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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정 님의 서재입니다.

56억 7천만년 후의 지구에서 기다릴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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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정
작품등록일 :
2020.05.16 23:06
최근연재일 :
2020.07.25 18:33
연재수 :
17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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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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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6
글자수 :
106,323

작성
20.06.06 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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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쪽

011. 식향(食香)

DUMMY

“니가....날...무시해?! 니가?!! 겨우 대리기사나 하는 새끼가?!! 감히 날 무시해??!!!”


양복에 넥타이를 대충 풀어 내린 남자가 주먹으로 30대 초반으로 보이는 남자의 얼굴을 때리고 있었다.

하지만 맞고 있는 남자는 어째선지 웃고 있다.

누군가 말리려 하다가도 그 둘의 기묘한 분위기에 압도되어 아무도 움직이지 못했다.

그나마 몇몇은 경찰에 전화를 하는 중이었다.

또 몇몇은 낄낄거리며 그 장면을 촬영 하고 있었다.

하지만 연비의 눈엔 보였다.

그 둘을 몸을 감싸고 있는 어두운 온(蘊)의 기운.

동영상에서 느낀 것과 같은 기운이었다.

단순한 시시비비로 싸우고 있는 게 아님을 느낀 연비는 향하던 목적지와 남자들을 번갈아 바라봤다.

잠시 갈등 했지만 결국 발걸음을 돌려 그들을 향해 뛰었다.

우선 두 남자에게 쓰인 저주의 온 만이라도 정제(瀞祭)시킬 작정이었다.

만약 그대로 둔다면 한 명은 반드시 죽을 것이다.


몽향(夢香).


뛰던 연비의 코끝에 갑자기 침향 냄새가 스친다.

어째선지 익숙한 냄새에 걸음을 멈추고 주변을 둘러보니 세상은 시간이 멈춘 듯 했다.

싸우던 사람들도 구경하던 사람들도 모두 미동도 없이 그 자리에 얼어붙은 듯 있다.

향냄새에 취해 꿈에 갇힌 세상.

상황을 눈치 챈 연비는 자리에 서 깊게 한 숨을 쉰 후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리고 등 뒤, 인파를 헤치고 걸어 나오는 건형과 눈이 마주치자마자 반가운 마음에 앞서 욕이 먼저 튀어나왔다.


“씨발 건달 백수 새끼가 어디서 뭘 하다 이제야...!!!”


하지만 건형은 손을 뻗어 연비의 머리를 달래듯 쓰다듬어, 연비는 입을 다물었다.

그리고 양복을 입은 남자의 곁에 다가가 한쪽 무릎을 꿇어앉으며 남자의 이마를 오른손으로 감싼다.


“옴 나베 사미사미 나사야...”


남자에게 걸린 온의 저주를 정제하기 위한 진언을 외우자 남자의 살기어린 눈이 감기고 몸이 뒤로 쓰러진다.

건형은 이번엔 왼손으로 쓰러지는 남자의 몸을 안아 바닥에 조심스럽게 눕혔다.

남자의 표정은 어느새 평안해 보여 좋은 꿈을 꾸는 것 같았다.

사람을 죽이겠다는 악심으로 주먹을 휘두르던 방금 전의 모습이 거짓말 같다.


“요우. 너도 좀 도와라.”


몇 번이나 연비라고 불러주길 청했지만 남자는 끈질기게도 도리천에서의 이름을 고집했다.

잔소리도 한 두 번이다.

게다가 어느 순간 이름에 익숙해진 연비는 한소리 하려던 입을 꾹 닫고 건형의 곁으로 다가갔다.

그리고 주먹으로 얻어맞아 이미 얼굴이 부어오르기 시작한 남자의 이마에 손바닥을 올리고 건형과 같은 진언을 외웠다.

연비의 진언이 끝나자 남자의 몸을 지배하고 있던 검은 기운이 새하얗게 정제 되어 연기처럼 피어올라 사라진다.


“이게 네 힘이야?”


연비는 피 묻은 손바닥을 바지에 대충 닦아내며 건형에게 물었다.

