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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청년 님의 서재입니다.

약소국 경비대장이 너무 강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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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모전참가작

산천(山川)
작품등록일 :
2024.05.08 10:00
최근연재일 :
2024.05.15 12:15
연재수 :
11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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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6
글자수 :
59,522

작성
24.05.12 1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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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3쪽

3. 고리타분한 방식, 고리타분한 일상

DUMMY

3. 고리타분한 방식, 고리타분한 일상









사람마다 각자의 꿈이 있다.

경비대원 제이든의 경우에는, 멋있고 정의로운 기사(騎士)가 되는 것이 꿈이었다.

그 시작점은 정확히 7살.

어린 시절의 한 사건으로부터 비롯되었다.

그때만 하더라도 제이든은 시골 마을에서 살았는데, 베론에서도 변방인 데다가 30가구밖에 존재하지 않는 작은 마을이었다. 외부인이라고는 거의 찾아볼 수 없는 그곳에, 일 년에 십수 번 정도는 길을 잃은 여행객들이 가끔 방문했다. 허름한 행색으로 집 밖을 기웃거리는 남자들도 그런 경우라고 생각했건만, 그들은 금방 본색을 드러내고 날카로운 무기를 들이밀었다.

쨍그랑!

“돈 내놔!”

“돈 될만한 것들은 전부 담아!”

“꺅-!”

선명한 기억이었다.

사납게 내뱉는 소리.

어른들의 비명.

너무나 무서워서, 탁자 밑에 숨어 덜덜 떨었다.

이대로 큰일이 날 것만 같다는 생각이 드는 그 순간, 맞은편 집 문이 열리며 누군가 나타났다.

그제야 생각이 났다.

외부인들이 동시에 방문하는 경우가 극히 드문 이곳에서, 이례적으로 1시간 전에 한 끼를 얻어먹을 수 있겠냐면서 살가운 미소를 보이던 사내가 있었다. 나이는 한 50대 중후반이었을까. 볼록 튀어나온 배는 전혀 믿음직스럽지 않았지만, 사내는 검을 뽑아 들더니 순식간에 도적 떼를 제압해버렸다. 밖에서 고함과 끅끅거리는 비명이 몇 번 들리자, 살짝 열린 문틈으로 바닥에 널브러진 도적들의 얼굴이 보였다.

비릿한 혈향이 코끝을 간질였다.

사내는 그제야 제이든의 존재를 발견하고, 미안하다는 얼굴로 다가와서는 말했다.

“꼬마야, 괜찮니?”

뒤늦게 알았다.

그는 이제는 은퇴한, 한때는 오라 검사로서 명성을 떨쳤던 기사였다는 사실을.

그날의 기억이 머릿속에 콱 박혔다.

멋있었다.

정의를 실현하는 존재라는 사실이, 제이든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꾸었다.

그날부터 시골 소년은 기사를 꿈꾸었다.

그리고, 현실은 시궁창이었다.





쿵-

맥주잔을 거칠게 내려놓았다.

새록새록 떠오르는 과거에, 제이든이 피식 웃었다.

“나도 참 순진했지. 포기하지 않는 의지와 재능만 있다면, 이 나라에서 기사가 될 수 있다고 생각했었으니까.”

“푸흡. 이 새끼, 진짜 순진하긴 했네.”

“그러게.”

동료들이 웃었다.

그날 이후.

제이든은 기사가 되기 위해 노력했다.

조잡하게 만든 목검을 매일 같이 휘둘렀고, 아버지를 따라서 일을 나가면서도 기사가 되고 싶다고 귀에 딱지가 앉도록 떠들었다. 그러던 어느 날. 아버지는 마음을 크게 먹었는지, 전 재산을 털어서 기사 아카데미의 입학서를 건네주었다. 수도의 왕실 아카데미와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지방 아카데미에 불과하지만, 그렇게 원하거든 한 번 도전해보라는 아버지의 선물이었다.

검을 잡았다.

스스로 다짐했다.

아버지에게 부끄럽지 않은 아들이 되자고.

제이든은 정말 피나는 노력을 거듭했고, 실제로 재능도 있었다.

해당 연도에 입학한 학생 중에 당당히 1위를 기록하며, 정말 어쩌면 기사가 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졸업하던 날.

