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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이캇트 님의 서재입니다.

우주지평선(cosmic horizon) 너머에 있다

웹소설 > 작가연재 > 퓨전, SF

루이캇트
작품등록일 :
2015.09.19 12:44
최근연재일 :
2015.10.27 1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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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10.02 17: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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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235전진기지에 도착하다

DUMMY

지구에서 바다뱀자리에 위치한 태양계 막내행성 네메시스까진 거의 1.5광년에 달하는 장구한 거리이다.

네메시스가 위치한 오르트 구름은 1광년을 웃도는 엄청난 두께를 갖고 있어서 태양계와 가장 가까운 항성계인 알파 센타우리와 경계를 이루는 최전선이기도 하다.

네메시스는 태양풍이 미치지 않는 아주 먼 거리에 위치해 있기에 과연 우리 성계에 포함되는가는 많은 천문학자들의 공통된 토론거리였다.

하지만 태양의 인력에 사로잡혀 공전하는 행성임은 틀림없기에 네메시스라는 이름을 부여받고 그 위성에는 현재 수많은 사람들이 임무에 짓눌려 살아가고 있었다.

네메시스는 고대 희랍의 신화에서 따온 말로 복수의 여신이란 뜻이 있다. 불길하고도 요요한 움직임으로 자전하는 적색의 행성은 세 개의 위성을 거느린 콧대 높은 여왕님처럼 보이기도 했다.

22세기 실측 이전까진 구름층에 휩싸여 망원경 관측이 불가능한 별이었으나 인간의 탐구심은 마침내 행성의 존재와 비밀을 밝혀내는데 성공했다.

우린 수 개월간의 우주여행 끝에 마침내 세드릭에 도착했다. 95퍼센트 기간 동안 저온냉동수면을 취했던 우리들은 스스로 냉동 건어물이라 자조적으로 부르고 있었다.

처음엔 감옥에서 기세등등한 무리가 제법 눈에 띄었으나 잠든 새에 태양계 변방까지 이동하자 세상에 버림받았다는 생각에 비관적이 되거나 부쩍 말수가 적어졌다.

특히나 붉은 별의 위성이 자신들이 죽을 때까지 살아가야 할 고향이 된다는 사실에 급성우울증에 걸리기도 했다.

“ 모두 조심해서 밖으로 나가라. 이곳 선배들이 너희를 마중 나왔으니 그들을 따라가면 된다. ”

세드릭 내 235호라이즌에 도착하자 우주항 선착장에서 간수들이 문을 개방했다. 한낮이라 열기가 치솟는 기지는 마치 열사의 사막을 연상케 했다. 그나마 밤에 도착했으면 당장 얼어죽을 판이었으니 다행이었다. 이제 저온수면은 당분간 멀리하고픈 마음이었다.

산소는 무척 풍부해서 몇 번 호흡하는 것만으로 취할 것만 같았다. 거기에다 뜨거운 날씨가 겹치다보니 다들 선착장에 내려서다 기진맥진해서 주저앉는 자가 속출했다. 두 달 남짓 저온냉동 상태에서 잠들어 있다가 억지로 걸으려고 하니 신체가 아직 적응하지 못한 것이었다.

“ 이거 찜통 정도가 아니라 진짜 사람 잡을 날씨네요. 형님. ”

윌이 턱밑에 맺힌 땀을 닦아내며 투덜거렸다. 나또한 이마에 고인 땀을 소매로 훔쳐내던 중이었다.

“ 생각보다 이 별엔 수분이 풍부한 모양이다. 그나마 다행이지. 적어도 똥오줌 싼 물을 걸러서 먹을 일은 없을 테니. ”

“ 이야. 형님. 똥오줌 싼 물 걸러먹는 우주콜로니 출신을 코앞에 두고 그런 간 큰 발언을 남발하시다니. 섭섭한데요. 그보다 과연 행성 출신다운 여유로운 발언이시네요. ”

게슴츠레한 눈빛의 맥스웰이 내 등을 쿡 찌르며 그렇게 빈정거렸다. 행성거주민에 비해 우주 선상에 위치한 콜로니 주민들은 그러한 부분에 상당한 피해의식을 느끼고 있어서 가볍게 발언했던 나는 순간 무진장 찔끔했다.

