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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교수의 서재

채권자와 채무자는 스트리밍중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드라마

완결

레드퓌파에
작품등록일 :
2019.11.18 12:56
최근연재일 :
2019.12.12 10:15
연재수 :
21 회
조회수 :
936
추천수 :
22
글자수 :
115,344

작성
19.11.18 18:00
조회
132
추천
1
글자
11쪽

1화 불행의 형태

DUMMY

1@

인연이라는 것이 존재한다면-

그것은 어떤 모양으로 사람에게 다가오는 것일까.

그것은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분명히 존재하는 것.

그것은 손에 닿지 않지만 분명히 느껴지는 것.

그것은 알지 못하는 사이에 훌쩍 옆에 와있는 것.

아마 그런 것일 것이다.



화창한 3월의 한 아침. 아직까지 기온은 쌀쌀해 뼛속까지 사무칠 듯 했다.


“추워...”


그렇게 중얼거리며 한 소년이 침대에서 일어난다.

20평 남짓한 아파트에 정감이 느껴질 정도의 딱 맞는 사이즈의 방.

그 공간의 주인공은 눈을 비빈 뒤 기지개를 핀 후, 이불을 갰다.

그는 그대로 세면을 위해 화장실로 직행한다.

세면의 비춘 자신의 얼굴을 한 차례 응시한다.


“하...”


다소 여성스럽게 생겼다고 마저 들을 정도의 그 외모를 탐탁하게 여기지 않았다.

세면을 빠르게 마치고 조그마한 부엌으로 나온 그는

멍하니 시선을 자신의 컴퓨터 쪽에 두었다.

고사양의 본체와 듀얼 모니터.

보통의 대학생이라면 가지고 있을 리가 없는 장비들.

그는 조용히 본체로 다가가서 전원을 켰다.

그리고 이내 빠르게 자신의 이메일을 확인했다.


“.....하”


그리고 이내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떨궜다.

그 원인은 모니터에 띄워져 있는 글귀였다.


[From 에이린


컴툴님 안녕하세요. 주신 메일은 읽어 봤습니다만,

다소 부담스럽네요.

컴툴님께서는 저를 아시겠지만 제 입장에서는 일면식 없는 분에게

그런 말씀을 들어도 부담스러울 따름입니다...

마음에 담아두지 마시고

앞으로도 제 방송 재밌게 봐주시면 감사할 듯 해요!]


시원하게 차였다는 걸 이성진은 뼈저리게 통감했다.

어제 이성진은 여느 때처럼 인기 여성 스트리머 ‘에이린’의 방송을 보았다.

그리고 평소라면 하지 않았을 짓을 하고 말았다.

평소처럼 그녀가 방송을 마치고 종료 했을 때,

그녀의 공식 메일주소로 쪽지를 보냈다.

한마디로 말하자면,

러브레터였다.

21세기 전, 그것은 매우 로맨틱한 것이었다.

사실을 말하자면 형태가 바뀌었을 뿐 현재진행형이기도 한 문화이지만,

적어도 스트리머에게 있어서 그 행위는

‘전혀’ 로맨틱하지 않았다.

이른 바 매너위반이다.

공인인 스트리머를 한 시청자가 그렇게 생각하는 것은

요즘 말로 하자면 ‘선을 넘은 것’이며

그런 시청자들에게 맞는 말은 한 가지 밖에 없었다.


‘혐청자’


혐오스러운 시청자.

그리고 그것을 누구보다 잘 알면서도 저질러버린 이성진이었다.

그나마 다행인건 블랙을 안 당한 정도였다.

자신의 머리를 쥐어 뜯어버리고 싶을 정도의 자괴감이 일었다.

‘대체 무엇을 한 거냐! 어제의 나!’ 라고 소리 지르고 싶었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오늘의 그는 어제와는 달리 유달리 지성인으로,

아침 꼭두새벽부터 그런 짓을 하는 건 의미도 없거니와

현대 문명의 지성인으로써 해야 할 일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진짜 뭔가에 씌었나...”


“야옹”

그렇게 한탄하는 동안 어느새 인지 슈뢰딩거가 내 옆에 다가왔다.

혼자 하는 자취 생활에 유일한 벗이었다.

고양이에게 금기시 된 이름을 달고 있는 귀여운 생물은

나를 바라보며 애처롭게 울고 있었다.


“슈뢰딩거! 나를 위로 해 주는 거야?”


그렇게 감격스럽게 말하며 녀석을 껴안으려는 순간


‘콱’


“으아악!!”


그대로 손에 물려 비명을 질렀다.

머피의 법칙이라고 하나.

어쩐지 오늘은 무지하게 재수가 없을 것 같은.

그런 기분이 들었다.


*


전공 수업인 2교시를 듣기 위해 강의실에 앉은 이성진은 초췌하기 그지없었다.

