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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랭지의 책장

공이(firing p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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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랭지
작품등록일 :
2017.07.07 18:21
최근연재일 :
2017.10.20 03:09
연재수 :
31 회
조회수 :
5,496
추천수 :
55
글자수 :
131,840

작성
17.08.04 0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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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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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글자
9쪽

6-1. Crossroad

DUMMY

6-1



십자로는 어느 나라에서는 악마의 길이라 불린다. 어떤 날 어떤 시간에 십자로 중심에 있으면 악마가 나타나 계약을 하자는 것이다. 계약자가 원하는 것을 한 가지 들어주고, 그 사람이 가장 소중하게 여기는 것을 가져간다. 세상 어디에나 있을 법한 이야기였지만, 그것이 이 곳처럼 황폐화 된 곳에 마치 누가 일부러 만들어 낸 것인 양 생겨난 환경이라면 누구든, 과념치 않을 수 있을까?


멀지 않은 곳에서 손바닥만 한 회색 조각들이 사방에 널려 뭉쳐진 돌무덤들 중 하나를 헤치고, 세 명의 인형이 나타났다. 마치 TV에서 봤던 상투적인 모양의 우주복처럼 생긴 옷을 입고 있었다. 물론, 만듦새는 굉장히 조악했다. 단순하게 생겨 아무 무늬도 없는 두터운 파카, 바지를 입고, 잿빛의 투명한 고글을 썼다. 전부 뒤에 배낭 하나씩 메고 있었는데, 배낭 상단에는 작은 초록색 불빛이 주기적으로 점멸하고 있었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불빛은 숫자였다. 숫자는 45에서 막 44로 줄어들은 참이다. 앞장서 있던 사람은 십자로의 중앙으로 가서 갑자기 양팔을 쫙 벌렸다.


"프리덤!"


뒤따라오던 여자가 '쯧' 하고 혀를 찼다. 맨 뒤에 있던 사람이, 팔을 벌리고 감상에 빠져있는 이에게 말했다.


"여기에서도 샘플 채취 할까요?"


파마머리는 고개를 들어 하늘을 쳐다본 체, 고개를 끄덕였다. 그 말에 바로 아래에 있던 돌 부스러기들을 주워 허리춤에 달린 작은 가방 안에 넣었다. 옆에서 팔짱을 끼고 못마땅하게 파마머리를 보며 혀를 차던 여자는 파마머리의 등을 밀쳤다. 파마머리는 무방비하게 있다가 '어이쿠' 하며 뒤뚱거렸다.


"이제 40분 남짓 남았는데, 뭐 하는 거야? 빨리빨리 움직여요 좀."


파마머리는 뒤돌아 자신을 밀친 여자를 보며 한 손가락을 세워 흔들거렸다.


"지수는 낭만이 없군. 꿈이 없는 처녀는 매력이 없어요."


'칫칫' 하며 의기양양하게 손가락을 흔들며 웃는 창수의 모습에, 지수는 당장 달려들어 저놈의 손가락을 확 꺾어 버리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지수의 표정이 심상치 않아 보여 창수는 괜히 헛기침을 하며 목소리를 깔았다.


"거참, 까칠하네. 예비 배터리가 있으니까, 아직 3시간은 더 버틸 수 있잖아. 좀 더 멀리 가자구."


가방을 뒤적이던 영우는 그 말에 가방을 닫고 흔들었다. 가방이 묵직하게 위아래로 왕복한다.


"이미, 가방이 다 차서 더 넣을 데도 없어요."


창수는 '크으' 하고 자기 머리를 손바닥으로 쳤다.


"정말 안타깝네. 태양빛을 더 쬐고 싶은데..."


그러더니, 오던 길로 손을 들어 돌아가자는 제스쳐를 취했다.


"사람은 동물이고, 동물은 햇빛아래 있어야 똑바로 설 수 있는 법이지."


나름 멋있게 한다고 한 말이었는데, 지수는 들은 체도 안하고 빠르게 앞서 나갔다. 영우가 바로 뒤를 이었고, 창수는 느긋하게 걷다가 점점 앞선 둘과 거리가 멀어지자 다급히 뛰어 따라붙었다.


"자, 잠깐. 같이 가!"




느린 걸음으로 불과 30분 거리라 얼마 안가 연구소에 도착했다. 지수는 도착하자마자 문을 벌컥 열고 들어가 배낭 옆구리에 달려있는 토글스위치를 아래로 내렸다. '지잉'하는 치찰음이 들리더니 약간 부스스하게 떠있던 머리카락이 가라앉는다. 동주가 없는 머리를 벅벅 긁으며 수건을 들고 맞았다.


"수고했어."


지수는 수건을 낚아채어 신경질적으로 얼굴을 닦았다. 짜증이 날대로 난 얼굴이라 동주는 조심스럽게 얼굴 닦은 수건을 받았다.


"헛소리만 드럽게 많아!"


으르렁 대고는, 샤워실 옆 급수레버를 돌리고 안으로 홱 들어가 버렸다. 뒤따라 들어온 영우는, 눈치를 보는 동주에게 '다녀왔습니다' 하고 작게 말하고 수건으로 얼굴을 닦았다. 물로 차게 식혀놓은 수건의 감촉에 피곤함이 조금 덜어진다.


"고마워요."


빙긋 웃으며, 수건을 동주에게 돌려줬다. 체력이 지수나 영우만 못해, '헉헉'거리며 막 들어온 창수는 허리를 굽히고 숨을 몰아쉬었다.


"저 기집애가 니 반만 닮았으면 좋겠다."


