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who 님의 서재입니다.

사후세계에서 생존하는 방법

웹소설 > 일반연재 > 퓨전, 판타지

뭐왜뭐왜
작품등록일 :
2018.09.13 21:59
최근연재일 :
2018.10.13 13:20
연재수 :
22 회
조회수 :
6,228
추천수 :
89
글자수 :
122,310

작성
18.09.17 07:30
조회
658
추천
6
글자
13쪽

1. 죽음 (1)

DUMMY

그런 이야기 있잖아.


부모가 사체 빚 끌어 쓰다가 저 혼자 도망가고, 남겨진 자식들이 대신 노예처럼 부려지는 이야기.

개처럼 일해서 받은 월급으로 갚아보지만, 원금은커녕 이자 내기도 어려운 이야기.

그러다 사내놈은 장기 꺼내서 팔아먹고, 계집년은 유흥업소로 팔려가는 이야기.


요즘 세상에 아직도? 라며 고개를 흔들만한 그런 이야기.


불법이니까 경찰에 신고하라고?

신고 좋다. 잠깐은 괜찮을 거다. 그런데 그 다음은?

경찰이 하루 종일 옆에 붙어 있지 않는 이상, 이 거머리 같은 놈들은 반드시 다시 온다.


다 내팽개치고 도망가라고?

도망 갈 수 있으면 그것도 나쁘지 않다. 어차피 불법 추심인데, 못 찾으면 지들이 어쩔 거야?

그런데 그게 쉽지 않다. 이 개 같은 새끼들은 도망갈 낌새가 보이면 귀신같이 따라 붙는다.


시작부터 이런 속이 꽉 막히는 이야기가 나오는 이유?

왜겠냐. 지금 내가 그래.


* * *


퍼억!


“악! 씨발, 뭐야!”


둔탁한 소리와 함께 머리가 앞으로 확 기운다. 비명이 절로 튀어 나오고, 뒤통수가 얼얼하다.


“이야··· 화남이!”


그래, 이 새끼야. 내가 김화남이다.


“이번 달은 어째 좀 늦는다?”


뒤를 돌아보니 주택가의 좁은 골목길을 막고 남자 두 명이 서 있다. 올백머리 한 놈, 빡빡머리 한 놈. 손을 흔들고 있는 꼴이 뒤통수를 후려친 것은 빡빡이 놈이다.


거들먹거리는 면상이 기분 나쁘다. 하루를 마무리하는 시간에 저딴 면상을 봐야하다니. 재수도 없지.


이것들은 내 애비란 작자가 돈을 빌린 사채업자들이다. 정확히는 그 밑에서 일하는 양아치.

둘 다 평범한 슬랙스에 셔츠, 검은색 자켓을 입었을 뿐인데, 한눈에 양아치라는 느낌이 확 온다.

대체 무슨 차이인지 모르겠다. 그냥 인간 자체가 쓰레기라 그런가?


“하긴, 1년 가까이 버텼으면 슬슬 힘들 때가 되긴 했지.”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양아치스러움으로 무장한 빡빡이가 옆으로 다가와 어깨동무를 했다. 담배 냄새와 향수 냄새가 섞인 역한 악취가 코를 찌른다.


“더러운 새끼. 폐암이나 걸려서 뒈져라.”


“뭐?”


느닷없는 악담에 빡빡이가 눈을 부릅떴다. 주먹을 불끈 쥐는 게 한 대 더 때릴 모양이다.


“왜? 치려고? 쳐라! 쳐! 근데 이 새끼야, 이건 알고 쳐라.”


억울함과 분노에 머리가 터져버릴 것 같다.

하지만 여기서 싸움이 붙으면 무조건 내가 손해다. 두 명을 이길 자신도 없고, 이겨봐야 좋을 것도 없다. 돈이나 더 뜯기겠지.


“한 대만 더 치면, 이번 달 이자는 깽값이라 치고 안낸다.”


그러니 이를 악물며 울화를 집어 삼킨다.


“그건 니놈 새끼가 메꿔야 할 거다.”


아직 초보 양아치인 빡빡이는 채무자가 이렇게 강하게 나오는 경우가 처음인지 우물쭈물한다.

그렇겠지. 내가 매달 내는 이자가 200만원이다. 아마 저 어리숙한 양아치가 가져가는 월급보다 많을 거다.


허둥대던 빡빡이가 자세를 잡았다. 기싸움에 밀리면 안 된다고 판단한 것이다.

나는 눈을 크게 뜨고 몸을 긴장시켰다. 한 대 맞고 200만원이면 크게 밑지는 장사는 아니다. 그러나 그것도 잘 맞았을 때 이야기다.

