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망고바닐라의 서재입니다.

조선도깨비실록

무료웹소설 > 일반연재 > 무협, 판타지

망고바닐라
작품등록일 :
2022.09.10 16:20
최근연재일 :
2023.01.26 16:39
연재수 :
33 회
조회수 :
3,356
추천수 :
48
글자수 :
125,500

작성
22.09.11 21:23
조회
248
추천
1
글자
12쪽

2.

DUMMY

구어어어!-


도깨비는 고통스러운 듯 굉음을 내지르더니, 이내 자신을 구성하던 육신은 안개가 되어 사라지고 동그란 구슬만이 덩그러니 남겨져 있었다.


이 모든 일들을 눈앞에서 목격한 나는, 따라잡을 수 없는 전개에 얼어붙은 채 가만히 주저앉아 있었다. 뱃가죽이 없이 갈비뼈를 그대로 드러낸 곰이 나를 잡아먹는 듯싶더니 정체모를 사람이 순식간에 나타나 말끔하게 베어버렸다. 공격을 당한 곰은 도깨비처럼 안개로 변해 사라져버리고, 의미 불명의 동그란 구슬만이 튀어나와 내 발치 앞으로 데굴데굴 굴러와 있었다.


“괜찮은 게냐.”


그렇게 얼어붙어 있는 나에게, 정체불명의 사람은 손을 건네며 안부 인사를 건넸다.


잔뜩 긴장하여 굳어있던 목을 가까스로 들어 상대방의 모습을 쳐다본 나는, 그제야 천천히 상대방의 모습을 눈여겨보기 시작했다.


양반들이 쓸 법한 검은 갓에 흰 도포, 키는 5척보다 살짝 더 큰 정도였지만 새하얀 안색과 홍화꽃가루를 바른 듯 한 빨간 입술은 그가 여인이었음을 알 수 있게 해 줬다. 그녀가 뽑고 있는 검에는 이상한 글자들이 쓰여 있었고, 도포 뒤에는 큼지막한 한자 하나가 박혀 있었다.


“감, 감사합니다!”


나는 그녀가 높으신 분임을 알아차리곤, 곧바로 머리를 조아려 예를 표했다. 아니 그것보다는, 내 목숨을 구해준 은인이라는 생각에 저절로 무릎이 땅바닥에 닿아버렸다.


스르릉-


하지만 그녀는 별 관심이 없다는 듯 검을 다시 검 집에 집어넣곤, 손가락으로 내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알려주곤 이내 한 마디를 툭 내뱉었다.


“이 길로 쭉 가면 마을이니, 곧바로 걸어 나가도록 해라.”

“네, 구해주셔서 정말로 감사합니다!”


나는 거듭 감사인사를 전했지만, 그녀는 고개를 살짝 끄덕이곤 이내 시야에서 홀연히 사라져버렸다.


“와...”


나는 방금 있었던 꿈같은 일들과 그녀의 그림 같은 검술에 헤어 나오지 못하고 그 자리에서 몇 초간을 더 넋을 놓고 있었다.




***




“아가씨!”

“...!”


나는 대문 앞에서 팔짱을 낀 채 기다리고 있는 아가씨를 보곤 소리를 지르며 달려갔다. 아가씨는 늦은 나 때문에 꽤나 화가 난 모양인지 내 반대방향으로 고개를 홱 틀곤 툴툴거리기 시작했다.


“뭐야? 유시에는 온다고 해 놓고. 반시진이 더 지났지 않느냐!”

“죄송합니다, 아가씨. 사실 제가 숲 속에서 도깨비를 봤습니다.”

“뭐?”


갑작스러운 내 고백에 아가씨는 깜짝 놀라 되물었다.


“도깨비 말이냐? 진짜인 게냐?”


평소 도깨비에 관심이 많았던 아가씨는, 걱정 반 기대 반의 표정을 하고 있었다.


“네, 그렇습니다. 그래서 꼼짝없이 잡아먹히는 줄로만 알았건만, 웬 여인 한 분이 나타나셔서 저를 구해주셨습니다.”

“한 여인? 흐음...”


아가씨는 내 말을 듣고는 잠시 고민에 빠지더니, 이내


“혹시 옷에 어떤 글이 쓰여 있었느냐?”

“네, 그렇습니다. 제가 까막눈이라 어떤 글자인지는 모르겠지만, 커다란 한자 하나가 쓰여 있었습니다.”

“정말 대단하구나!”


아가씨는 내가 늦었던 일들은 까맣게 잊어버린 채, 내 이야기에 엄청난 흥미를 갖곤 열변을 토해내기 시작했다.


“네 말을 종합해보면, 그 여인은 아무래도 영멸청 소속 관원인 모양이다. 아버지께 듣기론 도깨비를 멸하는 관청인 영멸청이 한양에 있다고 했었다. 인간들을 못 살게 구는 도깨비들이 아무래도 실제로 존재하는 모양이로구나.”

“정말인 것입니까?”

“왜, 흥미라도 생긴 것이냐?”


또랑또랑해진 내 눈망울이 귀여운 듯 아가씨는 웃으며 되묻자 나는 얼른 고개를 끄덕이며 긍정했다.