"그래도, 전처럼 앞에서 욕하지는 않잖아요."


"뭐? 또 뭐라고 했어?"


울그락불그락 하는 창수를 뒤로 하고, 샤워실 안에 들어가 옷을 벗었다. 지수가 샤워를 하다 가슴을 가린 채 도끼눈으로 뒤를 돌아봤다.


"들어오기 전에 말하랬지?"


"미안, 깜빡했어."


머쓱하게 웃으며 영우는 옆자리의 샤워기 밸브를 돌렸다. 미지근한 물이 머리 위로 쏟아졌다. 샤워용 물로 배당된 양이 많지는 않다. 10분 좀 넘게 몸을 씻은 영우와 지수는 머리를 수건으로 비비며, 사무공간으로 다시 돌아왔다. 창수가 툭 튀어나온 배를 긁으며 컴퓨터와 한창 씨름하고 있던 진웅을 끌고 샤워실로 갔다.


"어어... 잠깐, 나 지금 C-218구역 자료 펄스비교 하고 있었다구요."


"야, 미리 샤워한다고 생각하고 좀 봐주라. 나 지금 완전 땀범벅인거 몰라? 영우 저 배신자가 지 좋은 일만 하고 나랑은 샤워실에 죽어도 안 들어간단 말야."


"아 진짜. 뭐야 정말."


구시렁거리며 따라 들어간다. 영우는 좋은 일이나 마나 샤워하는 지수를 다른 눈으로 바라본 적도 없었고, 다른 사람이 지수랑 같이 샤워실에 들어갔다면 진즉 끔찍한 꼴이 났을 거라고 생각했다. 벽에 걸려있는 선풍기를 틀어 머리를 말리는 지수를 보다가 의자에 앉아 책상에 턱을 괴었다. 다른 사람들도 샘플채취 작업에 나간 듯했다. 민준은 또 다른 구역으로 취재를 갔겠지. 선풍기 바람이 새어나와 피부에 와 닿으니, 전에 있던 곳에 비하면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좋은 환경에 있구나 하는 것을 느낀다.


잠시 후, 장발에 큰 키의 남자가 '후' 하고 실내로 들어서고, 곧바로 근육질의 몸이 탄탄한 남자와 몸집이 왜소하고 얼굴에 곰보자국이 넓게 퍼져있는 남자가 따라 들어왔다. 근육질의 남자 정현은 영우와 지수를 보고 반갑게 웃었다.


"먼저 왔구나?"


"수고하셨어요."


동주가 차게 식힌 수건을 하나씩 건넸다. 지수는 본척만척, 고개만 살짝 끄덕이고 다시 머리를 말리는데 열중했다.


"예비 배터리 팩을 마저 쓰자고 했는데, 가방이 이미 꽉 차서 그냥 돌아왔어요."


"그래? 우린 그것마저 거의 다 썼는데..."


"어? 그럼."


지금 그들이 착용한 옷과 그에 이어진 배낭. 아까 전까지 영우와 지수도 입었던 그 옷은 살인음파. 펄스를 막아주는 특수한 장비였다. 배낭 안에 감춰진 기계에 팔뚝만한 배터리 하나로 3시간 정도를 막아줄 수 있었다. 다만 펄스의 근원지. 즉, 붉은 구체에 가까이 갈수록 배터리 소모가 심해지는데. 정현의 방금 그 말은 붉은 구체에 굉장히 가까이 다가갔었다는 의미였다.

정현과 일행들은 얼굴을 닦아낸 수건을 동주에게 다시 줬다.


"응. 여기서 한 북서쪽 방향으로 2킬로미터 쯤 가니까, 붉은 구체가 보이더라."


샤워를 끝낸 창수가 머리에 수건을 감고 나와, 의자에 앉아 그대로 늘어졌다. 장발의 영록이 준성과 함께 샤워실로 가며 정현에게 눈짓을 했다. 정현은 먼저 씻으라고 고개를 끄덕여주고 말을 이었다.


"너희 오고 몇 개월간 주변을 돌아다녔는데, 이제야 조금 연구에 진전이 있겠다 싶다."


동주가 격벽 구석에 위치한 냉장고를 열어 참치 통조림 6개를 꺼내 샤워실에 들어간 두 명분을 제외하고 포크와 함께 하나씩 나눠줬다. 받은 사람들은 누가 뭐라 할 것 없이 동시에 캔뚜껑을 열고 참치 한 조각을 찍어 입속에 털어 넣었다.


펄스연구소 멤버들은 영우와 지수가 오기 전까지는, 붉은 구체에서 나오는 음파를 연구하고 해석하여 음파를 중화시킬 수 있는 장비를 만들어 내는데 지난 몇 년간을 몰두했다. 뜻하지 않게 영우와 지수가 이곳에 오게 되었지만. 인원이 늘게 되어, 오히려 할 수 있는 일. 즉, 붉은 구체 자체를 조사하고 연구하는 데 생각을 전환했다. 우선적으로 붉은 구체의 정확한 위치를 찾고, 붉은 구체를 중심으로 거리를 측정해 거리별 펄스의 구조를 분석해야 하는데, 정현의 조가 붉은 구체를 찾아낸 것이다.


"후우."


지수가 포크를 문 체, 자기도 모르게 깊은 숨을 내쉬었다.


이제 막 구체를 찾아냈을 뿐, 아직 구체적으로 밝혀진 것은 아무것도 없다.

지금부터 시작이지만, 살아남기 위해 몸부림치던 때와는 다르다는 것에 안도감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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