“ 흠. 그보다 기지 안인데도 덥군. 이 안에는 기후조절장치를 작동하지 않는 건가? ”

“ 이 세드릭의 중력과 기후에 곧바로 적응시키기 위함이다. 이제까지 너희들이 머물고 있던 문명의 이기와 동떨어진 미지의 세계라는 것을 몸에 실시간으로 체감시키기 위해서야. 신입들을 위한 일종의 통과의례라고 할 수 있지. 고참들도 이에 열혈 동참하는 중이니 고맙게 여기도록. ”

누군가 그런 상식 밖의 발언을 내뱉으며 내 옆을 스쳐지나갔다. 그의 뒤로 의기양양하게 여덟 명의 덩치 큰 사내들이 줄줄이 뒤따랐다. 앞서 나갔던 그는 손에 삼지창을 들고 있었다. 무기로 쓰이던 동양의 삼지창이라고 하기엔 좀 작은 작살용 트라이던트 정도였다. 다만 전부 금속으로 제작되어 무척 무겁게 생겼다.

높이 쌓아진 보급상자 위에 올라선 그는 창을 바닥에 쿵 찍고는 모두가 주목하도록 했다. 붉은 머리카락을 가진 남자는 서른 중반의 우락부락한 청년이었다. 그가 사방을 둘러보더니 갑자기 크게 입을 벌려 외쳤다. 위압감과 인상이 더 사나워졌다.

“ 들어라. 기생충 자식들아. 여긴 지구권이 아니다. 정확히는 태양풍이 닿지 않는 인외의 마경이다. 그러니 지금부터 우리 고참들이 하는 말을 귀 닦고 잘 들어라. 모두 이 창에 주목하라. ”

신참죄수들의 눈길이 일제히 창끝에 쏠렸다.

“ 이 곳이 뭘 하는 데인지 모르는 멍청이는 아마 없을 걸로 안다. 만약 아직도 모르겠다면 레비아탄의 먹잇감으로 당장 던져줄 테다. 이 창은 파나카라는 이름으로 레비아탄을 맨 처음 잡은 역사적인 유물이자 현용병기이다. 용도는 레비아탄 사냥용 전기작살이지. ”

누군가 같잖다고 생각했는지 큭큭 대는 비웃음 소리가 들렸다. 분위기 상 뭔가 사단이 날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 예상은 정확히 맞아 들어갔다. 일장 연설을 하던 사내는 창을 들어 그 소리가 난 곳에 다짜고짜 던졌다.

“ 으아아악!!! ”

“ 우어어어!!! ”

비명소리에 밀집해 있던 사람들이 기겁해서 괴성을 지르며 사방으로 흩어졌다. 그리고 노출된 장소엔 넓적다리에 통째로 관통당한 신참죄수가 처참하게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하지만 정작 창을 던진 장본인은 잔인한 미소를 지으며 다가가 창을 뺐다. 그러고 죄수의 머리를 걷어차 더 이상 비명을 지르지 못하게 했다.