“그렇습니다, 아가씨!! 영멸청... 저도 그 여인처럼 되고 싶습니다.”

“흠, 하지만 힘들 텐데...”

“... 어떤 것 때문에 그렇습니까?”


나는 살짝 풀이 죽은 채 아가씨에게 물었다.


“영멸청은 도깨비를 잡는다곤 하나, 무예는 물론 문예 역시 갈고 닦아야 한다고 들었다. 하지만 넌 까막눈이지 않느냐.”

“... 하지만, 전 꼭 이 영멸청에 들어가고 싶습니다.”


내 말에 아가씨는 조소를 띠더니, 이내


“그럼 내게 좋은 방안이 하나 있는데, 어쩌겠느냐?”

“...!! 무엇이든 하겠습니다, 아가씨!”


그렇게 나는, 아가씨가 사는 대문 앞에서 난생 처음으로 생긴 꿈에 대한 조언을 듣고 또 들었다.




***




“아버지, 저 하고 싶은 것이 생겼습니다.”

“?!”


식탁에 둘러앉아 밥을 먹던 도중, 갑작스러운 나의 선언에 아버지께서는 들고 있던 숟가락을 내려놓곤 입을 열었다.


“하고 싶은 것이라니. 그게 무엇이냐?”

“6군영 중 하나인, 영멸청에 들어가고 싶습니다.”

※ 실제 조선의 군사체제는, 6군영이 아닌 5군영으로 이루어져 있다.

“뭐?”

“사실 오늘 숲속에서 도깨비를 봤습니다. 엄청나게 거대한 곰의 모습을 한 도깨비 말입니다. 그 도깨비는 곰의 모습을 하고 있었지만 뱃가죽이 다 들어나 있어 몸속의 갈비뼈가 훤히 보일 정도로 기이한 모습을 띠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런 도깨비에 놀라 도망치던 도중에...”

“그거 큰일이었구나! 몸은 괜찮은 게냐?”


나는 서둘러 고개를 끄덕이곤 말을 이어나갔다.


“영멸청 관원으로 보이는 한 여인이 저를 구해줬습니다. 마치 화풍에 담고 싶을 정도로 아름다운 검술로 도깨비를 단번에 제압하는 모습에 저는 그만 넋을 잃고 말았습니다. 아버지, 저는 그 광경을 보고 결심했습니다. 그 여인처럼 되고 싶다고. 나도 저런 사람이 되고 싶다고.”

“...”

장황한 내 설명에 아버지께서는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그저 고개를 연신 끄덕이며 내 말을 경청해 주셨다. 갑작스러운 도깨비 이야기라니, 매사에 침착하신 아버지께서도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내 이야기를 끝까지 다 들으신 아버지께서는 잠시 고민에 빠지시더니, 이내


“영멸청이라... 확실히 그런 관청이 있다고 듣기는 했다만, 아비는 널 농부로 키울 생각이었것만.”

“저도 그리 하려고 했습니다. 아버지를 따라 농부가 되기로. 하지만, 이젠 하고 싶은 것이 생겨버렸습니다. 아버지, 전 정말로 영멸청에 들어가고 싶습니다!”


고개를 땅에 숙이며 적극적으로 드러내는 내 속마음에, 아버지께서는 깊은 고민에 빠지신 듯 턱을 손으로 연신 비비기만을 반복하셨다. 확실히 지금까지 내가 무엇인가를 하고 싶다고 떼를 쓴 적은 없었다. 그런 그 아들이, 갑자기 조선 관청 중 하나인 영멸청에 들어가고 싶다니. 아버지께서도 꽤나 당황하셨을 것이다.


“흠, 이를 어찌한담... 부인, 부인은 어떻게 생각하시오?”

“본래 사내대장부는 한 번 뱉은 말을 다시 주워 담을 수는 없는 법. 저는 아이의 뜻을 존중합니다만... 괜찮겠느냐?”


어머니께서는 나를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쳐다보셨다. 비단 밥벌이는 할 수 있겠느냐는 것보다는, 후회하지 않을 수 있겠냐고 물어보시는 것만 같았다.


꼴깍-


나는 침을 한 번 깊게 삼키곤, 무릎에 두 손을 올린 채 단호하게 말씀드렸다.


“네! 저는 꼭 영멸청에 들어가고 싶습니다.”


그러자 아버지와 어머니께서는 어쩔 수 없다는 듯 옅은 미소를 띠우시곤, 이내 말문을 열었다.


“그래, 부인의 뜻이 그렇다면 그렇게 해야지. 한 번 도전해 보거라.”

“허나 관청에 들어가려면 무예는 물론 문예 역시 겸비해야 하는 법. 까막눈인 네가 할 수 있겠느냐? 방안은 있고?”

“네, 그렇습니다. 사실은 아가씨께서 영멸청에 들어갈 수 있기 위해 교육을 받을 수 있는 영멸원에 대해 말씀을 해 주신다고 하셨습니다.”

“아가씨? 설마 이조판서댁 따님을 말하는 것이냐?”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아가씨께 제 포부를 말씀드리니, 흔쾌히 허락하셨습니다.”

