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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피쉬의 바다

미움받을 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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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igFish
작품등록일 :
2020.05.11 17:01
최근연재일 :
2021.08.02 16:48
연재수 :
62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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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055
추천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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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354,968

작성
20.07.01 1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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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12. 숨 (1)

DUMMY

“에츄!”


엘이 재채기를 했다. 그녀는 여전히 간지러운 코를 문지르며 인상을 찌푸렸다.


“이것 때문이었구먼.”


어제 밤에 맡은 짠 내는 잘못 맡은 게 아니었나 보다. 소금기를 머금은 바람이 그녀의 코를 자꾸 간질였다. 옆에서는 병사들이 지친 표정으로 입을 벌렸다.


그들은 지금, 바다를 앞에 두고 있었다.






“여기는 도대체 어떻게 되먹었길래 몇십 킬로미터마다 지형이 바뀌어?!”


페이지가 씩씩거렸다. 안 그래도 예측 불가의 지형 때문에 얼마 전에도 엘한테 망신을 당했는데, 여기서는 이전까지 해온 환경 연구가 모두 도루묵이 되어버렸다.


아이몬 역시 좀 당황한 듯싶었으나 서둘러 병사들에게 다른 경로를 찾도록 하였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돌아온 병사들은 고개를 저었다.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무조건 이 바다를 건너야 했다.


“배나, 잠수함 같은 거는···”

“여기까지 그걸 어떻게 들여와요.”


엘의 물음에 페이지가 투덜거렸다. 레아가 제안했다.


“직접 만드는 건?”

“여기에는 나무도 없다. 돌로 만들 수도 없지 않나.”


짚 인형을 한참 날려 보내던 한울도 고개를 저었다.


“그냥 지나가는 것도 아니에요. 저 안으로 들어가야 해요.”

“무슨 소리야?”

“하늘로 한 방향으로 계속 갔는데, 아무것도 안 나와요. 뭐가 보이지도 않고요.”

“길이 바닷속에 있다는 건가요?”


의민이 물었다. 한울이 고개를 끄덕였다. 페이지는 난감한 얼굴을 했다.


“미쳤네.”

“그럼 뭐가 됐든 일단 저기로 나가긴 해야 한다는 거구먼.”


루칸이 까마득하게 펼쳐져 있는 바다를 보며 혀를 찼다.


“얼마나 멀리에 있는지도 모르는데 무작정 맨몸으로 나갈 수는 없다.”


아이몬이 고개를 저었다. 옆에 있던 레아가 슬쩍, 눈썹을 들어 보였다.


“아니, 될 거 같은데.”

“레아, 아무리 너라도 바다를 수영으로 건너기엔···”

“그거 말고.”


무슨 소리냐는 듯 그녀에게 시선이 몰렸다. 레아는 눈짓으로 한 명을 가리켰다.


“저요?”


사무엘이 당황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레아가 고개를 까닥했다.


“배, 만들 수 있겠나?”

“워우. 진짜?”

“그거까지 되면 너 진짜 인정.”


엘과 루칸이 시시덕거렸다.

사무엘은 우물쭈물하다가 의민을 쳐다봤다. 의민은 곤혹스러운 듯 목소리를 높였다.


“네···?”

“부탁 좀 해주실래요?”

“배를 만들어달라고요···?”

“네.”


의민은 정말이지 이 시스템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생전 누구한테 부탁할 일도 없었는데, 자신의 부탁, 아니 사실상 명령으로 발현되는 능력이라니.

엘과 루칸은 의민의 표정을 보며 즐거워했다. 맨날 보살 같은 얼굴만 하고 있으니 저런 표정은 정말 희귀했다.

의민은 한숨을 푹 쉬고 말했다.


“배···좀··· 만들어주시겠어요···?”






병사들이 차례로 승선하기 시작했다. 배는 아직 뭍에 올려놓은 상태였다.

사무엘이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배 곳곳을 마저 섬세하게 만지기 시작했다.


“조선 관련한 지식도 없는데 저런 게 되는 거야?”


엘이 한울에게 속닥거리면서 물었다.


“몰라. 언제는 이게 그렇게 합리적이었냐.”


한울이 시큰둥하게 대답했다.




굉장히 멋있는, 어찌 보면 환상적으로 보이는 광경이긴 했다.

어마어마한 양의 용암과 불길이 사무엘 주위를 맴돌았다. 불길은 마치 애완동물이라도 되는 양 사무엘에게 애교를 피웠고, 사무엘은 그것을 잘 다독이면서 제 뜻대로 움직였다.

시간이 꽤 걸리기는 했지만 정말 모든 인원이 탈 만한 배가 점차 모습을 갖추었다.


사무엘은 능력을 가진 뒤부터 두근거리는 감정을 주체할 수가 없었다. 이 능력은 그만큼 자신에게 꼭 맞았다.

불을 가지고 노는 것도 재밌었고, 손끝을 따라 움직이는 쇳물은 그야말로 황홀했다.


그는 자꾸만 배를 예술적으로 만들려는 자신을 자제시키고, 머릿속에 그려진 설계도대로 필요한 부분들을 채워 넣기 시작했다. 매끈한 선박의 면들이 만족스러웠다.