제이든으로서는 하늘이 무너져내리는 소식을 들었다.


“제이든. 미안하지만 널 데려갈 곳은 없어.”


엘리트 코스를 밟은 교육생들은 곧바로 기사가 되든가, 아니면 기사인 사람을 따라 종자 노릇을 하면서 추가로 수련하는 시간을 보낸다. 전자는 바라지도 않았다. 그래도 자신 정도의 재능이라면 종자로라도 원하는 사람이 있으리라고 생각했는데, 단 한 명도 제이든을 원하지 않았다.

이유는 뻔했다.


“넌 평민이잖아. 데리고 다닌들 이득이 없는데, 누가 널 데려가겠어?”


일반 학생들도 아닌.

선생들이 차가운 얼굴로 내뱉은 진실이었다.

꿈이 꺾였다.

그래도 배운 게 도둑질이라고, 검을 휘두르던 실력이 남아있기에 비슷한 진로로 나아갈 수밖에 없었다. 그나마 수도 경비대에 들어온 것은 평민으로서 성공한 케이스였다. 그날 아버지가 마을 잔치를 열었을 정도로, 진실을 모르는 마을 사람들은 출세했다면서 웃음을 터트렸다.

제이든 스스로도 생각했다.

평민치고는 나쁘지 않은 삶이라고.

문제는 이렇듯 술을 한 잔 마실 때면, 가슴 속의 응어리가 아픔을 툭툭 건드렸다.

“난 말이야. 그래도 수도 경비대라는 그럴듯한 이름값이면, 귀족들 뒤치다꺼리나 하는 사병(私兵)들과는 다른 삶이 기다리고 있을 줄 알았어. 그런데 이게 뭐야? 매일 같이 근무, 근무, 근무. 성문을 지키는 근무 외에는 허락되지 않는 삶에, 기사라는 작자들은 우리를 만날 때마다 벌레 보듯이 쳐다보잖아. 마치 같은 수준이 아니라는 듯이 선을 긋는 것처럼. 우리도 나름대로 칼밥을 먹고 사는 사람이라고. 무시당할, 그런 사람들이 아니라고.”

“미친놈. 그럴 거면 경비대에 왜 들어왔냐. 죽이 되든 밥이 되든, 기사가 되겠다고 발악했어야지.”

“그럼 우리 아버지는? 전 재산을 털어 검술을 가르쳤는데, 내가 뭐라도 해야 하잖아.”

취기가 얼큰하게 올라왔다.

사실 경비대에 들어올 때도 일말의 기대가 있었다.

그때 막 루이즈 부대장이 경비대를 택했다는 소문이 돌면서, 왕실 아카데미를 졸업한 루이즈에게 가르침을 받을 수 있다는 기대감에 부풀었다. 현실은 그것 또한 녹록지 않았다. 실제로 훈련은 루이즈 부대장 위주로 이루어졌지만, 그는 전형적인 남을 가르치지 못하는 천재과였다. 그냥 슉슉 검을 휘두르면, 상대가 윽윽 밀려난다는 식의 추상적인 가르침은, 루이즈로부터 크게 얻을 것이 없었다.

술도 그렇다.

기사를 꿈꿀 때만 하더라도 술을 멀리했었지만, 지금은 그럴 필요가 없었다.

“·········지루한 인생이다, 정말.”

도노반 사건이 터지기 한 달 전.

제이든은 그렇게, 현실의 씁쓸함을 맥주와 함께 들이켰다.





그리고 지금.

헨리에게 가르쳐달라는 말을 내뱉은 상황에, 제이든은 심장이 쿵쿵 뛰는 것을 느꼈다.

‘그동안 이상하기는 했어. 헨리 경비대장님이 소문처럼 실력이 없다면, 루이즈 부대장이 따르지도 않았겠지.’

무려 2성의 오라 검사를 쓰러트렸단다.

헨리는 평민 출신.

어쩌면 그에게는 강해지는 비결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제이든은 엄청난 갈증을 느꼈다.

스스로도 모르고 있었다.

기사의 꿈은, 포기한 것이 아니라 외면하고 있었다는 것을.

열망으로 들끓는 제이든의 눈빛에, 헨리는 담담하게 말했다.