“ 똑바로 들어라. 여기선 힘 있는 자가 곧 법이며 진리다. 힘 있는 자란 곧 레비아탄 사냥꾼을 뜻한다. 똥지개나 빈집털이는 여기선 그저 이름값에 맞는 대우에 만족해야 할 거다. 주제넘게 사냥꾼의 소유물에 손대거나 욕심내는 자는 방금 전에 벌어진 건 아무것도 아니란 것을 몸으로 느끼게 해 주겠다. 나는 레비아탄 사냥을 도맡는 피쿼드 호 제13호 보트의 작살잡이 가이 윈터스다. 벌써 17번의 실전을 거쳤으니 너희들이 앞으로 한참 우러러 봐야 할 어르신이지. 다시 말해 두지만 너희는 우리에게 최상의 예의를 갖춰야 한다. 이미 이 곳은 권력이 고르게 나눠져 있고 그 황금비율을 침해하려면 누구라도 그 하잘것없는 목숨을 걸어야 할 거다. 자. 그럼 지옥에 온 것을 환영한다. 버러지들아. 으하하하. ”

광소와 함께 가이의 연설이 끝나자 누군가 질문을 던졌다.

“ 그럼 똥지게와 빈집털이 이외에 남는 인원은 뭘 하게 됩니까? ”

“ 잡일꾼이자 예비다. 사냥꾼들이 출정에 나가서 쓸 물품을 만들고 기지 여러 곳을 손본다. 그러다가 외부 작업 중 인적 손실로 인해 결원이 나면 추첨과 자원에 의해 충원되는 거다. 그것이 아직 보직이 정해지지 않은 인원들이 할 일이지. ”

대답은 엉뚱한 곳에서 나왔다. 박스무더기 옆에서 안경 쓴 사내가 피곤한 기색으로 나타났다.

“ 나는 제레미 맥스라고 한다. 이 곳의 보안 사무관이지. 환영한다. 여러분. ”

그가 등장함과 동시에 숨 막힐 듯했던 건조한 분위기가 약간 풀어졌다.

“ 방금 작살잡이 가이가 말했듯이 이 곳은 무척 위험하고 규칙이 엄하다. 대신 규칙에 잘 따르면 그만큼 안전하기도 하다. 여러분에게 미리 말해 둘 것은 여기 235전진기지는 인간이 생존하기 그리 만만한 곳이 아니라는 점이다. 그래서 이제껏 너희가 어떤 인생을 살아왔고 어떤 사상이나 인생관을 가졌든지 우리는 전혀 상관하지 않는다. 이제 그것은 아무래도 좋다. 더 이상 누구에게도 중요하지 않으니까. 오직 생존의 연장만이 이 곳에서 추구해야 할 절대적인 가치이다. 여기서 너희들은 기지의 일부가 되어 기능해야만 먹고 마시는 것이 허락된다. 만약 그 규칙을 부정한다면 너희는 기지 밖으로 곧장 내쳐질 것이다. 기지 밖은 춥고 더운 것을 떠나 정체불명의 포자와 자연의 함정이 들끓고 가끔 괴생물이 목격되곤 하는 미지의 영역이다. 규칙에 따라라. 그것이 가장 유념해야 할 이 곳의 철칙이다. 모두들 잘 명심하길 바란다. 이상. ”

1만 명이 넘는 신참죄수들은 다들 먹먹한 심정이었다. 누구도 희망을 주지 않았다. 이럴 거라고 예측은 했지만 실제 암울한 상황에 맞닥뜨리자 그만 할 말을 잃고 말았다. 그만큼 이 곳에서 처음 만난 사람들은 다들 부정적인 인상이었다.

분위기에 휩쓸렸는가 심지어 윌과 맥스웰마저 죽을상을 하고 있었다. 이럴 때면 나의 둔감함이 새삼 고맙게 여겨지기까지 했다. 나는 시무룩한 윌과 맥스웰의 손을 당겨 잡고 냅다 즉흥적인 가사의 노래를 불러대기 시작했다.

여기서 바라본 지구는 암흑 속 외로운 얼룩.

빛보다 앞서 달린 우리가 여기에 있다네.

우리는 여기에 있기 때문에

여기에 있는 것뿐,

우리는 여기에 있기 때문에

여기에 있다네.

또 무슨 말이 필요할까.


돌아갈 수 없는 먼 길이라네.

그렇게 믿고 떠나온 길.

지금도 늦지 않았네.

