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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정우 님의 서재입니다.

왕총아

무료웹소설 > 작가연재 > 무협, 전쟁·밀리터리

조정우
작품등록일 :
2018.01.01 12:00
최근연재일 :
2020.03.24 06:00
연재수 :
112 회
조회수 :
75,386
추천수 :
618
글자수 :
588,953

작성
18.01.01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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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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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
글자
11쪽

곡예 소녀

DUMMY

호북성 양양 시내 저잣거리에 수천의 무리들이 구름떼처럼 몰려 있었다.


"우와!"


"저럴 수가!"


"발이 줄에 붙은 것 같네!"


여기저기서 감탄사, 환호성, 박수가 쉴 새 없이 터져나왔다.


이들은 무술 곡예를 관람하고 있었다.


높이가 4장(약 12m)이나 되는 줄 위에서 무리들의 시선을 완전히 사로잡고 있는 곡예사는 소녀였다.


흰옷에 흰 면사포로 얼굴을 가린 소녀는 마치 발이 줄에 붙은 듯 자유자재로 오른발을 들었다 왼발을 들었다 줄 위를 걸어다니며 봉을 휘둘러댔다.


심지어 발가락으로 줄 위를 자유자재로 걸어다니며 봉을 휘둘러대기도 하는 것이 아닌가!


휙! 휙! 휙!


끊임없이 날카로운 파공성이 일어났다.


비록 무리들의 환호성과 박수 소리에 묻혀 버렸지만, 무예를 할 줄 아는 사람이라면 듣지 않고도 직감적으로 파공성을 느낄 수 있으리라.


대체 이 소녀는 사람인가 신선인가.


가느다란 줄 위에서 펼치는 소녀의 봉술은 눈으로 보기 전엔 사람이 할 수 있을 것이라곤 상상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빼어났다.


흰 면사포로 얼굴을 가렸음에도 소녀의 자태는 선녀가 하강한 듯 아름다웠다.


면사포 사이로 드러난 두 눈과 눈썹이 천상의 선녀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더 없이 고혹적이었기에, 면사포로 얼굴을 가린들 아름다움을 감출래야 감출 수 없었다.


바로 이때 수십 명의 사내들의 음흉한 시선을 느낀 소녀의 동작이 갑자기 점점 빨라졌다.


부끄러움을 탈수록 부끄러움을 견디기 위해 몸놀림을 재촉할 수 밖에 없었다.


이러한 소녀를 줄 밑에서 웬 아름다운 여인이 근심어린 눈길로 지켜보고 있었다.


서른네다섯 살 쯤 되었을까.


곡예를 구경하는 사내들의 시선을 사로잡을 정도로 아름다운 이 여인의 두 눈과 눈썹은 소녀와 쌍둥이처럼 쏙 빼어닮아 의심할 여지없이 소녀의 나이많은 언니나 어머니라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소녀의 동작이 갈수록 점점 빨라지자, 여인은 소녀를 향해 손짓했다.


그만 내려오라는 뜻이었다.


혹여 소녀가 줄 위에서 발이라도 헛디뎌 떨어질까봐 걱정해서가 아니라 여인으로서 사내들의 시선에 소녀가 느끼는 부끄러움을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어쩐일인지 소녀는 평소와는 사뭇 다르게 평정심을 잃어가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걸 알고도 그대로 내버려 둘 수 없었다.


소녀는 여인의 손짓을 보자 실로 놀라운 동작을 펼쳐 보였다.


무려 4장이나 되는 높이의 줄 위에서 공중제비를 돌며 사뿐히 뛰어 내리는 것이 아닌가!


순간 사방에서 우레와 같은 박수 소리가 터져나왔다.


소녀가 착지하자 여인이 무리들을 향해 두 손을 모으며 말했다.


"공연이 마음에 드셨다면 각자의 재량껏 요금을 내어주십시오. 혹여 공연이 마음에 들지 아니하였다면 그냥 가셔도 좋습니다."


여인이 말을 마치자 무리들이 요금함으로 보이는 나무 통에 동전을 던지기 시작했다.


이내 나무 통이 동전으로 가득 찼다.


더 이상 동전을 넣을 수 없을 정도가 되자 여인이 되었다는 듯 손을 들며 말했다.


"요금함이 가득찼으니, 이제 요금을 그만 받겠습니다."


무리들이 하나둘씩 떠날 무렵, 여인이 귓속말로 소녀에게 물었다.


"오늘 대체 어쩐 일로 그리도 평정심을 잃었던 것이냐?"


여인은 소녀가 오늘처럼 평정심을 잃은 모습을 본 적이 없었다.


소녀가 긴장한 눈으로 뒤쪽을 가리키며 급히 속삭였다.


"어머님, 방해꾼이 나타난 듯하옵니다."