“난 이미 너희에게 충분한 훈련 계획을 제공하고 있다고 생각하는데.”

“·········예?”

제이든이 황당하다는 표정을 보였다.

훈련 계획이라니.

그딴 건 없었다.

헨리가 체력 훈련이랍시고 알려준 몇 가지와 기본적인 군사 훈련 정도일 뿐, 대부분 루이즈 부대장이 주도적으로 병사를 가르쳤다. 아무리 생각해도 헨리가 저렇게 말할 근거가 존재하지 않았다.

“나는 분명히 내가 실천하는 훈련 계획을 너희에게 말해주었어. 문제가 있다면, 근무의 연속인 경비대의 일상에서 내가 직접적으로 매번 훈련 계획을 주도할 수는 없다는 거였지. 그래서 말하지 않았나. 일상적으로 훈련을 받아들이라고. 경비대에서 특별히 시간을 할애하는 것이 아니라 출근 전, 쉬는 시간, 퇴근 후. 너희 개인의 시간을 이용해야만 강해질 수 있다고. 그게 내 방식이야.”

“·········.”

혼란스러운 기분이 들었다.

듣기는 했다.

훈련 계획이라고는 하지만, 사실은 아무것도 없는 체력 훈련 같은 것을.

그때만 하더라도 다들 헨리 경비대장의 가르침을 중요하다고 생각하지 않다 보니, 누구도 개인적으로 해당 계획을 따르지 않았다. 오히려 루이즈의 말도 안 되는 소리를 열심히 따라 했다. 슉슉 휘두르는 검술이 뭔지를 고민하고, 어쭙잖게나마 루이즈 부대장의 가르침을 습득해보려고 발악했다.

어떻게 반응해야 할까.

가르침을 얻으러 왔는데, 이미 가르쳤다고 말하는 것은 거절의 다른 방식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헨리가 피식 웃었다.

“그래도 나쁘지 않은 부탁이었어. 정말 우습게도, 내가 10년간 경비대장직을 수행하는 동안 직접적으로 가르침을 요청한 경비대원이 단 한 명도 없었거든. 아마도 내게 그만한 자격이 없다고 생각했던 거겠지.”

제이든.

다르게 보였다.

그리고 칼리스 백작 사건 이후로, 원칙 위주로만 살아가던 헨리의 심경에도 변화가 일어났다.

제이든을 지나, 뒤따라온 두 명의 병사를 바라보았다.

“어때, 너희들. 그렇게 원한다면 내일부터 날 따라서 훈련에 참여해보는 게.”





결과론적으로 말하자면 두 동료는 거절했다.

나중에 제이든에게 따로 말하길.


“결국, 체력 훈련이나 가르쳐주겠다는 거잖아. 그게 뭐야. 그냥 싫다는 걸 돌려 말하는 말장난이지.”

“난 내 개인 시간을 할애할 만큼 한가하지 않아.”


이해했다.

근무만으로도 정신이 없는 경비대의 일상에서, 헨리의 계획을 받아들이는 건 쉽지 않았다.

하지만 제이든은 달랐다.

이미 상상만으로 마음에 불이 붙어버렸고, 이건 아닌 것 같다고 생각하면서도 제안을 덜컥 받아들였다.

다음날.

제이든은 헨리와 같은 근무에 배정되었다.

보통 2시간의 근무가 끝나면 1시간 쉬는 시간이 있는데, 근무가 끝나자마자 헨리의 부름을 받았다.

“제이든, 가자.”

“·········예.”

얼굴이 퀭했다.

쉬고 싶었다.

아침 9시에 진행되는 첫 근무이기도 했고, 어차피 1시간 뒤에 새로운 근무에 투입돼야 하는 데 이 천금 같은 쉬는 시간을 훈련에 할애하고 싶지는 않았다. 하지만 이미 내뱉은 말이 있지 않은가. 만약 말을 번복한다면 헨리로서는 불쾌할 수밖에 없기에, 제이든은 터덜터덜 뒤를 따라갔다.

도착한 곳은 경비대 훈련장이었다.

익숙한 공간이었지만, 왠지 모르게 낯설게 느껴졌다.

‘내가 이 시간에 이곳을 방문한 적이 있었나?’

