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형사를 만나다. 1

“야! 이새끼 똑 바로 안해..”
“아이고~ 형님 ! 한번만 봐주이소``”
“이것들이 어디다가 대고 지랄이야?”
‘퍽퍽퍽’
"너 어제 들어올 때 뭐라고 했어? 이새끼 술을 처먹었으면 조용히 들어가지 여기까지 와서도 술 주정을 해~~~이제 술이 깼으니까 니가 당해봐라."
“아이고~~~”
난장판이었다.
지하 형사계 사무실은 시장통 같이 복작 거리는 사람들과 뽀얀 담배 연기속에 시끄러워 옆 사람과의 대화가 어려운 지경이었다.
한쪽에서는 절도범을 족치는 것 같았고, 한쪽에서는 지난밤에 술이 취해 기물을 파손하고 파출소에서 난동을 부린 피의자인 모양이었다.
파출소 근무 2년만인 1984. 9. 26 서부경찰서 수사과 형사계로 인사 발령을 받고 첫날 전입 신고를 하고 4층 건물 중, 지하 1층 건물에 위치한 형사계 사무실에 들어간 형사계 내부 모습이었다.
형사들이 근무하는 책상은 베니어 판자로 만든 책상을 경계로 각 반이 나누워져 있었는데 이미 반 편성, 조 편성이 되어 있었다.
당시 형사계에 들어가려면 유치장 근무를 하거나 행정을 보면서 형사들이 어떻게 하는지?, 서류는 어떤 것이 있으며 어떻게 만들어 지는지?등 실무를 눈치, 코치로 알거나 간부급들의 빽(?)이 있어야 들어가야 하는 시대였다.
그러나 운이 좋게도 1984.9.대구 수성경찰서가 신설 되면서 형사계 자리가 7석 정도 비어 있는데다가 형사 반장을 하던 권 0수 반장(경위)과 송 0한 형사가 있었다.
(현재의 대구 서부경찰서는 2020. 11월 새 건물로 신축됨)
두 분들은 저의 아버지가 상주 형사 반장 할 때 같이 근무 하던 사이라 나를 잘 알고 있어서 적극 추천한 덕이었다.
반장은 권 0수 경위 반장이었고, 조장은 경사 신 0섭 형사였고 담담 구역은 북부정류장과 비산 염색공장을 관할하는 비산7동 파출소였다.
신 0섭 조장은 나보다 아이가 17세 위였으나 보통 체구에 키가 그리 크지는 않았지만 술, 담배를 전혀 안 하는 형사의 FM으로 그야말로 범생이셨다.
그래서 주로 신임 형사들이 들어오면 한 조를 시켜 형사로서의 기초를 가르켜 주는 스타일이었다.
당시 형사들은 대기 시간이 많아 모이면 주로 당직실에서 고스톱을 치는데 전혀 그렇지가 않아 상사로부터 신임을 듬뿍 받고 계신분이었다.
양복 정장의 신고 장으로 오토바이를 타고 출근을 하였지만 서장, 과장, 계장부터 선배들에게 전입 신고를 하고 나자 오전이 지났고 조장이 나가자고 하여 오토바이를 가지고 정문 쪽으로 가자 오토바이를 두고 오라는 것이었다.
그러더니 따라 오라고 하면서 걷기 시작하는데 얼마나 빨리 걷는지 경보 수준이었다.
걸어서 북부정류장 까지 2Km 넘는 거리를 30여분을 걸어갔는데 북부정류장 신고 센타에서 조금 쉬고는 또 걸어서 10여분.. 비산7동 파출소에 갔다.
파출소에서 소장님과 직원들에게 인사를 하고 나서 파출소 기본 대장을 보자고 해서 관내 인원이나 주민 분포, 동향등을 살피게 되었는데 비산7동은 북부정류장(경북 북부지역 운행 시외버스 정류장으로 유동 인구가 많았음)과 비산 염색공장을 담당하고 있어 낮에는 많은 유동 인구가 많았지만 밤이 되면 적막강산이었다.
