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선무혁의 서재

템먹으로 레벨업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퓨전

선무혁
작품등록일 :
2020.09.01 16:58
최근연재일 :
2020.09.09 21:05
연재수 :
9 회
조회수 :
742
추천수 :
28
글자수 :
52,851

작성
20.09.03 20:00
조회
77
추천
3
글자
14쪽

3화

DUMMY

나는 바닥에 대자로 누운 채, 호밀빵의 진한 여운을 느끼고 있었다.


“아아, 맛있었다.”


그렇게 누워있는 나의 눈에 평범한 세상과 별다를 것 없는 하늘이 보였다.


“그러니까, 여기가 던전이라고?”


내가 던전에 들어와 있다는 사실이 전혀 실감 나지 않는다.

하늘에 뭉게뭉게 떠 있는 구름을 보고 있자니, 그저 저 구름을 닮은 호밀빵이 자꾸 생각날 뿐이다.

아니, 사실은 할머니가 끓여주시는 라면 생각이 더욱 간절하다.

보글보글 매콤매콤 맛있는 라면 다섯 봉.


“씨발! 내가 지금 여기서 뭘 하고 있는 거지?”


나는 불현듯 굳은 얼굴로 자리에서 일어나, 검투사를 향해 성난 걸음을 옮겼다.

아, 그렇다고 해서 저분에게 성을 내겠다는 건 아니고, 그저 내 몸에 주렁주렁 달린 쇠사슬 때문에 성이 난 것처럼 보이는 것뿐이다.


촤라라락― 쿠구구궁.

촤라라락― 쿠구구궁.

촤라라락― 쿠구구궁.


내가 한걸음 씩 옮길 때마다, 쇠사슬과 추가 바닥에 끌리며 시끄러운 소음을 자아냈다. 마치 사냥꾼의 덫에 걸린 성난 멧돼지가 걷는 모양새.

······그런데, 이거 왜 안 풀어주는 거야?

아무튼, 그 시끄러운 소리에 모두의 시선이 내 쪽으로 향한 건 덤이었다.


“저기요, 교관님?”


나를 보며 흠칫 물러서던(?) 검투사가 곧 자세를 고쳐잡고 입을 열었다.


“······아, 자네로군. 난 또 오우거가 출현한 줄 알······ 크흠, 휴식 시간이 종료되기도 전에 무슨 일이지? 이제야 제대로 된 훈련에 참여하고 싶다는 생각이 든 건가?”


―띠링!


검투사의 말과 동시에 들리는 시스템 효과음.


―축하합니다! <돌발 퀘스트: 교관은 돼지새끼에게 실망했다>의 완료 보상으로, 기초 훈련 과정에 재참여할 기회가 주어졌······.


다시 한번 느끼는 거지만, 어떤 새끼가 지었는지는 몰라도 퀘스트 이름 한번 참 뭣 같다.

그런데······ 제대로 된 훈련? 난 그런 거 할 생각 없는데?


―?


“훈련? 당연히 받아야죠. 하지만 그 전에 한 가지.”

“······?”

“만약, 제가 훈련을 끝까지 따라가지 못하면 어떻게 됩니까?”

“끝까지 따라오지 못하면? 흠······ 지금까지 수많은 이계의 전사들이 이곳을 다녀갔지만, 그런 일은 단 한 번도 일어나지 않았다. 하지만, 만약에라도 그런 인원이 생기게 된다면······ 그는 그야말로 실패한 낙오자 인생이 되는 거겠지.”


실패한 낙오자 인생.

좋아, 내가 원하던 단어가 나왔다.

그게 무슨 말이냐고?

말 그대로 나는 지금부터, ‘실패한 낙오자 인생’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헌터들 중엔, ‘낙오자들’이라고 불리는 집단이 존재한다.

그들은 분명 선택받은 각성자이지만, 동시에 선택받지 못하는 자들이기도 하다.

그러한 불명예스러운 명칭으로 불리우는 이유는 바로, 그들이 더 이상 던전에 입장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붙은 별명이 낙오자.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다.

전투 수행이 불가능할 정도의 부상을 입었다든지, 혹은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와 같은 정신적인 충격을 받았다든가. 아니면 헌터로서의 실력 부재까지.

이유야 뭐든 간에 그들은 어떠한 이유로 인해 더 이상 시스템의 부름을 받지 못한다.


―시나리오 기여도가 충족되지 않는 플레이어입니다. 본 던전에 대한 입장이 제한됩니다.


