나를 빼앗긴 멍충이가 두 개는 못 뺏길까... 어떤가? 자네도 네 아비처럼 비겁하게 자결을 하는 게? 내 도와주리다!”
“도둑 새끼 주제에 어디 내 아비의 이름을 더렵혀! 어서 나오거라! 비겁하게 계집의 몸속에 숨어서 벌벌 떨고 있는 게야?”
순간 적산이 귀월의 흑요석 곡도를 대룡의 손목을 향해 던졌다. 그러나 재빠르게 몸의 위치를 바꿔 대룡의 월문언월도가 날아오는 곡도를 되받아쳤다.
‘챙그랑 와장창’
두 동강 난 흑요석 곡도가 땅바닥에 내동댕이쳐졌다. 순간, 대룡은 적산이 들고 유인하는 여의주가 진짜가 아닌 걸 단번에 알 수 있었다. 여의주 가까이 갔는데, 월문언월도가 어떤 반응도 하지 않았다.
*******
대룡은 청녕궁에서 뛰어나와 내실 정원에 섰다. 청녕궁 앞, 오른쪽으로는 인지궁, 왼쪽으로는 관저궁이 자리했다.
대룡이 인지궁 쪽으로 다가가자, 월문언월도가 반응을 하기 시작했다.
‘웅 웅 웅~’
청의 포로로 끌려온 몽골의 공주 나무쫑은 청 황제의 후궁이 되어 이곳에 기거했다. 인지궁 안으로 들어서려하자, 갑자기 붉은 기와를 타고 내려온 팔(八)장사가 대룡과 마족의 젊은 전사들을 포위했다.
“헉”
비살 독운무로 악귀의 혼령을 살아있는 사(四)장사에게 불어 넣어 적산의 뜻대로 움직이게 만든 것이다. 원혼이 사(四)장사는 여의주가 없어 벨 수가 없고, 살아있는 사(四)장사를 베었다간 그들의 목숨이 날아갈 위기!
웅달이 달려드는 고미를 내다 던지며 울먹였다.
“아이구 고미야. 이를 어쩐다냐? 널 죽일 수도 없고~ 살릴 수도 없고!”
흑마법에 노예가 된 팔(八)장사는 막무가내로 달려들었다. 마치 흑수강의 악귀들처럼, 보이는 대로 할퀴고 물어뜯었다. 그들의 목표는 분명했다. 대룡의 손에 든 월문어월도를 빼앗는 것이었다.
‘오. 기. 조. 원’
흑비가 운기조식을 이용해 다섯 명의 몸을 공중에 뜨게 했다. 대룡은 양손으로 월문언월도를 움켜쥐었고, 마족의 전사들이 그를 둘러싸고 달려오는 악귀들을 온 힘으로 떼어냈다. 그러나 떼어내도 떼어내도 지칠 줄 모르는 악귀들은 더 거세게 달려들었다. 악귀들을 뚫고 인지궁 가까이 다가갔을 때, 갑자기 인지궁 문이 열리면서 몽골의 공주였던 나무쫑이 오색 보합을 들고나왔다. 그리고 소리쳤다.
“이것을 찾는 것이냐?”
여의주였다.
뾰족 고깔모자에 넓은 소매의 몽골 전통의상인 ‘델’을 입은 나무쫑이 오색보합 상자를 머리 위로 들어 올렸다. 순간, 내실 정원에 있던 모두가 일제히 동작을 멈추고 그녀를 바라봤다.
귀월의 몸에서 빠져나와 황제의 허물 속으로 돌아간 적산이 청녕궁 앞에서 소리쳤다.
“뭐 하는 짓이야?”
분노에 찬 눈으로 그를 노려보던 나무쫑이 입을 열었다.
“간밤에 인지궁에 숨어들어 이걸 숨기는 걸 내 모를 줄 아셨소? 내 이것이 무언지 모르오나 황제가 원하는 것이라면, 이걸 이 자들에게 줄 것이오! 이것은 내 아비를 능멸한 벌이오!”
나무쫑은 인정사정없이 오색보합을 대룡이가 있는 쪽으로 던졌다.
