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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청년 님의 서재입니다.

약소국 경비대장이 너무 강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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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모전참가작

산천(山川)
작품등록일 :
2024.05.08 10:00
최근연재일 :
2024.05.15 12:15
연재수 :
11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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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06
추천수 :
116
글자수 :
59,522

작성
24.05.08 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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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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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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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1. 혁명의 날

DUMMY

1. 혁명의 날









베론 왕국의 수도.

벨리즈(Belize)의 경비대장 헨리의 하루는, 누군가는 지루하다고 말할 정도로 일정했다.

아침 6시.

눈을 뜨자마자 커피 물을 올렸다.

남부의 질 좋은 커피 향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면, 밖으로 나가 작은 원형 테이블을 앞에 두고는 30분간 천천히 커피를 음미했다. 헨리는 커피 특유의 산미를 좋아했다. 따로 아침을 챙겨 먹지는 않았다. 늘 아침에는 공복을 유지하는 편이었고, 7시가 되기 전에 무장을 갖추고 집을 나섰다.

헨리의 집은 성 외곽에 있었다.

걸어가며 주변 상인들도 챙기고, 이웃들과 대화를 주고받다 보면 20분 거리를 무려 1시간이나 걸려 도착했다.

“경비대장님 오셨습니까.”

“특이사항은?”

“정오에 칼리스 백작님이 입성하신답니다. 워낙 성격이 고약한 분이라, 검문검색을 진행하면 한바탕 난리가 날 수도 있다던데. 어떻게 할까요?”

부대장의 설명대로.

칼리스 백작은 근방에서 유명했다.

현 국왕의 외가, 즉 왕대비(王大妃)의 늦둥이 동생이었는데, 백작의 칭호를 물려받기 이전부터 누나인 왕대비를 등에 업고 안하무인으로 행동하기로 매우 유명했다. 그런 사람의 입성은 보통 만만치 않은 일이었다. 아무래도 수도다 보니 검문검색을 철저하게 진행해야 했지만, 칼리스 백작이 난리를 피울 것을 생각하면 벌써부터 현기증이 밀려들었다.

헨리가 퉁명스럽게 반응했다.

“절차대로 해.”

“·········진심입니까?”

“루이즈 부대장. 수도의 경비에 예외란 없어.”

“알겠습니다.”

루이즈가 한발 물러났다.

사실 벨리즈에서, 칼리스 백작만큼이나 유명한 사람이 바로 헨리였다.

10년 전.

전왕(前王)이 지병으로 죽고 대대적인 물갈이가 진행되었을 때, 갑작스럽게 이름 하나 알려지지 않은 헨리가 경비대장으로 임명되었다. 당시에 정말 논란이 대단했다. 귀족들이 나서서 충분한 검증이 필요하다고 주장했지만, 전왕의 마지막 명령이라는 말에 어영부영 받아들여졌다.

그로부터 10년.

헨리는 고지식의 대명사로 불렸다.

신분? 재력?

무엇도 통하지 않았다.

아무리 대단한 사람일지라도 검문검색을 엄격하게 진행했고, 타국에서도 벨리즈의 입성은 대기 시간만 최소 2시간 이상을 잡아야 한다는 악명이 생겨날 정도였다. 때문에 칼리스 백작도 미리 경고한 것이다. 자신도 그렇게 오래 기다리게 한다면, 이번에는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라고.

그러거나 말거나.

슥.

슥슥.

경비에 투입되기 전, 매일 반복하는 일과인 검의 날을 다듬는 헨리였다.





예상은 빗나가는 법이 없었다.

뱃살을 출렁이며 마차에서 내린 칼리스 백작이, 익숙한 손놀림으로 헨리의 뺨을 날렸다.

짜악-!

“이 개새끼야. 너 내가 누군지 몰라?”

얼굴이 홱 돌아갔다.

빨갛게 달아오른 뺨에도, 헨리는 담담한 표정으로 칼리스를 돌아보았다.

“칼리스 백작님이 아닙니까?”

“날 알아? 알아보고도 그따위로 행동해?”

“그쪽이 누구인지는 그리 중요하지 않습니다. 전왕께서 허락하시길, 벨리즈의 경비대장에게는 스스로 판단하고 즉결처분(卽決處分)할 수 있는 권한이 있습니다. 그리고 지금. 칼리스 백작님은 경비대장인 저를 공격했으니, 이는 위험 행위로 간주하고 연행하겠습니다.”

“뭐?”

상대의 반응은 중요치 않았다.

헨리가 눈짓을 주자, 루이즈 부대장이 골치가 아프다는 듯이 얼굴을 쓸어내리고는 앞으로 나섰다.

“포박해.”

“예.”

“야, 야, 야 이 개새끼들아!”

한바탕 난리가 났다.