그것은 어제 새벽 4시까지 깨어있어서도,

오늘 아침 밥을 챙겨 먹지 않고 바로 와서도

아니라 지하철역을 한 역 더 가 내린 덕에

학교까지 아침부터 마라톤을 한 덕이었다.

그런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사람이라면 응당 ‘괜찮니?’ 라고 물어보고 싶어지기 마련이다.

아, 정정하겠다.

보통 사람이라면 물어보는 게 정상이다.

그리고-

이성진은 보통 사람이 아니었다.


그것은 사회에서 선택받은 자.

절대로 넘을 수 없는 오라를 뿜어내며

주변의 공간을 지배해내는 특수능력을 지닌 한 단계 윗선의

고고한 존재였다.

세간에서는 그것을 이렇게 부른다.


아싸(Out Sider)라고.


그랬다. 현실은 시궁창이었다.


계기는 사소한 것이었다.

새내기 환영회에서 그는 취중에 미친 짓을 하고 말았다.

그가 그 날 전에 본 에이린의 방송이 무의식의 그를 지배했고,

그 날 대참사가 일어났다.


“아잉~ 냠냠 잘 먹을께요~!

아~ 소주 한 잔 고마워요

성진이가 체포~완료~! 우효!!”


그날 사건현장에서 이성진이 한 말을 한 구절만 발췌 해봤다.

한 마디만 허용해 주었으면 했다. 딱 한마디면 된다.


“젠장...”


안성맞춤의 두 글자.

그것이 이성진의 기분을 표현 해주고 있었다.

그 이후는 보시다시피 혼자이다.

솔로. 온리 원. 독고다이.

있지만 없는 사람입니다.

그게 이 계절 이 대학의 이성진의 취급이었다.

아니 반대로 이성진 쪽에서도 제발 부탁이니 다가오지 말아줬으면 했다.

그것은 이른바 그의 업계에서는 부관참시라 불리는 잔혹한 짓이었다.

이성진에게 앞에서 강의 시작 전 삼삼오오 모여서 떠드는

그와 그녀들은 눈부신 태양과도 같았다.

장기간 쳐다보면 눈이 익어서 실명해버릴 것만 같았다.

실제로 타들어가는 것은 그의 마음 쪽이었지만.


“성진아?”

“...?”


그는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그럴 리가 없을 텐데 분명히 그럴 리가 없을 텐데.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목소리가 있었다.

그것도 여성의 음색이었다.


“나...?”


고개를 돌려 목소리의 주인공을 바라보며 성진은 재차 물었다.


“앗, 미안! 성진이 아니었나? 그렇게 기억하고 있었는데...”


“아니? 아니? 뎃츠 마이 네임. 예스.. 내 이름이지? 그랬을 거야...”


“훗. 뭐야 그 말투. 아 그것보다 괜찮아? 많이 피곤해 보이길래. 괜찮으면 이거 먹어.”


그렇게 말한 그녀는 이성진에게 노란 포장의 비닐을 하나 건넸다.

대국민적 식품 겸 비타민제.

모르면 북한에서 내려왔는지 의심해야할 정도로 유명한 것.

레몬아였다.


“레몬아...?”

“응! 레몬아!”

“아.. 응 레몬아...”

“응! 그럼 기운 내!”


그렇게 말한 그녀는 후다닥 자기 자리로 돌아갔다.

맞은 편 책상 구석 쪽에 앉은 그녀들에게 다른 여자들이 몰려들었다.


“유미야.. 쟤랑 이야기하면 안 돼...”

“응? 왜?”

“쟤 OT 때 븅신 짓 한 이성진이잖아!”


성진은 생각했다.

망할 놈의 청력.

그렇게 헤드셋 끼고 게임을 많이 해도 전혀 닳지를 않는다.

현실 사운드 플레이만큼은 프로게이머 수준이었다.

차라리 안 듣는 게 낫다고 생각했다.


“응. 그게 왜?”

“?”


성진은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저 소녀는 대체 누구인가.


“유미야. 그러니까 이상한 애라니까?”

“재미있다고 생각하는데...?”

“...하.. 어쨌든 유미 너도 쟤랑은 놀지 않는 게 좋아.”

“...응”

유미라 불린 그녀는 내키지 않는 표정으로 그녀의 친구 말에 수긍했다.

하지만 곁눈질로 그녀를 살핀 성진은 알 수 있었다.

그것은 전혀 납득한 표정이 아니었다.


강의는 늘 그렇듯이 지루했다.

어쩌다 보니 적당한 성적으로 집근처 대학에 들어와서

수업을 듣고 있는 자신의 처지를

성진은 별 생각 없이 받아들였다.

그도 그럴게 그는 사실.


“돈 걱정은 없으니까.”