건형은 대답 대신 소리 없이 웃었다.

향신(香神)이었던 남자가 향을 이용 하는 것이 이상 할 일은 아니다.

하지만 스스로 드러내기 전까지 가진 힘의 능력은 알 수 없다.

물론 연비가 가진 능력도 건형은 정확히 알지 못한다.

팔부신의 능력은 알을 깨고 나온 새가 본능적으로 날개 짓을 하듯, 각자에게 당연하게 체득 될 뿐이다.

그럼에도 연비는 지금까지 자신의 능력은 써본 일이 없다.

각성한 팔부신은 반신반인(半神半人) 이다.

인간계에 존재하는 것만으로 삼라만상의 이치를 거스르는 일이다.

존재 자체만으로도 업이 쌓이는데, 감히 초월적인 능력까지 사용한다면 어떤 응보가 따를 지 알 수 없다.

응보가 악업으로 돌아온다면 인연으로 맺어진 누군가가 어떤 식으로는 상처 입게 될 것이다.

만약 눈앞에서 그런 일이 벌어진다면, 연비는 견딜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더는 힘을 숨긴 채 가만히 있을 수도 없었다.

이대로라면 연비로 인한 응보에 소중한 이가 상처 받기 전에 미친 세상이 먼저 그들을 상처 입힐 것이다.


“알고 여기로 온 건지 모르겠지만, 망자가 살아서 돌아다니고 있어.”


연비는 자신이 맡은 시체의 썩은 내와 함께 느낀 영가의 저주를 떠올리며 건형에게 말했다.

하지만 건형은 이미 알고 있다는 듯 무표정하게 주머니에서 무언가를 꺼내 연비에게 내밀었다.

어설픈 사람 형태의 헝겊인형이다.

연비는 영문도 모른 채 그것을 받아 들었다.

곡물로 채워져 바스락 거리는 촉감의 인형에선 약한 영기가 느껴졌다.

하지만 평범한 영가라기엔 너무 연약했다.

연비는 눈을 찡그리며 말했다.


“태아령?”


“그 때, 우리 처음 만난 날, 사건 장소에 있었어.”


“어째서 태아령이 그런 곳에...?!”


연유를 대충 알아 챈 연비의 입에서 작은 탄식이 흘러 나왔다.

연비의 일그러진 표정에 건형은 손에 있던 인형을 되 가져가며 말했다.


“곽희성, 그 범인, 여자 시체 태우려 했었지. 그것도 성냥으로...”


“성냥? 요즘에?”


“그 성냥, 보통 물건은 아니었을 거다. 그리고 만약 범인이 원하는 대로 됐다면, 죽은 여자의 영가는 무언가의 제대로 된 제물이 됐겠지.”


“...무엇을 위한 제물?”


“글쎄, 우리 오불(五佛)님한테 제대로 멕이려 했던 거 아닐까?”


건형의 말에 연비는 남산 너머 웅장히 선 오불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이전과 달리 오불의 광배는 희미해졌고 몸 곳곳에 상처가 있다.

지난 사월 초파일 쯤 발생 했던 5대 사찰 대웅전 전소 사건이 다시 떠오른다.

그 일로 인해 오불의 힘이 약해졌고 육도(六道)의 경계가 흐려졌다.

그리고 그 날은 연비가 각성 한 날이기도 하다.

하루아침에 뒤집어진 세상을 마주한 첫 날 연비는 하루 종일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창 밖의 상처 입은 오불만 바라봤었다.


“곽희성을 이용해 여자를 제물로 쓰려던 계획은 조금 틀어졌지만 그들이 원하는 건 대충 이룬 것 같네.”


피 터지게 싸우던 남자들을 바라보며 건형이 말했다.

연비는 바닥에 흐른 붉은 피를 보며 이를 악물었다.

저주가 담긴 동영상까지 계획의 일부라면 이번 일을 계획 한 이들은 보통이 아니다.

대부분의 평범한 이들은 타인이 타인을 상처 입히는 일에 본능적인 저항을 가진다.