“그대들이 나의 원한도 함께 풀어주시오!”
“파박 뎅구르르르르”
오색보합 속 여의주가 땅바닥에 데구루루 굴렀다.
“안돼!”
적산의 비명과 함께 가장 먼저 여의주 쪽으로 달려간 건, 웅달이었다. 큰 덩치고 여의주를 잡으려 했지만, 강력한 결계가 쳐져 있는지 영롱한 빛과 함께 튀겨져 나갔다.
‘아악~ 쿠웅’
용포를 휘날리며 유유자적 여의주를 향한 적산은 여의주를 안고 주문을 외우기 시작했다.
‘중얼중얼 중얼중얼’
그의 주문 소리가 커질수록, 대룡에게 견딜 수 없는 고통이 가해졌다.
‘으으윽 으으윽’
손의 힘이 풀리는 걸, 안간힘으로 버텼다.
“대장군! 대장군!...”
월문언월도가 그의 손에서 떨어질 찰라, 흑비가 그를 태우고 청녕궁 지붕 위로 날아올랐다.
‘씨융~’
여의주의 기운과 조금이라도 멀어져야 할 거 같아 잠시 피신을 한 것이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청녕궁 지붕으로 날아오른 팔(八)장사 악귀들이 사정없이 대룡을 물어뜯었다. 청녕궁 마당으로는 붉은 기와가 사정없이 떨어져 깨지면서 정원 안은 붉은 흙바람이 일었다. 견디다 못한 대룡은 어쩔 수 없이 월문언월도를 떨어뜨리고 말았다.
“으으으윽”
월문언월도가 청녕궁 앞으로 내리꽂혔다. 이를 본 적산이 비릿한 웃음을 지으며 언월도 앞으로 다가갔다.
“끌끌끌... 내 뭐라 했느냐? 이 비기의 주인은 이 적산이라 하지 않았느냐?”
한 손에 여의주를 들고, 월문언월도를 잡으려는 순간, 마른하늘에 번개가 내리쳤다.
‘번쩍’
그리고 동시에 봉황 한 마리가 괴이한 울음소리를 내며 적산을 향해 달려들었다.
‘아아아아악’
세상 어디에서도 들을 수 없는 기묘한 소리와 파장! 백두에서 적산의 눈알을 쪼았던 바로 비천의 봉황, 원이었다. 이번에는 눈이 아니라, 적산의 목덜미를 쪼았다.
‘아아아아악’
기이한 봉황 소리와 적산의 비명이 뒤섞이며 궁 안에 귀를 찢는 굉음이 가득 찼다. 청녕궁 앞마당에 쓰러진 적산의 목에선 피가 솟아 분수처럼 퍼지며 황룡포를 붉게 물들였다.
“비...천...네가... 기어이...”
적산의 목소리가 사그라지자, 흑마법에 사로잡혔던 사(四)장사가 제 모습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죽은 사(四)장사의 원혼을 발견하고는 서로 애처롭게 이별 인사를 나눴다.
“소현세자께서 약속하셨오. 그대들을 반드시 조선 땅에 묻어준다고... 이제 이리 떠돌지 마시고 부디 영면하소서.”
김겸의 인사에 이어 대룡도 그들을 향해 마지막 말을 전했다.
“그대들은 죽어서도 위대한 푸른 눈썹의 전사요! 그대들의 힘을 얻어 조선을 다시 세우겠소!”
스스로 하는 비장한 다짐이기도 했다.
******
발 빠른 자하랑이 땅이 뒹굴고 있는 여의주를 들어 무릎을 꿇고 청룡에게 전했다.
“청룡 대장군! 드디어 월석과 월문언월도 그리고 여의주가 만났습니다! 이제야 비로소 청룡신파의 힘을 되찾았습니다! 망극하옵니다!”
두 아비가 죽음으로 지키려 했던 청룡신파의 부활! 떨리는 손으로 여의주를 건네받은 대룡은 그것을 하늘로 치켜들었다.
순간, 하늘에서 오묘한 빛이 그를 감쌌다. 그러자 그의 푸른 눈썹이 유난히 푸르게 빛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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