“... 정말로 그 ‘영멸원’이라는 곳에 다닐 수 있겠느냐?”


어머니께서는 무엇이 그리도 걱정이 많으신지, 내 두 손을 붙잡곤 두 눈을 바라보며 진지하게 말씀하셨다.


“네, 꼭 다니고 싶습니다.”


나는 그런 걱정은 하지도 말라는 듯 또랑또랑해진 두 눈동자와 함께 결연한 의지를 표명했다.




***




“미안해.”

“괜찮다니까, 이렇게 서로 멀쩡하면 됐지.”


오늘 마짐 저잣거리에서 만난 석오는 잔뜩 풀이 죽어있었다. 아무래도 어제 있었던 일이 마음에 걸리는 모양이다. 나를 혼자 두고 줄행랑쳤으니, 창피하기도 하고 날 볼 면목이 없나보다.


물론 아무렇지도 않다고 말하면 그건 거짓말이다. 분명 서운한 감정도 들고, ‘의리도 없는 자식!’ 이라면서 한 대 쥐어박아 주고 싶기도 하지만,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지 않나. 그런 괴물이 눈앞으로 다가온다면 누구든지 도망칠 것이 불 보듯 뻔하다.


“그나저나, 네한테 할 말이 있어.”

“할 말?”

석오의 어깨를 토닥이며 말하자, 그는 의외라는 듯 숙였던 고개를 들며 되물었다.


“나 영멸청에 들어갈 거야.”

“영멸청?”

그게 뭐냐는 듯했다.


“사실 어제 우리가 봤던 도깨비 있잖아. 그 도깨비를 죽인 사람을 봤거든.”

“뭐? 죽였다고?”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응. 한 여인이었는데, 정말 황홀한 경험이었어. 그렇게 아름다운 검술은 본 적이 없었거든.”

“... 잠깐만.”


석오는 이야기 전개에 따라가지 못하겠다는 듯 이마를 부여잡으며 내 말을 끊었다.


“그러니까 네 말은, 우리를 죽일 듯이 덤벼들었던 도깨비를 한 여인이 잡았다는 소리지?”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영멸청‘이라는 건 뭔데?”

“아가씨한테 어제 이 이야기를 말해주니까, 아무래도 그 여인이 영멸청의 관원인 모양이더라고. 영멸청은 우리가 어제 만났던 도깨비들을 찾아 죽이는 관청이었던 거야. 나도 그 여인처럼 영멸청에 들어가서 멋있는 검술을 써보고 싶어.”

“...”


석오는 눈을 지긋이 감더니, 이내


“...그 여인한테 한 눈에 반했다는 소린가?”

“...”


나는 순간 얼굴이 화끈거려 즉시 답하지 못하고 우물쭈물 거렸다. 정곡을 찔린 것이다. 그림과도 같은 검술을 펼친 그 여인을 본 뒤로는 내 머릿속에 각인돼 버렸다. 밥을 먹든, 잠을 자든, 누구를 만나든... 어디서든 그 여인밖에 떠오르지 않는다.


“맞네. 어휴. 그러니까 그 여인을 다시 한 번 만나고 싶어서 영멸청에 가고 싶다는 거 아니야?”

“꼭 그런 것만은 아니야. 나도 그 사람처럼 도깨비를 멋진 검술로...”

“됐다, 임마. 근데 너 아가씨를 좋아하는 거 아니었냐?”

“야! 큰일 날 소리를! 아가씨는 감히 내가 좋아해야 될 상대가 아니잖아. 그리고 아가씨한테는 항상 고마운 마음밖에 없다고.”


정색하며 답하자, 석오는 귀찮다는 듯 고개를 대충 끄덕이며 말했다.


“알았다, 알았어. 하여튼 영멸청에 들어가겠다는 거지?”

“응, 그래서 영멸원 이라는 곳에 들어가 공부를 시작해보려고.”

“영멸원?”

“응, 영멸청에 들어가기 위한 학당같은 곳이야.”

“흐음...”


석오는 내 말을 듣고는 잠시 고민하더니, 이내


“그럼 나도 갈래.”

“뭐?”

뜬금없는 그의 선언에 나는 당황해하며 되물었다.


“그 영멸청에 말이야. 어제 널 두고 도망친 것도 두고두고 마음에 걸릴 테고, 딱히 하고 싶은 것도 없는데 그냥 널 따라가지 뭐.”

“... 정말이야?”


께름칙해하는 나를 보곤, 석오는 웃으며 말했다.


“물론. 아가씨한테 나도 좀 부탁한다고 전해줘.”

“알겠다마는, 정말 후회 안 하지?”

“그렇다니까, 임마.”


석오는 걱정스럽게 쳐다보는 나를 뒤로한 채, 나를 앞지르며 저잣거리를 유유히 걸어 나갔다.


작가의말

.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조선도깨비실록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4 4. 22.09.18 157 1 9쪽
3 3. 22.09.17 192 1 10쪽
» 2. 22.09.11 249 1 12쪽
1 1. 22.09.10 427 3 11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