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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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어버렸다.
집에까지 가져온 기억은 있었다.
인석은 지갑을 찾기 위해 소파를 뒤집어 보거나 책상을 정리했다.
지갑은 사람에게 있어서 필수다.
사회적으로 약속한 종이인 현금이 들어가있고 데이터로 되어있는 숫자를 사용할 수 있는 카드가 있었다.
나를 증명해주는 주민등록증, 운전면허증, 명함 등등, 필수 정보를 가지고 있는 지갑은 중요한 물건이다.
그런 지갑을 잃어버리다니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인석은 다시 한번 천천히 어제의 기억을 떠올려보았다.
집에 오자마자 옷에 있는 지갑을 식탁 위에 던져놓고는 옷을 갈아입었다.
늦은 저녁 식사를 위해 음식을 꺼내 요리했다.
저녁 식사 때 지갑이 있었던가?
“아! 거기다.”
인석은 집안을 둘러보았다.
원래 오늘 외출할 때 입으려던 옷을 걸쳐둔 곳으로 갔다.
역시, 지갑은 안주머니에 있었다.
음식물이 묻을까 봐 지갑을 치워두었던 일을 까먹었었다.
인석은 안도의 한숨을 쉬고 지갑을 챙겼다.
지갑을 안주머니에 넣는 순간, 중요한 지갑은 다시 기억의 영역에서 습관으로 넘어갔다.
사람은 망각하는 능력을 지녔다.
선별적으로 기억하고, 기억해둔 정보도 무의식으로 보내버리거나 필요 없으면, 삭제해버리기도 한다.
삭제는 누가 정하는 걸까.
망각은 축복받은 능력이라고도 하는데 그렇기만 할까.
차를 몰아가던 인석은 스마트폰을 들었지만, 곧 조수석으로 던져버렸다.
예전에는 기억하지 않으면 이상했던 번호가 이젠 기억나지 않는다.
기억하지 않기를 바라진 않았다.
벌써 5년인가.
세월은 이별의 아픔을 무덤덤하게 만들었고, 삶을 살게 했다.
멋모르던 풋내기였고, 어떻게 돈을 벌어야 할지 막막하기만 했던 그는 어느덧, 회사의 대리가 되어 돈을 벌고 있었다.
운전대에 얹은 손가락을 두들겼다.
신호등이 바뀌길 기다리는 차들을 보며 사람들이 어디를 가고자 할까 생각했다.
이들도 어떤 일, 놀이, 만남을 위해 움직이는 사람들이다.
이들은 어떻게 자신의 기억을 쌓아갈까.
각자의 인생은 다양해 보이지만, 이렇게 줄지어 있는 차들을 볼 때면 그렇게 다를까 생각이 든다.
주말이 되면, 무언가 추억을 쌓기 위해 뭐라도 하려 하지 않을까.
추억은 좋은 기억으로 남는다며 말이다.
모르겠다.
바뀐 신호에 따라 차를 다시 출발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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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 쯤이야?”
“어, 오빠, 거의 다 왔어.”
그녀는 전화를 끊고 10분이 지나서 카페에 왔다.
인석은 자신이 마시는 아메리카노와 함께, 그녀를 위한 모카라떼를 시켜놓고 있었다.
그녀는 그저께 인석과 전화를 할 때 모카라떼를 먹고 싶다고 했었다.
그녀는 자신의 자리에 놓여있는 모카라떼를 보자 화색이 돌았다.
“와 모카라떼네. 마시고 싶었는데 어떻게 알았대?”
“그러게. 이걸 시키고 싶었더라고.”
그녀는 커피를 마시며 자신의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그녀가 해주는 이야기를 들으며, 어느 정도는 흘려듣는다.
일상에 대한 래퍼토리다.
인석은 처음에는 그녀의 모든 이야기를 경청했고, 기억했다.
그러다 어느 순간부터 그녀가 하는 이야기가 비슷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 이후로부터 그녀가 일상 이야기를 할 때면 흘려들어도 이야기의 흐름을 따라가고 맞장구를 쳐줄 수 있게 되었다.
“오빠, 듣고 있어?”
“응, 지혜 씨와 말싸움하느라 힘들지? 스트레스 너무 받는 거 아니야?”
“그렇다니까. 하지만 상사니까. 그래도 사과는 먼저 해주더라고,”
인석은 커피 한 잔을 마셨다.
그녀를 본다.
그녀의 모습이다.
눈을 감는다.
그녀를 떠올린다.
그녀는 내가 알던 그녀와 조금 다르다.
이젠, 기억할 수 없게 흐릿해졌다.
바라지 않았는데도, 돌아올 수 없는 과거로 흘러갔나 보다.
지갑을 어디 둔 지 잊어버리는 것과는 다르지만, 잊어버린다는 본질은 같겠지.
눈을 뜬다.
그녀가 인석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다.
인석은 그녀를 보고 웃는다.
인석이 느끼기엔 그녀는 인석을 사랑하고 있다.
인석은 사랑을 기억해내고 싶으며, 그녀를 사랑할 수 있기를 바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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