검을 찬 사내들이 이쪽을 주시하고 있었다.


소녀는 줄 위에서 곡예할 때부터 수십여 사내들이 자신을 음흉한 눈길로 쳐다보고 있음을 느꼈던 것이다.


여인이 다급히 손짓했다.


"빨리 이곳을 뜨자."


두 모녀의 손에는 나무봉만 있을 뿐이었다.


청나라 조정은 한인들이 쇠붙이 물건을 소지하는 것을 솥을 비롯한 주방 기구와 식도 이외에는 일체 허용하지 않았다.


검을 찬 저 사내들은 만주족이 틀림없을 터, 횡포를 부릴 것만 같아 도망치려는 것이다.


소녀는 다급히 요금함을 번쩍 들어 짐수레에 실었다.


소녀의 동작이 어찌나 번개처럼 빨랐는지, 무공을 아는 사람이라면 소녀가 무공의 고수임을 짐작할 수 있었으리라.


소녀가 어머니의 손을 잡아끌며 재촉했다.


"어머니, 서둘러야 해요!"


사내들이 빠른 발걸음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소녀는 재빨리 짐수레를 몰았지만, 미처 자리를 뜨기도 전에 사내들이 길을 가로막아 버렸다.


소녀는 눈짓으로 주변에 있는 무리들에게 도움을 청했지만 아무도 나서는 자가 없었다.


소녀는 또랑또랑한 목소리로 말했다.


"사내들이 어찌하여 부녀자들의 길을 가로막는 것이예요?"


한 사내가 소녀 쪽으로 다가오더니 짐수레에 실린 요금함을 가리켰다.


"너희들이 자초한 일이다. 이 양양은 우리의 영역이거늘, 어찌 감히 곡예를 하고 수금을 한 것이냐?"


소녀는 두려움으로 떨고 있는 어머니의 손을 잡으며 한치의 흐트러짐도 없이 말했다.


"억지부리지 마세요. 법률에 의하면 누구도 자유롭게 곡예를 하고 수금할 수 있어요."


소녀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사내가 검을 뽑아 들었다.


'챙' 하는 소리와 함께 사내가 검으로 소녀를 겨누었다.


"검이 법보다 우선이라는 말을 못 들어보았느냐?"


소녀가 침착하게 말했다.


"그런 말은 무뢰배나 하는 소리가 아니예요?"


사내가 앙천대소하며 말했다.


"하하하...... 참으로 건방지기 짝이 없는 계집이로구나! 면사포를 벗거라. 네 낯짝 좀 보자꾸나."


소녀는 한손으로 어머니의 손을 잡고, 한손으로 봉을 비껴 든 채 앙칼진 목소리로 말했다.


"어림없는 소리하지 마세요!"


여인이 요금함을 가리켰다.


"이곳 양양이 모두 그대들의 영역이라면 이곳에서 다시는 곡예를 하지 않겠소. 돈은 모두 가져가시오."


여인은 돈 때문에 앞길이 창창한 딸을 위험에 빠뜨릴 수 없었다.


사내가 여인의 말을 비웃듯 미소를 머금더니 여인과 소녀, 짐수레를 차례로 가리켰다.


"너희들의 공연으로 우리가 오늘 입은 손해가 얼마인줄 아느냐? 이 짐수레에 실린 돈으로는 어림없다!"


소녀가 발끈해서 한마디 내뱉었다.


"헛소리......"


여인이 손짓으로 소녀의 말을 자르며 말했다.


"얼마를 원하십니까?"


사내가 미소만 머금은 채 말이 없자 여인이 다시 말했다.


"우리 모녀를 놓아주시면 부족한 돈은 차후에 갚겠습니다."


사내가 껄껄 웃었다.


"하하하...... 그 말을 어찌 믿느냐?"


여인이 두 손을 모으며 사정했다.


"부디 믿어주십시오."


소녀는 입술을 꾹 다문 채 사내들을 노려 보고 있었다.


사내가 여인에게 소녀를 가리키며 물었다.


"이 계집이 네 딸이냐?"


여인은 불안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러하옵니다."


사내가 소녀를 음흉한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너희 모녀가 우리에게 끼친 손해를 갚을 때까지 네 딸을 저당잡히거라."


순간 소녀가 분노한 눈길로 사내를 노려보았다.


"대체......"


소녀는 어이가 없어 말문이 막혔다.


여인이 고개를 세차게 흔들었다.


"그리할 수는 없사옵니다."


사내가 위협적인 목소리로 말했다.


"내 말을 듣지 아니한다면 후회하게 될 것이다. 좋은 말로 할 때 순순히 따르거라."


바로 이때 사내 하나가 나서려는 순간, 다른 사내가 그의 팔을 잡아채며 속삭였다.


"지부, 못 본 척하게."