사회에서 누구도 범접할 수 없던 최상류층으로 대우받던 이들이 한순간에 추락하기 시작한다. 그리고는 이내, 어디에도 속하지 못하는 낙오자가 된다.

비록 헌터로서 가지고 있던 사회적 위치나 재물은 어느 정도 남아있겠지만, 딱 거기까지다.

그들의 화려한 영광은 거기서 끝난다.

이른 바, ‘잉여 헌터’가 되는 것이다.

듣기로는, 잉여 헌터가 된 이들 중에는 자신의 신세를 비관한 나머지 폐인이 되거나 범죄자가 되는 이들도 있다고 한다. 아주 낮은 비율이지만 심지어는 자살을 하는 이들까지 존재한다.

이런 걸 왜 이렇게 잘 아냐고? TV를 틀면 뉴스의 반이 헌터나 던전에 관한 소식들 뿐이다. 이 정도는 관심을 갖지 않아도 충분히 알 수 있는 기본 상식이라는 이야기지.

아 물론, 내가 폐인이나 범죄자가 되겠다는 말을 하는 것이 아니다.

나는 그저 낙오자, ‘잉여 헌터’가 되고 싶은 것 뿐이다.

만약 내가 튜토리얼 던전의 클리어 조건인 [검술] 특성을 개화하지 못한다면?

그 답은 아까 검투사에게 확인했다.


‘낙오하게 되겠지.’


그 말은 즉, 나는 더 이상 ‘자랑스러운 이계의 선택받은 전사’가 될 수 없다는 말이 된다.


―······.


방금 누군가가 날 아주 한심한 표정으로 바라본 것 같은 느낌이 드는데······.

뭐, 나는 원래 한심한 놈이니까 상관없다.

아니, 한심한 게 아니라 정상이지.

시발, 헌터는 아무나 하는 건가?

시스템이 필요할 때마다 던전에 불려 나가서는, 그때마다 목숨을 걸고 괴물들과 싸워야 한다.

던전에서 나올 때까지 밥이나 제대로 나오겠는가?

물론 내가 밥 때문에 이러는 게 아니다.

나는 그저 평범한(?) 사람이다. 헌터 따위 하고 싶으면 늬들이나 하라고! 나는 집에서 할머니가 끓여 주시는 라면이나 후루룩하면서 TV로 구경이나 할테니까!

정신병 걸린 돼지 새끼가 헌터는 무슨.


아, 흥분한 나머지 너무 지나친 자기 비하를 한 것 같군.

아무튼, 지금 잠깐은 내 몸이 더 힘들더라도 장기적으로 보았을 땐 이것이 최선이다.

남들이 모두 검술 숙련도를 올리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을 때, 나는 경보나 하면서 호밀빵이나 뜯어 먹어야겠다.

그럼 튜토리얼 던전이 끝날 때 즈음엔, 아주 훌륭한 잉여 헌터가 되어 있겠지.

즉, 나는 현재 일부러 완수 조건에 미달한 채로 튜토리얼 던전을 졸업하려는 것이다.


“낙오자라. 그렇다는 건······ 훈련 과정을 제대로 소화하지 못할 경우, 말씀하셨던 ‘자랑스러운 이계의 선택받은 용사’가 될 수 없다는 거군요.”

“‘자랑스러운’이라는 수사를 붙인 기억은 없지만······ 뭐, 그렇다고도 볼 수 있겠지. 그런데, 그런 건 대체 왜 물어보는 것이냐?”


나의 질문에 대답하던 검투사가 돌연 표정을 굳히고는 말을 이었다.

처음 보았을 때 마주했던 험상궂은 표정이다.


“네놈 설마, 어떻게든 훈련에 빠져보겠다는······ 그런 썩어빠진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니겠지?”


나약하고 썩은 정신상태를 가진 실패한 낙오자.

지금 검투사는 딱 그런 사람을 바라보는 눈을 하고 있었다.

······무식하게 생겨가지고는 의외로 날카로운 아저씨네. 뭐, 비슷하지만 틀렸다. 엄연히 말해서 나는 지금 훈련을 피하려는 것이 아니니까.


나는 한껏 억울한 표정을 지어 보이며 그를 향해 입을 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아까부터 사람한테 나약하다니, 썩어빠졌다니······ 사실이기는 하지만 면전에 대고 그런 말을 하면 아무리 나라고 해도 열 받을 수밖에 없잖아?


“아닙니다! 저는 그저 다만······!”

“다만?”

“아직 부족하다는 말을 하고 싶었던 것뿐 입니다!!”

“부족······하다?”