하지만 몇몇 엽기적인 공감능력 부재의 소시오패스들은 그저 자극적인 상황과 그로 인한 관심에만 집중 할 뿐이다.

사람이 사람을 죽인다.

그리고 영화가 아닌 현실이 단지 자신과 상관없는 일이란 이유만으로 유희거리로 소비된다.

내 일이 아니라면 그만이고, 그래서 무관심이란 이름으로 타인을 상처 입힌다.

오불을 상처 입힌 자들은 인간의 약한 유대까지 노렸다.

살인부터 동영상까지 모두 계획의 일부였다.


“결국 제물이 되지 못한 여자의 영은 어쩌다 망자에 빙의해서 좀비처럼 걸어 다니고 있다?


“아마도?”


“...그 태아령을 찾아서?”


“그렇지 않을까?”


“누가, 이딴 짓을...”


마지막 연비의 지물에 건형은 더 이상의 대답 없이 걸음을 옮겼다.

연비가 내달리던 방향이다.

연비는 그런 건형의 뒤를 따랐다.

두 사람의 그림자가 인파 속으로 스며들었다.

곧 향냄새도 서서히 사라진다.

사람들은 곧 취했던 꿈에서 깨어 자신의 세계로 되돌아왔다.

기억나지 않는 꿈속에서 건형과 연비의 존재는 지워지고 세상은 다시 제자리다.

하지만 격렬하던 싸움은 이미 끝나 있었고, 유혈이 낭자 했던 자리엔 두 남자가 잠에 빠진 듯 쓰러져 있을 뿐이다.


“...아, 뭐야? 벌써 끝났어?”


싸움이 끝났음을 확인 한 몇몇 무리는 김빠졌다는 듯 촬영 중이던 핸드폰을 끄고 가던 길을 걸었다.

곧 몇몇의 사람들이 그들에게 다가가 누군가는 흘리는 피를 닦아 주고 누군가는 쓰러진 남자의 상태를 살폈다.

다시 일상은 아무 일도 없다는 듯 흐른다.

그리고 그 중 누구도 꿈에서 만났던 신의 얼굴을 기억하지 못했다.




사건 현장은 근처는 불금의 여름 분위기와 달리 서늘하고 음침했다.

살인 사건이 일어난 지 얼마 안 된 탓이었다.

골목 곳곳의 가게 종업원들은 파리만 날리는 상황에 달리 할 일도 없었다.

그저 사람들의 기억 속에 그 끔찍한 사건이 얼른 잊히길 바라며 무료한 시간을 억지로 버틸 뿐이다.

빨간 앞치마를 한 족발집 여종업원은 하릴 없이 TV만 돌리다 뉴스 속보에 시선을 고정했다.

할리우드 유명배우를 태운 비행기가 최신 개봉 한 영화 홍보를 위해 일본으로 향하던 중 원인불명의 사고로 남해 근처에 추락했다는 소식이다.

나이든 중년 여성은 아는 이 하나 없는 속보에 금세 흥미를 잃고 다시 리모컨을 잡았다.

그리고 드라마 전문 채널에서 이미 몇 번이나 방송 한 불륜 막장 드라마의 최종화가 나와서야 채널을 고정했다.

하지만 그마저도 별 유흥거리는 되지 못했다.

여종업원은 곧 지루해져 슬그머니 가게 문 앞으로 향했다.

사람이 가장 많이 몰릴 시간임에도 전체 10여 개의 테이블 중 겨우 두 테이블만 채워 오늘 장사도 공쳤다 생각 했다.

그래도 혹시 몰라 문 앞에서 호객이라도 하기 위해 가게 문 앞에 몸을 기대고 섰다.

손에 한 움큼 쥔 땅콩을 입에 두어 알 넣고 씹으며 한산한 거리를 두리번거린다.

그 때 여자의 눈에 기묘한 걸음걸이의 남자가 들어왔다.


“...저 아저씨 뭐야?”


취객과는 또 다른 느낌으로 흐느적거리며 걷는 남자는 누군가의 시선을 끌기 충분했다.