시작이 힘들 듯이

새벽녘이 가장 깜깜한 법이지.

그리고 이 고된 투쟁도 언젠가 끝나겠지.

죽어서 떠나든가 살아서 떠나든가

과연 무엇이 다를 진가.

인생에서 회피할 수 없는 마지막 관문에

우리는 손을 잡고 함께 서 있다네.

내 선창에 윌이 부르고 곧이어 맥스웰이 큰 소리로 불렀다. 잠시 후엔 다른 사람들도 조금씩 따라 부르기 시작해 거대한 합창으로 변했다.

느닷없이 시작된 합창에 놀랐는지 작살잡이 가이는 낯짝을 찌푸리곤 작살을 어깨에 지더니 부하들과 함께 휘적휘적 사라졌고 제레미는 황당한 녀석들이 왔군 하는 표정으로 우리들을 멀뚱멀뚱 쳐다볼 따름이었다.

잠시 후 간수와 고참들이 쏟아져 나와 신참들을 방으로 안내하고 물품을 배급했다. 배정된 잠자리는 가히 역대 최악으로 중세 감옥에 버금가는 악취가 풍겼다. 물론 내가 그때 맡아봤단 소린 아니지만 그에 비견될 만한 가공할 수준이었다.

“ 어이. 이봐. ”

모포와 세면도구를 정리하다가 누군가 부르는 소리에 무심코 창살 밖을 내다보니 제레미가 싱글벙글하며 웃고 있었다.

“ 자네 때문에 첫날 밤 목매다는 인원이 줄게 됐군. 그게 그들 개인에게 좋은 일인지 나쁜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나 개인적으론 너에게 감사해. 자살자를 치우는 건 보안사무관인 내 담당이거든. ”

나는 모포를 마저 개며 말했다.

“ 우리가 우주에서 죽어나가면 아예 손 댈 일이 없으니 고마울 법도 하겠소. ”

“ 뭐 그렇게 퉁명스럽게 굴 필요는 없어. 나와 잘 지내면 뭐라도 하나 더 얻어먹을 수 있을 테니까. 하긴 자넨 오늘 내 눈에 들었어. 그러니 앞으로 행동에 유의하게. ”

“ 좋게 눈에 든 건 아닌 것 같구려. ”

“ 아니. 나 개인적으론 좋아. 하지만 다른 자들은 네가 신참 죄수들을 선동해 문제를 일으킬 거라고 여기고 있을지도 몰라. 그들이 부하들을 시켜서 너에게 폭행을 가할 지도 모르고 작업 도중 살해할지도 모르지. 하여간 당분간 눈치 좀 보라고. 친구. ”

제레미는 창살 너머로 뭔가 두툼한 봉투를 떨어뜨리곤 휘파람을 불며 사라졌다. 그 안에는 신참에겐 두 달 간 금지된 담배 세 갑과 삶은 닭고기가 들어 있었다.

“ 이건 아까의 보상일까? 아니면 단백질 보충을 해서 앞으로 잘 버티라는 뜻일까? ”

옆에서 내 손에 들린 닭고기를 게걸스레 뜯어먹는 두 동생들을 억지로 무시하며 나는 그렇게 중얼거렸다.

그렇게 첫날밤이 지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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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35전진기지에 도착하다 +5 15.10.02 2,182 59 12쪽
12 새로 생긴 형제 +5 15.10.01 2,313 79 15쪽
11 루돌프 대령 +9 15.09.30 2,315 63 16쪽
10 사냥꾼 +6 15.09.28 2,395 66 12쪽
9 레비아탄 +6 15.09.26 2,962 69 10쪽
8 낭만의 달, 광기의 달 +3 15.09.25 2,516 67 11쪽
7 함정 +4 15.09.24 2,827 73 12쪽
6 교전 +1 15.09.23 2,748 68 8쪽
5 우주요새 바실리스크 +1 15.09.22 3,542 74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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