내일 일 나가고 싶으면 요령껏 맞아야 한다.


퍽!


“악!”


그때, 찰진 소리와 함께 빡빡이가 앞으로 고꾸라진다. 뒤에서 지켜보던 올백머리가 빡빡이의 뒤통수를 후려쳤다.


“야! 소중한 고객님께 뭐하는 짓이야?”


빡빡이를 두들기며 올백머리가 나에게 친절히 말했다.


“화남 씨, 미안하게 됐어요. 이놈이 초짜라 아직 뭘 몰라.”


어설픈 빡빡이와는 다르다. 올백머리는 이 바닥에서 나름 잔뼈가 굵다.

채무자의 신체를 직접적으로 건드리는 것은 하수가 하는 짓이다. 그건 마지막 순간에나 쓰는 방법이다. 성실히 돈을 갚는 나 같은 사람에게는 아직 이르다.


그러니 다른 방법을 사용한다.


퍽!


“억! 형님!”


“내가 이렇게 사과할게. 이 새끼 교육도 확실히 시키고.”


퍽!


“악! 잘못했습니다!”


“그런데”


퍽!


“윽! 혀...형님...”


“이번 달”


퍽!


“이자는”


퍽!


“준비된 거지?”


퍽!


빡빡이는 무릎을 꿇고 엎드려서 일어나질 못했다. 마지막으로 빡빡이의 대가리를 한 번 더 후려친 올백머리가 서늘하게 웃으며 물었다.


“그러니까 그렇게 당당하겠지?”


양아치 주제에 분위기 잡기는. 마음 같아서는 다 뒤집어엎고 싶지만, 오늘은 여기까지다.


나는 봉투를 꺼내서 휙 던졌다. 200만원이라고 해봐야 저렇게 얇다. 허망할 정도다.


올백머리는 바닥에 떨어진 봉투를 주워서 빡빡이의 머리에 툭툭 털었다. 빡빡이가 잽싸게 일어나서 봉투 속을 확인한다.


“맞습니다. 형님.”


“역시 우리 화남 씨가 계산이 참 정확해.”


우리 화남 씨는 개뿔. 내가 왜 너희 화남 씨냐.


올백머리는 다시 봉투를 받아서 손에 들고 있는 작은 가방에 집어넣었다. 사채하는 놈들은 왜 하나같이 저 가방을 가지고 다니는 가야?


“그런데 이렇게 정확하신 분이 왜 자꾸 납부일이 늦어지실까?”


“겨우 하루 늦은 거다. 어쨌든 줬으니까 됐잖아. 그만 꺼져.”


“에헤이, 그게 아니지. 원래 연체되면 이자 늘어나는 거 몰라?”


사채업자라는 자들이 이렇다. 무슨 핑계를 대서든 돈을 더 뜯어먹으려고 안달이 났다. 마른 오징어를 짜도 물이 나온다고 믿는 놈들 아닌가.


“자꾸 이런 식이면 우리도 그쪽 사정 봐주기가 어려워.”


“지랄한다. 그럼 뭐 어쩔 건데?”


내가 낼 수 있는 돈은 이미 한계다. 사실 지금까지 낸 것만으로도 진작 한계를 벗어났다.

고졸에 건설 노동자로 먹고사는 내가 지금까지 월 200씩 낸 것만도 대단한 일이고, 그건 이 새끼들이 더 잘 안다.


“어쩌긴. 다른 방법을 구해봐야지.”


올백머리가 음흉하게 웃으며 눈을 찡긋 거렸다. 제 딴에는 뭐 좀 있어 보인다고 생각하는 모양인데, 보는 사람을 좀 배려해 줬으면 좋겠다. 토할 것 같다.


“무슨 말인지 알지?”


“개새끼...”


“왜 욕을 하고 그래? 우리도 먹고 살아야지. 안 그래?”


이놈들이 말하는 게 뭔지는 잘 안다. 그리고 내가 속이 뒤집어지는 분노를 꾸역꾸역 집어삼키며 이자를 내는 이유도 그것 때문이다.


“자··· 그럼 알아들었을 거라고 생각하고, 오늘은 이만 간다. 연체 이자는 문자로 알려줄 테니까, 다음 달까지 준비해.”


올백머리는 유유히 골목길을 지나 사라졌다. 그 뒤를 따라가던 빡빡이는 나를 슬쩍 쳐다보더니 허리를 흔드는 시늉을 하며 낄낄댄다.


“개새끼...”