여자는 본능적으로 오싹함을 느끼면서 경계의 눈으로 남자를 눈으로 좆았다.

그러다 시선을 느낀 남자의 목이 여자를 향한다.

천천히 목이 돈다.

하지만 인체 구조 상 불가능한 각도를 넘은 목은 순간 180도 가까이 돌아 여자와 눈이 마주쳤다.

여자는 그 기이한 모습에 기겁을 하며 소리를 질렀다.


“엄마야!!!!!!!!!!”


종업원이 제 자리에 주저앉으며 새된 비명을 낸다.

홀 안에 있던 대여섯 명의 사람들의 시선이 여자에게로 향했다.

주방에 있던 남자 사장이 뛰어 나와 여자를 일으켜 보려 하지만 여자는 발작하듯 몸을 떨더니 눈을 뒤집으며 입에 거품을 물었다.

놀란 카운터의 여사장이 서둘러 핸드폰을 들어 떨리는 손으로 119에 전화를 걸었다.

하지만 상황을 묻는 상담원에 영문을 알 수 없는 여사장은 그저 자기 가게 이름과 주소만 소리 높여 외칠 뿐이었다.


작가의말

1. 식향 : 팔부신 중 하나인 건달바의 또다른 이름 입니다. 건달바는 술 · 고기를 먹지 않고 향(香)만 먹는다고 합니다. 하지만 건달바의 현신은 건형은 육식주의자 입니다.


2.  정제 : 쉽게 말해 굿 입니다. 실제로 있는 말은 아닙니다. 작품에선 저주를 풀거나 빙의 한 사람에게서 영을 떼어 낼 때 사용 하는 주술적 행위로 정의 합니다.


3. 육도 : 윤회 할때 업에 따라 태어나는 세계를 6곳으로 나눈 곳입니다. 지옥, 축생, 아귀, 인간, 아수라, 천상 으로 나뉩니다.


4. 온 :  5온은 불교에서 생멸 · 변화하는 모든 것, 즉 모든 유위법(有爲法)을 구성하고 있다고 보는 색(色) · 수(受) · 상(想) · 행(行) · 식(識)의 다섯 요소 입니다. 작품에서 온은 여러가지 형태로 나올 예정 입니다. 이번 편에선 행에 관한 온에 저주 속성을 더해서 사람들의 무의식에 있는 폭력성을 드러낸다는 설정입니다.


5. 5불 : 대일여래, 아촉불, 보생불, 아미타불, 불공성취불 인 다섯 부처를 뜻합니다. 작품에선 삼라만상의 이치에 따라 육도를 경계짓고 흐름을 관장한다는 설정입니다. 작품 속 다섯 부처는 등을 맞대고 둥글게 서서 북극성 아래 서 있으며 팔부신은 어디서든 오불을 볼 수 있습니다. 크기는 대략 에베레스트 정도 된다는 설정 입니다만, 정확한 크기는 아무도 모릅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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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 ' 2

  • 작성자
    Lv.35 쏙소리
    작성일
    20.06.06 16:06
    No. 1

    기왕이면 더 많은 분들이 오셔서 봐주길 바랍니다
    즐겁게 잘 읽고 갑니다. 추천꽝!
    주말 재충전 잘하셔서 건필하셔요.~~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4 권정
    작성일
    20.06.06 19:24
    No. 2

    댓글 감사합니다~ 쏙소리님도 주말 잘 보내시고 건필 하세요~!!

    찬성: 0 | 반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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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11. 식향(食香) +2 20.06.06 17 3 10쪽
11 010. 회식 20.05.31 26 2 13쪽
10 009. 추궁 +2 20.05.30 20 1 12쪽
9 008. 연비 +2 20.05.27 19 2 10쪽
8 007. 대면 +2 20.05.24 18 2 19쪽
7 006. 시험 +4 20.05.17 30 3 21쪽
6 005. 의심 +1 20.05.16 29 2 15쪽
5 004. 형제 +2 20.05.16 35 2 13쪽
4 003. 만남 20.05.16 32 4 1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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