“아까 교관님께서 제게 해주신 말씀을 듣고 지금까지의 인생을 되돌아보았습니다. 그리고 정말 많은 것을 느낄 수 있었죠. 저는······ 그동안 썩어빠진 정신을 가지고 살아온 썩어빠진 한심함과 썩어빠진 나약함의 결정체였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입니다!!”


······.


“그러한 사실을 깨닫게 된 건 모두 교관님 덕분입니다.”

“······아, 그, 그래? 그, 그 정도로 반성했다니. 그만하면 됐······.”

“그러니······ 저를 더 달리게 해주십시오!! 교관님의 말대로 저의 썩어빠진 정신을 모두 도려내고 싶습니다!!”

“······.”


나의 말을 들은 교관은 잠시 무언가를 생각하더니, 심각한 표정을 한 채 나를 구석으로 끌고 갔다.

······왜, 왜 구석으로 끌고 가는 건데?

심각한 표정을 짓고 있던 교관이 별안간 난처한 얼굴로 머리를 긁적이며 말을 이었다.

그의 입에서 나온 말은 나의 입장에선 전혀 뜻밖의 내용이었다.


“저······ 그런데 말이지.”

“예, 말씀하십시오, 교관님!”

“그런 무거운 걸 칭칭 감은 채로 또 다시 달리겠다니, 그건 너무······ 힘들지 않겠나?”

“······예?”

“우리도 정해진 훈련 커리큘럼이란 게 있으니까 말이지.”

“······.”


이러면 우리도 곤란해, 곤란하다고. 한차례 중얼거린 검투사가 다시 말을 이었다.


“그, 그렇게까지 힘들게 훈련을 받을 필요는 없다는 말이야. 반성한 건 충분히 알았으니까, 이제 저기 가서 남들처럼 편하게 목검이나 휘두르는 게 어떤가?”


갑자기 이 아저씨가 왜 이래?

왜 갑자기 험상궂은 검투사에서 동네 만화방에서나 볼 수 있는 삼촌같은 분위기가 된 건데?

그럼, 스파르타를 외치며 검과 방패를 부딪힐 것 같던 중세 검투사는 그동안 컨셉이었던 건가?

내가 얼빠진 얼굴로 검투사를 바라보자, 그가 난처한 얼굴로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그래, 솔직히 말해서 미안하게 됐다. 갑작스럽게 아침부터 낯선 세계에 끌려왔으면, 그런 헛소리를 할 수도 있는 건데. 사실 훈련장을 뛰라고 한 건 다른 인원들을 편하게 통제하기 위한 본보기였을 뿐이지······ 설마하니 그 무거운 걸 메고 열 바퀴를 다 돌 줄은······.”

“······?”

“그리고 어차피, 너희 이계의 전사들은 여기서 대충 검술 숙련도만 올리면 땡인 거잖아? 그러니까 굳이 그렇게 힘들게 훈련장을 뛸 필요는 없어. 짜여진 커리큘럼이 바뀌면 우리도 조금 곤란하다고······.”

“······.”

“솔직히 호밀빵도 엄청 맛없잖아? 겨우 그런 걸 먹고 어떻게 이 넓은 훈련장을 열 바퀴씩이나 뛰어? 나는 그거 나눠줄 때마다 너희들한테 정말 미안하다고. 아, 지금 내가 이런 말 한 거······ 다른 이계의 전사들한테는 절대 비밀이다. 특히 저기 있는 여자 검투사 귀에는 절대로 들어가면 안 돼!”


나는 격하게 달라진 검투사의 온도 차이에 적잖이 당황했다.

이런 건······ 내가 원하는 방향이 아닌데?


“우리 그냥 서로 편하게 가자, 응?”


편하게 가자고? 지금 내가 편하게 가고 싶어서 이러고 있는 건데.


“아니요!!”

“아이, 깜짝이야!”

“저는······ 저는 정말로 진심입니다! 나약한 제 자신을 도려내기 전엔 절대로 검을 쥘 생각이 없단 말입니다!!”


나는 그냥 경보나 하면서 호밀빵이나 얻어먹다 집에 돌아가야 한다고!!!


“······!!!”

“그것이 어떤 이유였든 상관없습니다. 교관님께서는 제 자신을 돌아보게 해주셨습니다. 저는 그저, 다시 한번 달리고 싶을 뿐입니다!”

“······!!!!!”


나의 말을 들은 검투사가 다시 한번 뒷걸음질 쳤다.