이성진은 중얼거렸다.

남들에게 이야기했다가는 싸다구를 맞을 정도의 일이지만

그에게는 익숙한 환경이었다.

대신 등가교환이라고도 말할 수 있을 정도로

안타깝게도 그에게는 꿈이 없었다.

목표가 없다.

장래도 없다.


그냥 평생을 밥을 먹고, 무의미하게 활동하고

반복된 프로세스에 몸을 맡겨 살아가다

죽을 뿐.

누군가에게는 꿈과 같은 생활.

그는 결코 금수저가 아니다.

단지 복권에 당첨됐을 뿐.

하지만 일확천금은 아니었다.

이성진의 행운은 조건이 따라붙었다.

연금복권 당첨.

세 장을 사서 1등 당첨과 동시에 딸려 들어온 2등 두 장이 그 조건의 정체다.

약 2억 남짓한 돈과 20년간 세금을 제외하고 매 달 300만 원 이상의 수입.

그야말로 불로소득.

사실 그가 이런 행운아가 된 것은 최근이었다.

오히려 이성진은 불행했었다.

부모님을 사고로 일찍 여위고 학창 생활을 외할머니와 함께 보냈다.

그 외할머니마저도 그가 고등학교 3학년 때 돌아가셨다.

기초생활 연금과 얼마 되지 않는 보험금을 받으며 살았다.

이성진에게 있어서 삶이라는 것은 빛이 바래있었다.

든든하게 생각했던 보호자들이 하나 둘 무기력하게 사라지는 모습을 보았다.

어린나이에 이미 인생이란 것이 얼마나 덧없는 것인지 깨달아 버렸다.

인생의 목적을 잃은 채 타성에 가득 차있었다.

그러다보니 인간관계를 객관적으로 바라보게 됐다.

그리고 알아낸 단 하나의 진실.

‘인간은 이득을 얻기 위해 타인과 만난다.’

그렇게 믿었다.

그런 그는 랜선 관계를 편하게 느꼈고,

자연스럽게 인터넷 방송에 빠져들게 됐다.

그중에서도 얼굴 없이 하는 방송.

속칭 ‘듀라한 방송’에 심취했다.

아이러니 하게도 보이지 않는 그들의 방송이야말로

얼굴이 보이는 캠 방송보다 진실로 느껴졌다.

그 중에서도 그가 특히 좋아하는 방송은

‘에이린’이라는 여성 스트리머의 방송이었다.

3년 전 성진이 고등학교 1학년 때

그는 우연치 않게 신입 스트리머 방에 들어갔다.

캠을 켜지 않는 방송 특성상 시청자가 아무도 없었다.

그렇게 자신 한 명밖에 없는 방송에서 그녀,

‘에이린’은 그런 것에 개의치 않고 방송을 했다.

채팅창은 시종일관 적막했다.

성진은 방송이 끝나기 전에 한 마디를 남겼다.


컴툴 : 고생하셨습니다.


그게 그의 첫 채팅이었다.

그 채팅에 에이린은 기뻐해주었다.

그런 그녀에게 호감을 품은 이후 꾸준히 그녀의 방에 들어갔다.

에이린은 그후에도 시청자 수에 연연하지 않고 꿋꿋이 방송을 해 나아갔다.

그렇게 한 달, 두 달 지나면서

그녀의 시청자 수와 팔로워 수는 늘어갔다.

그리고 입소문이 나자

그 상승폭은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그리고 현재에 이르러서는

‘대기업 방송’ 으로 성장하게 되었다.

이성진에게 있어서 에이린은 태양이었다.

오죽하면 고등학교 당시에는

없는 돈을 긁어모아서라도 도네이션(후원금)을 보낼 정도로

성진은 그녀에게 심취해 있었다.

그것이 어제 밤 일어난 이메일 사건의 방아쇠였다.

한마디로-


“몇 번째인지조차 모를 에필로그...”


대학교 1학년 스무 살의 나이로는 안타까울 정도로

애처로운 중2병 발언으로 성진은 자신의 처지를 표현했다.

당연히 그런 영문 모를 소리로 중얼거리는 그를

강의를 듣고 있던 다른 학생들은

경멸의 눈길로 곁눈질을 했다.


“.....”


단 한명, 유미라 불리는 한 소녀를 제외하고.


작가의말

이 이야기는 픽션이며 등장인물은 실제 인물, 단체 사건과는 관계없음을 말씀드립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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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16화 그들의 뒤풀이 19.12.03 42 1 12쪽
15 15화 마술의 비밀 19.12.02 36 1 13쪽
14 14화 초신성 등장 19.12.01 25 2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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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2화 소녀는 이득을 바란다 +1 19.11.19 154 1 12쪽
» 1화 불행의 형태 19.11.18 133 1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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