더럽고 비좁은 골목길을 지나 집으로 가면서, 다시 치솟는 분한 마음을 꿀꺽 삼켰다. 아직 아니다.


지금은 참아야 할 때다.


* * *


선선한 늦가을의 밤공기가 머리에 오른 열을 식혀준다. 서늘한 기운을 맞으며 걷다 보니 집에 도착했다.


우리 집은 다세대 주택에 딸린 반지하 투룸이다. 보증금 300에 월세 25짜리 집. 아무리 반지하라지만 서울시 내에서 투룸이 이 가격이면 상당히 저렴한 거다.


그러니 당연히 허름하다.

채광도 나쁘고, 방도 비좁고, 습기도 잘 차고.


그런데 허름해서 고맙다.

허름하지 않았으면, 우리가 살지 못했을 테니까. 동생에게 자기 방도 만들어주지 못했을 테니까.


애비란 인간이 사업한답시고 나대다가 다 날려먹었을 때, 난 그저 그런가 보다 했다. 애초에 그 인간이 뭔가 잘 하리라는 기대를 가져본 적이 없다.


그저, 또 날려먹었구나. 저 지랄을 하다가 엄마도 도망갔는데, 아직도 정신을 못 차렸구나. 그런 생각뿐이었다.


그래서 쪽지 하나 남겨두고 사라졌을 때는 차라리 잘 됐다고 생각했다. 내가 먹여 살려야 하는 입이 줄어든 거니까.


그러면서도 의아했다. 이 인간이 가만히 있어도 밥이 나오는 집구석에서 벗어날 인간은 아닌데.


의문은 다음날 풀렸다. 올백머리가 와서 집을 난장판으로 만들었다. 이 염병할 인간이 제 자식을 담보로 사채를 빌렸단다.


그리고 1년이 지났다.

나는 계속 참고 있다.


비좁고 어두운 계단을 내려가 현관문을 열었다. 현관 바로 옆의 가스렌지 위에서 콩나물국이 팔팔 끓고 있다. 기분 좋은 온기가 볼을 스친다.


“나 왔다!”


일부러 힘차게 외치며 들어갔다. 동생은 눈치가 귀신같이 빠르다. 조금이라도 화난 기색이 보이면 양아치 새끼들 만난 걸 눈치 챌 것이다.


“어, 왔냐?”


단발머리의 여고생이 반갑게 나를 맞이했다. 아담한 체구에 오밀조밀 귀여운 얼굴을 가진 내 동생.


“왔냐? 처맞고 싶어서 환장했구나? 어디서 오라버님께 반말을!”


“뭐래. 븅신. 씻고 나와서 밥이나 먹어.”


말은 저렇게 하지만, 일하고 돌아오는 오빠가 배고플까봐 국까지 새로 끓여서 밥상을 차려놨다. 예뻐하지 않을 수가 없다.


툭-


그래서 머리를 쥐어박았다. 예쁜 건 예쁜 거고, 혼날 건 혼나야지.


“이씨! 왜 머리를 때려! 머리 나빠지면, 네가 책임질 거야?”


“말 좀 곱게 하라고 몇 번을 말해야 되냐. 그리고 머리가 나빠질 걱정은 할 필요가 없어요. 이미 나쁘잖아. 다 알면서 왜 그래.”


게다가 지금도 내가 널 책임지고 있단다. 이 싸가지 없고 예쁜 동생아.


뒷말은 차마 못했다.


내색은 안 해도 나에게 항상 미안한 마음을 품고 있는 녀석이다. 괜한 말을 해서 심란하게 만들 필요는 없다.


“밥이나 처먹어!”


동생은 쾅 소리가 나도록 문을 닫고 제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뭐? 야! 김화련!”


대답이 없다. 하여튼 저거 성질머리 하고는.


씻고 나와서 밥을 먹었다. 조용해서 그런지 수저가 그릇에 부딪치며 달그락거리는 소리가 유난히 거슬린다. 혼자 먹으려니 심심한데?


“화련아! 김화련! 나와 봐!”


방문이 열리며 화련이가 고개만 삐죽 내민다.


“왜?”


“국이 짜다.”


“미쳤냐?”


미안. 무리수였어.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야겠다.


“요즘 학교에서 별 일 없지?”


아무래도 양아치 새끼들이 마음에 걸린다. 올백머리의 말도, 빡빡이의 행동도.


“똑같지 뭐. 별일 없어.”


화련이가 담담하게 말했다. 확실하다. 무슨 일이 있다.


정말로 아무 일이 없었으면 불평을 했을 것이다.