의민은 사무엘에게 중간중간 물을 가져다주었다. 사무엘이 자꾸 황송해하면서 받아 되려 민망해지기는 했지만.

오랜만에 할 일이 없어 빈둥댈 만도 하건만 의민은 바닷속으로 들어가 안을 살폈다.


“물은 깨끗한 편이에요.”


의민이 물 밖으로 모습을 드러내며 말했다. 아이몬은 짐을 정리하다가 몸을 일으켰다.


“그나마 다행이군. 꽤 멀리까지 보이나?”

“네. 일반 병사들도 다니기엔 문제 없을 거예요.”

“산소통을 챙겼길 망정이군.”


아이몬은 장비들을 확인하려는 듯 다른 곳으로 이동했다. 의민은 위험 요소가 없는지 확인하려 다시 내려가 볼 생각이었다.

의민은 숨을 다시 크게 들이키면서, 젖은 머리를 한번 쓸어올렸다. 짐을 옮기던 엘이 그런 그를 보고 푸핫하고 웃었다.


“야! 혼자 화보 찍냐?”


그녀 옆에서 짐을 옮기던 레아 역시 시원하게 웃었다. 순식간에 얼굴이 빨개진 의민이 후다닥 바닷속으로 내려갔다.




의민은 물속을 살폈다. 아까와 비슷하게 이상한 건 보이지 않았다.


슬슬 올라가려던 의민은 그 근처를 빠르게 스쳐 지나가는 무언가에 화들짝 놀랬다. 주위를 쓱 둘러봐도 별 건 보이지 않는데, 기척이 느껴졌다.

의민은 기척이 느껴지는 곳을 집중해 바라봤다. 한참을 신경을 집중하고 있었더니, 희미하게나마 윤곽이 보이기 시작했다.


물고기?


바다와 색이 같은 데다가 엄청난 속도로 움직여 보기가 어려웠다.

물고기 모양을 하고는 있었지만, 심해의 물고기처럼 이곳저곳이 기괴하게 튀어나와 있었다. 크기도 매우 커서, 마치 바위 같았다.


다른 한 마리가 또 그 근처를 스쳐 지나갔다.

의민은 잠시 움찔했으나, 그것들은 의민이 있던 말든 신경도 안 쓰인다는 듯 그냥 지나갈 뿐이었다.

아무리 봐도 마물인 것 같은데, 공격을 할 것 같지는 않아 보이는 것이 희한했다.


슬슬 숨이 달리고 있어 의민은 조심스럽게 뭍으로 향했다.

아슬아슬하게 스쳐 지나가기는 했지만 그래도 부딪히지 않고 그는 무사히 배 쪽에 도착했다.


배는 승선이 모두 끝났는지 움직일 준비를 하고 있었다. 의민은 사무엘이 섬세하게도 달아놓은 사다리를 발견하고 그쪽으로 몸을 움직였다.

하지만 거의 다 와 가던 그에게 뭔가 무거운 게 날아들었다.


가까스로 몸을 피한 그는 물건이 날아온 배 위를 올려다보았다.

서너 명의 병사들이 그를 노려보며 입을 비죽이고 있었다.


“죄송합니다 용사님. 물건이 잘 못 날아갔나 봅니다.”


의민은 곧 그들이 누군지 알아봤다.

사무엘을 괴롭히던 무리를 보고 뒤쪽에서 시끄럽게 웃어댔던 이들이었다. 직접적으로 관여한 게 아니라 돌려보내 지지는 않은 모양이었다.


다만 그들의 눈은 이전보다 좀 더 독기에 차 있었는데, 원래의 무리에서 반은 줄어 있었다.

산을 넘는 와중에 죽었거나, 진흙더미의 비명에 당했거나, 둘 중 하나일 것이었다.


산을 넘으면서 대부분의 병사들은 그를 몹시 적대했다. 이런 사소한 괴롭힘도 그것의 일환이었다.


사람의 악의는 참으로 교묘한지라, 쉬이 떨쳐내거나 막을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의 주변인들이 노력한다고 하더라도 한계가 명확히 있었다.


어쨌거나 그들은 겉으로 예의와 명분을 갖추고 있었고, 의민은 그들을 안쓰럽게 여겨 대부분을 묵과했다.

페이지는 그런 태도 자체가 사람을 집요하게 만드는 거라며 혀를 찼지만 어쩔 수 없었다.


의민은 이번에도 침묵했다. 그는 조용히 다시 배 근처로 다가갔다.

그런 그를 보던 병사가 입술을 짓씹었다.

의민은 다시 날아오는 물건을 피했다. 병사가 들끓는 목소리로 말했다.


“성자인 척하지 마. 괴물 같은 놈.”

“···”


의민에게는 안타깝게도, 병사는 그에게 있어 가장 예민한 이야기를 건드렸다.


괴물. 의민은 살짝 입술을 깨물었다.

차가운 바다에 있었던지 오래라 슬슬 체온이 내려가고 있었다.