이번에는 나를 오우거로 착각한 것이 아니다. 나의 순수한 열의(?)에 진심으로 감탄하여 놀란 것이다!

얼이 빠진 얼굴로 잠시 생각에 빠져있던 검투사가 곧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의 표정은 어느새 진중하고 무거운 예전의 검투사로 돌아와 있었다.


“허, 그래······ 제군의 말이 맞다. 나약한 생각에 빠져있던 것은 어쩌면 나였을지도. 그래······ 굳이 짜여진대로만 훈련을 진행하라는 법은 없지! 그래 맞아······ 긴 세월 동안 잊고 있었던가. 나는······ 나는 왕국의 ‘자랑스러운 로얄 나이트’였던 것을!”


입을 여는 그의 눈빛에서는 이전까지는 볼 수 없었던 순수한 열의가 불타고 있었다.

근데 너무 불타고 있었다.


“미안하다! 내 지금까지 제군의 의지를 전혀 알아보지 못했다! 하긴, 그 무거운 추를 두르고 열 바퀴를 완주해내는 이는 제군이 처음이기는 했지.”


네? 처음······이요?


“그, 그렇습니까?”


각성 보정을 받은 덕분에 생각보다 달릴 만하던데?


“그런데······ 정말로 할 수 있겠나?”

“예?”

“나는 방금 그대의 진심과 의지를 확인했다. 그리고 나는 그것을 진심으로 대하기로 했지. 그렇다면 이제부터의 훈련 또한 진심 훈련이다! 내 이번에는 특별히 제군의 의지를 반영하여 몸에 두른 쇠사슬 추를 하나 더 늘릴 생각이다! 그래, 열 바퀴에 하나씩 쇠사슬 추를 추가한다면······ 보다 효율적이고, 혹독한 훈련이 되겠지.”


······응?


“왜······ 그래야 하는데요?”

“그것은, 그것이 바로 훈련이기 때문이다! 설마, 자신이 없어진 것은 아니겠지?! 와하하하하!”


음······ 이게 아닌데. 뭔가가······ 뭔가가 크게 잘못 돼가고 있어.

나는 나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안면근육이 파르르 떨리는 것을 느끼며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럼······ 호밀빵도 하나 더 주십니까?”


나의 질문에 검투사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나의 훈련에만 잘 따라준다면, 어쩌면 더욱 좋은 것을 받을 수도 있겠지.”


‘호밀빵보다 더욱 좋은 거? 설마······ 라면?’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각성한(?) 검투사가 다시 말을 이었다.


“미리 말해두도록 하지. 지금부터의 훈련은 죽고 싶을 정도로 힘든 과정이 될 것이다. 내 현역 시절에 자주 돌리던(?) 왕국군 정규 훈련 매뉴얼에 따라, 아주 철저하게 굴려주지!”

“아, 아니 그러니까 갑자기 왜 이야기가 이렇게 되는······?”


뭐라 말할 새도 없이, 곧 나의 머릿속에서는 시스템의 목소리가 쉴 새 없이 울려대기 시작했다.


―띠링! 플레이어의 히든 액션! <던전: 허수아비 수련장>이 당신의 의지에 반응합니다!

―당신의 순수한 의지와 마주한 <던전: 허수아비 수련장>의 네임드 NPC, [왕국의 잊혀진 퇴역 기사, 막시무스 혼]은 시공의 틈에 빠진 후 잊고 살던 자신의 순수한 열의를 되찾기 시작했습니다! 이제 그는 자신의 역할을 다하기 위해 모든 진심을 다 할 것입니다!

―<던전: 허수아비 수련장>의 난이도가 플레이어 한정으로 상승.

―<던전: 허수아비 수련장>이 <던전: 지옥의 허수아비 수련장>으로 업그레이드되었습니다.

―히든 액션으로 인한 특전이 발생합니다! 당신은 숨겨져 있던 보상을 얻게 될지도 모릅니다!


숨겨져 있던 보상이라니······!?

그거······ 먹는 건가?


―플레이어 전용 인벤토리, ‘탐식의 위장’이 특전 보상을 보며 입맛을 다십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템먹으로 레벨업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9 8화 20.09.09 66 3 14쪽
8 7화 +1 20.09.08 63 3 13쪽
7 6화 20.09.06 83 6 12쪽
6 5화 20.09.05 63 2 16쪽
5 4화 20.09.04 77 2 14쪽
» 3화 20.09.03 78 3 14쪽
3 2화 20.09.02 85 3 16쪽
2 1화 20.09.01 95 3 14쪽
1 프롤로그 20.09.01 133 3 4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