이놈의 학교는 가르치는 것도 없으면서 시간만 보낸다거나, 체육 시간에 사내새끼들이 음흉하게 쳐다봤다거나, 선비질 하는 선생 때문에 짜증난다거나.

그런 일상적인 일들을.


“그래. 무슨 일 있으면 꼭 말하고.”


화련이는 인상을 찌푸리며 소리 질렀다.


“내가 무슨 애야? 내 일은 내가 알아서 해!”


그러더니 머리를 다시 방안으로 집어넣는다. 문을 닫지 않는걸 보니 삐진 건 아니다. 귀여운 것.

그나저나 학교에 전화를 해봐야겠다.


서둘러서 밥을 삼키고 뒷정리까지 하니 시간이 많이 늦었다. 잠깐 고민하기는 했지만, 다른 사람의 휴식보다 내 동생의 안위가 더 중요하다.


나는 슬그머니 집을 빠져나와 근처의 놀이터로 가서, 화련이의 담임교사에게 전화를 걸었다. 집에서 전화하다가 화련이가 알면 지랄을 할 거다.


- 여보세요?


안 받으면 어쩌나 했는데, 다행이다.


“선생님, 안녕하세요? 저 화련이 오빱니다. 늦은 시간에 죄송합니다.”


- 괜찮아요. 안 그래도 저도 연락을 드리려고 생각하고 있었어요.


“아, 그래요? 역시 학교에서 무슨 일이 있었나요?”


- 네... 이걸 어떻게 말해야 할지...


그녀는 오늘 하교 길에 있었던 일을 설명했다.


교문 앞에서 양아치 새끼들이 화련이를 기다리고 있었단다. 그리고 오빠가 빚을 안 갚았다고, 너라도 일해서 갚아야 하는 거 아니냐고 난리를 쳤다.

심지어 화련이를 끌고 가려고 했다.


다행히 친구들이 선생님들을 불러왔고, 양아치 새끼들은 도망갔다.


- 이번에야 무사히 넘어갔지만...


심장이 미친 듯이 뛴다.


- 또... 발생하면...


귓속이 웅웅거린다.


- 일단... 전학...


휴대폰을 쥔 손이 덜덜 떨린다. 눈앞이 하얗게 타오르는 것 같다. 휴대폰 너머에서 울리는 말이 무슨 소린지 하나도 못 알아 듣겠다.

그저 그 한마디가 뇌리에서 반복됐다.


화련이를 끌고 가려고 했다.


끌고 가면? 그러면 어쩌려고?


빡빡이의 저질스런 행동이 떠오른다.


“알겠습니다. 제가 해결하겠습니다.”


뭐라고 계속 말하는 담임을 무시하고 전화를 끊었다.


“이 씹새끼들이, 화련이를, 건드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1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사후세계에서 생존하는 방법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공지 제목 변경 신청했습니다. 18.10.10 77 0 -
공지 연재주기에 대해서 18.09.22 148 0 -
22 8. 탈출 (3) +1 18.10.13 141 3 12쪽
21 8. 탈출 (2) +2 18.10.11 156 2 13쪽
20 8. 탈출 (1) +1 18.10.11 151 3 11쪽
19 7. 재회 (3) 18.10.10 136 3 13쪽
18 7. 재회 (2) +2 18.10.04 184 3 13쪽
17 7. 재회 (1) +4 18.10.02 196 3 12쪽
16 6. 미로 (2) +2 18.10.01 315 4 13쪽
15 6. 미로 (1) +4 18.09.30 202 4 12쪽
14 5. 첫 번째 특성 (4) 18.09.29 219 6 13쪽
13 5. 첫 번째 특성 (3) 18.09.28 210 4 12쪽
12 5. 첫 번째 특성 (2) +2 18.09.27 270 3 13쪽
11 5. 첫 번째 특성 (1) 18.09.26 240 3 13쪽
10 4. 나쁜 놈 (3) 18.09.25 236 4 12쪽
9 4. 나쁜 놈 (2) +1 18.09.23 256 5 12쪽
8 4. 나쁜 놈 (1) +2 18.09.22 341 4 13쪽
7 3. 달리기 (4) +4 18.09.21 317 4 12쪽
6 3. 달리기 (3) 18.09.20 317 5 12쪽
5 3. 달리기 (2) 18.09.19 366 3 12쪽
4 3. 달리기 (1) 18.09.18 377 5 11쪽
3 2. 상태창 +2 18.09.18 453 5 12쪽
2 1. 죽음 (2) +4 18.09.17 474 7 12쪽
» 1. 죽음 (1) +1 18.09.17 659 6 13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