없었다.

보통은 근무에 치이다 보니, 정기적인 훈련 외에는 방문할 일이 없었다.

훈련은 간단했다.

헨리는 가벼운 복장으로 갈아입더니, 무거워 보이는 조끼 같은 것과 모래주머니를 양 발목에 착용했다.

“넌 첫날이니깐 그냥 따라와.”

“예.”

무턱대고 뛰었다.

처음에는 수월했다.

3분 정도는 가볍게 뛰면서 몸을 풀다가, 갑작스럽게 1분 동안 전력으로 내달렸다.

순간적으로 치고 나가는 상황에 제이든은 놀라서 따라붙었고, 아직 다 따라잡지도 못했는데 헨리는 다시 가볍게 뛰는 모습을 보였다. 그것을 반복했다. 가볍게 뛰다가 전력으로. 분명 별것 아닌 것 같은 훈련인데도, 제이든의 온몸이 어느새 땀으로 흠뻑 젖었다.

“허억, 허억.”

자신이 약해서?

아니다.

경비대원으로서 몸 관리에 소홀하지 않았건만, 이 기본적인 것이 체력을 순식간에 갉아먹었다.

그렇게 30분간의 러닝을 끝내고.

헨리는 복장을 유지한 채로 맨몸운동을 시작했다.

지치지도 않는지 수백 번의 팔굽혀펴기와 윗몸일으키기 같은 것을 반복했고, 무게를 늘리기 위해서 허리춤에 쇠를 매달고는 턱걸이도 진행했다. 제이든은 아무런 무게 없이 헨리가 하는 것을 따라 했다. 그것만으로도 숨이 턱턱 차올랐다. 이미 앞에서 30분간 체력을 한계까지 몰아붙였기에, 단 1kg의 쇳덩이를 들었다 내리는 것만으로도 폐가 입 밖으로 튀어나올 지경이었다.

‘대체 뭐야? 이런 훈련을 매일 같이했다고?’

믿기지 않았다.

너무나도 멀쩡한 헨리의 얼굴이 당혹스러울 정도였다.

순간적으로 거짓말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신에게 비결을 가르쳐주기 싫어서, 이런 말도 안 되는 방식으로 개미 털기를 하는 것이라고.

마침내 훈련이 끝났다.

50분 경과.

이제는 다음 근무에 투입해야 하기에, 헨리가 웃옷을 벗으며 말했다.

“등목으로 땀만 씻어내고 가자.”

“알겠습······ 헉!?”

순간.

제이든의 얼굴이 당황으로 얼룩졌다.

생각해보면 헨리의 맨몸을 보는 것은 처음이었다.

땀으로 번들거리는 몸은 지방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조각가가 심혈을 기울여서 작품을 만들어낸다면 이런 모습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 정도의 육체였다. 머릿속에서 혼란이 일어났다. 제이든이 경비대에 들어올 때도, 사람들은 헨리 경비대장이 낙하산 출신이라고 떠들어댔었다.

그런데 저게 뭐란 말인가.

저게 과연 일이 년으로 만들 수 있는 육체일까.

아니다.

‘이게 진짜 경비대장님의 모습이라고?’

크게 요동치는 눈동자.

경비대에서 5년이나 근무한 제이든으로서도, 이제야 진실의 일부를 확인하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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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3. 고리타분한 방식, 고리타분한 일상(4) 24.05.15 106 5 12쪽
10 3. 고리타분한 방식, 고리타분한 일상(3) 24.05.14 118 5 13쪽
9 3. 고리타분한 방식, 고리타분한 일상(2) 24.05.13 152 7 13쪽
» 3. 고리타분한 방식, 고리타분한 일상 +1 24.05.12 200 6 13쪽
7 2. 자격 실질 심사(3) 24.05.11 211 12 12쪽
6 2. 자격 실질 심사(2) 24.05.10 240 14 12쪽
5 2. 자격 실질 심사 24.05.09 300 12 11쪽
4 1. 혁명의 날(4) 24.05.08 434 14 11쪽
3 1. 혁명의 날(3) 24.05.08 441 12 11쪽
2 1. 혁명의 날(2) 24.05.08 458 15 12쪽
1 1. 혁명의 날 24.05.08 648 14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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