칼리스 백작의 호위들이 어떻게든 막으려고 했지만, 전왕의 이름을 내걸고 결국에는 칼리스 백작이 끌려가는 꼴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그러한 상황에 벨리즈의 사람들은 수군거리는 반응을 보였다. 아무리 그래도 칼리스 백작을 건드려도 괜찮을지, 그들로서는 걱정부터 들었다.

그날 저녁.

경비대 병사들이 삼삼오오 한 호프집에 모였다.

그중 도노반이라는 사내는, 검을 의자 옆에 세워놓고는 신경질적으로 말했다.

“·········고지식한 새끼. 아니, 얼굴 뻔히 알고 신분이 확실한 사람이면 그냥 넘어가 주면 안 되는 거냐고. 칼리스 백작이 안하무인에 꼴통으로 유명하지만, 뒷구멍을 살살 긁어주면 그렇게 잘해준다던데. 대체 왜 우리는, 무려 수도의 경비대인데 따로 챙기는 돈이 하나도 없냐고.”

“그러니까. 내가 건너서 들은 이야기인데, 무역도시 애들은 뒷돈만 연봉에 몇 배에 달한다더라.”

그들은 불만이 많았다.

베론 왕국.

그렇게 체계가 잡힌, 강대국이라고 할 수 있는 나라가 아니다.

대륙을 삼등분하는 거대 제국과 모두 국경을 맞닿은, 사실상 언제 국권이 박탈당해도 이상하지 않은 그런 약소국이었다. 게다가 자원과 인력도 마땅치 않아서, 베론 왕국은 국제 무역도시로서 통행세를 받거나 관광으로 연명했다. 사실상 타의에 의해 국경을 열어버릴 수밖에 없었던 나라. 그게 베론인데, 앞뒤가 꽉 막힌 헨리를 경비대장으로 두려니 아주 죽을 맛이었다.

도노반이 맥주를 거칠게 들이켰다.

쿵.

“크으-. 루이즈 부대장님도 문제야. 무려 왕실 아카데미 수석 출신인데, 왕실기사단이 아니라 수도 경비대에 들어와서는 헨리의 뒤치다꺼리나 하잖아. 막말로 루이즈 부대장님이 없었다면, 사회성이 결여된 헨리로 인해서 문제가 생겨도 진즉에 생겼을 거야.”

“그렇긴 하지.”

“소문으로는 헨리가 오라도 사용하지 못하는 얼간이일 수도 있다는데. 내 언젠가 밑바닥이 드러나는 날에, 계급장 떼고 엎어버릴 거야.”

취기가 얼큰하게 올라왔다.

경비대원들은 기본적으로 오라를 사용하지 못한다.

하지만 경비대장은 달라야 했다.

헨리는 지난 10년간 본인의 실력을 드러낸 적이 없던 사람이다 보니, 병사들 사이에서 이와 같은 소문이 퍼질 수밖에 없었다. 오죽했으면 루이즈를 경비대장으로 취급할 정도였다. 이미 왕실 아카데미를 졸업할 당시에 2성의 오라를 깨우친 그는, 경비대에 남기에는 과분한 인재였다.

그렇게 다들 취했을 때.

도노반이 고개를 숙이더니, 다른 테이블이 들을 수 없도록 조용한 목소리로 속삭였다.

“·········사실 내가 얼마 전에 아주 재밌는 제안을 들은 게 있는데. 너희도 한번 들어나 볼래?”

“무슨 제안인데?”

“어디 들어나 보자.”

반짝거리는 두 눈.

도노반의 눈동자는, 취기라고는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날카롭게 번들거렸다.





며칠 뒤.

칼리스 백작이 일단의 무리를 대동하고 나타났다.

“내가 두고 보자고 했지? 헨리 경비대장. 국왕 폐하의 명령에 따라, 권력을 남용한 죄로 즉시 체포하겠다. 체포해!”

“예.”

사내들이 우르르 몰려들었다.

사슴의 뿔이 인상적인 베론의 문양을 가슴팍에 달고 있는, 왕실기사단의 등장은 왕명이라는 사실을 증명하는 확실한 증거였다. 수도 경비대원들이 당황한 기색을 보였다. 이걸 저지해야 할지 지켜봐야 하는지 고민하는 그들의 모습에, 헨리는 언제나처럼 담담한 얼굴로 손을 들었다.

“기다리고 있어. 원칙대로 검문하고.”

“예.”

순순히 포박에 응했다.

그대로 끌려갔다.

도착한 곳은 지하 감옥이었다.

음산한 기운이 맴도는 곳에 수감되었고, 저녁 해가 완전히 저물었을 때야 칼리스 백작이 모습을 드러냈다.

“어때? 지낼 만은 하고?”