그리고는 다시 가자고 하여 관내 제일 외진 곳까지 가서 북부경찰서와 타 파출소 경계지역까지 말없이 알려주고는 사무실로 들어가자고 해서 퇴근 시간이 되어 들어왔는데 신고복장에 구두를 신고 간 덕분에 발에 물집이 잡히어 옳게 걸을 수가 없었다. 하사관학교 훈련받을 때 철야 행군하면서 물집이 생긴적이 있지만 사회 생활하면서 물집이 잡힐 정도로 갇기는 처음이었다.
그리고 부터는 형사생활 하면서 결재 라인인 경위가 되기 전에는 구두를 신어 본적이 없다.
전부 운동화가 아니면 케주얼 신발뿐이다.
내가 타자를 배우지도 않았고 쳐보지도 않았지만 모든 수사 서류를 타자기로 작성하기 시작한 세월이라 독수리 타법으로 타자를 배워가며 치기 시작했다.
지금이야 정부에서 형사들에게 컴퓨터가 제공 되고 있지만 예전에는 타자기도 자기 돈으로 구입해서 사용을 해야 했다.
물론 공식적으로 지급되던 타자기가 3-4대 있지만 그것은 고참들 몫이였지 나에게는 사치스러운 사무용품 이었다.
그래서 겨우 구입한 타자기를 독수리 타법으로 서류를 만들게 되었는데 구속영장이나 범죄 사실을 조장은 이면지나 백지에 기재하여 주면 나는 그것을 보고 타자기로 작성을 했다.
겨우 작성하여 보여 주면 오, 탈자가 많다고 한 시간 넘게 작성한 것이라도 그 자리에서 찢어버리고 “ 다시 쳐” 라며 불호령이 떨어진다.
다시 작성을 하게 되면 집중이 되어 6하 원칙에 의하여 작성한 서류를 나도 모르게 익히게 되었다.
정신을 집중하게 만들어 전반적으로 서류 만들어 가는 과정을 익히게 하는 방법으로 진짜 혹독하게 서류를 묶는것 부터 시작하여 형사 생활을 배우게 해서 같이 형사계에 발령을 받은 7명 보다는 일찍 서류를 만지게 되었던 것이다.
형사계 발령을 받아도 1년 정도가 지나야 제일 기초적인 피해자 진술조서 작성부터 시작을 하고 그전에는 주로 내부 결재를 하는 발생 사건 수사 보고서, 근무일지, 원표 작성 및 피의자 감시등을 하고 전산실이나 서무반을 오가는 심부름 정도를 한다.
일이 없을 때는 관내 여관을 돌며 장기 투숙자들의 동태를 살피거나 전과자들을 찾아가 다른 전과자들의 생활상등을 물으며 범죄 정보를 하나, 둘 쌓으면서 일년에 한 두번씩 있는 일제 검거 기간에 대비 하는 등 대인 관계 및 첩보 수집하는 요령들을 배웠다.
첫 조장으로 부터 배운 일이나 행동이 내 형사 생활에 지대한 영향을 입혔을 뿐 아니라 나를 대구 최고 형사, 대구 형사 중 순경부터 형사로 근무하면서 일선 경찰서 과장급인 경정이 되게끔 만들어준 장본인이라고 생각을 한다.
어떻게 하던지 열심히 해서 아버지의 한을 풀어 드리고 싶었기 때문에 전동 타자기부터 시작하여, 비디오 카메라, 줌렌즈가 달린 카메라등 사비로 수사 장비를 구입하여 선배 형사들보다 한발 앞선 수사를 하게 되었고 실적도 앞서게 되었던 것이라고 생각을 한다.
돈이 없으면 아내가 적은 봉급으로 조금씩 넣는 적금을 깨어 달라고 하기도 하고 카드로 할부 구입을 하기도 했는데 지금 생각해도 조금은 무리한 부분이 있지만 후회는 없다.
출근 후 반장으로부터 지시 사항을 듣고 관할 파출소로 가서 도난 발생 보고서에 따른 현장을 가보고 유류품이 있는지, 수사할 가치가 있는지 등을 파악 하고는 점심을 먹는다.
북부정류장 앞이라 식당이 여러 곳이 있지만 형사들 주머니가 넉넉지 않아 거의 돼지국밥이나 중화 요리집에서 짜장면, 짬뽕을 주로 먹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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