의민은 머리를 굴렸다. 배에 타려고 하려면 계속 저렇게 물건을 던져댈 것이었다. 그냥 무시하고 배에 타도 상관은 없었지만, 어차피 저런 짓도 곧 그만둘 것이었다.

단지 조금만, 기다리고 있으면 끝난다.


의민은 그렇게 생각하고 잠시 그 자리에 있기로 했다. 몸이 좀 차갑기는 했지만, 의민은 이 일을 크게 만들고 싶지 않았다.


사무엘이 코너에서 화난 표정으로 걸어오지 않았다면 조용히 지나갈 수 있었을 것이다.


“지금 뭐 하냐?”


의민은 사무엘이 반말하는 걸 처음 보고 꽤 놀랐다.


“신경 끄고 지나가. 이번에는 바다에 던져지고 싶어?”


병사 중 하나가 그를 위협했다. 의민은 조금 걱정이 되어 몸을 움직였다.

사무엘은 능력을 크게 사용한 뒤라 그런지 얼굴이 꽤 창백했다. 가호와는 별개로 그의 육체적 능력이 향상된 것은 아니었기 때문에 정말 바다에 던져지면 호되게 앓을 것이 분명했다.

그러나 사무엘은 전혀 움츠러들지 않은 채 딱딱하게 말했다.


“해 봐. 배에서 내리고 싶으면.”

“니가 뭔 재주로?”


병사 하나가 낄낄거렸다.


“뭔 재주라니? 이 배 만든 재주로지.”


사무엘의 손에서 화악, 불길이 일어났다. 깜짝 놀란 병사가 뒤로 물러나기도 전에, 병사가 기대고 있던 난간이 찢어졌다. 한순간에 기댈 곳을 잃은 병사는 허우적거리다가 바다에 떨어졌다. 다른 병사가 당황스러워했다.


“분, 분명 명령을 받아야 한다고 들었는데!”


사무엘은 대답 않고 다시 불길을 움직였다. 이번에는 병사가 딛고 있는 바닥이 갑자기 벌어졌다. 배 아래로 병사를 떨어트린 후 바닥은 바로 다물렸다.

사무엘은 마지막 남은 병사에게 걸어가 멱살을 잡았다.


“행동거지 조심해. 저 사람한테 감사하라고. 내가 살아있어서 이렇게 편하게 배 타고 가는 주제에. 수영해서 갔으면 다른 사람들은 몰라도 너 같은 놈들은 몇은 더 죽지 않았겠어?”


사무엘은 다시 불길로 난간을 열고 마지막 남은 이를 툭 밀었다.

풍덩! 하고 바다에 빠지는 소리가 났다. 병사는 어푸거리며 겨우겨우 물에 떴다.


사무엘은 사다리를 의민 쪽으로 돌려주었다.

의민은 힘겹게 헤엄치는 병사를 보고, 그래도 자기 힘으로 돌아올 수 있겠다는 판단을 내리고 배 위로 올라왔다.

의민은 해맑게 웃는 사무엘을 보고 물었다.


“이제 제 부탁이 없어도 능력을 사용할 수 있게 된 건가요?”

“네? 무슨 소리예요.”


사무엘은 한숨을 쉬었다.


“그렇게 이분법적으로 생각하지 마세요.”

“하지만 아까는···”

“명령이 아니었더라도 의민 씨를 위해서 나선 거였잖아요.”


사무엘이 투덜거렸다. 의민은 조금 이해가 안 간다는 듯 고개를 갸웃했다. 사무엘이 답답한 듯 가슴을 쳤다.


“충성의 맹세라니까요! 왕 말만 들으면 그게 신하예요? 필요할 때 나서주고, 위험할 때 도와주고 그래야지!”

“아.”


대답을 하기는 했지만 의민은 여전히 아리송해 보였다. 사무엘은 그냥 더 설명하기를 포기하고 다시 불을 불러냈다.

페이지의 마법처럼 강력한 파괴력을 가지지 못한 대신, 보다 다양한 방향으로 활용이 가능한 것이 사무엘의 불이었다.

사무엘은 미세하게 온도를 조정해 의민의 주변을 불길로 감쌌다. 적당히 따듯한 불길이 몸을 말려주었다.


의민은 노곤하게 그 안에서 옷이 마르기를 기다리며 생각했다.

충성. 충성이라는 것은 선과 악과는 조금 동떨어진 무언가였다.

엘이나 루칸이 그에게 주는 친구로서의 친밀감, 페이지, 아이몬, 한울이 그에게 주는 동료로서의 의리, 레아가 그에게 보내는 존경. 이것들 역시 그와 비슷한 것이었다.


조금 다르게 생각해보면, 그것들은 인간이기에 튀어나오는 다양한 종류의 감정들. 세상을, 역사를 좀 더 풍부하게 만들어주는 것, 이야기를 좀 더 재밌게 해주는 것들이었다.


인간은 그렇기에 단순하지 않다. 선악으로 확실하게 나누어지지 않는다.

의민은 그것들이, ‘인간적임’을 충족시켜주는 것들이 아닐까, 생각했다.


작가의말

초코캔들님 후원 정말 감사드립니다. 앞으로도 열심히 쓰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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