초롱초롱 빛나는 커다란 눈, 오똑한 코, 다무진 입술.


지부라는 이름의 이 사내는 한눈에 봐도 조각처럼 잘생긴 사내였다.


"국모, 일이 잘못되도 나 혼자 책임질 테니, 나를 말리지 말게."


국모라는 사내 역시 이목구비가 수려한 잘생긴 사내였지만, 지부라는 사내에 비할 바는 못 되었다.


지부가 국모의 손을 뿌리치고 나서려 했지만, 지부의 어깨를 잡은 국모의 손이 놓아주지 않았다.


"자네가 잘못 되면 숙부님까지 잘못 될 수 있음을 모르는가?"


"잘못 되어도 나 혼자 책임지겠다니까 그러네."


"자네가 잘못 되면 숙부님도 책임을 면할 수 없다니까!"


지부와 국모가 실랑이를 벌이고 있을 때 소녀가 몇 발짝 앞으로 나가며 말했다.


"우리 모녀가 가진 돈을 모두 줄 터이니 그만 길을 비키세요. 아니면 관아에 고소하겠어요."


소녀는 이런 식으로 나오지 않으면 사내들이 절대로 물러서지 않을 것이라 생각한 것이다.


마음 같아서는 한바탕 싸움을 벌이고 싶었지만, 어머니가 걱정되어 그럴 수가 없었다.


소녀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사내가 깔깔 웃었다.


"하하하...... 관아에 고소하겠다고?"


사내가 계속 깔깔 웃으며 말했다.


"하하하...... 우리는 하늘을 나는 새도 떨어뜨린다는 화신 어른의 비호를 받고 있거늘."


화신! 이 한마디에 소녀는 마음속으로 이를 갈았다.


화신이라면 백성들의 고혈을 짜먹는 천하의 몹쓸 탐관오리가 아닌가!'


이때 무리들이 삼삼오오 모여들어 이 광경을 지켜보고 있었다.


무리들은 마음으로는 모녀를 돕고 싶었지만, 검을 든 사내들의 횡포를 두려워하여 감히 나서지 못했다.


사내가 웃음을 그치기도 전에 소녀가 무리들을 향해 말했다.


"여보세요. 그대들이 이들의 횡포를 똑똑히 보시지 않았나요? 누가 관아에 고소해주시겠어요?"


무리들은 모두 난처한 얼굴로 소녀를 바라볼 뿐 침묵으로 일관했다.


사내가 무리들을 향해 외쳤다.


"남의 일에 상관말고 어서 썩 꺼져라!"


사내가 위협적으로 허공에 검을 휘두르자 무리들은 혼비백산하여 모두 도망치기 시작했다.


"우리도 가세."


지부가 떠나지 않으려 하자 국모가 지부의 팔을 잡아끌었지만, 지부는 꼼짝도 하지 않았다.


지부는 떠나는 대신에 돌맹이를 들었다.


여차하면 던질 생각이었던 것이다.


소녀는 벌벌 떠는 어머니의 손을 잡은 채 오른손으로 봉을 꼭 잡고 있었다.


두 모녀만 남게 되자 사내는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다가갔다.


"감히 우리를 관아에 고소하겠다니, 무슨 죄로 고소한단 말이냐? 너희들이 우리를 모함하였느니, 그 댓가를 반드시 치루어야... 억!"


바로 그 순간, 사내가 미처 말을 끝내기도 전에 소녀가 번개처럼 봉을 휘둘러 사내의 머리를 가격해 쓰러뜨린 것이다.


이어 눈으로 보기 전에는 도저히 믿을 수 없는 광경이 펼쳐졌다.


"으악!"


"억!"


"윽!"


"아이쿠!"


소녀가 번개처럼 봉을 휘둘러 수십여 만주족 사내들의 머리를 가격해 눈 깜짝할 사이에 모두 쓰러뜨린 것이다.


소녀의 동작이 어찌나 빠른지 수십여 만주족 사내들은 검을 뽑을 새도 없었다.


소녀가 봉을 잡은 채 어머니의 손을 잡아끌며 외쳤다.


"어머니, 어서 가요!"


두 모녀는 짐수레를 내팽개친 채 도망치기 시작했다.


"아이고, 머리야......"


소녀가 번개처럼 휘두른 봉에 머리를 가격 당한 사내들은 머리가 깨어질 듯 아파 꼼짝도 할 수 없었다.


두 모녀는 서로의 손을 잡고 사력을 다해 뛰었고, 그야말로 순식간에 사내들의 시야에서 멀리 사라져갔다.


작가의말

왕총아 연재가 새해 첫날부터 시작했으니, 성원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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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4 서천덕의 속셈 19.02.13 220 0 11쪽
83 요지부와 마주치다 19.02.03 197 0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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