“왕명이기에 포박에는 응했습니다만, 대체 제 죄가 무엇입니까?”

“죄가 무엇이긴. 감히 나를 알아보고도 머리를 숙이지 않은 것이, 절대 용서받을 수 없는 큰 죄겠지.”

“그런 문제라면 정식으로 항의하겠습니다.”

“그러거나 말거나. 그런데 말이야.”

끽.

병사들이 의자를 갖다 주었다.

철창을 앞에 두고, 칼리스 백작은 의자에 앉아 실실 웃었다.

겨우 30대 후반의 나이.

백작의 품격 따위는 찾아볼 수 없는, 장난기 가득한 표정이었다.

“벨리즈의 경비대장으로서 넌 이 나라가 어떻다고 생각하지?”

“무슨 의미입니까?”

“아니, 그냥 재밌자고 하는 소리야. 이 베론이라는 나라는 참 재밌어. 북으로는 드레이크 제국, 서쪽으로는 하이덴 제국, 동쪽으로는 알카르트 제국. 세 개의 제국에 둘러싸여, 코딱지 같은 영토로 나름대로 나라랍시고 주장하는, 사실 나라라고 부르기에도 민망한 곳이지. 지금으로부터 100년 전만 하더라도 베론은 ‘국제 무역도시’라고 불리지 않았어. 세 제국이 대놓고 영토를 침범하기에는 서로의 눈치가 보이다 보니, 무역의 이점이라도 살리고자 베론에게 강제적으로 국경을 개방하라는 강압적인 명령을 내렸지. 잘못되었어. 정말 잘못된 일이야.”

슥.

고개를 내밀었다.

감정을 읽을 수 없는 헨리와 눈동자를 마주쳤다.

“어떤 사람들은 말하지. 그래도 국제 무역도시 덕분에, 우리가 통행세나 관광업으로라도 먹고살 수 있다고 말이야. 그런데 그거 알아? 다른 나라들은 통행세로 10%는 책정하는 반면, 우리는 겨우 1%를 부과해. 왜냐고? 상대가 제국이니까. 세 제국이 담합해 가격을 자체적으로 책정해버리니, 우리로서는 울며 겨자 먹기로 시세에 십 분의 일밖에 되지 않는 통행세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지. 넌 이게 올바른 상황이라고 생각해? 아니지. 절대 아니지. 이 나라를 진심으로 사랑하는 베론의 국민이라면, 분개하고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여야 마땅한 일이지. 암, 그렇고말고.”

분위기가 이상했다.

칼리스 백작에게는 취조의 의도가 느껴지지 않았다.

어떤 목적을 향해 나아가기 위해, 미사여구와도 같은 말들을 덧붙이는 느낌이 강했다.

“대체 뭘 말하려는 겁니까?”

“왜, 궁금해?”

씰룩 웃었다.

헨리는 알까.

애초에 그의 수감은 예정된 일이었다는 걸.

아무의 시선도 구애받지 않는, 이렇게 둘만의 대화를 나누기 위해.

“나는 이 나라를 위한 방법을 강구하다가, 아주 좋은 해결책을 찾아냈어. 세 제국의 담합이 문제라면. 차라리 한 제국의 통치를 받아들여, 속국(屬國)으로서 지금보다는 좋은 조건을 받아내는 것이 어떨까. 우리 뒤에 드레이크가, 하이덴이, 알카르트가 있다면. 다른 두 제국이 뭘 어떻게 할 수 있겠어. 설마 베론 하나 먹겠다고, 병력을 일으켜 전쟁을 일으키진 않을 거 아냐.”

위험한 발언이었다.

정확히는, 감히 내뱉어서는 안 될 발언이었다.

“설마 반란을 일으키겠다는 겁니까?”

속국이 된다는 것은.

왕가의 몰락을 의미했다.

왕이 고개를 조아리고 신하가 될 것을 밝혀야만, 비로소 온전한 의미의 속국이 될 수 있다.

칼리스 백작이 말했다.

“반란이라니. 이거 참, 나라를 위한 혁명이라는 좋은 표현이 있는데 그렇게 위험하게 말하면 내가 뭐가 되겠어? 헨리 경비대장. 내가 단도직입적으로 제안하지. 이 나라, 베론을 위해서 혁명에 가담하겠나? 이미 내 뜻에 수많은 동료가 가담하겠다는 의사를 밝혔어. 약속하지. 헨리 경비대장이 합류하면 반란은 반드시 성공할 것이고, 나는 그에 대한 보답을 아주 확실하게 하리란 것을.”

끼익.

의자에 몸을 기댔다.

헨리를, 위에서 내려다보았다.

“어때? 인생에 몇 오지 않는, 네 인생을 바꿀 좋은 기회라고 생각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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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1. 혁명의 날(3) 24.05.08 441 12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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