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작가의말
대혁명기 프랑스는 혁명의 여파로 영국해군에 의해 인도산 초석의 수입이 막힌 상태였기 때문에 화약생산에 사활을 걸었습니다.
기존의 염초밭 같은 것으론 초석수요를 채울 수 없었고 인도산 초석처럼 양질이 아니었습니다.
노력 끝에 프랑스 화학자들은 박테리아 증식을 통한 질산염를 얻었는데
질산칼륨 배합 방식은 조선의 신전자초방과 큰 차이는 나지 않습니다.
나중에는 자체적인 생산 만으로 화약수요를 넘는 대량생산에 성공해서 영국도 부러워 할 정도가 되었다는 군요.
년간 1273톤을 생산했는데 임진왜란 이전에 16.2톤(2만 7천근)의 화약을 가지고 있었고 나중에 울산성 전투에서 6톤(1만근)의 화약을 다 쓰고 쩔쩔 매던 원역사의 조선에겐 가장 매력적인 제조방식이 아니었을까 생각합니다.
다만 나무의 고갈을 막기 위해 프랑스는 해초의 재를 이용했고 이게 나중에 바닥에 침전물 문제로 황산으로 닦다가 우연찮게 요오드, 우리에겐 빨간약이 나오게 됩니다만 소설에 넣지는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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